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세를 깬 자들 - 프랑크 제국과 중세의 운명을 바꾼 형제들의 전쟁
매슈 게이브리얼.데이비드 M. 페리 지음, 최파일 옮김 / 까치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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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맹세를 깬 자들 (매슈 게이브리얼, 데이비드 페리, 까치, 2026, 초판 1, 419)

 

-프랑크족 카롤루스 왕조의 연대기-

#프랑크족 #카롤루스 #피피누스 #루도비쿠스 #로타리우스 #베르나르두스 #매력적_역사서

 

프랑크 제국 카롤루스 왕조의 시작(궁재 카롤루스 마르텔루스와 단신왕 피피누스 3)부터 분열(베르됭 조약)에 이르는 역사를 담았다. 우리가 카롤루스 왕조 역사에 관해 가지고 있는 낭만적편견을 극복하도록 연대기적 역사를 넘어 당시 상황을 개연성 있게 그려낸 매우 매력적인 역사서다.

 

이 책은 말 그대로 8~9세기 프랑크 제국의 상황을 매우 생생하게 그려낸다.’ 마치 저자가 당대를 살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당대 또는 후대에 기록된 사료들 덕분이다. 저자는 당대 기록자의 상황과 의도를 파악하고 사료를 비판적으로 읽어낸다. 이 부분이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매력을 느끼도록 만든다. 게다가 저자는 사료로 남지 못한 당시 일반인들의 상황까지도 추론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현실판 왕좌의 게임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게, 9세기 퐁트누아 들판에 서서 마치 전투 상황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8416월을 향해 느릿느릿 나아가면서 양측은 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최대의 병력을 소집했다. 동트기 직전 그 이슬 젖은 6월 아침에, 그 병사들이 전선에 길게 늘어선 모습이 그려진다. …… 퐁트누아 주변 지형은 대체로 평평하고, 그다지 울창하지 않은 숲과 들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 5월과 6월에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가 들판을 뒤덮으며 새벽빛에 아른거렸다. 꽃들은 곧 짓밟혔다.”(8. 퐁트누아, 266~7)

 

또한, 저자는 프랑크 제국의 역사가 카롤루스 가문만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집단과 우연, 상황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복합물임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가 역사를 단편적으로 보고 암기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이 책은 분명 카롤루스 왕조의 이야기이지만, 그들 주변에는 이슬람 세력, 바이킹과 비잔티움 제국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카롤루스 내전 동안 이 책의 시야가 프랑스의 한 들판, 라인란트의 어느 도강 지점, 제단, 왕좌, 단 하나의 문서로 좁혀질 때조차도 그것만이 유일한 줄거리는 아니었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결국에는 다른 왕국들, 즉 프랑크족의 왕국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맹세하는 자들, 338~9)

 

 

-과거에 관한 두 질문-

#과거 #기억 #기념

 

우리는 과거를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기념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필로그, 377)

 

퐁트누아 언덕에는 회색 석조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9세기 퐁트누아 전투를 기리는 19세기의 기념물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9세기 퐁트누아 전투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살핀다. 이 오벨리스크는 19세기 근대인들이 기념물을 통해 과거에 대한 특정한 이해를 대중의 의식에 굳히려는 시도라고 본다.(378) 실상은 그러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러한 근대적 시도로 만들어진 역사는 9세기 프랑크 사람들이 고민하고 토론하며 치열하게 내렸던 선택과 합의를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역사를 정해진 결과로 보고 과거 사람들은 그저 정해진 경로를 따라 수동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 존재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 모든 경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선택이 이루어졌는지, 어떤 행운과 불운이 있었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그 갈림길들 중에서 어느 하나에서라도 결정이 단 하나만 달랐어도 길은 아주 다른 곳으로 이어졌을지 모른다.”(에필로그, 385)

 

841625, 퐁트누아 전투 이후 프랑크 제국은 다시 통합될 수 없었고, 우리는 그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9세기를 살았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심지어 19세기 나폴레옹조차 프랑크 제국의 통합을 꿈꿨던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9세기 프랑크 사람들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선택을 했다. 내전 이후 분열을 해결하고 프랑크 제국의 통일이라는 이상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물론 그것이 결론적으로는 실패하였더라도 말이다.

