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만의 글쓰기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조형근, 한겨레출판, 2024, 초판 1)

사회학자가 역사 속에 살다간 다양한 사람들에 애정을 가지고 써 내려간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가 깊이 있게 추적한 18개의 이야기와 그 속에 살다간 사람들이 살아 숨을 쉬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지금껏 내가 공부한 역사는 무엇이었을까 고민해보게 된다. 그리고 내가 아는 그 선명한 선과 악의 세상에 대해서도 의심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현재를 만들어낸 사람 중에서도 특히 경계를 살아간 삶에 주목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딱 중간에 걸친 사람들. 나는 그들의 삶을 보며 인간의 삶이 참으로 다채롭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의 경계가 매우 불분명하며, 나와 타인을 나누는 기준도 역시 불명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자의 주장처럼 우리는 모두 기억으로연루(連累)’되어 있다. 홀로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의 뿌리, 역사-

 

현재에 뿌리내리지 않은 역사는 모든 공허하다. 모든 역사는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 역사는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나 사건의 집합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단순히 기억해야 한다는 호소나 무조건 암기하게 만드는 당위(수능 한국사 필수 응시)는 사실 누구에게나 설득력이 없다. 역사를 통해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서 있는지, 어떻게 주변 사람들과 연계되어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면 역사는 그저 쓸모없는 도구가 될 뿐이다.

저자는 현재를 말하기 위해 역사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그리고 역사는 복잡하고 다채로운 인간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가 연루된 역사다. 우리는 서로 얽혀 있고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 (인물들은) 사랑하고 실수하는 인간, 꿈과 욕망을 가진 인간으로 이해하려 애썼다. 그들이 져야 할 역사적 책임, 역사가 그들에게 져야 할 책임을 함께 보려 했다.”(11, 서문)

 

그러니 저자에게 역사 연구는 교훈과 정답을 찾는 행위가 아니다.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질문이다. 왜 우리가 이런 모습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나는 이런 저자의 태도가 학생의 역사 수업에도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역사 학습은 과거 사실에 대한 암기가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자기 정체성 확립이어야 한다. 나 자신과 연계되지 않은 사실은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다. 지구에 살지 않는 외계인의 마음이 우리에게 중요한가. 식민 지배와 착취에 대해 사과하지 않으려는 일본 집권자들의 마음을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가. 내가 사는 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연루(連累)와 경계(境界)-

 

저자는 역사적 사실을 추적한다. 마치 사건 현장에서 단서를 찾는 형사와도 같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는지, 무엇을 기억에서 지우는지, 어떻게 기억을 조작하고 새로 만들어내는지를 밝힌다. 그 부분이 내겐 가장 큰 충격이었다. 또한, 역사적 상황이 단편적이지 않고, 놀랍도록 아이러니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그것은 모두 연루된 장면이고, ‘경계를 살아간 사람들이었다. 복잡하고 다채로운 인간이 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내리는 결정이 모여 역사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야기로 연결되고, 기억되었으며, 현재를 구성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저자가 말한 그대로 놀랍도록 재미있었다.

 

어쩌다가 일본군이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가담하게 됐을까? …… 패전을 받아들이지 못한 일본군 일부가 그렇게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참가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27, 1. 역사의 후퇴 앞에 리샹란을 생각하다.)

 

연루(連累). 사실 이 단어가 주는 느낌은 그리 좋지 않다. 경계(境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두 단어는 단편적으로 정리된 정답들 속에서 볼 수 없었던 실제 상황을 보게 한다. 삶과 삶이 연루된 경계 속에서 더 풍성한 역사상을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 우리 현실을 이해하는 더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현실에는 눈에 보이는 명확한 구분선이 없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경계를 넘어서면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다. 이분법에 갇혀 있는 사람보다는 혼란스럽겠지만, 경계를 넘나드는 삶은 더 큰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남한에 사는 나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이 경주라는 공간에 국한되었지만, 일제 강점기 일본의 고등학생은 일본에서 한반도로, 다시 만주로 수학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식민지 조선인은 일본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핍박받는 2등 시민으로 살아야 했지만, 그들은 일본의 팽창과 함께 상상할 수 있는 지평도 넓어졌다. 사상과 이념, 지리 속에 갇힌 지금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보고 살아왔다는 것을 우리는 여태껏 생각해볼 수 없다.

