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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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최은영, 구병모, 김성중, 김이설, 손보미, 최정화 7명의 작가님의 합심하여 탄생한 단편소설집이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난 뒤에도 여운이 길었는데 이 책도 한 편 한편 읽어나갈 때마다 주인공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기에 감정이입이 잘되었다. 그 중 조남주 작가님의 <현남 오빠에게>, 최은영 작가님의 <당신의 평화>, 김이설 작가님의 <경년>이 가장 잔상이 많이 남는다.

먼저 <현남 오빠에게>는 주인공이 남자친구인 현남 오빠에게 써 내려가는 이별편지 형식으로 진행된다. 멋모르던 신입생으로, 타지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그녀는 현남 오빠를 믿고 의지하다가 점점 자신을 잃어버린다. 성인으로서 주어진 선택권, 자신에 대한 책임감을 제대로 사용해보지 못한 채, 현남 오빠의 울타리 안에서 산다. 그런 주인공의 행동이 답답했지만 그래도 결혼하자는 현남 오빠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살아가 보고자 하는 모습을 보며 응원해주고 싶었다. 이 소설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현남 오빠가 주인공에게 툭툭 던지는 말이었다. 여성을 자신의 부속품 정도로 생각하는 말은 사회가 변한다고 해도 유전자처럼 전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빠의 질문은 "아이를 낳는 게 좋다고 생각해?"가 아니라 "아이를 몇 명이나 낳는 게 좋다고 생각해?"였고, "네가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가 아니라 "네가 아이를 몇 년쯤 직접 키울 수 있을까?"였으니까요. 저는 아직 생각해본 적 없다고 대답을 피하곤 했고 오빠는 왜 그렇게 계획 없이 사느냐고 저를 한심해했습니다. 하지만 오빠, 오빠가 아이를 직접 낳을 것도 키울 것도 아니면서 무슨 자격으로 그런 계획을 혼자 세우죠? 한심한 건 제가 아니라 오빠예요. (p.34)


<당신의 평화>는 유진의 집에 인사 온 예비 며느리인 선영을 바라보는 시선과 유진이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누이이지만 선영이 자신의 집에 귀속되어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며느리로 살아온 어머니를 바라보는 딸, 그리고 이젠 시어머니가 되어서 선영에게 하는 모습을 보는 시누이, 이 세 모습 속에서 유진이 바라보는 시선이 좋았다. 며느리로 가부장제의 전통적인 집안 풍경에서 엄마가 숨도 못 쉬고 살아온 것을 유진은 안다. 하지만 그런 힘듦을 받아주는 딸로서의 유진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이제 엄마를 괴롭히던 할머니가 없다. 이제 할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길 바라지만 엄마는 예비 며느리인 선영에게 자신이 받아왔던 모습 그대로 행하고자 한다. 유진은 그 모습이 싫다. 엄마가 그만큼 힘들었으니 선영에게만큼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유진의 말은 잘 닿지 않는다.

고부갈등이 여전한 이유는 이 반복되는 체계가 너무도 견고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이 살아온 방식은 머릿속에 강하게 박혀있어 그걸 깨뜨리려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제 나이가 들어버린 유진의 어머니는 더욱 보상심리와 함께 그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버렸다. 변화도 손발이 맞아야 가능한데 이것이 불가능해져 버린 것이다. 읽으면서 갑을 관계의 고부가 아니라 동등한 위치의 관계는 여전히 불가능한 것인지 아쉬움이 느껴졌다.


유진은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알고 있었다. 정순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을 것이고, 자신과 유진이 주고받았던 말을 지울 것이다. 유진은 그런 정순을 용서하겠지, 언제나처럼 정순의 전화를 받고 아주 가끔은 정순과 얼굴을 보고 밥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유진은 정순이 오늘 했던 행동과 말을 잊지 못하게 된다. 용서해도 마음에서 지울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언제까지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겠지만 오늘 같은 순간들이 만들어낸 거리를 좁힐 방법은 없다. 그 거리는 유진에게 어떤 안타까움을, 그리고 자유를 줬지만 언젠가 그만큼의 슬픔을 줄 것이었다. (p. 72~73)


