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 허준
이재운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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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의 일생은 다방면으로 재조명된 바 있어 새로운 면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자칫 인생 겉핥기식이 될 수 밖에 없을 듯 싶었다. 드라마는 이미 국민 드라마로 자리매김된 바 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어린 꼬마까지 허준을 모르면 간첩이다. 역사의 유물이나 고서를 살펴보다 보면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 무엇보다도 뛰어난 감각으로 작품을 만들고 책을 써낸 걸 보면 현대의 기준으로 바라보아도 가히 놀랍다고 밖에는 표현할 도리가 없는 것들이 많다.

<동의보감>도 그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동의보감>이 나오기 전까진 중국 의서에 의존하면서 민간 요법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허준'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굳은 결의와 열정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의 의학은 어떤 길을 가고 있을까? 지금 우리나라의 의술은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의술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곳이 되었다.

 

  이 책은 허준의 일생을 찬찬히 훑어 가는데 그 과정에서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고 그 시련과 역경 속에 책을 발간하기까지. 소설이라기보다 전기와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된다. 스승 '유의태'와의 만남은 그의 일생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고 이미 독자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므로 간략하고 짧게 소개한다.

그 많은 제자들 속에서 묵묵히 치료하고 공부하며 자신의 길로 매진하는 허준. 그 뒤를 묵묵히 따르는 아내의 내조도 그의 인생에 큰 몫을 한다. 백성들이 병으로 고통받는 것을 보고 그들의 치료가 최우선이긴 하나 서자 출신이라 언제나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던 허준은

그 어린 날 목구멍의 가시같았던 굴레를 벗고나고자 내의원 시험에 응시하게 되는데 이것의 그의 인생에서 두 번째로 큰 인생의 굴곡을 만들게 된다.

선조와의 만남과 임진왜란! 조정은 당파의 싸움으로 늘 어지럽고 그 힘에 왕권을 확립하지 못하는 비운의 왕. 그의 인해 헐벗고 굶주리며 병마와 싸워야 하는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보면서 민간에 보급되어야 할 의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가운데 왕의 명으로 <동의보감>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의원의 기본 자세인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묻어나는 대목이 임해군과 있었던 사건이다. 정신적으로 쇠약한 그를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그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한 부분이다. 오늘날 의사들이 진정 배워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다. 진료실로 들어가기까지 오래 기다렸다 들어가면 입 벌리고 귀보는 로보트적인 기본 말고 큰 중병이 아닌이상 환자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고 노력하는 의사로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자세.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의료 서비스가 아닐까 싶다.

 

  삶속의 어느 한 부분을 집약적으로 들여다보는 소설이 아니고 전체적인 숲을 보는 거라 그다지 흥미롭고 다음을 기대하게 되는 책은 아니었던 것 같다.

기존에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설명하는 수준이라 아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위인전 같은 느낌이었다. 위대한 인물이 다음 시대에도 계속 회자되는 일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당연하다고 그냥 넘기기보다 그 인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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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지음, 김재혁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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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어린 날 청소년기에 읽었던 '데미안'을 명확하게 기억하진 못하지만 우유뷰단한 친구에게 자유로운 영혼과 구원의 손길을 뻗치던 그 대단한 존재 '데미안'만은 잊을 수 없다. 어렵고 잔잔하고 깊이있는 문장들이 때론 어린 내게 무겁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틀에 박힌 교육의 현장 한 가운데서 사춘기를 제대로 겪을 겨를도 없이 스치듯 지나가는 과정에서 읽은 그 책은 영혼의 친구를 만난 듯 했다. 그리고 그 책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수레바퀴 아래서>를 불혹의 나이에 접하게 됐다. 이 뭉클함과 잔잔함 속에 녹아있는 사춘기의 애잔함!