 

 

-별 없이 걷는 법-

 

저자의 역사 인식과 도구는 현실을 이해하는데 놀라운 혜안을 제공한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껏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실이 혼란스럽다고 해서 그 혼란스러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무언가 불안하다. 정답을 맞히는 것만이 전부인 삶을 살아온 나는 사실 이런 방법이 매우 두렵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준 없이 혼란스러움을 참아내는 것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깜깜한 밤길을 홀로 걸어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자는 그런 나의 마음을 미리 눈치채기라도 한 것일까. 마지막 이야기에 상하이 밀정의 이야기를 실었다. 일본군보다도 더 독립운동가에게 큰 위협이 되었던 밀정. 누가 밀정인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누구를 믿어야 할지, 어떻게 밀정을 찾아내야 할지 아는 방법은 없었다. 그저 서로를 의심하고 상처 내고 파괴하는 것 말고는. 그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저자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것이 내게 전하는 마지막 조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깜깜한 밤. 앞으로 나아갈 방법에 대한 조언이다.

 

사방이 캄캄한데 어쨌든 나아가야 했다. 싸우고 사랑하고 실패하고 반성하는 수밖에 없었다. 별 없이 걷는 법을 배워야 했다. 상처 입은 채 서로 연루될 수밖에 없었다.”(302, 18. 별 없이 걸었다 캄캄한 식민의 밤을)

 

결국은 연루되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일본군이 연합군 포로를 강제 동원해 지은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서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캄캄하고 암울한 상황 속에서 계속 앞으로 걷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콰이강의다리위에조선인이있었네 #조형근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향신료 전쟁 - 세계화, 제국주의, 주식회사를 탄생시킨 향신료 탐욕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만의 글쓰기 향신료 전쟁 (최광용, 한겨레출판, 2024, 초판 1)


향신료가 대항해 시대의 원동력이 되었고, 동인도 회사가 최초의 주식회사였다는 사실은 알고 읽기 시작했지만, 이 책에 담긴 내용 대부분은 새로운 것들이었다. 저자 최광용은 향신료의 역사에 푹 빠진 독립 연구자로 마치 이 책의 주인공인 모험가나 항해자들처럼 30여 년 동안 전 세계 80여 개국을 돌아다닌 사람이다. 그가 보고, 경험하고, 공부한 내용은 내가 책으로 배운 내용과 완전히 다른 형태였다. 그 신선함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저자가 만약 18세기 유럽에 태어났다면, 분명 대단한 유명인사가 되었을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수많은 유럽인은 저자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공간으로 주저하지 않고 떠났으며,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지식을 들고 돌아왔다.

 

신지식을 갈구하던 당시 유럽 사회는 지식인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했다. 이는 수많은 생물학자, 식물학자가 출현하게 된 원동력이었다.”(267~8, 6장 세계로 뻗어 나가는 향신료의 모험)

 

우리 사회도 르네상스 이후 유럽처럼 신지식을 갈구하고 지식인을 존경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지금 유럽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운영하고, 영향을 끼치는 세상을 만든 기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경험과 역사, 그리고 추체험-

 

역사 학습에서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개념 이해와 사건의 인과 관계 파악, 그리고 역사적 상황에 대한 추체험 능력이다. 나는 저자야말로 진정한 역사 연구자이며, 역사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라고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그는 역사의 현장을 단순히 책이나 구글 지도로만 찾아보지 않았다. 그곳에 직접 갔고, 그곳에서 살았으며, 그곳에 남은 역사의 흔적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상상해 보았다. 그래서 당시 유럽인의 마음을 상상하며 이 책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전문 연구가가 많은 사료를 찾고 그것을 통해 가장 개연성 높은 역사적 가정을 추론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 저자는 향신료 전쟁 당시 사람들의 감정을 느끼고, 그들의 생각을 따라가며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물론 대부분 기록이 유럽인 중심이라 침략을 당해야만 했던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인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인도양은 내게 아주 특별한 바다다. 콜롬보에 살던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그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는 해를 마주하며 삶의 사념들을 추스르던 기억이 선명하다.”(17, 1장 향신료를 찾아 대항해 시대가 열리다.)