 

 

 

-저자가 사료를 대하는 자세-261

#중세인 #사료 #전쟁

 

이 책에서 참고해온 모든 사료와 마찬가지로 대단히 당파적이며 사실을 기록하기보다는 우주론적이거나 신학적인 의미의 더 큰 진실을 드러내는 데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래도 궁정인과 권리 주장자들의 속셈에 휘둘리지 않도록 그 사료들을 서로 대조해가며 읽어보고 최대한 정보를 뽑아내보자.”(퐁트누아, 261)

이는 사료가 무엇인가를 마지못해 드러내는 순간들, 진실이 양피지(문서)에 비집고 들어오는 순간들의 하나일 수도 있다.”(퐁트누아, 275)

 

저자가 사료를 대하는 자세가 좋다. 아마 나도 저자와 비슷한 사람이라 그런 듯하다. 역사를 좋아하고 공부하고 진실을 찾아 나서는 과정 자체를 즐기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가 책 곳곳에서 사료를 대하는 자세를 표현한 부분에서 큰 매력을 느꼈다. 역사를 이런 방식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 공부에서 중요한 것은 현대인의 편견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점도 잘 보여준다. 나는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역사를 결정론적으로 바라보면서 과거인들을 수동적으로 바라보거나, 선형적인 역사관을 바탕으로 역사가 일직선상으로 발전하는 단계를 거쳤다고 보는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대인의 주체성과 선택을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실상에 가장 가까이갈 수 있는 역사 연구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근대 이전의 유럽인들이 오늘날 우리보다 단순히 더 미개하고, 사람을 더 잘 죽였다고 상상해서는 안 된다. …… 중세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현대인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대지가 공포에 몸서리치다. 291)

 

우리는 일반 병사들이 고향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원정 중에, 선술집에서, 혹은 장례식에서 이야기되는 사연들을 들을 수 없다. ……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를 들려줄 사료가 없더라도, 우리에게는 적어도 두오다의 편지가 있다.”(비통한 제국과 비통한 어머니들, 360)

 

 

-이 책의 매력-

#보편성 #특수성 #미시사

 

최고 권력의 지위가 불완전할 때, 그들은 측근(側近, 가까운 사람들)’에 의존한다. 이것은 세계 어느 역사에서나 나타나는 매우 보편적인 모습이다. 카롤루스 마그누스 이래로 프랑크 왕국에서 나타난 영토 분할의 모습도 다른 제국과 매우 유사하다. 물론 한국사에서는 이런 측근 정치나 영토 분할이 잘 나타나지 않을뿐더러 보편적인 상황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만큼 한반도가 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고려가 몽골 제국의 일원으로 제국 정치에 깊이 간여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에는 고려에서도 측근 정치가, 영토 분할을 둘러싼 고려왕과 심양왕의 갈등이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이런 역사적 보편성이 서양에서도 나타났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조금 낯설었던 부분, 프랑크 제국에서만 나타난 특수성은 종교 부분이다.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프랑크 제국과 비잔티움 제국이 교회와의 관계 설정을 두고 경쟁한 부분이나, 로마 주교가 라벤나 주교와 경쟁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은 낯설었다. 또한, 프랑크 제국이 라틴어와 법령, 기독교로 구성된 문화를 바탕으로 유럽 전역에 식자층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다는 점도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아니 내가 몰랐던 부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여성, 일반 백성, 이민족의 시선을 담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프랑크 제국을 움직인 사람들은 물론 거의 카롤루스 왕조의 남자들이다. 하지만 그들과 혼인한 여성들도 궁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카롤루스 남자들처럼 여성들도 그들의 조상 이름을 물려받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카롤루스 왕조의 왕위를 계승하는 남자와 여자들은 조상들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는데, 이 덕분에 카롤루스 왕조의 주요 인물들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사람들은 어렵지 않았겠지만, 후대 사람들이 볼 때 그 수많은 카롤루스와 피피누스와 루도비쿠스와 로타리우스들을 어떻게 쉽게 구분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사료가 남아 있지 않은 당시 백성들의 삶을 현대의 상황에 빗대어 추론한 부분도 매력적이다. 저자는 지형과 도로, 계절과 상황을 이용하여 그곳에 살았던 사람의 상황을 묘사하거나,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유골을 통해 당시의 참상을 알리는 등의 방법을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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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천재 고려 - 최강대국에 맞선 작은 나라의 생존 전략
이익주 지음 / 김영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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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외교천재 고려 (이익주, 김영사, 2026, 11, 296)

 

-소통하는 역사학자-

#이익주교수

 