명작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를 더해간다고 했던가! 중년으로 가는 이 시점에서 여유롭기는 커녕 그 두려웠던 사춘기 시절처럼 왠지모를 불안감을 느끼는 요즘 마음의 안정을 조용하게 되찾게 해준 책인 듯 싶다.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 외모상으로도 연약하기가 이루 말할수 없고 어릴 적 부터 두각을 나타내 아버지의 기대와 나아가서 마을의 유망주로 떠오른 하얀 얼굴의 공부벌레! 공부만 잘한다고 어른들이 전력질주해서 그쪽으로 밀어부치는 행위가 과연 정당하고 옳은 일인가? 그 시대가 그런 인간형을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고 오랜 교육 방식에 개몽되지 못한 부모의 교육 방식이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합리화 해 본다면 지금의 우리시대는 어떤가? 한 세기를 넘어섰고 부모의 의식은 개몽에 개몽을 거듭해 부모가 자식의 스펙을 쌓아주는 경지에 이르렀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춘기의 아이들은 더 자유롭고 나름의 생각할 시간과 여유를 갖고 살고 있는가? 누가, 무엇이, 고귀하고 순수해야 할 나이의 아이들을 지독한 고독과 악독한 교육의 현장으로 내몰고 있단 말인가. 씁쓸한 기운을 책을 다 읽은 후까지도 못내 지울 수 없었다.

수재들만 들어간다는 신학교를 들어간 한스는 자신의 본문에 맞게 공부에 온 정신과 마음을 쏟아 붓지만 자연을 벗하고 느긋한 그만의 세계를 잃어버리면서 마음이 병들기 시작한다. 마침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친구'헤르만 하일너'를 만나지만 어른들이 추구하는 세계가 옳은 길이라 믿고

있던 한스는 점점 문제아로 낙인 찍히고 친구와의 교류를 통해 사춘기를 관통하면서 새로운 사고를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물론 어디나 그렇듯 그 틀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인간유형도 많다. 하지만 다른 사고와 다른 생김새를 가진 무리를 가둬두고 모두 똑똑한 수재가 되기를 강요하는 그들은 누구를 위한 교육을 하는 것인가. 헤세가 하고픈 말이 그대로 들어난 문구가 있다.

 

아버지와 몇몇 옛 선생들의 야비한 야망과 학교가 이 연약한 인간을 이 지경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왜 그는 인생에서 가장 민감하고 위험스런 소년 시절에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를 해야 했던가?

 

 청소년기를 지나고 청년이 되어 가면서 한스는 어린 날 자신을 되돌아본다. 친구가 많거나 큰 사고를 일으킨 적은 없지만 조용한 가운데 자신을 돌아보고 이웃의 소소한 일상을 사랑했으며 낚시를 즐기고 수영을 좋아했으며 풀밭에 누워 명상 하기를 좋아했다. 그랬던 그는 어느 날 푸른 옷을 입은 기계공이 되어 있었으며 이기지 못하는 술에 흠뻑 취한 자신을 발견한다.

그가 느낀 현실의 무게는 어떻게 다가왔으며 그 시절을 그리워할 여유도, 느끼지도 못하게 된 한스는 어떤 삶을 선택하기를 희망했을까

한스를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은 눈물겹다. 자신이 의도한 적도 없고 자신이 선택한 것도 아닌데 물흐르듯 흘러와 버린 현재의 나와의 조우!

어른들의 냉혹하리만치 단절된 대화. 우리나라 창소년 아이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 그 오랜 옛날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일까. 가슴이 저리다.

 

 인격 형성은 뒷전이고 우리의 아이들은 부모가 쌓아주는 스펙에 목숨을 걸어야 하고 자신의 목적 의식도 없이 제 2차 성장을 치뤄내고 있다. 이 아이들이 더 불안하고 안쓰러운 것은 마땅히 대화의 상대도 들어줄 상대도 없다는 것이다. 불혹은 맞은 나 같은 사람은 심리적 불안을 겪고 있다곤

하지만 그 동안 쌓아둔 인생의 경험과 나름 관리해 둔 인간관계가 이 감정의 기복을 조용히 거칠지 않게 치료해 줄 것이다.

허나 이 아이들은 어떻게 그들만의 자유를 찾을 것이며 문득 찾아드는 자아의 존재감과 고독을 치유하고 성숙시켜 나갈 것인가?

학교에 밀어 넣고 눈가리고 귀를 막고 그 시기를 넘기면 된다고 얘기할 것인가. 우리는 이런 고전적 문학 작품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감정을 치유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보다 중요할 것이다. 어른의 한 사람으로써 이 불타는 사명감을 어디다 쓸 것인가.

마지막으로 한스의 수도원 교장선생이 회유를 하면서 한마디 던지는 장면이 있다. 우리는 어떤 어른의 모습을 보일 것인가 생각해 볼 문제다.