 

갈레에는 더치 포트라는 유적이 있다. 1588년 포르투갈이 건설한 요새로 17세기 중반에 네덜란드가 포르투갈을 몰아내고 이곳을 점령하면서 확장했다. …… 최근에 방문했을 때도 예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안심했던 기억이 있다.”(21, 1장 향신료를 찾아 대항해 시대가 열리다.)

 

 

 

-현재,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역사는 왜 공부해야 하는가?’

 

나는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사실 내가 역사를 좋아했던 것은 다른 사람이 잘 모르는 사실을 내가 암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기 때문이다. 역사 선생님이 물어보시는 질문에 나 혼자서만 답할 수 있었을 때 느끼는 그 쾌감이 내겐 역사를 공부하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교사가 된 이후, 나 혼자만 역사를 좋아하는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신나게 설명하고 나면 돌아오는 반응은 시큰둥했다. 학생들은 왜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지 생각하긴커녕, 역사를 공부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교사로서 학생이 역사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오랜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결론은 현재였다. 역사는 현재 쓸모가 있어서 공부하는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는데 필요한 기초를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이 이 역사의 쓸모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수업하는 것이 목표다. 수업 시간엔 반드시 시사 문제를 언급하거나 자료로 제시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생각해보도록 질문한다.

이 책에서도 이런 현재가 곳곳에 잘 드러난다. 그런데 이 현재는 내가 수업 시간에 활용하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주제를 담고 있다. 그래서 내가 수업 시간에 꼭 사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소재들이 많이 있다.

 

격세지감이다. 옛날 그들을 통치하면서 주인 행세를 하던 포르투갈인의 생계를 앙골라 사람들이 좌지우지한다. …… 포르투갈 사람들은 자신들과 언어가 통하는 옛 식민지 나라로 일자리를 찾아 몰려갔다. 짐승처럼 사냥당해 팔려 나갔던 아프리카 노예의 후손들이 그들의 상전이 됐다. 그래서였을까, 피고용인들을 마치 손바닥 위의 공깃돌인 양 매몰차게 부렸다.”(29, 1장 향신료를 찾아 대항해 시대가 열리다.)

 

식민지 후예들이 부리는 식민 모국인이라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우리와 일본의 관계가 틀어진 이유는 아마도 포르투갈과 반대의 상황이라서 그런게 아닐까 상상해본다. 우리가 일본보다 훨씬 우월하게 잘 산다면, 그러면 우리는 쉽게 일본을 인정하고 용서할 포용력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반대로, 일본은 우리보다 더 잘 사는데 왜 사과하지 못할까. 혹시 우리가 자기들보다 잘 살까봐 전전긍긍 하는 것은 아닐까.

 

 

 

-인물 중심의 이야기-

 

이 책이 재밌는 이유는 이야기형식이기 때문이다. 전체 내용이 큰 흐름 속에서 매끄럽게 이야기로 이어진다. 게다가 이야기의 주인공은 대부분 인물이다. 어떤 사람의 일대기는 우리가 가장 좋아할 수밖에 없는 소재다. 특히 그 이야기가 매우 굴곡진 드라마와도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면 딱이다. 자극적이고 막장인 드라마. 우리가 안 보고 버틸 수 있겠는가.

인물 중심의 이야기가 기본 형식이기 때문에 매력적인 부분. 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비교해볼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찾아볼 수 있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 책에도 그런 내용이 종종 등장한다. 영국의 유명한 해적 드레이크를 소개하는 장면에서 이순신이 비교 대상으로 등장한다. 단순히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비슷한 직업을 가졌다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영국에서는 해적질이 영웅으로 숭앙받을 수 있는 분위기였다면, 우리는 전쟁이라는 위기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순신이 이렇게 알려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비교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는 같은 시대이지만, 전혀 다른 세상임을 알게 해주는 이야기. 나는 이런 것이 한국사와 세계사를 함께 공부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 가까운 것과 먼 것이 함께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물 중심의 이야기가 갖는 가장 큰 매력이다.