처음 이익주 교수를 알게 된 것은 역사저널 그날이라는 역사 방송을 통해서다. 가장 신선했던 것은 그가 고려사 전공자라는 점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전형적인 학자의 모습을 하고, 조근조근 설명하면서도 상대를 설득하는 모습이었다. 역사학자가 자기 연구 분야를 방송에 가지고 나와 대중과 소통하려 노력하는 모습에 감명받았다. 많은 역사학자가 철저히 자기만의 연구 성과 속에 갇혀 살면서 대중이 보기에 무의미한 논쟁으로 시간을 보내며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려 들기 때문이다. 이익주 교수는 역사 연구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사람이라는 신뢰가 있었다. 이 책 또한 그런 신뢰를 재확인하기에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채로운 고려-

#고려사 #외교

 

고려사는 참 다채롭다. 아마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다가설수록 숨겨져 있던 매력을 발산하는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학생에게 고려사는 지옥이다. ‘고려라는 이름을 제외하면 모든 상황이 다 불확실하다. 고정된 것 없이 계속해서 변화한다. 심지어 시기에 따라 지배층도 계속해서 달라진다. 다채로움은 가장 자연에 가까운 모습이기에 아름답지만, 학생이 다가서거나 이해하기엔 어렵다. 마치 단순한 패턴이 반복되어 만들어진 복잡한 그림과도 같다. 아마도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가 아닐까. 고려는 쉽게 다가서기 어렵지만, 가장 현실에 가까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고려사 중에서도 외교적으로 중요한 장면을 9개 꼽는다. 1부 고려 전기 다원 외교의 네 장면과 2부 고려 후기 일원 외교의 다섯 장면이다.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늘 강대국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강대국이 하나인지 또는 다수인지가 달라질 뿐이었다. 고려는 그 모든 상황을 경험한 국가다. 그래서 고려의 외교적 경험이 우리에게 필요한 외교적 전범(典範)의 총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외교에서 가장 필요한 것으로 명분보다는 실리를, 감정보다는 전략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고려의 외교적 경험을 설명하며 국가적 이익을 기준으로 각 장면을 평가한다.

 

 

-새로운 관점-

#국제관계 #외교 #전쟁

 

사대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긴다는 뜻의 이소사대(以小事大)에서 비롯된 말로,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살핀다는 뜻의 자소(字小), 즉 이대자소(以大字小)와 짝을 이룹니다.”(23)

 

한국사를 중심으로 역사를 학습할 때 가장 큰 한계는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한국을 기준으로 대외(對外)관계를 바라보게 된다면 한국사 내부에만 주목하게 되어 관계(關係)를 놓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자는 국제(國際) 관계, 즉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로 외교를 학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명분보다는 실리를, 감정보다는 전략을 우선 선택하려면 우리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를 중심으로 한국사를 학습할 때 발생하는 한계를 사례를 들어 설명하면서 이것이 오해였음을 밝히고 있다.

 

결국 고려의 독자 연호는 책봉-조공 관계가 단절된 시기에 일시적으로 사용한 것이며, 이는 고려가 황제국을 자처했다기보다 오히려 책봉-조공 질서에 충실하게 대응한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41)

 

또한, 저자는 고려의 전쟁을 외교적 관점에서 재평가한다. 저자는 전쟁을 외교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한다.

 

전쟁은 외교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죠.”(61)

 

저자는 무조건 전쟁을 피해야 한다거나, 전쟁을 하려는 의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저자는 고려 최씨 정권의 대몽항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대항해 자신을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으로 전쟁과 협상을 병행하며 장기전을 벌이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최씨 정권의 연장이나 민중의 피해를 기준으로만 보는 기존의 시각과 다른 평가이다. 다만, 장기전이 더 이상 의미를 갖기 어려운 순간이 왔을 때, 전쟁을 마치고 외교적 해법을 찾아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라고 평가한다. 강화 천도와 개경 환도의 순간은 최씨 정권의 운명에 의해 좌지우지된 것이 아니라 전쟁외교라는 국가적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매우 흥미로운 해석이다.

 

 

-성공한 외교, 실패한 외교-

#세조구제 #공민왕 #반원개혁

 

