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숲 - 제19회 중앙공론문예상 수상작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소담 옮김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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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다는 울창한 숲 '가미모리'에서 다섯 살 자폐 아동 마히토가 실종된다. 대대적인 수색에도 찾지 못했던 아이는 일주일 만에 무사히 돌아온다. 돌아온 마히토는 숲에 가기 전엔 알지 못했던 노래와 단어, 어딘가 달라진 행동을 반복하고,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았는지 묻을 때마다 "곰아저씨를 만났다"라는 알 수 없는 말만 되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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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도야는 마히토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며 사라진 일주일을 추적해간다. 그 과정에서 마히토가 만난 네 명의 어른이 드러난다. 각자의 사정으로 아이를 신고하지 못한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있는 그대로 마히토에게 호의를 베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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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환경을 두려워하던 아이는 생존을 위해 그들의 손길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낯선 사람들과 교감하며 마음까지 어루만진다. 겉보기에는 어른들이 위험에 처한 아이를 도와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상처투성이 어른들이 마히토를 통해 잃어버린 생의 의지를 회복해 간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숲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과 절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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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아저씨의 진짜 정체가 밝혀지는 소소한 반전은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며 여운을 남겼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어른들은 마히토를 '눈치를 살피며 돌봐야 할 대상'이 아닌 '마음을 나누는 존재'로 바라보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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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이라 생각한 인연들이 서로를 구원하는 과정이 무척이나 다정했다. 숲속의 외로움과 추위 속에서도 울거나 떼쓰지 않고 씩씩하게 길을 걸었던 마히토처럼, 누구나 그 마음을 잃지 않고 세상으로 한 걸음 나아가길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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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듣기 -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완성하는 사랑
유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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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와 듣기는 일상에 필수적이다. 우리는 누군가와 말하고 대답하며 소통을 이어간다. 그 속에서 '진짜 듣기'는 과연 얼마나 이뤄지고 있을까.


타인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기란 쉽지 않다. 친한 친구와 있어도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휴대폰으로 시선이 향한다. 계속 듣고 있으니 말하라며, 스스로 단단한 벽이 된다. 이런 건성으로 듣는 태도 때문에 위로보다 불화가 쌓이고, 대화의 맥락 대신 꽂히는 특정 어휘만 뇌리에 박히곤 한다.


비밀을 듣기 위해서는 상대방 삶의 맥락을 이해하기에 앞서 그의 말을 유심히 듣는 수밖에 없다(p. 8). 저자가 10년 동안 기자로 만난 이들은 혼자서는 안고 갈 수 없는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줄 때까지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12·3 사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참사 유가족, 각종 혐오 사건의 당사자와 춥든 덥든 광장으로 나서는 이들까지. 유지영은 그들을 취재하고 들으며 스스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담담히 털어놓는다.


듣기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행위다. 내가 들은 말은 좋든 나쁘든 나와 내 삶을 바꾸었다. 나는 많은 사람의 말하기 덕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 내게 듣기란 타인을 보는 창이고, 때로는 강강술래처럼 함께할 수 있는 놀이다. (p. 9)


그는 "나는 내가 들어온 것의 총체(p. 17)"라고 말한다. 우연히 내뱉은 말, 계속 기억되는 말은 모두 '듣는 나'가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그렇기에 자신이 들은 말의 무게를 무책임하게 옮기지 않고, '내가 정확히 그렇게 들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를 가꾸겠다고 다짐한다.


마지막 퍼즐 조각의 모서리가 빈 공간에 딱 들어맞은 것 같은 정확감, 내가 어찌저찌 흘러온 삶이 말하는 이의 삶과 밀착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 물론 그것은 순전히 나만의 착각일지 모르고, 말하는 이의 감정과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말을 '나는' 그렇게 들었다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p.48~49)


요즘의 일상은 타인의 불편감으로 가득 차 있다. 저마다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털어놓으며 온전한 환대를 바라지만, 정작 감정 쓰레기통처럼 변해버린 대화가 듣는 이의 영혼에 어떤 생채기를 낼지는 생각지 못한다. 말에는 나만 가득 차 있고 답은 정해져 있다.


무엇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일 거라고. 내가 뭔갈 듣기로 결정했다면 그건 내가 그걸 듣고, 느끼고, 변화하겠다는 뜻이다. (p. 7)


제대로 듣기 위해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왜 나는 이 부분이 불편할까', '그 불편함은 내게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내가 들은 것을 쉽게 옮길 때 나의 듣기는 온당했는가', '나는 훌륭한 청자였는가'.