 

“1540년에 태어난 드레이크는 1596, 5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순신 장군이 1545년에 출생해 1598년에 사망했으니 거의 같은 시기를 바다에서 보낸 영웅들이라 하겠다.”(78, 2장 향신료 교역을 둘러싼 열강의 각축전)

 

 

-실패의 역사-

 

이 책이 다른 대항해 시대 역사서와 다른 점은 실패한 역사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성공한 역사는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향하는 항로와 남아메리카를 돌아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항로에 집중되어 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영국과 네덜란드는 서로 경쟁하고 충돌했는데, 대체로 바스쿠 다가마의 항로와 마젤란의 항로를 중심으로만 그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을 넘어 실패했지만 다른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제3. 북방 항로 개척의 잔혹사이다.

 

이들이(바렌츠 등) 얼음에 갇혔을 때 지내던 오두막은 170년이 지난 1871년에 노르웨이 사냥꾼에 의해 발견되었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바렌츠의 항해 일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는데 뱃길과 기상 상태 등이 너무나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탐험자들에게 더없이 좋은 자료가 되었다.”(128, 3장 북방 항로는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인가.)

 

내가 이 부분을 좋아하는 이유는 당시 실패가 현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북방 항로는 사실 20세기에나 개척되었고, 기후 변화로 얼음이 녹는 현재에나 활용 가치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바다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전혀 없었던 시절, 얼음으로 가득 찬 바다를 뚫고 새로운 항로를 찾아 나서려고 했던 모험가들의 용기가 매우 돋보였고,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을 대하는 당시 유럽인들의 태도였다. 그들이 단순히 부와 명예를 좇아 목숨을 건 모험을 한 것이라 얕잡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존경했고, 그들이 남긴 기록을 소중히 찾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유럽인들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항로를 찾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고, 그것을 활용해 향신료 제도를 정복했다. 나는 유럽인들이 모험가와 항해자들의 실패를 소중히 여기고 그것으로부터 배우고자 노력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고 믿는다.

우리도 실패의 역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전쟁에서 승리한 것만 배우고, 최대의 영토를 확보한 왕의 업적만을 암기할 것이 아니라 왜 실패했는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무슨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실패를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발전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밑거름으로 삼고자 하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

 

 

나는 저자가 향신료 전쟁에 매료되어 연구하는 모습을 떠올려봤다. 그는 이 수많은 내용을 조사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유럽인들의 향신료 전쟁을 통해 우리가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포르투갈은 가장 먼저 국왕이 앞장서 신항로 개척에 나섰다. 모험가와 항해자들은 목숨을 걸고 향신료 제도를 찾아냈으며, 이미 기존에 운영되고 있던 교역 구조를 그대로 둔 채 현지화하는 방법으로 향신료 무역을 독점했다. 그런데 영국과 네덜란드는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 회사를 통해 포르투갈이 독점한 항로를 모두 빼앗는다. 이를 통해 국왕 자본보다 상인 자본의 규모가 더 효율적이란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시 네덜란드가 독점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늪 속으로 빠져들었다는 사실이다. 정보를 감추고, 폭력을 행사해 많은 원주민을 학살하고, 향신료 나무의 이동을 철저히 감독하는 독점 체제는 결국 네덜란드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최종 승자는 독점을 꾀하지 않고 다양화, 세계화로 나아간 영국이다. 우리는 이런 향신료 전쟁 역사를 통해 무엇을 지향해 나가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우리나라 종묘사들이 20세기 후반부터 외국 자본에 팔려 나갔다. …… 1997년 외환 위기 때 우리나라 흥농종묘와 중앙종묘는 바이엘이 인수했고, 청원종묘는 사카타, 서울종묘는 캠차이나가 인수했다.”(257, 6장 세계로 뻗어 나가는 향신료의 모험)

 

