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람 엄금 엄금 시리즈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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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다큐멘터리식 보고서인 줄로만 알았다. 읽는 내내 ‘이렇게 심각하고 위험해 보이는 사건의 전말을 세상에 공개해도 신변에 위협이 없나?’ 걱정했으니까. 완독하고 나서야 알았다. 이 모든 게 정교하게 잘 짜인 '소설'이었다는 것을. 사전 정보 없이 마주한 탓에 몰입감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밤에 책을 펼쳤다가 밀려오는 오싹함에 '오늘 잠은 다 잤다'라며 후회했으니.

<열람 엄금>은 모큐멘터리(다큐멘터리 형식의 허구) 호러의 장르 소설이다. 실제 사건 보고서 같다는 나의 착각이 구성 면에서는 아주 다른 말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야기는 대낮의 도쿄 한복판에서 벌어진 대규모 살인 사건으로 시작된다. 살인자 '야에가시'의 정신감정을 맡은 의사 '우에하라'가 바로 눈앞에서 그의 기괴한 자살을 목도하면서 극의 긴장감은 극에 달한다.

그 여파로 도리어 정신감정을 받는 처지가 된 우에하라의 면담 기록이 총 4회에 걸쳐 이어진다. 이 구성이 정교하다. 그가 취조하고 조사한 내용들이 뉴스 화면, 기사 캡처, 생생한 현장 사진 등으로 텍스트와 함께 배치되어 마치 독자가 사건을 추적하는 수사관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시각 자료들 때문에 나는 의심의 여지도 없이 진짜라고 믿어버렸던 것 같다.

평소 미스터리, 공포, 호러, 스릴러처럼 간담이 서늘해지는 장르는 책으로 전혀 읽지 못하는 편이다. 만약 이 책이 소설이라는 사전 정보나 장르를 미리 알았더라면 결코 손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치밀한 구성력과 촘촘하게 깔아둔 복선은 독자가 딴눈을 팔 새 없이 정교하게 돌아간다. 이런 유의 장르를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독자라면 당장 이 작가의 열렬한 팬이 되겠구나 싶었다.

책의 제목도, 카피 문구도 정말 열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나 미제 사건의 극비 문서를 훔쳐보는 듯한 묘한 스릴을 준다. 철저하게 속아 넘어가 버린 스스로가 조금 어이없지만, 어쩌면 그 무방비한 상태였기에 이 소설을 가장 완벽하게 즐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오랜만에 다른 생각은 장막 뒤로 접어둔 채, 이야기 그 자체에 완전히 압도되어 짜릿하게 즐긴 최고의 '킬링타임'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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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 나를 울리고 너를 배반하며 이룩되는 케이팝 이야기
복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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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케이팝은 복잡하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케이팝 산업의 모순과 환멸을 날카롭게 짚어내면서도, 결국 환호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고백한다.


넓은 의미에서 케이팝은 한국 대중음악 산업 전반을 일컫지만, 보통은 대형 기획사를 주축으로 한 아이돌 문화를 말한다. 한국에서 케이팝의 영향권 아래에 있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케이팝을 부정하며 기묘한 우월의식을 지니기도 한다. 한 마디로 케이팝을 좋아한다는 것은 안팎으로 복잡한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케이팝은 사랑과 집착, 믿음과 맹신 사이를 줄타기하는 음악이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허공이니 우리는 늘 날카롭고 예민하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렇게 힘들 바엔 차라리 욕망에 솔직해지자는 거다. (p. 57)


팬덤 문화가 보여준 광기 어린 사건들부터, 케이팝의 본질처럼 여겨지는 '유사 연애' 그리고 연예인에게 가해지는 '강압적인 도덕적 잣대'까지. 기형적인 특성들이 대를 이어 지속되어 왔기에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 최근에는 해외 성과에 집착하며 그를 겨냥한 것이 빤히 보이는 음원들이 차트를 점령하니, 거대 권력관계에 신물이 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복길은 이처럼 딱 잘라 명명할 수 없는 산업의 모순, 애정과 증오, 온갖 담론을 시대를 넘나드는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풀어낸다. 치를 떨면서도 연어처럼 돌아올 수밖에 없는 케이팝의 지독한 매력을.