<경년>은 갱년기를 보내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아들에게 거는 기대와 딸에게 거는 기대는 현저히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아들은 어떤 사고를 쳐도 올곧은 아이이다. 반면 딸은 어떤 사고를 치면 행실을 잘하지 못해서이다. 같은 문제를 남녀가 똑같이 겪었는데도 남자가 하면 혈기왕성하니까 다들 그렇게 큰다고 용인하고 넘어가지만, 여자는 골이 비었고, 여우라 꼬리치고, 독하게 비친다. 다행인 건 이 소설의 엄마는 아들 역시 잘못 했음을 알고 다른 집의 딸을 걱정한다. 그리고 너도 결국 그런 여자이구나 하며 자신의 딸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딸에게 앞으로 닥칠 시련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갈 것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네가 여자여서, 세상의 온갖 부당함과 불편함을 이제 어린 너와도 나눠 갖게 된 것이 서글프기 때문이라는 걸 말할 수는 없었다. 영문을 모른 채 내 등을 쓰다듬던 딸아이는 금세 울음을 그치고는 생리대를 혼자 붙여보겠다고 끙끙댔다. 그렇게 어린애였다. (p. 119)


책을 다 읽으니 조남주 작가님이 쓰신 작가노트의 말이 계속 맴돈다. 현남 오빠에게 벗어나기 위해 편지를 쓰는 주인공이 스토킹을 당하면 어떡하냐고, 몰래 사진이나 동영상이라도 찍어놨으면 어떡하냐고. 요새는 데이트 폭력도 많이 발생하니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이 사회가 착잡하게 느껴졌다. 여전히 여자는 또 조심하고 조심해야 하는 존재인 것 같아서이다.

페미니즘이 이슈가 되고, 여성의 인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과거로부터 당연하다고 여기며 전승된 의식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어딘가 뿌리 깊숙이 박혀 내가 모르는 차별을 당연하다고 받게 하고 있을지 모른다. 성별 구분없이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그런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싸움보다는 대화로, 토론으로 서로가 서로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또 받아들일 마음을 가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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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들 - 사이코패스 전문가가 밝히는 인간 본성의 비밀
애비게일 마시 지음, 박선령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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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 전문가가 밝히는 인간 본성의 비밀'이란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이코패스와 평범한 인간의 차이는 무엇인지, 더 나아가 이 책은 '이타 주의적 사람들'과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실험을 통해 차이를 알려준다. 보통 사람이면 고통을 느끼는 사람에게 연민, 불안, 두려움의 감정을 느낀다. 그것은 단순히 선한 마음으로 여겨지지만 상황에 어떠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영웅적인 행동으로 누군가를 위험해서 구해냈을 때, 언론들은 앞다투어 그 사람이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 목숨을 구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행동을 당사자는 그 순간 속에서 혹시나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고 잠깐이지만 망설이기도 한다고 말한다. 즉, 선한 행동이라고 해서 과정마저 아름다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그럼 사이코패스는 어떤 사람들일까? 우리는 뉴스에 나오는 사이코패스를 보며 가정에서 보고 자란 게 있으니 저렇게 행동할 것이라 말한다.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 그들 중 몇몇은 가정환경이 그리 좋지 않았음이 밝혀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사이코패스들이 가정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사이코패스를 이렇게 정의한다.

사이코패스: 동정심을 느끼는 뇌 기능이 상실된 정신 질환. 냉혹한 태도, 행동 조절 장애, 사기나 조작 같은 반사회적 행동이 두루 나타남.

뇌의 문제가 있는 정신질환의 한 유형으로 사이코패스를 바라본다. 저자는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아이들을 대상으로 두려움과 공포 등에 관한 감정을 느끼는지에 관한 실험을 하나 한다. 거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은 이러한 감정을 알지 못하고 자란다는 점이었다. 이는 대뇌와 편도체의 기능 장애로 나타난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그 부분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상대를 무자비하게 학대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 이타 주의적인 사람들은 어떨까? 사이코패스와 정반대의 성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은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족한 두려움에 높은 공감을 보인다. 또한, 감수성이나 활동성 면에서도 높은 수준을 보이며 특히, 보통 사람들보다 연민을 높게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이식과 같은 선한 일에 고민 없이 나설 수 있는 것이다.

장기이식에도 위험부담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들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 저자가 만났던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즐거워하고 기뻐했다. 실험 대상이 되겠다고 자원한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이었다. 그들은 마치 배려를 위해 태어난 사람들 같았다.

책의 말미에는 우리가 이타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4가지를 말해준다.

1.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존재이다.
2. 남을 보살피려면 단순한 동정 이상의 뭔가가 필요하다.
3. 자제심은 답이 아니다.
4. 문화적 변화로 인해 배려심이 더 늘어났다.

