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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 - 살면서 늙는 곳, 요리아이 노인홈 이야기
가노코 히로후미 지음, 이정환 옮김 / 푸른숲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이보다 더 적절한 제목이 있을까?
치매 노인들이 모두 한목소리로 외치고 싶은 말, “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 바로 이 문장일 것이다. 치매에 걸린 사람을 거치적거리는 존재로 생각하는 제도, 시설, 세태에 대한 분노, 단순히 ‘치매’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정든 집과 이별해야 하는 슬픔을 시모무라 에미코, 무라세 다카오 등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들은 노인들을 위한 요양시설을 만듦으로써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있다.
난처한 상황에 놓인 노인 한 명,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치매 걸린 노인 오바 노부요를 만나 시작된 ‘요리아이’ 노인요양시설의 건립. 그들의 무모한 계획은 오직 ‘치매에 걸려도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다’는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시설에 대한 갈망으로 시작된다.
기상부터 취침까지, 누군가 정한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완벽하게 관리를 받는 생활은 누구라도 싫어할 것이다. 치매에 걸린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자유로운 생활인’으로 살고 싶어 한다.
노인, 그리고 노인에게 필요한 제도를 위한 그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후원자들의 따뜻한 마음은 무모한 계획과 막대한 자금을 동원하기 위한 그들의 고군분투를 시종일관 밝고 유쾌함으로 바꾸어 놓는다. 돈도, 정치력도 없는 그들은 “어떻게든 될 거야―”라는 낙천적인 노래를 흥얼거리며 돈을 마련하기 위해 각종 잼을 만들어 팔며, 카페를 운영하고, 바자회를 여는 등 일상을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서 보낸다.
폭소에 이는 폭소. 장내를 뒤흔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들의 특별 노인요양시설은 일상에서부터 떨어진 공간이 아닌, 숲 같은 장소에 지어지고 관리와 감독에서는 자유롭고 지배나 속박과는 거리가 먼 시설이다. 카페를 찾아오는 손님들의 세계와 특별 노인요양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의 세계가 자연스럽게 뒤섞일 수 있는 환경, 이것이 ‘요리아이’의 철학이자 우리가 꿈꾸는 요양시설의 모습이다. 차가운 리놀륨 바닥에 하얀 실내화를 신고 걸어 다니는, 소독약 냄새가 나는 병원 같은 분위기가 아닌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전망 좋은 창문과 나무 냄새가 나는 자연의 분위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직원들과 스스럼없는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식사를 하는 노인들. 사회에서 격리되는 것이 아닌 사회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만들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요리아이’ 직원들. 그 둘의 세계는 일상을 공유하며 언제나 따뜻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사람은 요양시설에 들어간 순간, 마치 사회에서 모습이 사라지듯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요양시설이라는 말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느껴지는 이유는 사회에서 내몰린 사람들이 유폐된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가정을 파괴시킬 수 있는 ‘치매’라는 질병은 누구나 나이 들어가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가족―자식―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병에 걸리기 전부터 요양시설은 ‘제2의 고향’이라는 만트라를 외는 노인들. 그들을 서서히 잠식시키는 ‘치매’라는 단 하나의 질병은 더 이상 그들을 과거의 평범한 나날을 꿈꿀 수 없게 하며 모두를 지치게 만드는―정신적, 신체적, 경제적으로―미래만을 내놓는다. 이러한 현실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사회적 지원의 절대적 부족, 현재의 간병 시스템에 대한 회의감…, 이 모든 것을 ‘요리아이’의 그들은 밝고 따뜻하고 낙천적으로 그린다. 현실 속에서 바라본 동화 같은 그들의 일상.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로 ‘요리아이’를 설명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 같다.
모두의 생명
‘요리아이의 숲’을 방문하며
-다니카와 슌타로
여기는 다양한 생명들의 거처
꽃을 피우는 생명, 하늘을 나는 생명
명상을 즐기는 생명, 사납게 포효하는 생명
바닥을 더듬는 생명, 비수를 쏘아대는 생명
기력을 다하여 일하는 생명, 그리움에 젖어 눈물 흘리는 생명
여기는 역시 다양한 생명의 정류장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고
젊은 잎, 붉은 잎, 시든 잎, 떨어지는 잎
춘하추동 형형색색으로 물들며 시간을 보낸다
여기는 즐겁고 소중한 특별 노인요양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