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의 단어들
에피톤 프로젝트 (Epitone Project) 지음 / 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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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톤 프로젝트의 <새벽녘>이란 곡을 좋아한다. '수많은 기억들이 떠올라 함께 했던 시간의 눈물들은 어느샌가 너의 모습이 되어 잘 지냈었나고 물어보네'라는 가사가 놓쳐버린 것들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의 노래 속엔 노랫말이 살아 숨 쉰다. 음악을 만드는 입장은 잘 모르나, 그의 생각들이 나열된 책을 읽으니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하고 싶어하는 한 사람의 간절한 열망이 느껴진다.

바쁘게 살다 보니 '나'를 잊은 것 같았다는 그는 힘들어 지친 사람들에게 한자 한자 적어 내려간 가사를 목소리로 말한다. 완성도 높은 음악을 위한 고민, 끝없는 여행을 통해 돌아보는 자신의 마음, 무대에 올라갈 때마다 드는 생각들이 돋보기를 댄 듯 훤히 보인다. 그 속엔 가사의 탄생이 있고, 멜로디의 느낌이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음악이 아니라 연구하면서 얻어낸 진심이다.

 

음악가는 진심을 전해야 한다. 나는 음악가이고, 그러므로 나는 진심을 전해야 한다.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나의 명제. 오늘도 나는 노래를 만든다.
그리고 진심을 담는다. (p. 194)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에겐 청중들이 모르는 고충이 있었다. 프로 세계에서 아마추어가 되지 않기 위한 끝없는 고뇌, 좋아하는 일이 괴로운 일이 되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이 그러하다. '내가 좋아하던 노래가 이런 비화가 있었구나', '그의 마음속의 단어들은 이랬구나' 알 수 있어 좋았다. 앞으로도 마음을 무시하지 말고 이렇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쓰다만 일기 같아도 타인이 보여주면 일상이 특별해지니까.

 

내 마음속의 어떤 단어들이 나를 즐겁게 하고, 슬프게 하고, 웃게 하고, 괴롭게 하는지 문득 내 마음의 모양이 궁금해졌다. 내가 더 즐겁고, 전보다 더 많이 웃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슬프지 않고, 괴롭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혹 나의 뾰족한 마음이 누군가를 슬프게 하거나 괴롭히지는 않았는지·····. 어쩌면 이제는 조금 무뎌진 건지·····.

꽤나 긴 꿈을 꾸었다. 그 안에서 많은 멜로디들은 찾고 듣고 적었다.
이제 나는 글을 쓴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지우고 고쳐 쓴 마음속의 단어들을.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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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이석원 지음 / 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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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어느 날 나에게 질문을 한 적 있다. "내가 너무 나약한 건가?" 나는 "아니 배우는 과정인데 그 길이 순탄치 않은 거뿐이야."라고 답했다. 그 친구의 질문은 올해 가장 내가 나에게 많이 한 질문이었고 내가 그녀에게 건넨 대답은 역시 나를 위해 해주고픈 말이었다. 삶을 가꾸어 나가면서 예쁜 꽃밭만 거닐기는 힘들다. 가시밭길이 더 잔혹하게 펼쳐져 있는 경우가 많다. 사회가 나에게만 가혹한 거 아니냐고 울고 싶을 정도로 힘들 날이 틈틈이 있다면 이석원 작가님은 유독 짙고 길게 이어지는 느낌이다.

『보통의 존재』, 『언제 들어도 좋은 말』까지 그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힘들다고 적어내려갈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든 살아내 보겠다고 밧줄을 단단히 잡는 힘이 느껴진다. 이번 책도 걸을 수 없는 몸 상태로 글을 썼다. 글을 써서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자신의 생활도 영위해야 하니까. 그에게서 이제 담담함이 느껴진다.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며 내 뜻과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시간들. 살면서 맞닥뜨리는 무수한 어긋남. 하지만 괜찮다고. 왜냐하면 삶이란 그럴 수 있는 거니까. 모두가 같은 걸 누리면서 사는 건 아니니까라고. (p. 26)

 

이번 책에서도 그의 주변 인물 간의 관계가 드러난다. 무례한 사람들, 뜻밖의 위로를 준 사람들, 오해였던 사이가 우정으로 변하는 기적까지 사람이란 국가를 여행하며 몸과 마음 곳곳에 체취란 도장을 꾹 찍었다. 이것이 다인가 싶은 관계들이 있다. 설마가 사실이 될 때만큼 공허한 순간이 어디 있을까? 돈과 명예보다 주변에 어떤 사람이 모이고 영향을 주는지가 운을 좌지우지한다. 그래서 인복은 가장 큰 복이라고 하나보다.