 

 

이타 주의적인 사람들과 사이코패스의 비교가 인상적인 책이다. 결국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이타 주의인 것이다. 장기이식처럼 대단한 일을 해낼 만큼 이타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를 배려하고 도와준다. 생물학적으로 이타적인 DNA가 내재되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타적이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기적인 사람보다는 이타적인 쪽이 더 나은 삶이 아닐까 생각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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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한 지성의 단련법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샘터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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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회상하고 그리워하면 어른 된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린 나라면 기뻐했을 말이지만 지금의 나는 별로 기쁘진 않다. 어렸을 때 어른들은 크고 멋진 존재였는데 지금 와서 보면 피곤과 알 수 없는 미래에 신음하는 존재 같다. 과거는 마냥 좋았던 순간으로 조작됐다. 이 책은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어야 하는지, 좀 더 유익한 시각을 가질 수 없는지 근대 일본의 대표 인물들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다. 그중 '나쓰메 소세키'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소세키가 살았던 시대는 일본에 서양 문화가 들어오던 때이다. 그는 그 엄청난 파도 속에서 일본 본연의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을 했다. 급변하는 시대에서 오는 고독감과 같은 감정들은 지성이 되었고, 그때와 다른 지금 이 시대에 적용해 볼 수 있는 것이 너무도 많았다. 특히, 소세키는 자기 본위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말은 곧 소세키 스스로를 꿋꿋이 견디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현대에서 ‘개인주의’라는 말이 ‘이기주의’나 ‘제멋대로 행동하다’는 의미로 변질되어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세키의 개인주의에는 이런 이타성과 타인을 거절하지 않는 너그러움이 있다. (P. 55)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차이점을 명확히 서술한 것 같다. 이기주의는 '나만 생각하는 것'이고, 개인주의는 '나를 중점으로 생각하되 타인을 곁에 두는 것', 이타주의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심의 우선순위만 다른 세 개의 가치관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개인주의를 표방한 소세키가 자기 본위를 강조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기 본위가 가장 필요한 곳은 직업이다. 소세키는 인간이 일하는 이유는, 혼자서는 자급자족할 수 없는 무언가를 돈으로 바꾸기 위해서다. (p. 57) 라고 말한다. 이 속에서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 하나라도 있으면 직업과 상호교환 관계를 유지하라고 한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직업은 단순 알바나 봉사와는 달라 꾸준히 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적 요소이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이유도 이 때문인 것 같다.

본질을 유지하며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는 과정, 그것이 소세키가 말하는 지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세키가 유학을 가서도 적응을 못한 것은 어쩌면 안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교양을 갖추면 단기적으로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역사를 알고, 사고의 기본을 습득하면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항상 ‘본질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연습할 것, 이것이 지성을 갈고닦는 기본 트레이닝이다. (p. 194)


교양을 갖추라는 말은 자신을 흔들림에게 붙잡을 필요가 있다는 일침인 것 같다. 내 사고를 단순히 믿는 것뿐만 아니라 그 사고가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지속적으로 돌아보려는 노력은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면, 더 나아가 내 삶을 되돌아보는 나이가 되었을 때, 후회로 점철되지 않기 위해서 지성을 갈고닦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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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션 B - 역경에 맞서고, 회복탄력성을 키우며, 삶의 기쁨을 찾는 법
셰릴 샌드버그.애덤 그랜트 지음, 안기순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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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스>의 저자 '애덤 그랜트'와 <린 인>의 저자 '셰릴 샌드버그'가 공동 집필한 이 책은 회복 탄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에서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는 표현으로도 많이 쓰이는데 즉, 회복 탄련성이란 인생의 역경과 고난을 겪은 후 얻게 되는 긍정적 성장을 말한다. 셰릴 샌드버그는 우연한 사고로 남편을 잃은 후, 겪었던 복잡한 감정들을 받아들이고 변화해간 과정을 서술하며 책을 시작한다. 읽다 보면 회복 탄력성 그 자체를 강조하기보단 그것을 얻기 위한 과정에 좀 더 집중하는 느낌이다.

누군가를 잃은 슬픔은 당사자와 그 주변 사람들에게도 큰 정신적 충격을 준다고 한다. 죽음에서 오는 상실감은 자책감과 후회를 동반한다. 그녀 역시 남편을 잃었을 때, 이 과정을 겪었다. 남편이 없는 미래는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했고 감정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르내렸다. 하루아침에 아빠가 사라진 아이들에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지 고민만 하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도움을 준 것은 가족과 친구 그리고 애덤 그랜트다. 그녀는 자신이 부적절한 감정에 휩싸일 때마다 애덤에게 조언을 구했다. 애덤은 그녀에게 느끼는 모든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표현하라고 한다. 울고 싶으면 울고, 화를 내고 싶으면 화를 내라고 한다. 그가 이렇게 이야기 한 이유는 '슬픔의 5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현실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상실에 직면한 사람은 현실을 부정하고 분노하다가 현실과 타협하고 우울해하는 네 단계를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현실을 수용한다. 하지만 요즈음 전문가들은 그러한 과정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다섯 가지 단계가 아니라, 정도가 오르내리는 ‘다섯 가지 상태’라고 본다. (p. 78)