고려의 외교적 경험은 모두 성공한 것이 아니었다. 실패한 장면만큼 성공한 장면도 있었을 뿐이다.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교훈을 얻는 방법을 알게 되는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잘 드러난다. 우리가 잘 아는 서희, 이자겸, 공민왕 등 고려의 인물은 당시 고려 내부적 사정과 외부의 상황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외교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다보니 외교적으로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모습과 다른 색다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고려 외교사에서 가장 빛나는 신의 한수는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대체로 거란의 침입에 맞서 강동 6주를 확보한 서희의 담판에 주목한다. 하지만 저자는 훗날 고려 원종으로 즉위하는 태자의 여정에 더 주목한다. 고려가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국가 멸망 직전), 그리고 몽골 뭉케 칸의 죽음과 쿠빌라이의 후계 다툼 구도 속에서 고려 태자는 국가를 위한 외교적 선택을 한다. 이른바 세조구제라는 결과로 이어진 그 장면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몽골 제국에 대항하여 그 국가의 형태를 지킨 경우는 고려가 유일하다. 그 엄청난 외교적 성과를 가져온 고려 태자의 외교는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을 뿐, 매우 어려운 선택이었다는 점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철저한 외교적 실패는 무엇이었을까. 역시나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동북 9성의 포기와 금에 대한 사대 요구를 수용한 장면을 들지만 저자는 다른 장면에 주목한다. 바로 공민왕의 반원 개혁이다. 공민왕의 개혁이 원 간섭기를 끝내고 몽골 제국의 붕괴에 큰 영향을 끼친 점은 인정하지만, 감정이 개입된 정책이었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원과 명이 교체되는 시기에 고려가 전략적 이점을 얻지 못하고 반원 감정에 치우쳤기에, 또한 공민왕이 키워낸 신진 사대부가 실리보다는 명분에 집착했기 때문에 고려가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

 

원과 명이 대립하는 상황을 잘 활용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고려는 그 기회를 너무나 쉽게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 여기에 신진 사대부의 가치 우선 외교(명분)가 더해져 실리 외교에서 더 멀어졌고, 그것이 결국 멸망의 한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277)

 

 

 

한반도를 중심으로, 우리를 중심으로 학습하는 한국사를 넘어 국제 관계를 중심으로 바라본 고려사는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역사책 속에서 암기의 대상으로만 남아 있었던 인물과 사건이 현실 세계로 넘어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현재 우리 주변을 둘러싼 외교적 선택지를 이미 1,000년 전 고려인도 경험했고, 그것을 세심하게 판단했으며, 실제 외교적 행동으로 실천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고려의 경험을 통해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배울 차례다. 작은 강국으로서 대한민국은 고려만큼이나 훌륭한 외교적 선택으로 국가를 지켜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우리가 왜 명분보다 실리를, 감정보다 전략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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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 - 제13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김미수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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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마중 (김미수, 은행나무, 2025, 11, 490)_1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소설 속에 소설이 들었다. 남자 주인공 종태의 수기와 편지, 여자 주인공 해림의 증언을 바탕으로 또 다른 주인공 지유가 소설을 썼다.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 3부의 주인공은 지유다. 지유가 종태와 해림의 이야기로 쓴 소설이 2부로 가장 큰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소설을 쓰는 이 독특한 구조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가능하다면 저는 이 소설이 지금 MZ세대인 청춘과 일제 말기의 청춘이 만나는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진심 어린 연대와 위로를 주고받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해봅니다.”(488, 작가의 말)

 

MZ세대인 지유는 일제 말기의 청춘 종태, 이옥, 해림, 순이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들의 삶을 위로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그녀가 쓴 소설만으로는 쉽지 않아 보였다. 종태는 수기와 편지만을 남기고 사라졌고, 이옥은 세상을 등지고 숨어버렸다. 해림은 위안부 피해를 직접 증언했지만, 그 속마음을 지유에게 모두 털어놓지 못했다. 게다가 장제 징용이나 전쟁, 위안부 생활 같은 끔찍한 삶을 우리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지유는 소설을 쓴다. 종태 할아버지와 해림 할머니의 삶을 소설로 남긴다. 그건 해림 할머니의 간절한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서다.

 

우릴 다시 살게 해달란 말이다.”(66, 1부 끝날 수 없는 것이 남아 있다.)

우리 피해자를 위해서 싸워줘야 해. 젊은이들이 나서줘야 해.”(443, 3부 빛이 있다면)

 

젊은이들이 나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피해자를 다시 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가해자와 피해자-

 

