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죽음들은 오래도록 지속된다 - 역사 속 인물들의 죽음에 관한 기록
파트릭 펠루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삶을 사는 것만큼 죽음에 관한 것도 중요한 일이 되었다. 수많은 경쟁과 환경 오염. 그로 인해 생겨난 죽음에 이르는 스트레스부터 우울증, 신종 바이러스에 의한병균 등. 예전엔 질병에 의해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의 현대인들은 정신적인 병과 싸우는 일이 급선무가 되었고 결코 멀지 않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지나친 일이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인명은 재천'이라는 옛말은 이미 무의미하게 들리기까지 한다. 그러던 찰나에 접하게 된 이 책은 특히나 역사속 인물들의 죽음을 엿볼 수 있을 듯 하여 흥미를 자극했다. 지금처럼 의술이 발달되지 않은 과거의 의술로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을까?

 

 첫 장부터 역사속 인물의 죽음을 상세히 나열한 장면들은 충격적이었다. 글쓴이가 의사라서 그런지 그 상황과 정황을 고려해 그 인물의 상태가 어떤지를 꼼꼼히 나열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암흑 절정기(?) 특히 혁명 때 인간에게 행해진 가혹행위들은 상상하는 것도 곤욕스럽고 인간이 얼만큼 잔인해 질 수 있는지 끔찍하기까지 했다.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때 정치적으로 혼란스럽던 시기, 죽음에 이르렀던 인물은 자연사와는 거리가 먼 정치적 희생이 훨씬 많았다. 궁핍과 핍박에 탈출구를 찾던 시민들의 아우성, 무차별적으로 가해진 단두대의 사용. 그런 정치적 희생이 오늘날에는 완전히 없어졌다고는 절대 생각치 않는다. 언제나 그 시대를 이끄는 인물들은 때와 맞게 반대파 인물들을 잘도 숙청하니까!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영화가 대히트를 친게 얼마되지 않았고 따라서 그 때 장면을 이 시대의 인물과 결부시켜 상상을 해보니 영화를 보는 듯 처철하고 파리 목숨처럼 사라진 인물들의 참담함과 비장함이 느껴져 읽기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이 당시 이들의 나이는 이른 30대들. 어찌됐든 역사는 그들을 기억한다.

전쟁에 대한 참혹함은 '워털루 전쟁'과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그 이전의 역사를 보면 영국과 프랑스가 맞닿아 있어서 그런지 앙숙처럼 물고 뜯기는 형상이 많았다. 이 두 전쟁은 두 나라의 관계를 떠나서 전쟁의 참혹함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 아닐까. 저자도 서술하듯이 전쟁을 치뤄보지 않은 우리 세대는 전쟁에 대해 막연할 수 밖에 없다. 전쟁으로 상처받고 고생하는 분들이 겪는 고통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얘기하는 젊은 세대를 진정성있게 볼 수 있을까. 고통을 감내하며 나를 버린 무수히 많은 청년들. 노르망디 해변은 아직도 폭탄과의 전쟁 중이라고 한다. 나와 너가 사회를 구성하고 가족이 모여 마을' 사회를 이루고 집단을 만들고 나라가 되고 세계가 된다. 자신, 혹은 자국의 이익 추구란 개념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몰라도 종교하는 이름으로 우리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이 순간에도 치워지고 있는 전쟁 옹호자들은 과거에서 살아 돌아온 나폴레옹이나 히틀러, 스탈린임에 틀림없고 그들의 모방자이며 추종자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누가 누구를 벌하고 평화를 준단 말인가. 이해하지 못했던 평화론자들이며 전쟁에 결사 반대하는 이들의 기본 정신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불순한 의도 없이 욕심으로 치달아 인간이 스스로 멸하는 단계까지는 가지 않기를 역사를 통해 배우고 지켜야 할 가치는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깊이 반성해 본다.

