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영화 한 편 씹어먹어 봤니? - 학력도 스펙도 나이도 필요없는 신왕국의 코어소리영어
신왕국 지음 / 다산4.0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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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정말 떼려야 뗄 수 없는 지겨운 친구다. 친구라고 말하고 싶지 않지만 오랫동안 함께 한 사람이기에 떼어낼 수 없는 그런 사이 같다. 보통 초등학생 때부터 알파벳을 배우기 시작해서 대학생 때 토익과 토스, 오픽 등 공인 영어성적을 위한 공부까지 우리는 인생에서 꽤 많은 부분을 영어와 함께 했다. 그런데 모국어인 한국어처럼 유창하게 말할 수도 조리 있게 내 생각을 쓸 수도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10년 이상을 이 언어와 함께 해왔는데 늘 제자리걸음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 신왕국은 고교를 자퇴한 후, 영화를 통해 영어를 독학해 명문대인 미국 UC 버클리에 합격한다. 스토리만 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자신의 성공담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자기계발 서적 같았다. 하지만 읽으면서 그는 정말 노력으로 얻어낸 결과물을 아낌없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우리의 노력을 폄하하거나 깎아내리는 듯한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습관처럼 행해왔던 한국의 영어교육 제도 안에서는 절대 유창한 언어를 구사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아기들이 처음 언어를 배우는 과정을 예로 들며 영어를 접근하는 법을 설명한다. 핵심은 '듣기'이다. 아기들이 언어를 내뱉기 까지는 끊임없는 언어자극 특히, 청각 자극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엄마'라는 소리를 계속 들어야 '엄마'라고 내뱉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영어를 공부할 때도 '듣기'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조동사, 현재분사 등과 같은 문법 구조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쉬운 문장이라도 계속 반복해서 강세와 발음을 뇌에 저장시키고 그것이 입 밖으로 나올 때까지 반복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는 훈련 도구로 영화를 이용했다. 영화를 영어공부로 이용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는 첫 영화로 <라푼젤>을 보았다고 했다. 애니메이션 영화는 시청 대상이 어린아이라서 성우가 천천히 또박또박 읽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크게 어려운 단어가 등장하지도 않으면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어휘는 다 들어가 있다. 이것이 그가 첫 영화로 애니메이션을 택한 이유다. 그는 공부 방식으로 대사 하나하나를 쪼개며 공부했다고 한다. 최대한 대본을 보지 않으며 그 문장이 또렷이 다 들릴 때까지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그렇게 대략 1000개의 대사를 암기하게 되자 그다음 영화부터는 수월하게 대사가 들렸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게 되면 일반 영화로 넘어가는 것이 좋다고 한다. 문장도 빨라지고 발음도 실제 상황과 비슷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그는 CNN 뉴스까지 섭렵하고 나자 외국인들도 인정한 영어능력자가 되어 있었다. 그는 미국 유학을 가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자신이 부족한 부분이 드러나는 수업은 학점을 잘 받기 위해 꺼리기 마련인데 그는 일부로 들으며 실력을 향상시켜 나간다. 그러다가 유학 온 학생들의 선생님이 되어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어떤 일이든 반복학습이 중요하다. 그처럼 하나에 미친 듯이 몰두할 수만 있다면 자신도 모르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가 영어에 거의 올인하였듯이 우리도 일상에서 올인 할 수 있는 1순위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영어를 쓸 일이 없는 나라에서 영어 능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정말 언젠가는 이 지긋지긋한 영어와의 동거도 종지부를 찍을 날이 오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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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트레일스 - 길에서 찾은 생명, 문화, 역사, 과학의 기록
로버트 무어 지음, 전소영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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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걷기는 생활이었다. 걷기의 시작은 타의에 의해서 였다. 다니던 초등학교가 정기적으로 오름을 올라가는 활동을 진행해서 제주도의 오름은 거의 대부분 등반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타의로 시작했던 걷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걷기보다는 앉기가 생활화되었고 일어서기보단 누워있는 생활이 더 편했다. 그러던 중 친구에 의해 걷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동네를 한 바퀴 걷는 산책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점차 걸어서 1시간 이내 거리는 버스보다 걸어가는 것이 생활화되었다. 이어폰을 꽂고 흥얼거리며 집까지 걸어가는 그 시간은 의외로 머리를 맑게 해주는 힐링 효과도 있었다.