내 삶을 어느 정도 내려놓아야 남의 말을 담을 수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제 듣기의 중심을 바꿔야 한다. 머리가 아닌 마음, 그 중심인 심장을 향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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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마음에 이름 붙이기 - 현대인을 위한 정신분석사전
노은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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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심리학 용어나 MBTI 같은 진단 유형이 흔해졌다. "너는 MBTI가 뭐야?"라는 말이 인사가 되고, 남다른 상태를 짐작하며 우울증과 번아웃을 거론하기도 한다. 어쩌면 복잡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빠르게 나를 설명하고 안도감을 얻고 싶어서 이런 이름들을 붙이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유형으로 묶는다고 해서 사람의 다면적인 모습이 말끔히 이해되진 않는다. 유독 나 자신에게 가혹한 우리는 익명 게시판에 사연을 올리며 "제가 이상한가요?" 묻곤 한다. 사람들은 댓글로 잘잘못을 가려주고 대신 화를 내주기도 하지만, 이 시끌벅적한 과정 속에서 진짜 내 감정은 소외된다. 옳고 그름을 떠나, 내가 왜 이런 마음이 들었는지 스스로 탐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겁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짚어준다. 일상에서 겪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모순된 감정과 불편함 등에 28가지 심리학적 이름을 찾아 붙여준다. 눈치껏 일하되 결과는 완벽해야 하고, 내 공은 겸손하게 낮춰야 하는 한국 사회의 심리적 역동 속에서 버텨온 마음들이 구체적인 언어로 확인받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사람들과 함께할 때 내가 반복적으로 맡는 역할이 있다면, 나의 성장과정 혹은 그동안 알 수 없었던 결핍이나 바람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 (P. 71)


기분이 좋을 때의 나를 '좋은 나'로, 기분이 나쁠 때의 나를 '나쁜 나'로 정의하지 않는지 나의 자기 항상성을 잘 살펴보고 유지할 필요가 있다. 내가 나를 '동일한' 사람으로 느끼지 못하면, 타인 또한 '동일한' 존재로 보기 어렵다. (p. 101)


감정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의 상태를 알려주는 신호다.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 스스로를 비난하는 대신, 왜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 자신에게 호기심을 갖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다. (p. 272)


살다 보면 깔끔하게 설명되지 않는 고통도 있고,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경험도 있기 마련이다. 파편처럼 흩어진 마음들을 하나씩 다듬고 조립해갈 때, 우리는 비로소 감정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있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내 안의 불안과 두려움을 서두르지 않고 지켜보면 나만의 언어로 이름을 붙여줄 때가 올 것이다. 그동안 위로받지 못했던 마음이 풀어지는 데에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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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들판 - 침묵은 어떻게 역사를 드러내는가
마거릿 주혜 리 지음, 장상미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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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2세들의 기록을 읽다 보면 비슷한 흐름이 보인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자신의 뿌리인 한국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마침내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이다. 작가 마거릿 주혜 리의 삶도 이와 닮았다. 조금 다른 점은 부모님의 나라를 알아가는 것을 넘어, 그 뿌리에 자리한 할아버지의 삶을 깊이 파헤쳐야 했다는 점이다. 그의 할아버지 이철하는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자였으며, 오랫동안 가족들이 침묵한 존재였다. 미국에서 자란 그는 한국사의 한복판을 관통했던 가족의 역사를 스스로 복원해야 하는 미션이었던 셈이다. 


독립운동가 할아버지는 자랑스러운 존재여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현재 한국의 이념 체계와 정반대인 사회를 꿈꿨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광복과 6·25 전쟁, 이어진 독재 정권을 거치며 가족들에게 할아버지는 쉬쉬해야 하는 수치였다. 


그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는 친척들의 생생한 증언이 꼭 필요했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철하는 학생운동을 이끌다 퇴학당한 뒤 사회주의 사상에 빠져들었다. 할머니는 가족에서 소원했던 남편이 원망스러웠고, 아들을 지키기 위해 그의 서적과 증거를 모두 불태워 버렸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물어도 결코 들을 수 없던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기자로 일하는 손녀 마거릿이 취재를 시작하며 봉인이 풀리기 시작한다.