 

어쩌면 삶 전체를 통틀어 좋게좋게 웃음과 예의로서만 대해야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이 공허한 인간관계에서, 나로 하여금 솔직함을 이끌어 내줄 수 있는 사람, 거짓말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주는 이를 만난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이고 행운이지를. (p. 39)

 

이번에는 이기주 작가님의 느낌도 느껴졌었는데 아마 어머니에 대한 글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다. 인간관계를 이야기하면서 가족과의 관계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에게 어머니는 손이 가고, 신경이 쓰이고, 챙겨드려야 할 것 같은 사람이다. 성인이 되고, 스스로 삶을 살아가야 할 것 같은데 자꾸 기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가 아플 때, 손발이 되어 그를 보살폈던 그녀는 자식이 낫자 그제서야 제대로 아파한다. 부모란 으레 그래야 한다는 듯 별거 아니란 듯이.

 

그래서 관계란, 특히나 가족이라는 이 떨쳐버리기 힘들고, 어디 비교할 곳 없이 특수한 사이는 노력이 계속 필요하다. 정말 계에속. (p. 124)

 

철륜으로 이어진 관계라지만 결국 독립된 하나하나의 사람이다. 그렇기에 서로 이해 못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이는 '내가 당신을 잘 알고 있다'라는 오만한 생각에서 시작되기에 가장 금해야 한다. 단정을 지으면 나는 좁은 시야로 당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아직 철이 덜든 자식은 시야를 넓히기 어렵다. 그의 글을 읽으며 나도 계속 어머니를 생각했다. 자주 물건을 어디 두었는지 까먹으시고, 체력적으로 힘들어 잠이 많아지시고, 종종 먼 산을 바라보는 그녀가 눈에 밟힌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관계는 엇갈려 갈 테다. 보살핌의 대상이 뒤바뀔거다. 그때마다 이 문장을 되새길 것 같다. 조금이라도 이해한 단어가 가닿을 수 있도록.

 

어차피 당사자가 아닌 한 이해라는 행위에 한계는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때로는 단정 짓지 말라는 사람들의 단정이, 누군가에겐 그 어떤 단정보다도 더한 단정으로 와닿을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일까. (p. 263)

 

이해라는 행위가 한계가 아닌 확장이 되길 빈다. 그가 쓴 이야기도 모두 이해하는 삶이길 바라서가 아닐까. 이해하고 이해받는 과정이 당연시되어 관계 때문에 험담하지 않는 시간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삶은 누구에게나 외로운 싸움이기에 맞잡을 수 있는 손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좀 더 화사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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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여자의 사랑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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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알고 있어요. 공평해 보이지 않겠죠. 하지만 인생이란 게 원래 공평하지 않은 거니까
그쪽도 그 사실에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예요."


최은영 작가님이 말한 것처럼 호감도, 감정 이입도 되지 않는 여주인공이란 말에 동의한다. 많은 단편 중 『자식들은 안 보내』 란 작품밖에 못 읽었지만 말이다. 불공평한 것을 알면서도, 힘들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녀는 바꾸려 노력하지 않는다. 폴린은 지금 칭얼대는 어린 소녀들을 신경 쓰기 바쁘고, 시부모님과 남편의 눈 밖에 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렇게 습관처럼 평범한 나날이라 느껴왔으니까.

그녀가 제프리와 바람을 피운 건, 처음으로 해본 능동적인 일이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고, 심하면 자식들조차 그녀를 멀리할 수 있단 사실을 알면서도 찾아온 사랑에 직접 달려간다. 결국 브라이언에게 '자식들은 안 보내' 매정한 말을 듣고 그녀가 얻은 건, 자유였을까?