케이팝을 듣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겐 시끄럽고 불쾌한 음악이지만 누군가는 그 음악을 들으며 삶을 견딘다. (p. 186)


인생의 어느 한 시절은 무언가에 지독하게 의존하며 견딜 때가 있다. 대체로 많은 이들이 케이팝에 저마다의 빚을 지고 있다. 나도 그랬다. 이제는 사회적으로 '나락'이라 불리는 길을 가거나, 멤버들이 탈퇴하며 그들을 좋아할 수 없게 되면서, 서서히 '보통의 케이팝'에서 멀어져 갔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이 산업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보다 열렬히, 조금 다른 방식으로 즐기고 있다. 일거수일투족을 좇으며 작은 멘트와 표정 하나에 일희일비하던 시기를 지나, 가수의 디스코그래피 속에서 내 삶의 궤적과 맞물리는 지점을 발견하며 지금 이 순간의 담백한 즐거움을 누린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간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줄면서 나는 자주 우울해지지만, 그 곡을 침대에서 들었던 경험만큼은 무척 아름다운 일이었음을 안다. (p. 197)


결국 다들 지우고 싶을 만큼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반짝였던 마음의 진가를 노래 한 소절로 기억할 때가 있다. 어쩌면 케이팝은 '향수'라는 키워드를 통해 그 시절, 우리가 그토록 지독하게 미워하고 앓았던 계절을 아름답게 재발견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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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빈자리에 - 괴물, 여성, 망자,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
권혁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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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 대해서라면 참 할 말이 많다. 태어나자마자 당사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고 평생 불려야 하는 것. 그렇기에 이름은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이정표다. 


내 이름은 ‘오금미’다. 성도 흔치 않은데 이름은 더 특이해서, 살면서 나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받아 적기 어렵고 발음하기도 까다롭다. 또박또박 발음해도 사람들은 ‘근미’나 ‘금희’로 알아들었다. 


오랫동안 내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내 이름은 어느 나라 문자로 써도 마찬가지로 어렵고 발음하기도 어려웠다. 또박또박 한 글자씩 발음하지 않으면 받아 듣고 받아쓰는 모든 이들이 다르게 알아 들었다. (p. 184)


학창 시절의 내게 이름은 총체적 난국이자 짜증의 원천이었다. 국어 시간에 ‘오금이 저리다’는 표현이 나오면 선생님과 학우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렸고, 걸핏하면 호명되어 본문을 낭독해야 했다. 훗날 지하철 노선도에서 ‘오금역’과 ‘미금역’을 연달아 발견했을 때는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주목받는 걸 즐기는 성향이라면 축복이었겠지만, 나는 눈에 띄지 않길 바라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내 성정과 달리 이름은 늘 타인의 뇌리에 각인되었고, 그것은 늘 스트레스였다. 인생이 유독 안 풀리던 어느 날, 사주 카페에서 “이제는 쓰면 안 되는 불용 한자”라거나 “사주와 충돌하는 이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삶의 굴곡이 정말 이름 때문인 것만 같았다. 


한 존재의 삶은 거의 모두 이름과의 투쟁이자 불화였고, 그리움이자 서글픔이었다. (p. 8)


그러나 이름은 뒤고 숨고 싶을 때 핑계가 되어주었을 뿐,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성인이 되어 개명할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이름을 지키기도 했다. 내 이름의 진짜 속뜻을 알게 되어서다. ‘금처럼 귀하고 높은 자리에 우뚝 서서, 그 자리에서 너 자체로 아름답게 빛나라’. 할아버지는 손녀의 삶에 커다란 포부를 심어주는 축복을 담아주셨고,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한 순간 나는 이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름의 빈자리에>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의 서사가 담겨 있다. 이름조차 없이 지워진 사람, 이름은 있으되 차마 불리지 못한 사람, 혹은 아무렇게나 막 지어진 이름을 가진 예술 작품 속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저자의 깊은 통찰로 재해석된다. 


이름은 그저 누군가를 지칭하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었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 발붙이고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발화의 도구이자 정체성이다. 또한, 이름의 뜻대로 앞으로를 살아가라는 예언적인 선언이었다. 나는 방황하는 인물들을 보며, 결국 타인에게 올바르게 호명당함으로써 존재 가치를 실현하고 싶어 하는 열망을 보았다. 저자가 말하는 ‘이름의 점성’이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거대한 지표인 셈이다. 


일일이 호명할 것이다. 이건 다시 쓰면, 나는 하나하나 그들의 이름을 불러보겠다는 다짐이다. 일삼아 조근 조근. 내킬 때마다 글씨로만. 왜냐하면 다시는 입 벌려 소리를 내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그들의 이름을 부를 일은 없을 테니까. (p. 85)


이름을 사랑하고, 때로는 상처받고 증오하며, 결국에는 기억하고 추모하는 삶의 과정 속에서 내 이름에 얽힌 사연을 깊이 톺아본다. 그리고 소망한다. 내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지 않기를, 그리고 이름처럼 나의 욕망을 거스르지 않고 당당하게 위로 걸어가 아름답게 빛나기를.