 


 

분노, 부정, 타협, 우울, 수용의 감정은 순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격렬한 감정 상태일 때, 이성을 갖고 보자는 말은 이들에게 들리지 않는다. 이때 나의 감정이 당연한 것이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인정해 주는 주변 사람들의 지지가 중요함을 느꼈다. 실제로 셰릴 샌드버그는 자신 주변의 몇몇에게만 남편에 관한 이야기를 마음 편히 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심리학자들은 이들을 '오프너'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친구들과 달리 오프너는 질문을 많이 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상대방의 대답을 귀담아듣는다.
(P. 52)


 

그녀는 이런 사람들 덕분에 슬픔을 이겨내고 생활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내용을 아이들에게도 알려주어 죄책감을 가지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비슷한 사례들도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거기서도 그녀는 자신이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 역시 감정의 블랙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회복 탄력성은 자신에 대한 애정을 가져야 얻을 수 있는 산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연민은 중요했다.

흔히 자기 연민하면 나에 대한 애틋함, 안쓰러움을 갖는 부정적인 태도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는 상실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끊임없이 인식하도록 하는 과정이라 표현한다. 누군가 사망하게 되면 그동안 못해줬던 것, 쓴소리 했던 것, 사건 당시에 내가 없었다는 사실 등에 자책감을 갖게 되는데 이에 매몰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자기 연민이었다.


자기 연민은 흔히 자책감과 공존한다. 그렇다고 과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는 뜻이 아니라, 지나치게 자신을 몰아세워 스스로 미래를 망치지 않도록 한다는 뜻이다. 자기 연민은 나쁜 일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행위자인 사람이 나쁜 것은 아님을 인식하게 한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면”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P. 84~85)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경험은 슬프지만 그녀에겐 인생의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그녀는 회복해가며 어떻게 삶을 살아갈지,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현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도와주기 시작했다. 읽고 나니 내가 감정을 어떻게 지각하는지와 주변의 지지가 회복 탄력성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람으로 치유받는다. 내 옆의 빈자리도 사람으로 채워지고 우리는 그 관계 속에서 힘을 얻고 앞으로 나아간다. 사라져도 내 인생은 살아내야 한다. 슬픔으로 점쳐진 하루하루를 살기 보단 웃을 수 있는 하루가 길어지는 삶을 떠난 사람들도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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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좋은 날 - 농부라고 소문난 화가의 슬로 퀵퀵 농촌 라이프
강석문 지음 / 샘터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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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함이란 누군가의 희생과 땀의 결과라는 걸 또 깨닫는다


저자의 소소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농사는 참 어렵고도 힘든 일임을 알게 된다. 우리가 먹는 모든 농작물은 농부의 땀과 노력이 가득 베인 소중한 것들이다. 비단 농작물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성공이나 행복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저자의 농촌 라이프에서 알 수 있다. 화가이자 농부인 저자는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하는 농촌 생활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자신은 아버지의 쫄병이라 말하지만 그의 문장 하나하나에 농부로서의 가치관과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 무엇인지 본질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최대한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생활하고 날씨가 좋지 않으면 밖에 심어 놓은 채소들을 먼저 생각한다. 어렸을 때, '왜 저럴까?'라고 생각했던 아버지의 행동들을 지금에서야 이해한다. 꽤 부유한 집안에 속했다는 저자는 어렸을 때 시장에 나가 농작물을 판매하는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아버지는 그저 자신이 힘들게 일군 것들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들인 희구에게도 이런 삶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이 느껴진다. 비가 오면 전을 부쳐먹는 소소한 삶이 제목처럼 "딱 좋은 삶"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농촌 생활은 생각처럼 여유 있지는 않다. 농번기가 아니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릴 것 같지만, 농번기가 아닌 시기엔 잡초를 뽑고, 퇴비를 주고, 병충해에 대비해야 한다. 퇴비를 뿌린 날엔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의 여유는 냄새로 망쳐진다.

책에는 어린아이가 그린 듯한 익살스러운 그림이 함께 덧붙여 있다. 순수한 어린아이의 모습은 딱 그의 모습 같다. 상상과 같은 하루하루는 아니지만 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행복해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저자를 보며 느끼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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