점차 걷기는 활동적으로 변해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가는 장시간의 여행으로 발전되었다. 체력이 약해 쉽게 지쳤지만 보고 싶은 풍경을 보는 것은 그런 힘듦을 잠시 잊게 해주었다. 이 책의 저자 '로버트 무어'도 처음에 타의에 의한 걷기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재미를 붙이고 길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내었다. 길은 단순히 우리가 발 딛고 서있는 곳이 아니었다. 다양한 생명체들이 미래세대를 위해 남겨놓은 역사이고, 발자취였다. 그는 도시의 길보다는 인적이 드문 길들을 많이 찾아다녔다. 그는 이 길들을 트레일이라 불렀다.


걷기는 트레일을 만든다. 트레일은 다시 지형을 형성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지형은 공동체 지식과 상징적 의미의 기록 보관소 역할을 한다. (p. 277)


트레일은 지나간 시간들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기록 창고이다. 다양한 기록들과 메시지가 트레일에 기록되어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 트레일과 맞닿아 있는 것이 원주민의 문화이다. 원주민들은 인간이 태초부터 갖고 있던 문화를 꾸준히 유지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원주민들은 문명에 순응해 간다. 문명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만 때로는 우리가 원시적으로 가지고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잊게 만든다.


trail과 path의 핵심적인 차이는 방향성에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path는 앞으로 뻗는 반면, trail은 뒤에 남겨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p.88)


그럼 트레일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길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단순히 원시적인지 아닌지에 있을까? 저자는 방향성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길이라 말하는 path는 쭉 뻗어진 길이다. 우리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목적지가 있는 길을 의미한다. 하지만 trail은 남겨진 길을 의미한다. 그는 개미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개미는 다음의 개미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페로몬을 사용해 자신이 왔던 길을 표시한다. 그러면 그다음 개미, 또 그다음 개미는 그 페로몬을 따라 움직인다. 이렇게 '다음'을 위해 남겨놓은 길이 트레일인 것이다. 아무리 험한 길이라도 사람이 왔다 가면 그곳은 잘 다져지고 길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트레일은 야생의 지역에 많이 보인다.


최대한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길은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하나의 지형을 통과해 가는 방법은 수업이 많다. 선택 가능성은 차고 넘치며 함정도 그만큼 많다.
길의 기능은 이 바글거리는 대혼란을 이해할 수 있는 선으로 압축시켜놓는 것이다. (p. 25)


그에게 길이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역사로 남은 길, 특히 아직 아는 사람이 없는 그런 길을 일부로 찾아다녀 기록해두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험에 가까운 활동이 된다. 그는 그저 동네 한 바퀴를 돌거나 주변의 산을 등반하는 것을 '트래킹', '하이킹'으로 치지 않는다. 그건 그저 걷는 행위일 뿐이다. 그에게 걷기란 단순히 다리를 움직이며 나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계속된 선택을 통해 지나온 자신의 길을 되돌아보며 역사를 파헤치는 철학에 가깝다.


흔적을 누군가 따라가면 트레일이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트레일은 기술에 의해 변화하면서 도로, 고속도로, 비행경로가 된다.
구리 선, 전파, 디지털 네트워크가 된다. 새로운 기술 혁신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가고 싶었던 곳에 더 빠르게 더 곧바로 갈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이점을 취할 때마다 상실감이 뒤따른다. (p. 351)


앞선 원주민 이야기처럼 그는 기술에 의한 변화에 상실감과 아쉬움을 느낀다. 인간은 창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대상이 무엇이든지 변화시키고자 한다.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서는 그 속도가 빠르다. 다양한 교통수단과 인터넷 등의 현대 발명품은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아날로그 시대의 향수가 남은 사람들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분명 그런 것들이 없어도 잘만 살았던 시대가 존재했다.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라 급속도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아간다는 데에서 공허함이 밀려온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길을 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 라고 말한다. 길은 인생, 삶, 꿈, 방향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이런 길들 속에서 우리가 가야 할 진정한 의미의 길을 찾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도와준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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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 - 이미령의 위로하는 문학
이미령 지음 / 샘터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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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나처럼, 책 속의 등장인물처럼 작고 여린 존재입니다.


