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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잘 지내고 있어요 - 밤삼킨별의 at corner
밤삼킨별 지음 / MY(흐름출판) / 2018년 11월
평점 :

'오랜만이다. 잘 지내?' 전 남자친구가 건넬법한 이 흔한 말은 이전 관계가 잊혀갈
때쯤 등장한다. 계속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지금 내 상황을 알지만 멀어진 이들은 내 현재를 모르니까. 연말이 다가오니 소식이 뜸했던 친구들이
떠오른다. 친구들도 나와 비슷했는지 요즘 들어 잘 지내냐는 말을 건넨다. 그때마다 정해진 답변을 한다. '응! 잘 지내고 있어. 너는?'
잘 못 지내서, 힘들지만
애써 괜찮은 척은 하고 싶어서, 뜸했던 사이 어색한 분위기를 식히고 싶지 않아서 여러 이유로 말은 불쑥 뱉어진다. 그녀는 말한다. 이 책의
글들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써 내려갔다고. <미래에서 기다릴게>, <당신에게 힘을 보낼게, 반짝> 등 감성
에세이를 자주 펴냈던 그녀의 소식이 잠시 뜸했던 이유다. 나름대로의 풍파가 있었고, 글이 쉽사리 써지지 않을 만큼 힘들었나 보다 독자인 난
짐작할 뿐이다.
에 연재된 글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 옷을 입고 선물같이 나타났다. 모든 걸 주고도
떠났던 사람, 사랑의 아픔을 여실히 깨달았던 시간, 흘러가기 바쁜 야속한 시간에 울고 웃던 청춘의 나날들. 나는 그녀의 짧은 글들이 대변하는
추억의 모습을 공감하고 좋아했다.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바로 그 순간 상처가 생긴다.
위로받지 못하고, 치유되지 않으니
기대에 대한 면역력은 약해진다. (p. 60)
우리가 쉽게 하며 상처받는 기대처럼 알면서도 안되는 마음이 생긴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 사랑으로
무럭무럭 자라나고 싶은 내가 서있다. 쉬워서 많아진 온몸 곳곳의 상처들은 도저히 적응이 안 된다. 눈이 내리는 한겨울 북해도로 떠난 그녀의
마음은 조각난 상태이지 않았을까. 북해도에서 보낸 시간은 '아무것도 아닌 일'에 대한 생각이었다. 과거를 덮고 파헤치고 다시 덮고 우유부단한
결정을 반복하면서 그래도 '다행이었다'를 외쳐본다.
행복하지 않은 채,
행복하지 않은 것이 불행이라고 생각한 것이 가장 불행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유년부터 서른이 될 때까지 늘 편지의 말미이건, 어떤 이사의 끝에는
'행복하세요. 건강하세요.'로 인사를 전하곤 했다.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교육받고 자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끝!'이라는 해피엔딩은
중요한 결말이자 우리 모두가 이루어야 할 종결이었다. 언제나 밝게 웃으며 즐겁게 살아가야 함은 행복이라는 교육이 준 임무였으니, 슬프거나
우울하면 공격받기 일쑤였다. (p. 48)
힘들게 써 내려간 글을 쉽게 소비한 것 같아 책등을 자꾸 쓰다듬게 된다. 12월은 한 해가
희망으로 뒤덮이는 시기다. 행복해지라는 캐럴이 들리고, 한 해를 결산하는 시상식이 개최되는 어수선한 이때 '올 한 해도 다행이었어요.' 한
마디씩 건네야겠다. 무사히도 올해가 지나갔으니.
건너고 도착해 새롭게
시작된 시간. 이제 다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한 장의 사진,
한 줄의 글로 건네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 모두 각자에게 좋은 사진과 글과
사람으로 만나져 좋은 시간을 보내는 일상이길. (p.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