시대를 역행했던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현대를 미래로 이끈 '마담 퀴리'같은 분도 있다. 자신의 몸이 방사능에 노출돼 죽어가면서도 연구를 계속했던 집념의 여인. 시대의 희생자 "까미유 끌로델'. 로뎅에 가려 작품에 대한 평가도 후대에 알려지고 죽음앞에서도 평탄하지 못했던 예술가. 생전에 박완서님이 말씀하셨듯 살아 생전에 궁핍한 생활의 끝을 보지 못했던 '김수근'화백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아이러니니 하게 사후에 칭송받고 작품의 가치가 수십배에 달하는 걸 보면 현시대의 모멸감이랄까. 인간의 가치는 없고 가치의 기준이 변질되어 간다.

 

 책을 통해 본 역사속의 인물들은 너무나 유명해 죽음앞에서도 당당했을 것이고 모든 이들의 축복속에 죽음을 맞이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에서 시작했다. 그 기대감은 산산히 부서지고 죽음은 누군가를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나를 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 직전이 되면 어떤 권력도 명예도 부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살아온 발자취를 되돌아 볼 시간이나 있을까. 한 치 앞도 모르는게 세상사고 내 개인사이기도 하다. 두려움 가득한 죽음이 아닌 삶을 논하듯 죽음도 맞이하는 방법을 머릿속에 세뇌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검은 수도사 사형집행인의 딸 시리즈 2
올리퍼 푀치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면 한가이 앉아 책읽기가 무척 어려워진다. 시원한 커피숍에 앉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앞에 두는 것까지는 좋은데 장소의 특성상 시끌벅적한 곳에서 책읽기란 또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저런 여름에 책읽기의 단점을 다 불리칠 수 있는게 공포 혹은 추리소설 정도가 아닐까. 눈으로 보는 공포영화도 좋지만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두 눈 꽉 감아버리는 일이 더 많아 많은 장면을 그냥 넘기기 일쑤다. 허나 책은 글을 무조건 읽어야 장면이 눈에 보이고 상상도 비교적 폭넓게 할 수 있어서 돈 버리는 일 없이 잠시나마 시원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우선 이 책의 1편이라 할 수 있는 <사형 집행인의 딸>은 읽어보지 못해서 그 후속이라 할 수 있는 <검은 수도사>와 연결되는 부분이 많았다면 이해도도 떨어지고 흥미도 반감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단독적 사건으로 일관되어서 큰 무리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유럽 중세 시대의 이야기는 아름다고 화려한 귀족 문화와 더불어 예술품, 의상 등 상상거리도 무긍무진하고 기독교라는 종교와 결부돼 많은 잔혹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작가가 이야기하듯이 종교적 색채가 짙은 책이 되긴 했지만 '종교가 야기할 수 있는 모든 광기뿐만 아니라 쉽사리 신을 의심하게 되는 시기에 종교가 제공해주는 위안과 보호도 보여준다.'라고 마지막에 간략한 설명도 덧붙여 두었는데 거기에 딱 부합되는 책이 아닌가 싶다.

 

 사형집행인! 우리나라로 치면 '망난이'정도가 되지 않을까. 누군가 법을 만들고 형을 선고하는 사람은 높은 직위에 있고 그 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최하층이다.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 죽인 것도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닌 그 또한 직업으로 하는 일이나 잔혹하게 죽임으로써 성난 민심을 수습하는 무기로 그들을 이용해 왔고 오늘날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은 없어졌으나 지금도 여전히 고위층의 비위를 맞추고 민심의 눈을 가리는 기관은 더 많이 존재하고 있다.

무지막지하게 죄인을 다르는 사형집행자 '야콥 퀴슬'. 무서운 면 이면에 약한 자에겐 한없이 약하고 없는 자에겐 도움을 주는 외모와는 이율배반적인 인물이랄까. 그의 딸 '막달레나'. 주장과 고집이 세고 어디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킬 줄 아는 여자. 그녀를 사랑하는 순정파이자 바람둥이 의사 지몬. 이들이 사는 고장에 신부가 죽음으로써 새로운 사건의 발단이 된다.

신부의 여동생으로 나타난 '베네딕타'. 아름다운 이면에 감춰진 비밀스러움을 간직한 여자.

