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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 - 제13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김미수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1월
평점 :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마중 (김미수, 은행나무, 2025, 1판 1쇄, 490쪽)_제1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소설 속에 소설이 들었다. 남자 주인공 종태의 수기와 편지, 여자 주인공 해림의 증언을 바탕으로 또 다른 주인공 지유가 소설을 썼다.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3부의 주인공은 지유다. 지유가 종태와 해림의 이야기로 쓴 소설이 2부로 가장 큰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소설을 쓰는 이 독특한 구조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가능하다면 저는 이 소설이 지금 MZ세대인 청춘과 일제 말기의 청춘이 만나는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진심 어린 연대와 위로를 주고받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해봅니다.”(488쪽, 작가의 말)
MZ세대인 지유는 일제 말기의 청춘 종태, 이옥, 해림, 순이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들의 삶을 위로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그녀가 쓴 소설만으로는 쉽지 않아 보였다. 종태는 수기와 편지만을 남기고 사라졌고, 이옥은 세상을 등지고 숨어버렸다. 해림은 위안부 피해를 직접 증언했지만, 그 속마음을 지유에게 모두 털어놓지 못했다. 게다가 장제 징용이나 전쟁, 위안부 생활 같은 끔찍한 삶을 우리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지유는 소설을 쓴다. 종태 할아버지와 해림 할머니의 삶을 소설로 남긴다. 그건 해림 할머니의 간절한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서다.
“우릴 다시 살게 해달란 말이다.”(66쪽, 1부 끝날 수 없는 것이 남아 있다.)
“우리 피해자를 위해서 싸워줘야 해. 젊은이들이 나서줘야 해.”(443쪽, 3부 빛이 있다면)
젊은이들이 나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피해자를 다시 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가해자와 피해자-
이 소설은 일본인과 조선인을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지 않고, 당시에도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는 전형적인 가해자 일본인에 빌붙는 조선인 유토 순사와 함께 일본인이면서도 조선인을 도와 목숨까지 버리는 쇼타를 보여준다. 친일파는 매우 익숙한 존재이지만, 조선인을 위해 양심적으로 행동한 일본인은 흔히 볼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가해와 피해를 일률적으로 나눌 수 없다는 인식은 소설 밖 소설에서도 등장한다. 위안부 피해를 증언한 해림 할머니는 전형적인 피해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고향 친구인 이옥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고, 위안부 할머니를 돕는 조직과도 갈등한다. 그녀가 귀국 후 입양해 키운 자녀들에게도 큰 상처를 줄 수밖에 없었다. 가해와 피해는 동시에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가해자는 사죄해야 하고, 피해자는 용서할 수 있다는 인식에도 의문을 던진다. 조선인 유타 순사의 자손은 징용 피해자 종태의 손녀 지유에게 사죄해야 할까. 일본인에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은 남양 군도로 향하는 도중 미군의 공격을 받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미국은 한국인에게 사죄해야 하는가. 남양 군도 전쟁터에서 만난 일본군과 미군, 조선인 군속은 서로에게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 이런 부분은 정말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작가는 이 부분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궁금했다. 가해와 피해를 분명히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용서와 사죄는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미군과 일본 순사와 징용 피해자의 후손이 만나는 자리를 소설 속에 넣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옳은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과거에 적이었던 자의 자손을 대면하면 어떻게 하라고 말할까요? 용서할 수 없다와 용서해라 둘 중 어느 것일까요. 어쩌면 용서란 말을 꺼내는 것도 싫어할 수 있겠죠.(469쪽, 에필로그)
-해림 할머니, 마중-
위안부 피해자 해림 할머니의 삶을 보면서 영화 ‘아이 캔 스피크(2017)’의 나문희 배우가 떠올랐다. 평생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상처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이 영화를 통해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위안부 피해자는 세상으로부터 무려 세 차례의 가해를 받게 되는데, 1차는 위안부 당시의 고통이고, 2차는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하는 고통이었다. 특히 남성 중심 문화에서 순결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회적 낙인이 대표적인 2차 가해였다. 이 얼마나 지질한 가해인가. 게다가 3차 가해는 위안부 피해자의 주변 지인과 가족한테서 나왔다. 해림 할머니도 아들과 관계를 끊어야만 했다. 이 엄청난 가해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세상에 목소리를 내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녀는 얼마나 큰 결심을 해야만 했을까.
해림 할머니는 자신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어떤 암울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었기에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그 의미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일을 겪어도 저 나무는, 잘리지만 않으면 상수리나무야. 누가 무슨 짓을 해도, 저 나무는 상수리나무라는 걸 잊지 말아.”(423쪽, 3부 빛이 있다면)
해림 할머니는 어머니의 말씀을 잊지 않는다. 그렇게 그녀는 꿋꿋하게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이들을 ‘마중’하러 간 것이다. 사라져버린 종태를, 숨어버린 이옥을, 그리고 기다림 끝에 세상을 떠난 순이를 마중 나갈 수 있었다.
“해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나 마중간다’였다고 한다.”(459쪽, 3부 빛이 있다면)
-빛-
이 소설 곳곳에는 ‘빛’이 등장한다. 빛이란 말을 보고는 ‘광복’을 떠올렸다. 다시 찾은 빛. 작가는 빛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자 한 것일까.
“(종태가 쓴) 수기의 제목은 ‘빛이 되어’였고, 내용에도 ‘빛’이란 단어가 반복되더군요.”(26쪽, 1부 끝날 수 없는 것이 남아 있다.)
나는 왜 일본의 패망 이후 찾아온 해방을 ‘빛’으로 표현했을지 매우 궁금했다. 그런데 그 의미를 이 소설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 조선인의 삶이 매우 참혹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는 것처럼, 짙은 어둠은 빛에 더욱 강렬한 의미를 담아냈던 것이다.
“과거의 참혹한 현장을 진술하다가도 불쑥 꺼내놓는, 추앙에 가까운 빛이란 단어에 번번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33쪽, 1부 끝날 수 없는 것이 남아 있다.)
“빛이 닿는 곳마다 따뜻해지고 환해지고 음지를 양지로 만들고 뭐든 변하게 만들지. 가슴 벅차고 대단한 일이지 않느냐?”(278쪽, 2부 전쟁터로 간 사랑)
빛은 참혹함을 끝낼 수 있는 위대한 존재였다. 우리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박훈장은 종태에게 그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종태와 해림은 빛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종태의 꿈과 해림의 꿈은 서로 달랐지만, 고통과 아픔을 끝내고 용서와 사죄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 점에서는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