이 소설은 일본인과 조선인을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지 않고, 당시에도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는 전형적인 가해자 일본인에 빌붙는 조선인 유토 순사와 함께 일본인이면서도 조선인을 도와 목숨까지 버리는 쇼타를 보여준다. 친일파는 매우 익숙한 존재이지만, 조선인을 위해 양심적으로 행동한 일본인은 흔히 볼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가해와 피해를 일률적으로 나눌 수 없다는 인식은 소설 밖 소설에서도 등장한다. 위안부 피해를 증언한 해림 할머니는 전형적인 피해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고향 친구인 이옥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고, 위안부 할머니를 돕는 조직과도 갈등한다. 그녀가 귀국 후 입양해 키운 자녀들에게도 큰 상처를 줄 수밖에 없었다. 가해와 피해는 동시에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가해자는 사죄해야 하고, 피해자는 용서할 수 있다는 인식에도 의문을 던진다. 조선인 유타 순사의 자손은 징용 피해자 종태의 손녀 지유에게 사죄해야 할까. 일본인에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은 남양 군도로 향하는 도중 미군의 공격을 받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미국은 한국인에게 사죄해야 하는가. 남양 군도 전쟁터에서 만난 일본군과 미군, 조선인 군속은 서로에게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 이런 부분은 정말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작가는 이 부분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궁금했다. 가해와 피해를 분명히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용서와 사죄는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미군과 일본 순사와 징용 피해자의 후손이 만나는 자리를 소설 속에 넣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옳은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과거에 적이었던 자의 자손을 대면하면 어떻게 하라고 말할까요? 용서할 수 없다와 용서해라 둘 중 어느 것일까요. 어쩌면 용서란 말을 꺼내는 것도 싫어할 수 있겠죠.(469, 에필로그)

 

 

-해림 할머니, 마중-

 

위안부 피해자 해림 할머니의 삶을 보면서 영화 아이 캔 스피크(2017)’의 나문희 배우가 떠올랐다. 평생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상처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이 영화를 통해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위안부 피해자는 세상으로부터 무려 세 차례의 가해를 받게 되는데, 1차는 위안부 당시의 고통이고, 2차는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하는 고통이었다. 특히 남성 중심 문화에서 순결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회적 낙인이 대표적인 2차 가해였다. 이 얼마나 지질한 가해인가. 게다가 3차 가해는 위안부 피해자의 주변 지인과 가족한테서 나왔다. 해림 할머니도 아들과 관계를 끊어야만 했다. 이 엄청난 가해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세상에 목소리를 내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녀는 얼마나 큰 결심을 해야만 했을까.

 

해림 할머니는 자신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어떤 암울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었기에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그 의미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일을 겪어도 저 나무는, 잘리지만 않으면 상수리나무야. 누가 무슨 짓을 해도, 저 나무는 상수리나무라는 걸 잊지 말아.”(423, 3부 빛이 있다면)

 

해림 할머니는 어머니의 말씀을 잊지 않는다. 그렇게 그녀는 꿋꿋하게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이들을 마중하러 간 것이다. 사라져버린 종태를, 숨어버린 이옥을, 그리고 기다림 끝에 세상을 떠난 순이를 마중 나갈 수 있었다.

 

해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나 마중간다였다고 한다.”(459, 3부 빛이 있다면)

 

 

--

 

이 소설 곳곳에는 이 등장한다. 빛이란 말을 보고는 광복을 떠올렸다. 다시 찾은 빛. 작가는 빛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자 한 것일까.

 

“(종태가 쓴) 수기의 제목은 빛이 되어였고, 내용에도 이란 단어가 반복되더군요.”(26, 1부 끝날 수 없는 것이 남아 있다.)

 

나는 왜 일본의 패망 이후 찾아온 해방을 으로 표현했을지 매우 궁금했다. 그런데 그 의미를 이 소설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 조선인의 삶이 매우 참혹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는 것처럼, 짙은 어둠은 빛에 더욱 강렬한 의미를 담아냈던 것이다.

 

과거의 참혹한 현장을 진술하다가도 불쑥 꺼내놓는, 추앙에 가까운 빛이란 단어에 번번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33, 1부 끝날 수 없는 것이 남아 있다.)

 

빛이 닿는 곳마다 따뜻해지고 환해지고 음지를 양지로 만들고 뭐든 변하게 만들지. 가슴 벅차고 대단한 일이지 않느냐?”(278, 2부 전쟁터로 간 사랑)

 

빛은 참혹함을 끝낼 수 있는 위대한 존재였다. 우리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박훈장은 종태에게 그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종태와 해림은 빛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종태의 꿈과 해림의 꿈은 서로 달랐지만, 고통과 아픔을 끝내고 용서와 사죄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 점에서는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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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시의 새 - 2025 박화성소설상 수상작
윤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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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0시의 새 (윤신우, 문학과 지성사, 2025, 320)

뭘 모르는지도 모른다는 것.”(78)

 