 

"그래, 아무렴 그래야 해. 한스. 해이해지면 안 돼. 그랬다간 수레바퀴 아래 깔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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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를 위한 심리상담
로버트 드 보드 지음, 고연수 옮김 / 교양인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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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는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의 손 흔드는 '토드'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디즈니에서도선보였다던 이 유명한 우화를 난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인가. 현시대의 최대 유행어가 바로 '힐링'이 아닌가 싶다. 이것의 정확한 의미는 '고치는, 치료의, 치유'라는 뜻이다. 무엇을 우리는 그토록 치유받기를 원하는가? 자본주의의 병폐가 곳곳에서 보이는 가운데 화폐의 가치가 인간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젊은 청춘에서부터 고령의 어르신들까지 먹고 사는 것에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현대인의 정신은 갈수록 황폐화되고 있다. 누구와 속시원히 대화할 상대도 없고 들어줄 여력이 없다. 지금 이게 우리네 삶이 되어 버렸다. 좀 비약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포장되어 진 삶을 보면 속앓이로 병들고 내 편이 없음에 외로워하고 있다. 정신과를 간다는 건 예전엔 소위 미친사람만 가는 곳이라 생각하던 그런 시대가 있었다. 의미와 의사의 역활도 많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젠 이런 곳을 찾는게 부끄럽고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심리 상담소' 라고 명명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주인공 '토드'를 통해 현재의 나는 결코 과거를 부정한 나는 존재하지 않으며 불안한 심리가 지속된다면 치유를 통해 보다 나은 미래의 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활달하고 모험을 즐겼던 두꺼비 토드는 언제부턴가 우울한 나날을 보내며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된다. 함께 모혐을 즐겼던 친구들 렛과 몰의 도움으로 심리 상담을 받게 되고 그 상담을 통해 어릴 적 나와 조우하고 치유해 가는 과정이다. 책을 읽어가면서 흥미롭고 좋았던 것은 나를 견주어 보고 어린 아이들을 함께 관찰하며 '아이 자아 상태'를 살펴볼 수 있었다. 실제 그들에게서 보여지는 감정들은 극히 본능적이고 단순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학습의 과정을 통해 이 감정이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며 거기에 대처하는 방법도 키워가게 된다. 문제는 이 '아이 자아 상태'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고 혼란한 시기를 보내거나 어른들의 무관심으로 내버려 둔다면 극단적이거나 폭력적인 감정으로 숨어있다가 어른이 된 뒤에도 폭력적 본능으로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연결고리인가? 우연일 수 없고 어른들의 방치와 무지에서 비롯된 인격 형성의 고리! 적응이 잘된 아이 자아 상태는 어른 자아 상태에서 성숙기를 맞고 부모 자아 상태에 이르러 비로서 온전한 자아를 누리게 되며 새 인격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갖춰지는 것이다. 폭력적인 어른이나 무관심하고 권위적인 부모들은 하나 같이 아이 자아 상태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파생되는 문제형 어른들인 것이다. 여기도 이런 류의 어른형인 '배저 아저씨'가 등장한다. 권위적이고 자기만 아는 안하무인! 토드를 주눅들게 하고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행동이 우선인 유형. 내 어릴 적 자아를 깊게 찾아내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내 어릴 적 아이 자아 상태를 반추해 본다.

 

 우리나라는 이런 상담소를 찾아가는 문화도 아직 시기상조인 듯 해 보인다. 자살률이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고 있는 시점에서 대응책이 무엇인지 국가가 국민을 위한 최소의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 스스로 헤쳐나갈 수 밖에! 우선 들어주는 자세부터 바꾸어 보자.

같이 욕은 못해줘도 적어도 넌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도록 맞장구 쳐주고 잘한다고 용기를 주자. 요즘 유명세를 타는 혜민 스님이 이런 얘기를 자주 하시는 듯 하던데 듣는 이는 추임새를 넣어서 용기를 주고 말하는 이는 자신을 비약하지 말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 미리 겁을 먹지 말자는 것이다. 아이 혼을 낼 때도 '니가 누굴 먼저 때렸어? 니가 동생꺼 뺏었니?' 비난조로 아이를 몰아세우기보단 아이의 감정을 번저 헤아리고 물어 보기!

요즘 아이가 클수록 좀처럼 안되는 일 중에 하나다. 나에겐 이래저래 큰 도움을 받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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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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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로움을 자극한 만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책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고 답해주는 곳. 허나 시공간을 넘나들며 문답이 이뤄지는 것이 흥미로우면서도 잡화점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행동했던 일들이 현재와 연결되는 고리가 조금은 억지스러웠다고나 할까?