내 경험상 우리 사회는 역사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국수영만 많이 배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학교 관리자부터, 한국사는 어차피 암기 과목이니 수능 직전에만 공부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학생까지. 특히 실패의 역사를 애써 감추려고만 한다. 외침을 수없이 당했던 약소국가의 피해 의식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실패의 역사를 저자처럼 주목해야 앞으로 우리가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미래에 정말 중요한 자산인 종자 회사를 외국 자본에 빼앗겼다는 사실을 내가 지금껏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이 참 놀라웠다. 역사 공부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는 이가 많아지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간세계사, 비잔티움과 오스만제국
이희철 지음 / 리수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이희철은 아나톨리아와 튀르크인에 열정적으로 미친(?) 사람이다. 그의 저작을 읽을 때마다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번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모든 열정을 바쳐 이 책에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의 책을 읽고 있으면 쉽게 말해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정리해 놓는 것을 포기해야 할 정도다. 나중에 필요한 정보를 꺼내 보아야 할 정도로 방대한 양을 좁은 지면 속에 밀어 넣어두었다. 마치 백과사전과 같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그의 책은 '아하~'하고 이해하기보다 '우와~'하고 놀라기 일쑤다.

"책 출간을 기준으로 한다면 튀르크인들의 역사에 꽂혀 산지도 25년이 훌쩍 지났다. 장엄하고 화려한 매력에 빠져 표정이 없는 역사를 넋 놓고 보면서 그들의 몸짓 하나까지도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많았다."(316쪽, 에필로그)


이번에는 "중간세계"라는 타밈 안사리가 제시한 개념을 빌려 아나톨리아에서 1000년을 버틴 비잔티움 제국과 600년을 살아낸 오스만 제국을 두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이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에 대한 이야기다보니 제목이 "중간세계사"로 지칭된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목만 보면 딱 오해하기 쉽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이 더 부각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나톨리아에서 동서양의 정체성이 교차하는 이 두 제국에 더 마음을 두고 있었다. 차라리 이들을 중간세계라 명명하지 말고, 이 두 제국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였음을 강조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리스인과 로마인, 무슬림과 튀르크인, 유대인이 혼합되어 살아갔던 다양성의 세계사가 펼쳐졌던 이곳이야말로 중간 세계에 가둘 필요 없이 전체 세계의 축소판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의 튀르키예가 있는 아나톨리아반도는 고대 그리스, 로마 강역이었고, 중세에는 비잔티움 제국(동로마제국)의 문화가, 근대에 들어서는 오스만 튀르크 즉 오스만 제국의 문화가 서린 곳이다."(4쪽, 프롤로그)

저자는 아나톨리아반도에 대한 애정과 함께 아라비아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중동 지역의 무슬림 역사를 함께 다루고자 하였다. 그 이유는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 사이의 시간적, 공간적, 문화적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1부에서는 비잔티움을 다루고, 2부에서는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 사이를 다룬다. 2부에서는 주로 이슬람이 등장한 시점부터 셀주크 튀르크 제국까지의 내용을 다룬다. 3부에서는 오스만 제국을 다룬다.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을 연결하는데 적절한 내용 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저자는 왜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 이 둘을 함께 다루고자 했을까. 나는 이 구성이야말로 이 책의 정체성과 목표를 파악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자가 밝힌 두 제국의 공통점을 옮겨 적는다.

"첫 번째 공통점은 두 제국 모두 세계사라는 주무대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것이다. ...... 두 번째 공통점은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은 같은 장소를 수도로 했다는 것이다. ...... 세 번째 공통점은 두 제국은 정치와 행정 제도 면에서 엄청난 유사성이 있고, 종교와 문화 면에서도 공통의 전통을 가졌다는 것이다. ...... 네 번째 공통점은 로마의 일곱 언덕처럼 두 제국에도 일곱 언덕이 있었다는 것이다."(5~6쪽, 프롤로그)