뭔가 거대한 바람을 맞고 있는 듯, 거센 물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듯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작가가 상상한 거대한 세계를 이해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2014)의 주인공 쿠퍼처럼 끝없이 이어진 도서관 속을 헤엄쳐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작가가 창조해낸 세상의 끝은 어디일까. 이야기는 우주의 생성과 소멸부터 시작해 소행성의 충돌과 퉁구스카 대폭발을 지나 요정굴뚝새의 독특한 진화와 아날로그 시곗바늘에 이르기까지, 어지럽게 널려 있는 소재들을 이리저리 이어 나간다. 전혀 연관이 없는 것들이 우연히 나열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은 모두 한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필연으로 엮여 있었다. 이 거대한 우주의 흐름을 창조해낸 작가는 큰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진율과 차수지-

 

주요 등장인물은 진율과 차수지, 두 여성이다. 진율은 천문 연구원이고, 차수지는 기자다. 진율은 우주의 근원을 연구하는 천문학자이기에 주인공으로 선택되었다고 생각했다. 우주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대상이니까. 그래서 이 소설 속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알 수 없는 사실들에 대한 충분한 개연성을 제공해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날은 어떤 경계 같은 게 흐릿해지는 것 같아요.”(308)

 

한편, 차수지는 저자의 기자 경험이 녹아든 인물로, 선과 악을 가려낼 수 있는 경험을 가진 직업이기에 주인공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우주의 생성과 소멸,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속에서는 그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는 거의 내내 큰 비가 내린다. 뿌옇게 시야가 흐려질 정도로 비가 내리는 순간에는 앞뒤를 분간할 수 없으니까. 우주의 질서, 거대한 세계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인지 능력은 보잘것없는 수준일 테니까. 연인 도준의 죽음조차 받아들일 수 없었던 차수지는 이 경계의 모호함을 두려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주인공 진율이 가진 불꽃, 열쇠를 일깨워주는 촉매자역할에 충실한다.

 

그런데 왜 주요 인물이 모두 여성일까 궁금했다. 남자인 도준은 차수지를 각성시키는 역할로 소멸하고, 다른 차원의 파수꾼이나 그림자는 모두 남자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신의 존재에 가장 가까운 새는 알을 낳고 품는 암컷이다. 그 새와 교감하는 진율도 여성이고, 알을 지키려는 차수지도 여성이다. 파수꾼이나 그림자는 두 여성에게서 미묘한 파동의 변화를 알아본다. 두 여성도 본능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직감한다. 아마도 여성이 남성보다 작은 틈에, 티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나는 두 인물, 진율과 차수지가 서로 만나기 위해 진동하는 밸런스 볼 같다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크게 진동하지만, 결국은 시작점이면서 끝점이기도 한, 중간에서 만나게 될 수밖에 없는 두 진자같이 보였다. 그들의 만남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필연적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진자가 멈추게 될 것이니까. 이 소설이 진율과 차수지의 이야기를 번갈아 제시하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꿈과 무의식-

 

진율은 어렸을 때 어떤 존재와의 만남을 통해 꿈을 잃는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무의식의 모호함을 불안해하고, 정확히 인식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대상에서 안정감을 찾는다. 철저히 의식적인 인간으로만 살아가려 한다.

 

삶의 양식이든 생활이든 나 자신의 육체와 정신이든, 모든 걸 직접 제어할 수 있다는 건 내게 꽤 중요한 의미였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고 저렇게 하면 저렇게 되는 예측 가능한 통제 말이다.”(82)

 

진율은 우연히 잠을 자던 도중 죽어버린 도준의 이야기를 듣고는 아예 잠을 잃어버린다. 잠을 잃어버린 그녀는 완전히 무의식으로부터 단절된 상태다. 육체는 피곤함으로 피폐해져 가지만 정신만은 더욱 또렷해지는 것을 느낀다. 진율의 특별함을 발견한 다른 차원의 존재들은 그녀의 잠과 꿈과 무의식을 앗아가 버린다. 아마도 꿈이, 무의식이 우리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되어서일 것이다.

 

육체가 삐그덕대는 게 느껴졌다. …… 이해가 안 가는 건 정신 쪽이었다. 날이 갈수록 가중되는 육체의 고통과 달리 혼탁하던 정신은 점점 한겨울 호수처럼 청명해지는 것이었다.”(36)

 

그런데 사실 육체와 정신이, 꿈과 현실이 명확히 구분될 수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의식과 무의식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 삶의 모습을 온전히 의식적으로만 계획하고 결정하며 수행한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 수 없는 호기심에 이끌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 당도할 때가 있다. 평소에는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은 행위도 가끔씩 한다. 마치 차수지가 평생을 먹지 않던 옥수수를 무려 두 개나 구입했던 것처럼 말이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거나, 자유의지가 마치 의식적 영역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매우 오만한 판단일 것이다.