제프리와의 인연은 길지 않았음을 뒤에서 예측해 볼 수 있다. 성인이 된 딸과 이야기를 나누며 다행이라 느껴졌던 것은 담담해진 폴린의 태도였다. 독박 육아를 감당하면서도, 시부모의 지적을 들으면서도 그저 주어진 일이니 행하는 무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지만 애써 붙잡지 않으려는 초연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평범함 속엔 익숙한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 찐득하게 달라붙은 껌처럼 쉽게 떼지지 않고 끈적함을 남긴다. 내가 폴린에게 느꼈던 찝찝함은 그런 종류였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느꼈던 감정이었다. 훅 치고 들어오는 말과 행동, 각종 사건들 앞에서 내가 '그런 식으로 대하지 마세요'라고 해본 적이 있었던가. 충격에 잠시 황당해서 입을 떼지 못했다.


이건 극심한 고통이다. 만성적인 고통이 될 것이다. 만성적이라는 말은 영원하긴 하지만 한결같다는 뜻은 아니다. 또한 그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벗어날 수는 없어도, 그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 매 순간 느끼지는 않겠지만, 고통 없는 상태가 여러 날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런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얻은 그것은 파국으로 몰아가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 그 고통을 무디게 하거나 유배시키는 요령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이건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는 여전히 순진무구하거나 미개하여, 이 세상에 이렇게 오래가는 고통이 있다는 걸 모른다. 혼자 되뇌어라. 어차피 아이들은 언젠가는 떠난다고. 아이들은 자란다고. 엄마라는 존재 앞에는 늘 이렇게 혼자 겪어야 하는 조금은 어리석은 고적감이 기다리고 있다고. 아이들은 이 시간을 잊을 테고, 어떤 식으로든 당신과 결별할 것이다. 아니면 뭘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는 순간까지 당신 주변에 머물 것이다. 브라이언이 그랬던 것처럼.


그럼에도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가. 그 일이 그저 가슴 아픈 과거로만 남고 더는 현재의 것이 될 수 없을 때까지 그걸 끌어안고 살면서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 (p. 61~62)


'착한 여자'란 프레임안에는 수동성이 내포되어 있다. 고통의 현실은 반복된다. 벗어나려 하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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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울렁증 32세 이승환 씨는 어떻게 재무제표 읽어주는 남자가 됐을까
이승환 지음, 최병철 감수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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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란 나가고 들어오는 돈을 셈하는 것이라고 기억합시다. (p.20)


 

회사는 돈을 투자해서 이익을 얻고 다시 재투자 또는 재분배를 통해 움직이는 돈의 순환 창고다. 은행은 돈을 관리하고 융통하는 사람들의 집합소라 한다면 회사는 더 큰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집단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회계는 회사를 운영할 때 가장 기틀이 되는 업무이다. 회계가 엉망이라면 어디서 손해가 나는지 알 수 없으며, 최악의 경우 회사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전형적인 문과 인간인 난 숫자를 다루는 직업이란 점에서 회계 쪽으론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마음이 조금씩 변한 건, 회사를 다니고부터이다. 돈이 나가고 들어오고를 민감하게 잡아내어 모두 문서화 시켜야 하는 이 사람들은 예민하고 또 무서웠다. 과중한 업무량에 놀라기도 했고, 사무용품 하나까지도 모두 결의서를 작성해서 영수증을 증빙 처리해야 하기에 단순 작업 업무도 만만치 않았다. 기껏 해봐야 급여대장이나 지출결의서 정도만 있는 대로 작성한 나는 회계 업무를 했다고 볼 수도 없었다. 매일 통장을 확인하고 투자 가치를 따져가며 일하는 저 사람들이 회사의 중추였고,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읽는 회계에선 재무제표를 효율적으로 읽는 법만을 다룹니다. 읽는 회계는 앞에 줄줄이 설명한 회계 처리 과정을 머릿속에서 모두 지우고, 최종 보고서인 재무제표를 읽고 해석하는 데 집중해도 충분합니다. (p. 33)


 