저자는 특히 이 중에서도 세 번째 공통점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의 역사와 정치만을 주로 다루고 있는 앞 부분과 종교, 건축, 예술 분야를 다루는 뒷부분으로 나뉘어 서술되어 있다. 일반적인 교양 역사서를 기준으로 보자면 뒷 부분, 종교, 건축, 예술 분야를 다루는 분량이 특히 많다. 이는 오랜 시간 아나톨리아에서 튀르크인들의 문화를 연구해온 저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서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저자는 이 부분을 통해 서양사의 빈틈을 메울 수 있기를 기대했다. 세계사의 변방에서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그 가치가 평가 절하되었던 이 지역의 역사가 어떻게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는지, 그 가치를 제대로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진심으로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 많다. 특히 우리가 잘 정리하기 어려워할 수 있는 내용을 도표의 형식으로 간략히 제시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비잔티움이 동로마의 수도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주요 결정이라든지, 이슬람 제국의 주요 왕조 연대기라든지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도표들이 책 곳곳에 나온다. 나는 이것을 보며 진심으로 공부하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또한, 지면 전체를 할애하여 담아내는 커다란 사진 도판들이 인상적이었다. 아나톨리아반도는 내 평생에 방문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공간일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전체적인 조망을 담은 생생한 사진을 담아낼 수 있었다는게 독자로서 매우 마음에 들었다. 우리와 다른 문화,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현재를 담은 사진이야말로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학부생 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으며 나만의 답사기를 써 보고 싶다는 열망을 불태웠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유홍준이라는 이름이 가져다주었던 설렘을 이 책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행복했다. 책의 표지에 저자 소개 사진이 나온다. 답사 지도를 걸어두고, 그에 관련된 공부를 한 흔적으로 책 탑이 다섯 줄이나 높이 쌓여 있다. 답사, 공부, 지도는 역사학도에게 일종의 로망이다. 저자는 그 로망을 실현하며 살아가는 매우 부러운 존재다. 일과 가족, 수업과 육아로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내 몸뚱이도 답사를 떠나고 싶어 한다.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 시시각각, 사시사철 변화하는 문화유산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마음 한쪽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문밖을 나가지 못하니 더욱 답사가 간절하다.

 

세 가지 기조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답사기를 쓰는 세 가지 기조를 밝히고 있다. 학문적 정확성, 문학적 소양, 사회적 실천이다. 그의 답사기는 이 기조에 따라 정확하고 재미있으면서 유익하다. 이 글을 읽으면 매우 난해하지만, 의 깊이 있는 공부 흔적을 살펴볼 수 있고 또 그 장소에서 마주한 그의 감상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어 즐겁다. 게다가 그의 글을 읽으면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유산의 유래나 그 성격을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으니 매우 유익하기까지 하다.

위구르 인들의 땅, 중국에 가장 마지막으로 복속된 영토인 신강이 우리의 역사와 이리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는 점이 매우 놀라웠다. 게다가 법현, 현장, 혜초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그들이 마주해야 했던 긴 여정의 한 부분만이라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우면서도 안타까웠다. 고된 여정을 공유하면서 그들의 인간적인 측면을 이해하고 그것을 수업에 녹여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책으로 보고 익힌 것을 그대로 학생들에게 전달만 하고 있었을 뿐이니 인물에 생동감을 불어넣을 수 없을 것이다. 저자처럼 정확하면서도 그 생생한 느낌을 살려내고 싶다. 그래서 더욱 답사 욕심이 난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천산위구르왕국

이슬람의 문화를 받아들인 위구르 인들은 중국에서도 정착하지 못하는 이방인이다. 우리에게도 회교도는 매우 생소하면서 거리감이 있는 존재들이다. 저자도 우리와 유사한 불교 문화에 더 애착을 느끼고,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는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 답사기를 통해 위구르 인들이 우리와 매우 유사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비슷한 운명을 경험했다는 사실들을 알게 되어 신선하면서도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들여다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209년 몽골군이 (천산위구르왕국에) 쳐들어왔을 때 칭기즈칸에게 항복하고 공주와 결혼하는 사위나라가 되었다. …… 대원제국에서 고려와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사위나라로 대접을 받은 것이다.”(148)

 