사건을 들여다 볼수록 종교적인 인물들이 깊이 관여되어 있다. 신부의 죽음으로 짐작컨대 교회와 그 재단에 관련된 일이 아닐까 했는데 그 집단에 깊숙히 관련되어 있다. 종교에 힘이 생기고 그 힘에 기득권까지 합세하면 그 영향력은 왕을 능가한다. 서양사에서 가난한 자를 구하기 위해 나타난 예수의 등장이 더 큰 화를 불러 일으킨 경우가 허다했다. 최악의 사건으로 꼽는 십자군 원정부터 종파가 나뉘어 결국 청교도 혁명으로 신대륙 발견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쓰기까지. 인류를 구원할 줄 알았던 종교는 참으로 많은 살상을 일삼았다. 현재 이스라엘은 어떤가? 우리나라의 구원파는? 어느 종교이건간에 종교적 분쟁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권력 내려놓기'가 없으면 절대 뿌리 뽑히지 않을 숙제다. 예수가 못박혔던 나무의 한부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템플기사단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그들이 남긴 보물(?)을 찾기위해 또 다른 권력들이 결탁하고 힘을 키운다.

갈수록 흥미진지하다가 마지막부분으로 치달으면서 마무리단계가 너무 성급하게 이루어진감이 있어서 긴장감이 살짝 반감된 느낌도 없지않아 있었고 베네딕타의 뒷통수도 조금 어설픈 감이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간만에 읽는 서양 역사추리소설이라 재미나게 읽었다.

 

 이 책의 저자가 이 책에 등장하는 사형 집행인 집안의 퀴슬가 후손이기도 하단다. 우리의 족보는 역사속으로 사라지는데 서양에는 여러 민족이 섞인 윗대 조상의 뿌리찾기가 유행이라고 한다. 간혹 미국드라마 소재로 쓰이기도 한다. 참 동양에서 사라져가는 문화는 서양에서 받아들이고 서양에서 사장되어 가는 것을 동양에선 앞다투어 받아들이고.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책 두께가 있어 걱정했는데 추리소설이고 스피드한 전개라 술술 잘 읽혀진 것 같다. 다음편도 기대하며 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핑
왕안이 지음, 김은희 옮김 / 어문학사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푸핑 >
  • 왕안이 지음, 김은희 옮김
  • 어문학사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들여다보는 듯 생동감이 넘쳤고, 중국의 특정 지방인 '상하이'의 배경과 변천사를 인물을 통해 상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조혼이 흔했고 먹고 살기가 힘드니 군식구 더는 셈치고 시집을 보내거나 남의 집살이를 보냈다. 중국은 남녀 차별이 우리나라보다 덜한 듯하고 땅이 넓은 대륙의 기질이 있어서인지 친척의 범위도 광대하고 또 먼 친척끼리 혼인을 하는 풍습이 흔했던 듯 하다. 당장 우리 부모님들만 하더라도 70대 중반이신데 몇 번 안보고 편지만 반년 주고받다가 결혼하셨다 한다. 지금의 남녀들은 죽고 못살아 결혼을 해도 헤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그 옛 어르신들은 어찌 그 결혼을 감내하고 이겨냈을까? 봐온것이 그러하고 풍습이 그러했다고는 하나 자식 핑계를 대며 사셨다는 어머니들을 보면 지금의 시각으로서는 도저히 이해도 안되고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일이다. 중국은 모계 중심의 가족이 형성되어 여자의 목소리가 높은 듯 보이나 한국은 그와 정반대라 지금의 남성이 위축됐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하나 그 옛날에 비해 약간의 힘이 축소된 것 뿐인듯하고 세상일이 돌고 도는지라 그렇게 핍박받던 여성이 이제사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 되는건 아닌가. 이 책을 읽으며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의 여주인공 '푸핑'은 책 내용을 보면 책 표지에 보여지는 것처럼 국적불명의 비호감 얼굴은 아닌듯하나 그렇다고 딱히 또렷한 이목구비를 상상하게끔 묘사된 부분이 없어 그저 나름으로 중국의 보편적 여인상을 떠올려보건데 표지의 여인은 일본인에 가까운 인상이지 싶다. 중국도 사상과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과도기에서 부모잃은 소녀의 고달픈 인생사를 엿볼수 있으나 이 책의 특이점은 제목으로 쓰인 푸핑이 주인공인 듯하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푸핑을 둘러싼 각 개인들이 모두 주인공이며 그들의 삶속에서 '상하이'라는 도시의 변천사를 엿볼 수 있다. 소제목도 모두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어려운 살림 때문에 어린 나이에 정략 결혼을 해야하고 부모도 없고 돌봐줄 사람없이 친척집을 전전하지만 그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푸핑은 배운것 없으나 어찌보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코자하는 신여성와도 닮아있다. 장애가 있지만 서로 끌림이 있고 의지할 수 있다면 육신 멀쩡하고 실속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뿌리치고  전자를 선택할 수 있는 결단력! 그것이 조용하고 말이 없지만 강단있는 푸핑의 의지력이 아닐까. 비단 푸핑뿐만이 아니라 책에 나오는 여성들은 의지가 강하고 삶에 대한 애착도 남다르다. 할머니라 나오는 인물도 남의 집에서 비록 식모살이를 하지만 돈이나 권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본인이 선택한 집에서만 식모살이를 한다. '할머니'답게 그녀의 인생이야기 부분에서는 상하이의 여러 군상들이 등장한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지만 각자의 처지를 이해하고 도와주고 격려하고. 우리네 전쟁후의 피난민들의 생활과도 흡사하게 닮아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지금도 미지의 나라에 가깝다. 알다가도 모르고 가깝다고 생각한 순간 저만치 달아나 버리는. 땅만큼이나 인구도 많고 그만큼 생각의 수도 방대하고 소수민족의 결합이 중국의 한 근간을 이루는것도 무시못하는 사실이다.