저자는 끊임없이 '재무제표를 읽는 법'을 강조한다. 재무제표에 적혀 있는 용어부터 숫자의 의미, +, - 까지 모든 게 재무제표에 드러나있고,  한 장의 표만으로 회사 내부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전망도 여기서 드러난다고 한다. 휘몰아치는 용어와 숫자의 홍수 속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실제 기업의 재무제표를 예시로 들어 '왜'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배용준이 왜 씨제스를 SM에 팔았는지, SM · YG · JYP가 연습생에 쓰는 비용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기사에서 접했던 내용이었다. 이렇게 관심 가졌던 내용을 가지고 설명해주니 와닿는 것이 많았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회계의 고수가 되었다고 보긴 힘들다. 이제 겨우 의미를 더듬더듬 알아가는 정도다. 그렇지만 회계란 분야가 얼마나 실생활과 밀접한 일인지를 알았다. 사람이라면 가장 민감한 돈을 다루는 사람들의 노고를 더욱 체감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모르지만 회계는 한 번 공부를 해봐야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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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잘 지내고 있어요 - 밤삼킨별의 at corner
밤삼킨별 지음 / MY(흐름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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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다. 잘 지내?' 전 남자친구가 건넬법한 이 흔한 말은 이전 관계가 잊혀갈 때쯤 등장한다. 계속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지금 내 상황을 알지만 멀어진 이들은 내 현재를 모르니까. 연말이 다가오니 소식이 뜸했던 친구들이 떠오른다. 친구들도 나와 비슷했는지 요즘 들어 잘 지내냐는 말을 건넨다. 그때마다 정해진 답변을 한다. '응! 잘 지내고 있어. 너는?'

잘 못 지내서, 힘들지만 애써 괜찮은 척은 하고 싶어서, 뜸했던 사이 어색한 분위기를 식히고 싶지 않아서 여러 이유로 말은 불쑥 뱉어진다. 그녀는 말한다. 이 책의 글들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써 내려갔다고. <미래에서 기다릴게>, <당신에게 힘을 보낼게, 반짝> 등 감성 에세이를 자주 펴냈던 그녀의 소식이 잠시 뜸했던 이유다. 나름대로의 풍파가 있었고, 글이 쉽사리 써지지 않을 만큼 힘들었나 보다 독자인 난 짐작할 뿐이다.

에 연재된 글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 옷을 입고 선물같이 나타났다. 모든 걸 주고도 떠났던 사람, 사랑의 아픔을 여실히 깨달았던 시간, 흘러가기 바쁜 야속한 시간에 울고 웃던 청춘의 나날들. 나는 그녀의 짧은 글들이 대변하는 추억의 모습을 공감하고 좋아했다.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바로 그 순간 상처가 생긴다.
위로받지 못하고, 치유되지 않으니
기대에 대한 면역력은 약해진다. (p. 60)

 

리가 쉽게 하며 상처받는 기대처럼 알면서도 안되는 마음이 생긴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 사랑으로 무럭무럭 자라나고 싶은 내가 서있다. 쉬워서 많아진 온몸 곳곳의 상처들은 도저히 적응이 안 된다. 눈이 내리는 한겨울 북해도로 떠난 그녀의 마음은 조각난 상태이지 않았을까. 북해도에서 보낸 시간은 '아무것도 아닌 일'에 대한 생각이었다. 과거를 덮고 파헤치고 다시 덮고 우유부단한 결정을 반복하면서 그래도 '다행이었다'를 외쳐본다.

 

행복하지 않은 채, 행복하지 않은 것이 불행이라고 생각한 것이 가장 불행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유년부터 서른이 될 때까지 늘 편지의 말미이건, 어떤 이사의 끝에는 '행복하세요. 건강하세요.'로 인사를 전하곤 했다.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교육받고 자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끝!'이라는 해피엔딩은 중요한 결말이자 우리 모두가 이루어야 할 종결이었다. 언제나 밝게 웃으며 즐겁게 살아가야 함은 행복이라는 교육이 준 임무였으니, 슬프거나 우울하면 공격받기 일쑤였다. (p. 48)

 

힘들게 써 내려간 글을 쉽게 소비한 것 같아 책등을 자꾸 쓰다듬게 된다. 12월은 한 해가 희망으로 뒤덮이는 시기다. 행복해지라는 캐럴이 들리고, 한 해를 결산하는 시상식이 개최되는 어수선한 이때 '올 한 해도 다행이었어요.' 한 마디씩 건네야겠다. 무사히도 올해가 지나갔으니.

 

건너고 도착해 새롭게 시작된 시간. 이제 다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한 장의 사진, 한 줄의 글로 건네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 모두 각자에게 좋은 사진과 글과 사람으로 만나져 좋은 시간을 보내는 일상이길. (p.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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