 

작가는 우리의 우주를 도서관에 빗댄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도서관에 들어가, 긴 서가에 꽂힌 수많은 책 중 하나를 펼쳐본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책에 적힌 글씨들을 읽기 시작할 것이다. 마치 모든 것이 글자(의식)로만 이루어진 것처럼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책은 대부분 여백(무의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에 글자만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한 글자도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여백이 있기에 글자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도 이렇지 않을까. 여백이 있기에, 우연이 있기에, 낭만이 있는 것은 아닐까.

 

 

-뻐꾸기 시계의 뻐꾸기-

 

진율은 새와 교감한다. 새는 꿈을 통해서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 그들의, 그 이전 주인의 기억을 보여준다. 그리고 새는 찾아와 전화벨 소리 같은 울음소리를 낸다. 그것도 정확히 열한 번. 처음에는 숫자 11이 무엇을 뜻하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진율이 자기 안의 불꽃을 되찾자 새는 정확히 열두 번 울음소리를 낸다. 새는 시간을 알리는 존재였다. 마치 뻐꾸기 시계의 뻐꾸기처럼. 작가는 시간을 알리러 나오는 뻐꾸기를 소설 속 신과 같은 존재로 상상해낸다.

 

시곗바늘 두 개 모두 숫자 12를 가리킨다. 12시일까 0시일까. 작가는 경계를 구분할 수 없이 정확히 일치하는 지점에서 우주의 생성과 소멸을 상상해낸다. 1211 다음으로의 진화를 의미하지만, 0은 모든 것이 소멸한 원점으로의 회귀다. 뻐꾸기는 울음소리를 열두 번 낼 것인가, 아니면 소리를 내지 않을 것인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누구일까. 그것은 이 소설에서 가장 열등한 존재로 규정된 티끌, 바로 인간이었다.

 

한낱 인간한테, 그것도 나 같은 평범한 인간한테 대체 뭘 바라는 거야. …… 이 거대 우주에 존재한 억겁의 시간 동안 내 완벽한 설계와 흐름을 꽤 자주,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돌려버린 건 번번이 너희였거든. 고작 45억 년밖에 안 된 이 어린 세계, 무지하기 짝이 없는 너희, 바로 너희의 불꽃이 말이야.”(276)

 

인간은 뻐꾸기 시계의 뻐꾸기였다. 자신들이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 무지한 존재. 단지 시간을 알리기만 하는 하찮은 티끌 같은 존재. 하지만 결국 우주의 시간이 12시인지, 0시인지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었다.

 

완벽한 톱니에 걸린 티끌 하나가 우주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두고 봅시다.”(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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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유럽 왕국사 - 서유럽과 러시아 사이, 들끓는 민족들의 땅
마틴 래디 지음, 박수철 옮김 / 까치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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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중앙유럽 왕국사 (마틴 래디, 까치, 2025, 초판 1)

 

중앙유럽(Central Europe)’은 낯선 용어다. 대체로 서유럽, 동유럽으로 구분된 서양사에서는 서유럽이 중심이고, 동유럽은 주변에 불과했다. 기존의 동유럽은 로마의 미개척지이고, 야만인의 무대이며, 서유럽 도시의 세련된 문화를 찾을 수 없는 낙후된 농촌이었다. 하지만 중앙유럽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저자는 중앙유럽(동유럽)새로운 역사(A New History of Central Eutope)’를 이 책에 담아냈다. 저자는 서유럽에 종속된 동유럽이 아닌, 서유럽과 다른중앙유럽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2,000년 간 역사를 풀어낸다.

 

또한, 저자는 중앙유럽을 단순한 지리적 개념이 아닌 여러 민족이 뒤섞여 상호 작용한 복합적인 공간으로 본다. 그래서 저자가 그려내는 중앙유럽은 폴란드, 헝가리 등 몇몇 동유럽 국가를 넘어 스위스와 우크라이나까지 지리적으로 확대된다. 부제 그대로 서유럽과 러시아 사이에 펼쳐진 드넓은 지역을 모두 중앙유럽의 무대로 보고, 이곳에서 살았던, 또는 이곳으로 이주하거나 떠나간 사람들의 역동적인 관계를 들끓는모습으로 그려낸다. 서양사 수업에서 단편적으로 암기했던 중요한 사건들이 그 지역에 있었던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2022)󰡕에 이어 이번 󰡔중앙유럽 왕국사(2025)󰡕도 매우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마틴 래디는 역시 믿고 읽을 수 있는 저자다.