나는 여태까지 고려가 몽골 제국의 유일한 부마국이었고, 이것이 우리가 몽골에 맞선 위대한 역사로 매우 자랑스러워할 만한 사실이라고 생각해왔다. 내가 아는 세상은 매우 좁았다. 그리고 나같이 한국사를 가르치는 교사는 이러한 부분에서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역사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잘못된 사실을 가지고 우리 역사가 위대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더더욱 우리가 조심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문화유산 답사를 대하는 태도

학부생 때 답사를 다녀본 것이 거의 전부이지만, 나도 저자처럼 답사를 가면 꼭 일찍 일어나 새벽 시간에 숙소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공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여유 있게 둘러보기 위해서다. 나는 문화유산 답사는 관광이 아니라 그곳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문화유산 답사를 대하는 태도에 매우 공감할 수 있었다.

 

설령 볼 게 없다 하더라도 가봐야 하는 게 문화유산 답사야. 벽화 못지않게 중요한 게 석굴의 자리앉음새야. 아마 풍광은 좋을걸세.”(241)

 

몸이 고되더라도 직접 그곳을 보고, 느끼고, 경험해보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학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답사기가 매력적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평한 지붕, 파미르 고원에서 마무리되는 그의 답사기는 아마도 다음 답사기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유홍준 교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한반도와 일본, 중국을 넘어 중앙아시아와 유럽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만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
메리 비어드 지음, 김지혜 옮김 / 다른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빠,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는 한 마디로 답할 수 있는거 아닌가? 왜 그렇게 책이 두꺼워?”

 

그렇다. 아들의 질문에 내가 이 책을 너무 깊게 파헤치려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권위있는 로마 연구자가 쓴 책이니 이 책의 모든 내용들을 학습해야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에 대한 답이다. 이 생각을 바탕으로 책을 읽으니 좀 더 쉽게 빠져들 수 있었다. 그래서 거의 7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빠른 속도로 읽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오랜 세월 저자의 연구 성과가 녹아 있는 만큼 충분히 다시 읽으면서 모든 내용을 꼼꼼히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저자는 로마인들의 언어를 배웠고, 그들이 남긴 방대한 자료를 읽었다. 저자의 통찰은 그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로마와 나누는 대화를 지속하는데 꼭 필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가로마로부터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잘못된(?)’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현대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언어나 명칭들이 로마인들이 만들어낸 유산에서 이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단적인 예가 로마의 원로원에서 사용하던 명칭을 근대적 입법 의회에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외에도 궁전(팔라티누스 언덕), 후보(칸디다투스), 연단(로스트라) 등 로마인들로 인해서 만들어진 용어들에서도 로마의 영향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로마라는 모범은 모두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고, 영웅화된 이야기라고 일침을 가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로마는 실제 로마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그들의 기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자료의 신빙성에 대해 끊임엇이 문제를 제기한다. …… 로마인들이 새롭게 만든 여러 제도나 관행이나 개념에 대해 우리 시대에 맞춘 논쟁을 벌이기를 원한다.”(17)

 

저자는 우리가 바라보는 로마, 로마인들이 바라본 로마에 대한 실상을 추적하여, 그들이 만든 여러 제도나 관행, 개념이 실제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그것이 현재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정확히 살펴보는 것을 원했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다음 질문에 대한 가장 개연성이 높은 답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이탈리아 중부의 작고 평범한 도시가 고대 지중해 세계의 다른 어느 도시보다 큰 도시로 성장해 그토록 큰 제국을 지배하게 되었을까?”(32)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로마는 왜 붕괴할 수밖에 없었는가

저자는 로마의 성공 비결을 당시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예외적인 개방성과 외부자들을 통합하려는 적극성”(87)에서 찾았다. 로마는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위대해질 수 있었다.