가족들의 이야기는 마치 구전설화처럼 쏟아지며 저자는 퍼즐을 맞추듯 진위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작업에서 이민 가정의 장녀로서, 여전히 유교적 분위기가 짙은 가족 안에서 자신이 자라며 느낀 불편함의 뿌리를 발견하다. 항상 털어내고 싶던 아픈 손가락, 할아버지를 말할 수 있는 대상으로 끌어올린다. 이렇게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진다. 


결국 이철하는 독립운동자로 인정받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고, 어둠 속에 묻혔던 기록들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흩어져 살던 친척들이 새롭게 조성된 묘 앞에 묘여 찍은 사진을 보며, 오랫동안 가슴속에 삼켜온 깊은 한숨을 토해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온전한 안식처를 갖지 못했던 저자는 취재 이후 좋은 배우자를 만나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 한때 공허함을 느꼈던 그는 이제 없던 안식처를 직접 만들어 나간다. 자신이 느꼈던 혼란이 자녀에게 대물림될 수도 있겠지만,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단단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엄마가 될 것이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할아버지를, 손녀인 자신이 어떻게 세상 밖으로 찾아냈는지 털어놓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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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신재민 지음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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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피드를 장악한 넷플릭스 드라마 <동궁>의 여파일까. 오컬트 장르와는 거리가 멀다 여겼는데 되려 새로운 취향을 발견했다. 신재민 작가의 소설 <생가> 역시 비슷한 결의 장르적 매력을 품고 있으면서도, 한국적 색채와 대를 이어가는 복수의 서사를 절묘하게 엮어내며 독보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야기는 이운암 전 대통령 생가 화재로부터 시작된다. 이운암의 손자 이건승이 처음 생가를 건축한 도편수 지범근의 아들 지재헌에게 복원을 의뢰하면서 사건의 막이 올라간다.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어릴 적 생가 도면을 베끼다 분노를 사 절연했던 재헌. 독일에서 가정을 꾸렸으나 아내의 혼수상태와 불안정한 삶 속에서 거액의 돈과 명성을 위해 그는 건승의 손을 잡는다.


사건의 중심에는 한 시대를 호령했지만 뒷방 늙은이로 전락한 이운암이 있다. 생가 화재와 함께 의문의 죽음들이 이어지며 재헌은 이 복원이 단순한 고집이 아님을 직감한다. 어려서부터 터의 기운을 느끼던 그는 생가 지하 공간에서 방화범을 마주하며 이 공간에 비밀이 있단 걸 깨닫는다.


지범근은 생가를 복원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재헌은 반발심과 인정에 대한 갈증으로 오히려 그 위험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작품은 이전 독재 정권의 그림자를 오마주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월남전의 잔혹한 처사와 그곳에서 마주한 험한 것이 인간의 시꺼먼 욕망과 결합해 거대한 발판이 되었다는 설정은 소설 전반에 서늘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생가는 보란 듯이 더 깊은 심연을 개방했다. 대체 무엇이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구멍 속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재헌은 원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지하실로 내려오는 사이 늙어 버렸는지 아버지의 얼굴이 돼 있었다. 지범근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실망스럽습니까? 아니면 대견스럽습니까?


그러나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이제 어른이 된 아들은 스스로의 길을 결정해야만 했다.

재헌은 공허 속으로 몸을 던졌다. 생가는 기꺼이 그를 삼켰다. (p. 291)


중반부까지 흩어져 있던 인물들과 꺼림칙한 의문들은 하나의 궤로 모이며 후에 거대한 뒤통수를 친다. 조력자 시록이 찾아 헤매던 아버지의 존재, 그리고 시록의 출생의 비밀이 이운암이라는 지독한 인물과 엮이는 과정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특히 단순한 재미를 넘어선 탄탄한 고증과 융합이 이 책의 미덕이다. 풍수지리와 민속신앙, 한국적 오컬트 요소들이 촘촘한 서사 속에 녹아들어 실제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전통 건축에 지식이 없음에도, 낯선 전문 용어들이 각 소제목과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구전설화처럼 자연스럽게 읽히는 점 역시 신선했다.


그림 그려지듯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재현되는 작가의 놀라운 묘사력은 자연스럽게 영상화를 기대하게 만든다. 휘몰아쳐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되는, 간만에 여름의 맛을 온전히 느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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