 

 

-34개의 주요 장면으로 본 2,000년 중앙유럽-

 

저자는 중앙유럽의 역사를 총 34개의 장으로 나눈다. 교과서처럼 주요 왕조나 사건, 시대를 기준으로 나눈 것이 아니라 저자가 뽑은 ‘(역사적) 주요 장면으로 나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마치 34장의 아름다운 그림을 펼쳐놓고 그것의 의미를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재미난 이야기 같다. 34장의 그림을 상상하면서 읽다 보면, 어느새 하나의 장이 순식간에 끝난다. 분량이 딱 지루하지 않고 좋다. 이런 식으로 34개의 모습을 상상하다 보면 어느새 책의 마지막 부분에 도달한다. 그렇게 저자는 중앙유럽의 역사를 짤막하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낸다.

 

서론에서 유럽인의 상상 속 존재인 개 인간이 나온다. 삽화가 실려있지 않아서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옛사람들은 개 인간을 어떤 모습으로 그려냈을까 궁금해하던 중이었는데, 그들이 상상에서 튀어나와 현실에서 중앙유럽을 휩쓸었다. 역사 속 유럽을 두려움에 떨게 한 훈족, 몽골-타타르족 같은 외부 침입자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 것이다. 미지의 존재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이 이런 그림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서유럽과 다른중앙유럽-

 

저자는 중앙유럽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종종 서유럽과 비교’, ‘대조하는 방법을 쓴다. 중앙유럽이 서유럽과 다른 모습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힐 때도 마찬가지다. 이는 우리가 잘 아는 서유럽의 모습을 근간으로 중앙유럽에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배려라고 생각했다.

 

중앙유럽의 역사적 경험은 서유럽과 다르다. 그 경험의 추세는 대체로 서유럽에서 벌어진 일의 상당 부분을 그대로 흉내 내는 듯 하지만, 더 자세히 살펴보면 서유럽의 경우보다 더 힘차게 고동치거나, 마치 뒤틀린 거울에 비치는 모습처럼 다른 특성을 띠고 있다.”(19, 서론)

 

중앙유럽을 서유럽에 빗대 설명하면서도 중앙유럽이 독자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서유럽에 의존하는 모습이 아닌, 중앙유럽이 독자적으로 역사를 이끌어가는 동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친숙함과 낯섦이 뒤섞인 중앙유럽(19)’이라는 표현은 그런 저자의 생각을 잘 담고 있다.

 

 

-크고 작은 보석의 모음, 중앙유럽-

 

책 옆에 메모지를 붙인다. 저자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중요한 사건, 흥미로운 장면, 주요 등장인물, 예술 작품을 옮겨 적는다. 메모한 내용을 보며 하나씩 작은 구슬과 큰 구슬을 꿰어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생소한 이름이지만 저자가 당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작은 구슬과 역사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인 큰 구슬을 하나씩 번갈아 꿰어두면 뭔가 근사한 보석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다. 중앙유럽의 지명, 인명이 모두 내게는 낯설다 보니 이것들을 차분하게 꿰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노력이 모이고 나면 결국엔 뭔가 더 선명한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책에 있는 지도와 역사 지도와 구글 현재 지도를 펼쳐두고 지명들을 하나씩 표기해본다.

 

모자이크처럼 색색의 조각으로 구성된 중앙유럽의 모습을 지도나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겠지만, 그것을 내가 정리해볼 수 있다면 얼마나 뿌듯할지 상상해본다.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국가에서, 단일한 정체성을 공유한 민족의 후예로 살아온 내게는 이토록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역사를 읽어본 경험이 없어서다. 한국사에서 신라의 삼국 통일을 강조하고, 동아시아사에서 중원 왕조의 중국 통일을 가르치기만 했기에, 중앙유럽의 혼란스러움이 오히려 나를 매료시켰다. 선명한 답이 없이 끊임없이 흔들리고 부서졌기에 중앙유럽은 오히려 서유럽과 다른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고, 세계사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다.


중앙유럽의 역사는 낯설었지만, 그 안에 살았던 사람들은 의외로 익숙했다. 드라큘라나 프랑켄슈타인을 제외하더라도 중앙유럽의 역사를 움직였던 인물들은 웹툰이나 소설, 게임에서 자주 등장했다. 내가 가끔 하는 게임에 최근 새로운 캐릭터들이 많이 추가되었는데, 그들이 대부분 중앙유럽 인물들이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또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소재가 중앙유럽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다양한 인종, 민족, 종교와 정체성들이 공존하는 중앙유럽은 천재적 이야기꾼에게 무궁무진한 소재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그만큼 중앙유럽의 역사는 우리 삶을 다채롭게 만들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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