책이란 작고 여린 것들의 아우성이고, 그 아우성은 내 안의 웅얼거림이란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특히 소설이 주는 위로는 책이란 작은 세상도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을 준다. 가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주인공을 보면 안타까워 내가 마치 그 사람인 듯 느껴지는 강한 몰입이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는 줄거리를 따라 등장인물의 생각, 속마음, 상황을 투사하며 바라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점이 현실과 다르다. 실제 우리는 상대의 마음을 내 마음을 틀어줄 수 없기 때문에 이해란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은 독서 에세이다. 저자가 그동안 읽은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책을 읽고 정리하는 글이 정돈되고 깔끔하다. 보는 시각과 관점이 통찰력이 있어 관심 없던 책도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소개하고 읽는 책들 중 내가 읽어본 책은 <나무를 심은 사람>, <파이 이야기>, <어린 왕자> 정도다. 하지만 읽고 싶어 표시해둔 책은 손에 꼽을 수 없다.

그중 <비둘기>, <책 읽어주는 남자>, <속죄> 세 작품은 꼭 읽어보고 싶어졌다.


현대인들은 익명성 속에서 자유를 누린다고 하지요. 하지만 익명성 속에서 지켜지는 자신만의 왕국은 이처럼 덧없고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허수아비보다 못한 현대인의 자존감, 그 무게가 황당할 정도로 가벼워서 오히려 현대인들은 휘정거리며 사는 모양입니다. (p. 85)


견고한 내 일상에 작은 균열이 생기면 순식간에 폐허가 돼버린다. 현대인의 자존감은 이처럼 약하기만 하다. 계획했던 일이 예상처럼 흘러가지 않을 때, 우리는 짜증을 낸다. 하루에 좋은 일이 쏟아지다가도 한 개의 불행이 생기면 순식간에 별로였던 하루가 된다. 이처럼 부정이 주는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고작 비둘기가 준 공포 하나에도 두려워 방으로 뛰어가는 주인공처럼 우리도 작은 흔들림에 회피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한다.


깨어난 자는 무지의 상태에서 행한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자각합니다. 자각한 자에게는 지독한 책임이 따르지요. 그 책임은 너무나 무겁고 무섭습니다. (p. 105~106)


모르면 용서해줄 거라는 당연한 생각을 뒤집는 책이었다. 모르고 했다는 변명처럼 하기 쉬운 것도 없다. 나치에 복종하고 일했던 그녀가 몰랐다고 변명하기에는 자신으로 인한 희생자가 너무도 많았다. 몰랐던 그녀가 깨달음을 얻고 난 주변은 모르고 저질렀던 끔찍한 현장이었다. 몰랐던 건 죄였다. 알았으면 하지 않았을 것을 몰라서 했으니까. 그것을 보고 깨달은 죄책감은 매우 컸다. (그녀가 살던 시대배경이 가혹하고 안쓰럽게 느껴지긴 했다.) 나 역시 몰랐단 말로 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회피하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숱하게 하는 생각과 말은 모두 '안다'는 것과 '본다'라는 것의 차원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안다'는 것과 '본다'라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진실을 알고 있다고들 말하지만 그게 정말 진실일까요? '정말 진실인가요? 사실 그대로인가요?'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겠지요. "진짜야, 내가 봤다니까!" 하지만 보았다는 사실도 조심해야 합니다. 어쩌면 부분만을 보고서 전체를 본 것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고, 나의 상태에 따라 내가 본 것이 왜곡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p. 112~113)


법정물과 관련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목격자의 진술에 의해 피고인이 범인인지 아닌지가 판가름 나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사람을 아는 것과 보는 것에는 차이가 많다. 본 것은 순간이다. 단 몇 초여도 본 것으로 친다. 하지만 아는 것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은 왜곡되기 쉬운 부분이다. 기억에는 내 감정이 투영되어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안다고 칭할 때, "내가 아는데 걔 싸가지가 없더라.", "내가 아는데 진짜 착해" 등의 표현을 한다. 보는 것은 순간의 사실일 수 있지만 극히 일부분이고, 아는 것은 '나'라는 사람이 가진 감정에 잘 짜인 편견이다. 이 책은 그 부분을 말한다.

