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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사랑한 여자들 - 두려움과 편견을 넘어 나만의 길을 가는 용기에 대하여
이예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9월
평점 :

여성 서사가 풍성해졌다는 말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예전엔 남성 서사의 일부, 혹은 부속물처럼만 존재하던 여성 인물들이 이제는 중심에 선다. 오래전부터 여성 중심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단지 성별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선과 감정의 결이 달랐기 때문이다. 피해자에 머무르지 않는 인물들, 모성을 넘어선 보편적인 사랑, 욕망과 도전을 꺼리지 않는 주체적인 인물들. 그런 이야기들이 나를 지지해 주었다.
“사람에게 주어진 환경이라는 건 존재하지만 그 환경을 벗어나는 것 또한 가능하다고, 저는 믿어요.” - 모니카 인터뷰 中
<여자가 사랑한 여자들>은 바로 그런 서사를 살아낸 여성 15인의 인터뷰집이다. 배우, 작가, 운동선수, 음악가, 감독 등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편견을 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여성’이라는 굴레를 확장해온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지금의 편향 그 자체가 말하고 있는바를 짚고(정서경), 누군가는 살아 있음으로 겪게 되는 기쁨과 우울을 노래하며(김윤아), 누군가는 가감 없는 직언으로 오래된 관습에 균열을 낸다(김연경). 또 누군가는 스크린에서 ‘참지 않는 여자들’을 보여주고(이경미), ‘당연히’ 해야 한다고 여겨진 꾸밈 노동에서 벗어나며(심은경), 다채롭고 섬세한 관계를 이야기한다(최은영).
이들의 공통점은 슬기롭게 ‘자기 삶’을 뚫고 나간 용기다. 인터뷰는 그 사람의 말 너머, 삶의 결까지 보여준다. 화려한 이력 뒤에 숨어 있는 불안, 미숙함, 때론 부끄러움까지도 숨기지 않는다. 그런 진심이 담긴 말들은, 때론 나를 돌아보게 하고 작은 용기를 건넨다.
“지금보다도 약했던 내가 어떻게든 여기까지 와줘서,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 내게 희망은 없었지만 추진력은 있었지. 이 노력에 대해 배신은 하지 말자. 그리고 나아가자.” -최은영 인터뷰 中
이 책의 여성들은 자신들이 ‘흐름을 만들어낸 주역’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고, 그것이 지금 이 흐름과 맞닿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겸손함과 확신 사이의 균형이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건, 이들의 메시지와 작품 안에 자신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를 닮고 싶다는 감정은, 결국 그 사람이 얼마나 슬기롭게 자기 길을 걸어왔는지에 대한 감탄일 것이다. 이예지 작가의 인터뷰는 그런 매력을 깊이 있게 길어 올린다. 인터뷰이의 말들은 각자의 슬로건처럼 남아, 읽는 이를 오래 흔든다.
사람은 누구나 흔들릴 때가 있다. 몸이 허하면 보양식을 찾듯, 마음이 허할 땐 누군가의 진심 어린 말이 깊은 위로가 된다. <여자가 사랑한 여자들>은 그런 위로를 담은 책이다. 여성 서사의 힘, 나아가 인간 서사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그 속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