그들이 세계에 뻗치고 있는 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마 미국을 능가하지 않을까. 그래서 미국이 아시아를 두고 전전긍긍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문화와 민족을 아우르는 거대한 중국! 그들의 탁월한 문학적 역량도 기대해볼만하다.

또 다른 푸핑의 후손들이 새로운 중국을 변화시킬 것이라 믿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토리텔링 인문학 - 인문학으로 키우는 내 자녀
송태인 지음 / 미디어숲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송태인 지음
  • 미디어숲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있어서는 안될 대참극이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 학교친구들과 추억을 만들기 위해 떠났던 수학여행이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게 될줄을 추호도 못했을 아이들. 비탄에 잠겨 이 책을 마무리했다.

큰 챕터로 1장엔 인성 이야기, 2장은 학습 이야기, 3장은 진로 이야기로 나누어 작은 소제목을 두고 기술해 나간다.

저자도 머리말에서 말하듯이 부모나 아이들이 집에서나 학교에서 서로 행복한 부모 자식간이 되는것을 가장 기본으로 두고 보아야 한다. 자녀는 소유물이 아니며 수많은 정보물에 노출되어 있는 부모도 '나'의 기준을 바로 세우고 그 틀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라는 중심이 서야 자존감이 생기고 목표를 정할 수 있으며 그 길로 나아갈 힘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형성된다는 '인성'이야기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 지금의 교육은 '지식'쌓는 교육에 치중하다보니 '인성'에 투자할 시간이 부족하고 부모느 부모대로 학교에 책임을 전가하고 학교는 부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서로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부모는 사회의 일원으로 가장 기본이 되는 예의와 도리를 가르칠 의무가 있고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는 나이에 접어들수록 학교에서는 대학의 최종 목표에 연연해 하지 말고 인생 전체를 보는 능력을 키워 주는것이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밥상은 영혼이다'라는 부분은 백배공감된다. 음식은 넘쳐나고 눈에 띄는 색깔도 호화롭고 외식도 크게 늘었다. 내 어린날만 생각해도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음식으로 아침,점심, 저녁까지 먹었었다. 그게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고 그래서인지 아이들에게 인스턴트를 어쩌다 한 번 먹이면 큰 죄를 짓는거 같기도 하다. 여기서도 언급하지만 간편한 음식이 나쁜게 아니라 시간과 여유를 갖고 가족들의 대화시간을 중요하다는 것이다. 행복한 밥상에서 행복한 인물이 나온다!

