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간다는 건 장소가 어디가 됐건간에 설레는 일이다. 일상을 떠나 새로운 활력을 찾는 일은 다시 돌아올 일상에 대해 재충전의 기회가 되므로 빨리 돌아가는 요즘 현대인들에겐 아주 중요한 일이다. 멋모르던 20대엔 남들가는 배낭여행이 무척이나 낭만적이고 즐거워 보여서 준비된 것이 떠난 적이 있었다. 책에서만 보던 건물들과 그림들. 처음엔 그 문화에 대한 경외감마저 들었지만 보는 것도 일상이 되고 나면 집앞 목욕탕 보듯이 아무런 감흥이 없다. 생활은 장소만 바뀌는 것 뿐 사람사는 곳이라면 다 똑같다. 하지만 특이하고 유명한 것에 짐착했던 20대의 여행에서 30대로 넘어가면서 조금은 다른 측면을 보게 된다. 역사적 배경이나 사회적 의미를 알고 가는 여행. 반복적으로 똑같아 보이던 건물이나 장소도 약간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영화나 책을 접하게 되면서 그 장소는 더이상 역사의 장소로 머물러 있지 않고 현재의 우리와 함께 공존한다. 한국 드라마에 심취한 중국인들은 쇼핑만 하러 우리나라를 찾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의 장소를 찾고 영화의 장면을 그리며 그 공간을 눈에 넣는다.
이 책은 작가의 고향이나 책에서 등장했던 장소를 찾아 떠나는 방대한 지적 세계 여행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또한 책에서 등장하는 장소가 밟힌다. 가보고 싶고 작가의 맘으로 들여다 보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졌다. 그러서일까 청소년을 위한 책이라 적혀있지만 내 구미에 적합한 책이었고 어렵지 않게 적절한 동선으로 여행하면서 작가와 책을 들여다보는 유익한 여행이었다.
1장, 인간의 뿌리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뿌리답게 그리스 아테네를 돌아본다. 전쟁과 패망이 난무했지만 문학의 힘으로 그 시대정신을 대변할 수 있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그리스 문명의 정신적인 바탕으로 승화시켰다. 진정한 힘은 문화와 문명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확실히 보여 준다.(p.41)
2장, 에스파냐에서 포루투갈로 향하는 길에선 '돈키호테'가 등장한다. 요즘 tv에선 4명의 할아버지들이 여행다니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때마침 그들이 간곳이 스페인이다. 이 책과 맞물려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아름답게만 보이는 나라지만 역사적으로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잔혹하게 학살한 나라. 아이러니하게 철두철미하게 식민지를 잠식했던 나라에서 약간 모자라 보이는 이상가 '돈 키호테'의 탄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르반테스의 진짜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3장, 아프리카 사막에 남긴 인류의 발자국. 아프리카하면 암담하고 슬픈 역사의 연속이었다. 에스파냐와 근접해 있던 모로코는 아프리카와 유럽이 만나는 곳이며 사하라 사막은 유명한 영화의 배경으로도 자주 등장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나라 알제리! 오프라인 독서 모임에서 다뤘던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 이 대작을 이번에 처음으로 접하면서 알제리라는 나라를 다시 보게 되었다. 앙드레 지드부터 알베르 까뮈에 이르기까지. 실존주의 작가들의 영향이 이 나라에서 싹트게 된 원동력! 대문호들은 이미 그 땅의 생명력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음이리라. 4장, 이스라엘에서 터키, 다시 유럽으로 편! 이스라엘하면 평화와 구원의 도시다. 수많은 종교인들의 성지 순례지이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팔레스타인 접경이라 분쟁이 끊이지 않는 나라! 사랑을 설파하는 곳 중심에서 총과 군인이 대신하고 있다니. 인간을 구원한다는 초창기의 목적은 순수하였으나 인간의 이기심과 권력이 이런 슬픈 현실을 낳은 건 아닐런지.
5장, 유럽의 동쪽에서 만난 인간의 뒷모습. 어린 날 드라큐라의 모습은 내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게 했다. 궁금하기도 하고 떄론 공포에 떨기도 한 존재. 이 책을 읽으며 '아차!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든 문장. '드라큘라, 끊임없이 부활하는 우리의 그림자(p256)'
그랬다. 그림자가 없는 흡혈 인간 드라큐라. 그는 어둠속에서 생활하고 인간은 낮에만 생활한다. 어둠을 기다리며 인간의 그림자로 사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 이제사 나는 그걸 깨닫는다. 드라큐라는 정말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6장, 피오르를 따라 돌아오는 길. 핀란드의 '무민'을 잊을 수 없다. 런던에서 만났던 핀란드의 엄마같았던 여인. 오랜 세월이라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나를 딸처럼 생각하며 고국으로 돌아간 뒤 그 유명한(?) 루돌프 고기 육포와 '무민'이 가득 실린 우편집을 선물로 보내 주었던 기억이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다. 산타할아버지의 마을답게 따듯한 미소와 포근한 마음을 가졌던 나라.
책이 먼저였든 경험이 먼저였든 우리는 살면서 지식과 경험의 교차로에서 신기한 느낌과 더불어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책을 접하면 접할수록 그 속에 녹아들고자 하는 열망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물론 명작을 읽을 땐 그 나라를 느끼고자 하는 열망은 때론 집착과 욕망이 되기도 한다. 이런 열망이 내 안에 활활 타는 한 책과 함께 하는 여행을 하는 그날이 꼭 오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