이 밖에도 다양한 책들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과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하고. 생각에 맞고 틀림이란 없다.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해석도 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다름에 대한 이야기가 모이면 조금 더 성숙한 내가 되고, '틀에 갇힌 나'에서 '보다 많은 것들을 수용할 수 있는 나'가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은 항상 생각지도 못했던 면을 보여준다. 그래서 더 매력이 가고 더 많은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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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참지 않아도 괜찮아 - 눈치 보지 않고 나답게 사는 연습
고코로야 진노스케 지음, 예유진 옮김 / 샘터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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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먼저, 현실은 그다음" 과연 그럴까?


현실이 생각처럼 따라주면 바라는 게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맘대로 되지 않고, 좌절과 절망 그리고 포기란 단어를 뱉게 만든다. 쓴소리를 들으면 참아야 하고, 노력은 누구나 다 하는 기본 바탕이다. 아무리 피나는 노력과 열정을 쏟아부어도 제자리걸음인 경우가 더 많다. 내가 열심히 하면 할 수 있는 건 다 이룰 수 있다고, 느릴지라도 언젠가 세상이 알아줄 것이라고 품었던 희망은 빛 바래진다.

'고코로야 진노스케'는 이제 그런 속박들로부터 벗어나라고 한다. 열심히 하지 말고, 의존하고, 탓하고, 표출하며 살라고 조언한다.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달콤한 말이라 생각한다. 마음 가는 대로 누가 안 살고 싶겠는가. 다들 그런 욕구를 갖고 있지만 관계가 중요한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는 가면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읽으면서 내가 너무 잃을 것들만 생각하며 살지 않았나 생각했다. 노력을 100배, 1000배 쏟아부어도 되지 않는 것을 억지로 붙잡으며 내가 더 시간 관리를 잘했어야 했다고 탓했다. 내가 1%의 재능이 없으니 그것을 커버할 수 있는 99%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기회는 내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약간의 여유가 있을 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역시 내가 열심히 해야 해.”
이런 악마 같은 주문.
“역시 열심히 했더니 잘 됐어.”
이 엄청난 착각의 주문.
“잘 되지 않는 이유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야. 그러니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어.”
이런 세뇌 혹은 착각이 점점 더 열심히 해야만 하는 현실을 대량생산해내는 것입니다. (p. 63)


감사하단 말도 마찬가지다. 기회를 얻기 위해 가식 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맙다고 말한다. 나를 보다 좋은 사람으로 인식해주길 바라는 감사였다. 노력에는 내가 이만큼 했다는 것을 남들에게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깔려있다. 경쟁 사회에서는 더더욱 타인보다는 내가, 권위 있고 명망 높은 사람에게는 내가 눈에 띄기를 바란다. 성공의 조건이 타인의 시선에 맞춰져 버린 삶이 과연 추구하던 행복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노력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저 행복하게 성과를 얻기 위해서 감사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이것이 ‘해야만 하는 감사’, ‘성과를 얻기 위한 타산적 감사’입니다. (p.74)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상처에만 매여있으면 발전은 없다. 저자는 기분과 사실을 구분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상황에는 나의 기분이 투영되어 있다. '바보 취급을 당한 기분', '이해받지 못하는 기분',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잊고 있던 상처를 들추면서 계속 과거에 매이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은 타인이 나를 우울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내가 재단한 기분으로 우울해진 것이다. 저자는 그것을 깨달아야 기분 탓에 상처를 안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단언하는데, 이 모든 게 전부 기분 탓입니다.
당신 마음대로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을 뿐입니다.
기분은 기분일 뿐 사실이 아닙니다. 누구도 당신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말고는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p. 115~116)


정말 나다운 것은 시간이 지나며 바래진 사진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선명했던 색깔들이 누렇게 변해가는 것을 보며 우리는 시간의 무상함을 느낀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하고 생각하는 것은 그때의 멋모르던 순수한 나에 대한 동경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를 찾는 과정은 사춘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인생에서 오춘기, 육춘기도 겪어야 한다. 깜깜한 거리 속, 희미한 가로등 불빛 하나를 찾기 위한 여정은 이제 시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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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파이 이야기 (특별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토미슬라프 토르야나크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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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가 일러스트 특별판으로 다채롭게 돌아왔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로도 개봉되었던 이 작품은 인도 소년 파이의 성장소설이다. 성장소설이지만 다양한 종교를 바라보는 파이의 시선, 동물들과 태평양 한 가운데서 삶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 살아남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까지 소설은 긴장감 속에서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끈다.

