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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감각
무과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6월
평점 :

무엇을 위해 이 선택을 했냐고 묻는다면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가고 싶었다. 그뿐이다. 거창한 이유는 딱히 없었다. (p. 10)
익숙함을 벗어날 때마다 관성처럼 생각한다. '나는 무얼 위해 이 선택을 했을까.' 선택의 순간과 이를 이행하는 순간 사이에는 시차가 있어서, 때로는 나조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은 그 선택을 인정하게 되리라는 것을 미심쩍은 현재의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변화를 싫어하는 내가 무수한 갈림길이 도사리는 여행을 선택하는 건, 그 자체로 사소한 모험이다. 대단한 것을 보고 싶은 마음에, 남들이 좋아하던 랜드마크를 나도 좋아하겠지 하며 도장 찍듯 돌아다니던 20대의 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나만의 여행 속도와 취향을 깨달았다. 여행은 인생의 질문에 답하기 위함도, 단순히 휴식을 위함도 아니다. 오롯이 현재에서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좋아하는 것에 몰입할 수 있는 온전한 시간을 위해 이제 나는 떠난다.
<무과수의 기록> 시리즈를 차곡차곡 따라 읽으며, 도시로 떠나는 여행이 '당시의 나' 그대로를 기록해서 좋았다. 짧은 일기나 단상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이어지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짜 여행자의 마음임을 안다. 여행을 시작하면 인간은 원초적인 감각에 집중하게 된다. 여행지의 역사나 숨은 의미를 깊이 들여다보기보다는, 그저 압도하는 풍광과 눈과 귀를 사로잡는 감각적인 것에 먼저 반응하는 법이다.
나는 보통의 일상을 여행지에서 보내는 이야기에 전율한다. 주말마다 산책하고 카페를 찾는 것처럼 여행지에서도 똑같을 뿐인데, 여행이란 필터가 씌워지면 모든 것이 포근하고 아늑해진다. 무디었던 감각들이 생생하게 진동한다. 매일매일이 '어디로 갈까?', '무엇을 할까?', '무엇을 먹을까?'만을 고민하는 아주 행복한 질문 속에서, 토로하던 무거운 마음은 심연 아래로 가라앉는다. 그리고 맑은 물이 걸러지듯 순수한 목소리가 고개를 내민다. 지나고 나면 그리워질 것을 알기에, 촉수를 바짝 세우고 흘러가는 모든 순간에 집중한다.
저자의 여행은 억지로 하지 않기에 미덕이 있다. 그의 기록은 낯선 곳에서도 본래의 나를 잃지 않고 소신을 세우는 생활하기에 가깝다.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오늘의 제철 재료를 고르고, 손수 밥을 지어 먹고, 때때로 거리로 나가 목적 없이 걷는다. 의무나 임무를 다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기에, 본연의 하루에 깊이 집중한다.
특히 '금전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준비와 이동이 훨씬 단순해졌다(p. 255)'는 문장에 공감했다. 내가 떠나고 돌아오는 자유를 온전히 만끽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물질적인 안정이 주는 힘이 컸기 때문이다. 배낭 하나에 꼭 필요한 물품만 넣고, 현지에서 살 수 있는 사소한 것들에 개의치 않으며 그렇게 하나씩 마음을 가볍게 비워내는 것. 컨디션을 좌우할 식사와 숙소를 꼼꼼히 살피고, 가성비가 아닌 질 좋은 경험을 선물하는 것. 이는 삶이 쪼들리면 결코 할 수 없는 선택이며, 훗날 여행의 기억이 미화될 수 있는 스펙트럼 자체를 바꾸어 놓는다.
삶의 확장은 경험의 폭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식으로든 내가 더 나아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작업이 무과수에게 여행이라면, 나의 여행은 모든 것에 의미를 두다가도 그 의미가 부질없음을 깨닫는 과정이다. 여러 차례 사고의 틀이 깨지고 다시 붙기를 반복하는 건, 그것이야말로 완전하지 못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일 테니까.
일 년에 한두 번 떠날까 말까 한 평범한 여행자이지만, 내가 흘려보냈던 생각들을 다가올 여름휴가에 맞춰 되새겨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