'자녀는 부모마음의 거울이다'! 말 한마디 무심코 던졌는데 아이는 그걸 간직했다가 적재적소에 이야기한다. 심각하지 않은 단어였다면 기특함과 동시에 영특함에 기분좋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을 것이다. 허나 듣기 거북한 말들을 수시로 들었다면 들을것도없이 아이는 서슴없이 그 말을 내뱉았을 것이다.

부모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어야 할 거이다.

2장 학습이야기편에선 자기주도학습의 필요성을 말한다. 장자와 공자의 글을 인용하면서 스스로의 역활에 충실해야 하고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부모가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적용할 수 있는 집중력을 기르는 환경 만들기를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단순화의 철학, 사랑의 철학, 기다림의 철학!

3장에서는 진로 이야기. 어른들의 잣대로 밀어부치기 식은 아이들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칭찬과 격려를 적절히 사용하고 아이들의 희망에 날개를 달아주어야 할 것이다. 자녀가 주인으로 살 수 있도록 어릴 때부터 마음에서 놓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자본주의 경제의 흐름속에서 과다하게 경쟁과 자본에 노출된 아이들은 돈을 쫒고 있는것 또한 현실이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해 줄수 있는 것과 해 줄수 없는 것을 적절히 설명하고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가 해야할 큰 역활이 아닐까 싶다.

 

  노자, 장자, 공자 등 여러 철학자들의 문구를 인용했지만 쉬운 문장으로 차근차근 설명해 주듯이 기술해서 편안하게 부모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읽을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인해 가슴아파 하는 부모님들과 그 차가운 물속에서 어른들의 무책임으로 꺼져버린 아이들을 보면서 어른인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준게 과연 무엇인지. 어른들이 살아온 날을 되짚어 틀린 말 없다고 옳은 말만 하니 그 길을 무조건 따르라고 강요하더니 결국 그 아이들은 무책임한 어른들 때문에 너무나 쉼게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묵살하고 명령만 해왔던 우리의 모습이 이 비극을 만든건 아닌지. 아이들의 교육에 관한 책을 읽으며 내 아이를 생각하고 있자니 그 물속의 아이들이 생각나 슬픈 책이 아님에도 울면서 울면서 책읽기를 마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소년을 위한 세계 문학 에세이 - 청소년의 지성과 감성을 키우는 허병두 선생님의 문학, 삶, 여행 해냄 청소년 에세이 시리즈
허병두 지음 / 해냄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허병두 지음
  • 해냄

 

 

  여행을 간다는 건 장소가 어디가 됐건간에 설레는 일이다. 일상을 떠나 새로운 활력을 찾는 일은 다시 돌아올 일상에 대해 재충전의 기회가 되므로 빨리 돌아가는 요즘 현대인들에겐 아주 중요한 일이다. 멋모르던 20대엔 남들가는 배낭여행이 무척이나 낭만적이고 즐거워 보여서 준비된 것이 떠난 적이 있었다. 책에서만 보던 건물들과 그림들. 처음엔 그 문화에 대한 경외감마저 들었지만 보는 것도 일상이 되고 나면 집앞 목욕탕 보듯이 아무런 감흥이 없다. 생활은 장소만 바뀌는 것 뿐 사람사는 곳이라면 다 똑같다. 하지만 특이하고 유명한 것에 짐착했던 20대의 여행에서 30대로 넘어가면서 조금은 다른 측면을 보게 된다. 역사적 배경이나 사회적 의미를 알고 가는 여행. 반복적으로 똑같아 보이던 건물이나 장소도 약간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영화나 책을 접하게 되면서 그 장소는 더이상 역사의 장소로 머물러 있지 않고 현재의 우리와 함께 공존한다. 한국 드라마에 심취한 중국인들은 쇼핑만 하러 우리나라를 찾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의 장소를 찾고 영화의 장면을 그리며 그 공간을 눈에 넣는다.