요즘은 종종 검색창에 내 이름을 쳐본다. 화면에 나와 같은 성과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이 뜨는 것을 보면 묘한 안도감이 든다. 완전히 혼자는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과 내 특별함이 오롯이 나만의 외로운 무게가 아님을 다행스러워하며 슬며시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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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의 주문 - 일하는 여자들을 지탱하는 언어와 관계, 그리고 마음, 개정증보판
이다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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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이 지옥 같던 사회 초년생 시절, <출근길의 주문>이 세상에 나왔다. '돈을 버는 게 이렇게 지옥 같다면 앞으로 남은 3~40년은 어떻게 버터야 하나' 막막하던 때였다. 당시에는 닮고 싶은 롤 모델은커녕, 실수만 보이면 이 잡듯 눈에 불을 켜던 이들뿐이었다. 아무리 일로 만난 사이라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인데 불협화음만 생겨 괴로울 때 이 책을 교과서처럼 신봉하곤 했다.


시간이 흘러 개정판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설렜다. 과거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가 '어딘가엔 작가 같은 선배가 있겠지' 바라며 환상처럼 책을 읽었다면, 이제는 문장의 맥락과 그런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을 온전히 이해하는 연차가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실수를 하고 일터에서 돈 벌기가 쉽지 않음을 실감하지만, 그럼에도 이전보다 단단해진 나를 믿으며 읽는 이 책은 앞으로 여성 직장인으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짚어주는 듯했다.


작가가 말하는 핵심은 직장에서 소위 '사람 냄새나는' 인간적인 기대감을 버리라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는 노력과 성과가 비례하지 않는다(p. 75)는 말처럼, 친밀감에 기반한 신뢰가 아닌 자신의 능력과 자질, 적당한 거리 두기와 분명한 의사표시를 통해 입지를 다지고 부당한 처사에 맞서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사회적 가면을 써야 하는 순간에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로 여길 필요가 없다. 곧은 마음만으로 버텨내기 어려운 곳이 사회이고, 우리는 때로 휘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결국 이 거친 일터에서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건 나 자신의 의지뿐이다. 타인이 나를 송두리째 바꿔주고 성장시켜주는 판타지를 버릴 때, 비로소 주체적인 생존이 시작된다.


다종다양한 사람이 모인 직장에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 투성이다. 빌런들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이직하더라도 비슷한 일은 또 일어난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내 시선을 바꾸어 직장의 빌런들이 나의 파괴적인 스트레스 요인으로 자리 잡지 않도록 나만의 비책을 세우거나 숨구멍을 만드는 것. 부정적인 피드백에 갇혀 허우적거리기보다, 다음으로 넘어가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항상심은 이런 것이다. 우울증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신, 무엇이든 그러저러한 자신을 받아들이고 잘 달래가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 (p. 180)


특히 여성이 조직 내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기 어렵기에, 책임을 지는 자리에 나와 같은 '그녀'가 존재한다는 건 나의 미래를 미리 점쳐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여전히 책임은 피하고 익숙한 실무만 하고 싶은 주니어이지만, 언제까지 이곳에 머무를 수는 없다. 연차가 쌓여 말에 힘이 실리는 관리자의 역할을 맡게 되면, 과거에 겪었던 부당함을 아랫사람에게 답습하지 않으려는 노력과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가뜩이나 나를 어려워하는 부하 직원 앞에서 '나도 힘들어!'라며 나약한 소리를 하는 선배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여성이 분명하게 의사 표현하는 법을 익혀야 하는 이유 중 하나를 나는, 억울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나는 당신이 ‘충분히 암시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은 요청들’을 쌓지 않기를 바란다. 원하는 것을 분명히 하면 좋겠다. (p. 34)


특히 여성이 조직 내에서 높은 지위나 직급을 갖기 어려운 문화 속에서, 책임을 지는 자리에 나와 같은 그녀가 있다는 건, 내가 여기에서 나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물론 책임 없는 쾌락, 그저 익숙한 실무를 하고 싶은 주니어이지만, 누구나 주니어의 자리에 머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관리자의 역할과 책임을 지고 통솔하는 사람이 되려면 내가 느꼈던 것들을 최대한 답습하지 않으려는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일 많은 건 하면 되는데 인간들 짜증 나는 건 도저히 못 해먹겠어.” (p. 254)