 

파이가 바라본 첫 세계는 종교이다. 인도는 모두가 알다시피 힌두교를 믿는다. 하지만 파이는 기독교와 이슬람교도 접하며 모든 신을 믿고자 한다. 그저 어리며 신앙심 깊은 아이는 이쪽 신도 저쪽 신도 모두 자신에게 대단해 더 깊이 알고 싶다. 하지만 어른들은 어느 한 쪽을 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어른들에게 파이는 말한다.

 

간디께서는 모든 종교는 진실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신을 사랑하고 싶을 뿐이에요.” (p.115)

 

아무도 이 말에 반문하지 못한다. 우리는 종교를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고 사랑하는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그 다음으로 파이가 바라본 세계는 생존을 위한 치열한 세상이다. 캐나다로 향하는 배가 좌초되고 파이는 벵골 호랑이, 얼룩말, 오랑우탄, 하이에나 등 같이 동승했던 동물들과 태평양 한 가운데 남겨진다. 어린 나이에 생존과 투쟁하고 하이에나와 벵골 호랑이라는 맹수들과 공존해야 한다. 구명보트 밑에는 상어가 득실거린다. 망망대해에서 구조선을 만나는 기적을 경험하기 전까지 어린 아이는 스스로 생존을 해야 한다. 물과 식량도 부족한 열악한 상황에서 기약 없는 희망을 기다리기엔 너무 멀고 헛된 기대 같다. 하지만 파이는 포기 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 보트를 뒤져 물과 식량을 찾아냈고 맹수들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뗏목을 만들고 벵골 호랑이를 길들였다.

 

정말로 사랑해. 사랑한다, 리처드 파커. 지금 네가 없다면 난 어째야 좋을지 모를 거야. 난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그래, 못 견뎠을거야. 희망이 없어서 죽을 거야. 포기하지 마. 리처드 파커. 포기하면 안 돼. 내가 육지에 데려다줄게. 약속할게. 약속한다구!” (p.358~359)

 

무려 227일 동안 그는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살아남는다. 불가능해 보이는 숫자 같다. 더불어 맹수 한 마리가 그의 동반자가 되어있다. 처음에는 잡아먹힐까 전전긍긍하며 심기를 건들이지 않으려 노력하던 소년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맹수를 길들이고 희망을 놓지 않게 하는 든든한 버팀목처럼 여긴다. 생존과 공존을 동시에 이뤄냈다.

 

마지막으로 그가 바라본 세계는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세상이다. 파이의 이야기를 듣고자 찾아온 오카모토는 그가 탔던 배의 좌초 원인을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파이는 계속해서 동물들과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야기만 계속한다. 듣는 사람은 믿지 않는다. 애초에 들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배가 가라앉던 이야기를 해줘도 그가 듣고 싶던 대답은 아니다. 마지막에 파이가 들려준 이야기는 동물의 이야기가 사람인 경우였다. 이것도 오카모토가 원하던 답변은 아니었다.

 

짧은 인생동안 파이는 많은 고난을 겪었다. 책의 결말은 무사히 캐나다로 건너가 잘 사는 파이, 227일 간의 여정을 끝낸 파이 2개이다. 하지만 나는 하나가 더 있다는 생각이 든다. 파이가 오카모토에게 들려주었던 마지막 이야기. 그것은 진짜가 아니었을까?

 

다리가 부러진 얼룩말은 대만 선원, 얼룩말의 다리를 물어뜯은 하이에나는 요리사, 오랑우탄은 어머니, 벵골 호랑이는 파이 자신. 그 좁은 구명보트 안에도 세상은 존재했다. 물고 뜯는 양육강식의 세계가, 힘 있는 자가, 혼자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극한의 악이 존재했다. 결국 마지막에 살아남아 멕시코에 도달한 것은 파이였다. 호랑이는 없었다고 한다. 파이는 이렇게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우화의 방식을 빌린 것이 아닐까?

 

모든 진실은 파이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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