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이석원 지음 / 달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친구가 어느 날 나에게 질문을 한 적
있다. "내가 너무 나약한 건가?" 나는 "아니 배우는 과정인데 그 길이 순탄치 않은 거뿐이야."라고 답했다. 그 친구의 질문은 올해 가장 내가
나에게 많이 한 질문이었고 내가 그녀에게 건넨 대답은 역시 나를 위해 해주고픈 말이었다. 삶을 가꾸어 나가면서 예쁜 꽃밭만 거닐기는 힘들다.
가시밭길이 더 잔혹하게 펼쳐져 있는 경우가 많다. 사회가 나에게만 가혹한 거 아니냐고 울고 싶을 정도로 힘들 날이 틈틈이 있다면 이석원 작가님은
유독 짙고 길게 이어지는 느낌이다.
『보통의 존재』, 『언제 들어도 좋은
말』까지 그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힘들다고 적어내려갈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든
살아내 보겠다고 밧줄을 단단히 잡는 힘이 느껴진다. 이번 책도 걸을 수 없는 몸 상태로 글을 썼다. 글을 써서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자신의 생활도 영위해야 하니까. 그에게서 이제 담담함이 느껴진다.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며 내 뜻과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시간들. 살면서 맞닥뜨리는 무수한 어긋남. 하지만 괜찮다고. 왜냐하면 삶이란 그럴 수 있는 거니까. 모두가 같은 걸 누리면서
사는 건 아니니까라고. (p. 26)
이번 책에서도 그의 주변 인물 간의
관계가 드러난다. 무례한 사람들, 뜻밖의 위로를 준 사람들, 오해였던 사이가 우정으로 변하는 기적까지 사람이란 국가를 여행하며 몸과 마음 곳곳에
체취란 도장을 꾹 찍었다. 이것이 다인가 싶은 관계들이 있다. 설마가 사실이 될 때만큼 공허한 순간이 어디 있을까? 돈과 명예보다 주변에 어떤
사람이 모이고 영향을 주는지가 운을 좌지우지한다. 그래서 인복은 가장 큰 복이라고 하나보다.
어쩌면 삶 전체를 통틀어 좋게좋게 웃음과 예의로서만 대해야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이 공허한
인간관계에서, 나로 하여금 솔직함을 이끌어 내줄 수 있는 사람, 거짓말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주는 이를 만난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이고 행운이지를. (p. 39)
이번에는 이기주 작가님의 느낌도 느껴졌었는데 아마 어머니에 대한 글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다.
인간관계를 이야기하면서 가족과의 관계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에게 어머니는 손이 가고, 신경이 쓰이고, 챙겨드려야 할 것 같은 사람이다.
성인이 되고, 스스로 삶을 살아가야 할 것 같은데 자꾸 기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가 아플 때, 손발이 되어 그를 보살폈던 그녀는 자식이
낫자 그제서야 제대로 아파한다. 부모란 으레 그래야 한다는 듯 별거 아니란 듯이.
그래서 관계란, 특히나 가족이라는 이
떨쳐버리기 힘들고, 어디 비교할 곳 없이 특수한 사이는 노력이 계속 필요하다. 정말 계에속. (p.
124)
철륜으로 이어진 관계라지만 결국 독립된
하나하나의 사람이다. 그렇기에 서로 이해 못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이는 '내가 당신을 잘 알고 있다'라는 오만한 생각에서 시작되기에 가장
금해야 한다. 단정을 지으면 나는 좁은 시야로 당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아직 철이 덜든 자식은 시야를 넓히기 어렵다. 그의 글을 읽으며 나도
계속 어머니를 생각했다. 자주 물건을 어디 두었는지 까먹으시고, 체력적으로 힘들어 잠이 많아지시고, 종종 먼 산을 바라보는 그녀가 눈에 밟힌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관계는 엇갈려 갈 테다. 보살핌의 대상이 뒤바뀔거다. 그때마다 이 문장을 되새길 것 같다. 조금이라도 이해한 단어가
가닿을 수 있도록.
어차피 당사자가 아닌 한 이해라는 행위에 한계는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때로는 단정 짓지 말라는
사람들의 단정이, 누군가에겐 그 어떤 단정보다도 더한 단정으로 와닿을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일까. (p.
263)
이해라는 행위가 한계가 아닌 확장이 되길 빈다. 그가 쓴 이야기도 모두 이해하는 삶이길 바라서가
아닐까. 이해하고 이해받는 과정이 당연시되어 관계 때문에 험담하지 않는 시간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삶은 누구에게나 외로운 싸움이기에 맞잡을 수
있는 손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좀 더 화사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