어쩌겠는가. 짜증 나는 인간들 틈에서도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직장인의 숙명이라면, 억울하지 않게 내 원하는 바를 분명히 하겠노라고. 징징대지 않고 묵묵히 내 일의 자질을 갈고닦으며, 나를 잘 달래가며 한 걸음 더 성장하자고 주문을 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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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감각
무과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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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해 이 선택을 했냐고 묻는다면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가고 싶었다. 그뿐이다. 거창한 이유는 딱히 없었다. (p. 10)


익숙함을 벗어날 때마다 관성처럼 생각한다. '나는 무얼 위해 이 선택을 했을까.' 선택의 순간과 이를 이행하는 순간 사이에는 시차가 있어서, 때로는 나조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은 그 선택을 인정하게 되리라는 것을 미심쩍은 현재의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변화를 싫어하는 내가 무수한 갈림길이 도사리는 여행을 선택하는 건, 그 자체로 사소한 모험이다. 대단한 것을 보고 싶은 마음에, 남들이 좋아하던 랜드마크를 나도 좋아하겠지 하며 도장 찍듯 돌아다니던 20대의 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나만의 여행 속도와 취향을 깨달았다. 여행은 인생의 질문에 답하기 위함도, 단순히 휴식을 위함도 아니다. 오롯이 현재에서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좋아하는 것에 몰입할 수 있는 온전한 시간을 위해 이제 나는 떠난다.


<무과수의 기록> 시리즈를 차곡차곡 따라 읽으며, 도시로 떠나는 여행이 '당시의 나' 그대로를 기록해서 좋았다. 짧은 일기나 단상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이어지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짜 여행자의 마음임을 안다. 여행을 시작하면 인간은 원초적인 감각에 집중하게 된다. 여행지의 역사나 숨은 의미를 깊이 들여다보기보다는, 그저 압도하는 풍광과 눈과 귀를 사로잡는 감각적인 것에 먼저 반응하는 법이다.


나는 보통의 일상을 여행지에서 보내는 이야기에 전율한다. 주말마다 산책하고 카페를 찾는 것처럼 여행지에서도 똑같을 뿐인데, 여행이란 필터가 씌워지면 모든 것이 포근하고 아늑해진다. 무디었던 감각들이 생생하게 진동한다. 매일매일이 '어디로 갈까?', '무엇을 할까?', '무엇을 먹을까?'만을 고민하는 아주 행복한 질문 속에서, 토로하던 무거운 마음은 심연 아래로 가라앉는다. 그리고 맑은 물이 걸러지듯 순수한 목소리가 고개를 내민다. 지나고 나면 그리워질 것을 알기에, 촉수를 바짝 세우고 흘러가는 모든 순간에 집중한다.


저자의 여행은 억지로 하지 않기에 미덕이 있다. 그의 기록은 낯선 곳에서도 본래의 나를 잃지 않고 소신을 세우는 생활하기에 가깝다.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오늘의 제철 재료를 고르고, 손수 밥을 지어 먹고, 때때로 거리로 나가 목적 없이 걷는다. 의무나 임무를 다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기에, 본연의 하루에 깊이 집중한다.


특히 '금전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준비와 이동이 훨씬 단순해졌다(p. 255)'는 문장에 공감했다. 내가 떠나고 돌아오는 자유를 온전히 만끽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물질적인 안정이 주는 힘이 컸기 때문이다. 배낭 하나에 꼭 필요한 물품만 넣고, 현지에서 살 수 있는 사소한 것들에 개의치 않으며 그렇게 하나씩 마음을 가볍게 비워내는 것. 컨디션을 좌우할 식사와 숙소를 꼼꼼히 살피고, 가성비가 아닌 질 좋은 경험을 선물하는 것. 이는 삶이 쪼들리면 결코 할 수 없는 선택이며, 훗날 여행의 기억이 미화될 수 있는 스펙트럼 자체를 바꾸어 놓는다.


삶의 확장은 경험의 폭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식으로든 내가 더 나아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작업이 무과수에게 여행이라면, 나의 여행은 모든 것에 의미를 두다가도 그 의미가 부질없음을 깨닫는 과정이다. 여러 차례 사고의 틀이 깨지고 다시 붙기를 반복하는 건, 그것이야말로 완전하지 못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일 테니까.


일 년에 한두 번 떠날까 말까 한 평범한 여행자이지만, 내가 흘려보냈던 생각들을 다가올 여름휴가에 맞춰 되새겨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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