먼저 로마 내부에서의 모습을 살펴보면, 건국설화에 이어 전개된 왕정의 시대에서 로마의 최정상에 있는 왕이 외부인이거나, 출생이 미천하거나, 심지어 해방된 노예도 될 수 있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게다가 기원전 6세기 말 왕정의 몰락과 함께 등장한 공화정에서 진행된 개혁에서 세습 귀족들이 평민들에게 최고 관직과 입법권을 개방하는 결정을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로마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서도 로마인들은 영토를 팽창하거나 약탈하기 위해 주변 지역을 정복하기 보다 다른 민족과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데 관심을 두었다는 점이다. , 로마인이 승리한 지역은 로마의 지배를 받지 않았고, 로마와 협력하는 관계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는 물리친 적을 자신들의 군대로 흡수할 수 있었고, 전투에 동원할 수 있는 인원이 점차 증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로마인은 전투에셔는 져도 전쟁에는 지지 않았다.’는 말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이러한 로마의 성공 비결은 해외에서 거둔 군사적 성공으로 인해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로마의 경쟁자들이 제거되면서 로마는 부유해졌고, 세습 귀족과 평민 사이의 내부적 합의가 서서히 흔들리게 되었다. 이제 예외적인 개방성과 외부자들을 통합하려는 적극성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평화 대신 폭력이 점점 더 당연한 정치 도구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을 지나 동맹시 전쟁이 일어났고, 술라의 독재를 거쳐 스파르타쿠스의 난이 발생하였다.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크라수스에 의한 삼두 정치를 거치고 나면 로마는 점점 더 군사력을 갖춘 황제 개인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로마 제국과 몽골 제국, 제국의 성공과 쇠퇴

저자가 재구성한 로마의 모습을 읽으면서 몽골 제국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제국 모두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넓은 영토를 차지한 대제국이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아마 이외에도 다양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겠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몇 가지 제국의 공통된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우선 제국은 작지만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중앙 정부에 의해 주변 지역을 정복하고, 이들을 간접 지배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로마와 몽골, 두 제국의 중앙 정부는 모두 거대한 영토와 인민을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갖추지 않은 작은 규모이며, 많은 부분을 지역의 세력가들에 의존하고 있다. 로마에 패배해 로마의 동맹시가 될 것을 강요받았거나 이를 환영했던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담당해야 했던 유일한 의무는 병사들의 식량과 유지비용을 지불하는 것이었던 것처럼 몽골 제국도 역시 이와 비슷한 요구를 정복민들에게 강요했고, 그 민족의 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제국은 기본적으로 다원적이다. 로마의 동쪽 그리스와 서쪽 갈리아가 로마인들의 입장에서 서로 다른 문화권이었던 것처럼, 몽골 제국이나 오스만 제국 내에서도 다양한 민족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공존하고 있었다. 이는 제국이 성장하고 팽창해나갈 수 있었던 성공 비결일 수 있었겠지만, 동시에 그 제국이 붕괴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서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게르만, 프랑크 족의 국가가 수립되고, 몽골 제국이 한족이 세운 명에 의해 몰락하는 것은 다원성의 제국이 붕괴하고 단일성을 강조하는 국가가 수립되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로마사를 고정된 진리가 아닌 대화를 통해 계속 바뀌어가는 살아있는 대상으로 바라봤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지금까지 우리가 믿어왔던 역사적 신념을 비판적인 분석과 재구성을 통해 무너뜨리고, 현재에 가장 필요한 역사로 새롭게 탈바꿈시키려 하였다.

 

“‘늑대에 해당하는 라틴어 Lupa매춘을 가리키는 관용적 표현으로도 사용되었다. 쌍둥이(로마 건국 시조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발견해 돌본 것은 지역의 야생 동물이 아니라 지역의 매춘부였을 수도 있지 않을까?”(78)

“‘로물루스로마에서 나온 상상의 구성물이었다.”(93)

“rex는 왕이 아닌 족장이나 거물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하는 편이, 그리고 왕정시기보다는 족장의 시기로 생각하는 편이 더 낫다.(127)”

고대 로마 인민들이 단결된 행동을 통해 세습귀족들의 양보를 얻어내고 평민들의 완전한 정치적 권리를 확보한 이야기에서 19세기와 20세기 초 여러 나라의 노동계급 운동이 기념할 만한 선례와 성공적인 수사를 찾아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187)

 

이런 부분이 저자의 학자로서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이를 현재 사회에 가장 필요한 부분으로 재해석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가장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역사가 현재 진행형이 될 때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를 가장 명확히 이해할 수 있고 가장 살아있는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