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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시의 새 - 2025 박화성소설상 수상작
윤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0월
평점 :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0시의 새 (윤신우, 문학과 지성사, 2025, 320쪽)
“뭘 모르는지도 모른다는 것.”(78쪽)
뭔가 거대한 바람을 맞고 있는 듯, 거센 물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듯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작가가 상상한 거대한 세계를 이해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2014)의 주인공 쿠퍼처럼 끝없이 이어진 도서관 속을 헤엄쳐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작가가 창조해낸 세상의 끝은 어디일까. 이야기는 우주의 생성과 소멸부터 시작해 소행성의 충돌과 퉁구스카 대폭발을 지나 요정굴뚝새의 독특한 진화와 아날로그 시곗바늘에 이르기까지, 어지럽게 널려 있는 소재들을 이리저리 이어 나간다. 전혀 연관이 없는 것들이 ‘우연’히 나열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은 모두 한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필연’으로 엮여 있었다. 이 거대한 우주의 ‘흐름’을 창조해낸 작가는 큰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진율과 차수지-
주요 등장인물은 진율과 차수지, 두 여성이다. 진율은 천문 연구원이고, 차수지는 기자다. 진율은 우주의 근원을 연구하는 천문학자이기에 주인공으로 선택되었다고 생각했다. 우주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대상이니까. 그래서 이 소설 속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알 수 없는 사실들에 대한 충분한 개연성을 제공해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날은 어떤 경계 같은 게 흐릿해지는 것 같아요.”(308쪽)
한편, 차수지는 저자의 기자 경험이 녹아든 인물로, 선과 악을 가려낼 수 있는 경험을 가진 직업이기에 주인공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우주의 생성과 소멸,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속에서는 그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는 거의 내내 큰 비가 내린다. 뿌옇게 시야가 흐려질 정도로 비가 내리는 순간에는 앞뒤를 분간할 수 없으니까. 우주의 질서, 거대한 세계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인지 능력은 보잘것없는 수준일 테니까. 연인 도준의 죽음조차 받아들일 수 없었던 차수지는 이 경계의 모호함을 두려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주인공 진율이 가진 불꽃, 열쇠를 일깨워주는 ‘촉매자’ 역할에 충실한다.
그런데 왜 주요 인물이 모두 여성일까 궁금했다. 남자인 도준은 차수지를 각성시키는 역할로 소멸하고, 다른 차원의 파수꾼이나 그림자는 모두 남자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신의 존재에 가장 가까운 새는 알을 낳고 품는 암컷이다. 그 새와 교감하는 진율도 여성이고, 알을 지키려는 차수지도 여성이다. 파수꾼이나 그림자는 두 여성에게서 미묘한 파동의 변화를 알아본다. 두 여성도 본능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직감한다. 아마도 여성이 남성보다 작은 틈에, 티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나는 두 인물, 진율과 차수지가 서로 만나기 위해 진동하는 밸런스 볼 같다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크게 진동하지만, 결국은 시작점이면서 끝점이기도 한, 중간에서 만나게 될 수밖에 없는 두 진자같이 보였다. 그들의 만남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필연적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진자가 멈추게 될 것이니까. 이 소설이 진율과 차수지의 이야기를 번갈아 제시하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꿈과 무의식-
진율은 어렸을 때 어떤 존재와의 만남을 통해 꿈을 잃는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무의식의 모호함을 불안해하고, 정확히 인식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대상에서 안정감을 찾는다. 철저히 의식적인 인간으로만 살아가려 한다.
“삶의 양식이든 생활이든 나 자신의 육체와 정신이든, 모든 걸 직접 제어할 수 있다는 건 내게 꽤 중요한 의미였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고 저렇게 하면 저렇게 되는 예측 가능한 통제 말이다.”(82쪽)
진율은 우연히 잠을 자던 도중 죽어버린 도준의 이야기를 듣고는 아예 잠을 잃어버린다. 잠을 잃어버린 그녀는 완전히 무의식으로부터 단절된 상태다. 육체는 피곤함으로 피폐해져 가지만 정신만은 더욱 또렷해지는 것을 느낀다. 진율의 특별함을 발견한 다른 차원의 존재들은 그녀의 잠과 꿈과 무의식을 앗아가 버린다. 아마도 꿈이, 무의식이 우리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되어서일 것이다.
“육체가 삐그덕대는 게 느껴졌다. …… 이해가 안 가는 건 정신 쪽이었다. 날이 갈수록 가중되는 육체의 고통과 달리 혼탁하던 정신은 점점 한겨울 호수처럼 청명해지는 것이었다.”(36쪽)
그런데 사실 육체와 정신이, 꿈과 현실이 명확히 구분될 수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의식과 무의식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 삶의 모습을 온전히 의식적으로만 계획하고 결정하며 수행한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 수 없는 호기심에 이끌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 당도할 때가 있다. 평소에는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은 행위도 가끔씩 한다. 마치 차수지가 평생을 먹지 않던 옥수수를 무려 두 개나 구입했던 것처럼 말이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거나, 자유의지가 마치 의식적 영역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매우 오만한 판단일 것이다.
작가는 우리의 우주를 도서관에 빗댄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도서관에 들어가, 긴 서가에 꽂힌 수많은 책 중 하나를 펼쳐본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책에 적힌 글씨들을 읽기 시작할 것이다. 마치 모든 것이 글자(의식)로만 이루어진 것처럼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책은 대부분 여백(무의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에 글자만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한 글자도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여백이 있기에 글자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도 이렇지 않을까. 여백이 있기에, 우연이 있기에, 낭만이 있는 것은 아닐까.
-뻐꾸기 시계의 뻐꾸기-
진율은 새와 교감한다. 새는 꿈을 통해서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 그들의, 그 이전 주인의 기억을 보여준다. 그리고 새는 찾아와 전화벨 소리 같은 울음소리를 낸다. 그것도 정확히 열한 번. 처음에는 숫자 11이 무엇을 뜻하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진율이 자기 안의 불꽃을 되찾자 새는 정확히 열두 번 울음소리를 낸다. 새는 시간을 알리는 존재였다. 마치 뻐꾸기 시계의 뻐꾸기처럼. 작가는 시간을 알리러 나오는 뻐꾸기를 소설 속 신과 같은 존재로 상상해낸다.
시곗바늘 두 개 모두 숫자 12를 가리킨다. 12시일까 0시일까. 작가는 경계를 구분할 수 없이 정확히 일치하는 지점에서 우주의 생성과 소멸을 상상해낸다. 12는 11 다음으로의 진화를 의미하지만, 0은 모든 것이 소멸한 원점으로의 회귀다. 뻐꾸기는 울음소리를 열두 번 낼 것인가, 아니면 소리를 내지 않을 것인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누구일까. 그것은 이 소설에서 가장 열등한 존재로 규정된 티끌, 바로 인간이었다.
“한낱 인간한테, 그것도 나 같은 평범한 인간한테 대체 뭘 바라는 거야. …… 이 거대 우주에 존재한 억겁의 시간 동안 내 완벽한 설계와 흐름을 꽤 자주,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돌려버린 건 번번이 너희였거든. 고작 45억 년밖에 안 된 이 어린 세계, 무지하기 짝이 없는 너희, 바로 너희의 ‘불꽃’이 말이야.”(276쪽)
인간은 뻐꾸기 시계의 뻐꾸기였다. 자신들이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 무지한 존재. 단지 시간을 알리기만 하는 하찮은 티끌 같은 존재. 하지만 결국 우주의 시간이 12시인지, 0시인지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었다.
“완벽한 톱니에 걸린 티끌 하나가 우주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두고 봅시다.”(3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