시간의 흐름을 이해 못하는 바보스런 독자여서 일지도 모르겠다. 각각의 인물들이 가진 그들만의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니 시간의 흐름을 놓친 것 같기도 하다.

현대를 사는 지금의 우리는 혼자일 때가 많다. 예전의 풍성한 가족관계도 없고 대화도 단절되고 자본주의 시장 경제 주의에 의거. 먹고 사는 것에 어린 나이 때부터 허덕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인격 형성은 나중 문제고 그로 야기되는 문제가 범죄와 연결돼 책으로 쓴다면 책 지면이 모자랄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이런 사회속에서 우리는 누구와 대화하고 누구와 고민을 이야기 할 것이며 그 돌파구를 향한 대답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이런 상점이 있다면 돈을 내고서라도 사람이 몰리지 않을까 싶다.

 

  '쇼타, 야쓰야, 고헤이'는 이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찌들린 청춘이다. 그들은 우연히 발견한 상점안에서 기이한 경험을 하는데 편지를 통해 과거로 향하고 과거에 있는 사람은 편지를 통해 현재와 맞닿아 있다. 여러명의 고민 상담자가 스쳐가고 그들 또한 사람이든 장소든 다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여 있다. 그러고 보면 소설이고 공상과학 같은 이야기라고 하지만 이치에 맞고 그럴싸한 걸 보면 과거 없는 현재는 없고 현재 없는 미래는 없는 듯 하다.

혹자들은 과거는 과거일 뿐, 오늘에 충실한 삶을 살면 된다 라고 한다. 용기와 희망을 주는 문구라 나 또한 좋아하는 말이지만 과거의 나가 없었다면 현재의 나도 없고 미래의 나도 없을 것이다. 물론 현재를 마지막처럼 쓰면서 노력한다면 미래를 보다 나은 나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우리는 알 수 없고 지금껏 살아온 나를 돌이켜보면 이유 없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뭐든 무시하고 잊어버린다고 일이 해결되는 게 아니고 무시했던 일은 언젠간 내 앞에 돌아오고 잊어버린 일 또한 부지불식간에 내 속에 들어오게 된다. 잊지 않고 직시하고 돌파구를 찾아서 조금씩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게 연결된 시간 고리를 자연스럽게 넘기는 것이 아닐까. 참 어렵고 난해한 이야기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그런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나 또한 질문을 하고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고나 할까.

 여러 명의 고민 상담자 중 '고스케'의 이야기가 와 닿는다. 야반 도주하려던 부모님을 떠나 혼자 18년의 세월을 살아낸 사람. 부모님의 생사도 모르고 그 어린 날 사춘기때 접한 비틀즈의 해체 원인을 자기만의 해석으로 치부하고 본인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자랑스럽게 여긴 사람. 그 사람의 인생의 실타래는 어떻게 풀렸을까?

어린 날의 비틀즈 영화를 보며서 그는 이런 생각을 한다. 이것이 그의 인생을 뒤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끊기는 것은 뭔가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누군가는 어떻게든 회복하려 들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인연이 끊겼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나이도 아닌데 지금도 이렇게 생각할 때가 있다. 이 글을 보느 순간, 사춘기를 앓고 있는 내가 아닌가 순간 부끄럽고 움츠려 든다.

재고의 여지를 두지 않고 단정하는 나쁜 습관! 그래서 오늘도 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러 명의 인생 이야기는 책 속의 또 다른 단편집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고민이 있다면 해결을 한다기보다 들어주는 사람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 싶다.

누구나 자신이 느끼는 인생의 무게는 각기 다른 법! 왈가왈부할 거 없이 그 사람을 이해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기! 내가 이 책을 덮으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게 아닐까 싶다. 거창하게 상담자가 아니라 내 이웃의 가족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사람. 그것만으로도 치유되는 이웃이 많다는 사실을! 그럼 나의 이야기는 누가 들어주지? 인간 관계는 해답이 없고 참 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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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ford Phonics World 3: Student Book with MultiROM (Package) Oxford Phonics World 3
Craig Wright 외 지음 / OUP Oxford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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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영어를 왜 배우는가?' 하는 식의 질문은 우매한 질문이 되어 버렸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평생 교육 과정에 포함된지 오래고 모든이가 잘하고자 하는 염원의 언어가 되었다.