이 책은 작가의 고향이나 책에서 등장했던 장소를 찾아 떠나는 방대한 지적 세계 여행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또한 책에서 등장하는 장소가 밟힌다. 가보고 싶고 작가의 맘으로 들여다 보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졌다. 그러서일까 청소년을 위한 책이라 적혀있지만 내 구미에 적합한 책이었고 어렵지 않게 적절한 동선으로 여행하면서 작가와 책을 들여다보는 유익한 여행이었다.

 

  1장, 인간의 뿌리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뿌리답게 그리스 아테네를 돌아본다. 전쟁과 패망이 난무했지만 문학의 힘으로 그 시대정신을 대변할 수 있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그리스 문명의 정신적인 바탕으로 승화시켰다. 진정한 힘은 문화와 문명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확실히 보여 준다.(p.41)

2장, 에스파냐에서 포루투갈로 향하는 길에선 '돈키호테'가 등장한다. 요즘 tv에선 4명의 할아버지들이 여행다니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때마침 그들이 간곳이 스페인이다. 이 책과 맞물려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아름답게만 보이는 나라지만 역사적으로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잔혹하게 학살한 나라. 아이러니하게 철두철미하게 식민지를 잠식했던 나라에서 약간 모자라 보이는 이상가 '돈 키호테'의 탄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르반테스의 진짜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3장, 아프리카 사막에 남긴 인류의 발자국. 아프리카하면 암담하고 슬픈 역사의 연속이었다. 에스파냐와 근접해 있던 모로코는 아프리카와 유럽이 만나는 곳이며 사하라 사막은 유명한 영화의 배경으로도 자주 등장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나라 알제리! 오프라인 독서 모임에서 다뤘던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 이 대작을 이번에 처음으로 접하면서 알제리라는 나라를 다시 보게 되었다. 앙드레 지드부터 알베르 까뮈에 이르기까지. 실존주의 작가들의 영향이 이 나라에서 싹트게 된 원동력! 대문호들은 이미 그 땅의 생명력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음이리라. 4장, 이스라엘에서 터키, 다시 유럽으로 편! 이스라엘하면 평화와 구원의 도시다. 수많은 종교인들의 성지 순례지이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팔레스타인 접경이라 분쟁이 끊이지 않는 나라! 사랑을 설파하는 곳 중심에서 총과 군인이 대신하고 있다니. 인간을 구원한다는 초창기의 목적은 순수하였으나 인간의 이기심과 권력이 이런 슬픈 현실을 낳은 건 아닐런지.

5장, 유럽의 동쪽에서 만난 인간의 뒷모습. 어린 날 드라큐라의 모습은 내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게 했다. 궁금하기도 하고 떄론 공포에 떨기도 한 존재. 이 책을 읽으며 '아차!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든 문장. '드라큘라, 끊임없이 부활하는 우리의 그림자(p256)'

그랬다. 그림자가 없는 흡혈 인간 드라큐라. 그는 어둠속에서 생활하고 인간은 낮에만 생활한다. 어둠을 기다리며 인간의 그림자로 사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 이제사 나는 그걸 깨닫는다. 드라큐라는 정말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6장, 피오르를 따라 돌아오는 길. 핀란드의 '무민'을 잊을 수 없다. 런던에서 만났던 핀란드의 엄마같았던 여인. 오랜 세월이라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나를 딸처럼 생각하며 고국으로 돌아간 뒤 그 유명한(?) 루돌프 고기 육포와 '무민'이 가득 실린 우편집을 선물로 보내 주었던 기억이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다. 산타할아버지의 마을답게 따듯한 미소와 포근한 마음을 가졌던 나라. 

 

  책이 먼저였든 경험이 먼저였든 우리는 살면서 지식과 경험의 교차로에서 신기한 느낌과 더불어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책을 접하면 접할수록 그 속에 녹아들고자 하는 열망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물론 명작을 읽을 땐 그 나라를 느끼고자 하는 열망은 때론 집착과 욕망이 되기도 한다. 이런 열망이 내 안에 활활 타는 한 책과 함께 하는 여행을 하는 그날이 꼭 오리라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