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가
신재민 지음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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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피드를 장악한 넷플릭스 드라마 <동궁>의 여파일까. 오컬트 장르와는 거리가 멀다 여겼는데 되려 새로운 취향을 발견했다. 신재민 작가의 소설 <생가> 역시 비슷한 결의 장르적 매력을 품고 있으면서도, 한국적 색채와 대를 이어가는 복수의 서사를 절묘하게 엮어내며 독보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야기는 이운암 전 대통령 생가 화재로부터 시작된다. 이운암의 손자 이건승이 처음 생가를 건축한 도편수 지범근의 아들 지재헌에게 복원을 의뢰하면서 사건의 막이 올라간다.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어릴 적 생가 도면을 베끼다 분노를 사 절연했던 재헌. 독일에서 가정을 꾸렸으나 아내의 혼수상태와 불안정한 삶 속에서 거액의 돈과 명성을 위해 그는 건승의 손을 잡는다.


사건의 중심에는 한 시대를 호령했지만 뒷방 늙은이로 전락한 이운암이 있다. 생가 화재와 함께 의문의 죽음들이 이어지며 재헌은 이 복원이 단순한 고집이 아님을 직감한다. 어려서부터 터의 기운을 느끼던 그는 생가 지하 공간에서 방화범을 마주하며 이 공간에 비밀이 있단 걸 깨닫는다.


지범근은 생가를 복원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재헌은 반발심과 인정에 대한 갈증으로 오히려 그 위험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작품은 이전 독재 정권의 그림자를 오마주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월남전의 잔혹한 처사와 그곳에서 마주한 험한 것이 인간의 시꺼먼 욕망과 결합해 거대한 발판이 되었다는 설정은 소설 전반에 서늘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생가는 보란 듯이 더 깊은 심연을 개방했다. 대체 무엇이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구멍 속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재헌은 원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지하실로 내려오는 사이 늙어 버렸는지 아버지의 얼굴이 돼 있었다. 지범근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실망스럽습니까? 아니면 대견스럽습니까?


그러나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이제 어른이 된 아들은 스스로의 길을 결정해야만 했다.

재헌은 공허 속으로 몸을 던졌다. 생가는 기꺼이 그를 삼켰다. (p. 291)


중반부까지 흩어져 있던 인물들과 꺼림칙한 의문들은 하나의 궤로 모이며 후에 거대한 뒤통수를 친다. 조력자 시록이 찾아 헤매던 아버지의 존재, 그리고 시록의 출생의 비밀이 이운암이라는 지독한 인물과 엮이는 과정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특히 단순한 재미를 넘어선 탄탄한 고증과 융합이 이 책의 미덕이다. 풍수지리와 민속신앙, 한국적 오컬트 요소들이 촘촘한 서사 속에 녹아들어 실제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전통 건축에 지식이 없음에도, 낯선 전문 용어들이 각 소제목과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구전설화처럼 자연스럽게 읽히는 점 역시 신선했다.


그림 그려지듯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재현되는 작가의 놀라운 묘사력은 자연스럽게 영상화를 기대하게 만든다. 휘몰아쳐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되는, 간만에 여름의 맛을 온전히 느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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