그것은 '너나 할 것 없이 하니까 나도 한다' 라는 개념이 아니라 각자 개인의 필요에 의함과 동시에 생활이 질적으로 향상되면서 공부의 목적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그야말로 사람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배우게 된 것이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영어 교육 조건이 우리 때와 확연히 달라진게 보인다. 의식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교육하고 내 아이들이 영어를 접하는 걸 봐 왔지만 사실 80년대 영어는 기본이 alphabet 부터 시작에서 sound 나 phonics는 건너 뛰다 시피하고 단어에 바로 문장, 외우고 또 외우기, 문법. 이 전 과정을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과정까지 6년간 대학을 위한 목표의 하나로 접근했었다. 허나 시대가 바뀌면서 세계가 글로벌화 되고 영어는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노출되게 되었다. 굳이 알파벳을 가르치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간판이나 방송에서 보여지는 수많은 영어관련 프로그램, 해외 여행 등. 재미를 가미한 영어 활동이 활성화 되면서 아이들은 더 이상 영어가 두려운 과목이 아니다.

 

  서론이 길어지긴 했는데, 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두긴 했지만 그 전에는 이런류의 책을 탐구하고 영어 서점을 들르는 게 하나의 일상이 되는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의 영어를 가르쳤기 때문에 교재의 선택이 필수였고 그러기 위해선 영어권 제도내에서 발행된 책들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oxford 나 longman은 제 3국의 영어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출판업의 사장길에 접어 들 수 있었으나 새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 oxford 사에서 나온 교재 중 가장 많이 쓰는 교재가 'let's go!'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 또한 그 교재를 쓰기도 했고 longman의 'backpack'을 쓰기도 했다. 이 책을 받고 5살 아들 녀석이 너무 좋아했다. phonics편이라 본인에겐 어렵고 알지는 못하지만 다양한 색채감과 빈칸 채우기가 있어 나름대로 아는 알파벳을 멋대로 적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에겐 무엇보다 cd의 구성이 중요하다. 들으면서 chant를 통해 음가를 이해하기도 하고 단어에 대한 발음을 인지하기도 한다. story가 있어서 흥미를 유발하고 마지막으로 game을 통해 복습의 효과와 동시에 재미를 잡을 수 있을 듯 싶었다. 무엇보다 책의 캐릭터가 아이들이 요즘 잘보는 'super why!'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비슷해서 재미있어 했다. 총 unit 8으로 구성되는데 두 과가 끝날 때 마다 review가 있어 앞의 내용을 한 번 더 상기시켜 주는 역활을 한다.

한 가지 아쉽다면 애니로만 구성된 인물을 실제 외국인들의 모습과 함께 접목시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요즘 어린이들은 외국인들에 대한 거리감이 없는 게 사실이지만 그 나라의 특색을 나타내는 건물이나 스페셜한 날에 치뤄지는 행사들을 실사로 구성한다면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 책은 PHONICS를 익히는 특수한 조건이 걸려서 그런 다양성을 지양하기는 힘들 듯 싶다.  아이들과 책에 실린 게임을 하면서 힘들긴 하지만 나름의 규칙도 지켜가면서 몇 개를 했다. 아들 녀석은 승부욕에 불타는 나이인지라 계속 져주면서 단어를 소리내어 읽기를 반복했다. 아직은 공부라 생각하지 않고 게임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지라 활용도를 잘 맞추면 즐거운 책놀이가 되지 싶었다.

 

  유아 교육 쪽에선 아직도 영어 조기 교육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모국어 습득도 안된 상태에서 시키느냐 모국어가 인지된 상태에서 시키느냐. 전문가가 아니라서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전문가라 해도 이 부분에 대해선 확답을 하지 못한다. 통계적 수치로만 얘기할 뿐. 아이들마다 받아들이는 속도와 개별성을 무시하고 외국어를 무분별하게 시키는 게 제일 최악의 선택이 아닐까 싶다. 어차피 영어도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대화의 수단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잘못된 교육 방식으로 그 큰 틀을 보지 못하고 입시 위주의 교육에만 치우치는 이 나라의 교육 제도가 문제라면 문제. 좋은 교재를 통해 아이와의 교감을 처음으로 시도한 듯 해서 미안함과 동시에 아이에겐 엄마와 게임을 하는 기다려 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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