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트레일스 - 길에서 찾은 생명, 문화, 역사, 과학의 기록
로버트 무어 지음, 전소영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걷기는 생활이었다. 걷기의 시작은 타의에 의해서 였다. 다니던 초등학교가 정기적으로 오름을 올라가는 활동을 진행해서 제주도의 오름은 거의 대부분 등반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타의로 시작했던 걷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걷기보다는 앉기가 생활화되었고 일어서기보단 누워있는 생활이 더 편했다. 그러던 중 친구에 의해 걷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동네를 한 바퀴 걷는 산책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점차 걸어서 1시간 이내 거리는 버스보다 걸어가는 것이 생활화되었다. 이어폰을 꽂고 흥얼거리며 집까지 걸어가는 그 시간은 의외로 머리를 맑게 해주는 힐링 효과도 있었다.

점차 걷기는 활동적으로 변해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가는 장시간의 여행으로 발전되었다. 체력이 약해 쉽게 지쳤지만 보고 싶은 풍경을 보는 것은 그런 힘듦을 잠시 잊게 해주었다. 이 책의 저자 '로버트 무어'도 처음에 타의에 의한 걷기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재미를 붙이고 길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내었다. 길은 단순히 우리가 발 딛고 서있는 곳이 아니었다. 다양한 생명체들이 미래세대를 위해 남겨놓은 역사이고, 발자취였다. 그는 도시의 길보다는 인적이 드문 길들을 많이 찾아다녔다. 그는 이 길들을 트레일이라 불렀다.


걷기는 트레일을 만든다. 트레일은 다시 지형을 형성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지형은 공동체 지식과 상징적 의미의 기록 보관소 역할을 한다. (p. 277)


트레일은 지나간 시간들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기록 창고이다. 다양한 기록들과 메시지가 트레일에 기록되어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 트레일과 맞닿아 있는 것이 원주민의 문화이다. 원주민들은 인간이 태초부터 갖고 있던 문화를 꾸준히 유지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원주민들은 문명에 순응해 간다. 문명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만 때로는 우리가 원시적으로 가지고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잊게 만든다.


trail과 path의 핵심적인 차이는 방향성에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path는 앞으로 뻗는 반면, trail은 뒤에 남겨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p.88)


그럼 트레일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길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단순히 원시적인지 아닌지에 있을까? 저자는 방향성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길이라 말하는 path는 쭉 뻗어진 길이다. 우리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목적지가 있는 길을 의미한다. 하지만 trail은 남겨진 길을 의미한다. 그는 개미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개미는 다음의 개미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페로몬을 사용해 자신이 왔던 길을 표시한다. 그러면 그다음 개미, 또 그다음 개미는 그 페로몬을 따라 움직인다. 이렇게 '다음'을 위해 남겨놓은 길이 트레일인 것이다. 아무리 험한 길이라도 사람이 왔다 가면 그곳은 잘 다져지고 길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트레일은 야생의 지역에 많이 보인다.


최대한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길은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하나의 지형을 통과해 가는 방법은 수업이 많다. 선택 가능성은 차고 넘치며 함정도 그만큼 많다.
길의 기능은 이 바글거리는 대혼란을 이해할 수 있는 선으로 압축시켜놓는 것이다. (p. 25)


그에게 길이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역사로 남은 길, 특히 아직 아는 사람이 없는 그런 길을 일부로 찾아다녀 기록해두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험에 가까운 활동이 된다. 그는 그저 동네 한 바퀴를 돌거나 주변의 산을 등반하는 것을 '트래킹', '하이킹'으로 치지 않는다. 그건 그저 걷는 행위일 뿐이다. 그에게 걷기란 단순히 다리를 움직이며 나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계속된 선택을 통해 지나온 자신의 길을 되돌아보며 역사를 파헤치는 철학에 가깝다.


흔적을 누군가 따라가면 트레일이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트레일은 기술에 의해 변화하면서 도로, 고속도로, 비행경로가 된다.
구리 선, 전파, 디지털 네트워크가 된다. 새로운 기술 혁신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가고 싶었던 곳에 더 빠르게 더 곧바로 갈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이점을 취할 때마다 상실감이 뒤따른다. (p. 351)


앞선 원주민 이야기처럼 그는 기술에 의한 변화에 상실감과 아쉬움을 느낀다. 인간은 창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대상이 무엇이든지 변화시키고자 한다.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서는 그 속도가 빠르다. 다양한 교통수단과 인터넷 등의 현대 발명품은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아날로그 시대의 향수가 남은 사람들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분명 그런 것들이 없어도 잘만 살았던 시대가 존재했다.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라 급속도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아간다는 데에서 공허함이 밀려온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길을 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 라고 말한다. 길은 인생, 삶, 꿈, 방향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이런 길들 속에서 우리가 가야 할 진정한 의미의 길을 찾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도와준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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