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 우리 근현대사의 무대가 된 30개 도서관 이야기, 제30회 한국 출판 평론상 출판평론 부문 우수상 수상작
백창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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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쓰기 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백창민, 한겨레출판, 2025, 초판 1)

 

“‘왔던 길(과거)’을 모르고, 어찌 선 자리(현재)’를 알 것이며, 어떻게 갈 길(미래)’을 밝힐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9, 들어가는 말)

 

책사냥꾼도서관 덕후인 저자가 써 내려간 도서관사()를 담고 있다. 나도 책을 좋아해서 집 주변에 큰 도서관이 없다는 점을 늘 아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사 선생이면서도 저자처럼 도서관 그 자체의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도서관이 있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의 식이었다. 책은 어디서든 구할 수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책은 거의 구매해서 봤으니까.

그런데 도서관이 우리 근현대사에서 정말 중요한 존재고,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도서관이 매우 정치적인 공간이라는 점. 일제 강점기 도서관은 사상을 통제하는 기지였다는 점. 또한, 도서관은 대한민국 민주화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간이었다는 점 등이다. 이 책을 통해 오히려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면 좀 과한 표현일까. 그동안 진주알로만 알던 역사를 도서관이라는 실로 제대로 꿰매어 엮은 기분이 든다.

도서관의 역사 하나만으로도 우리 근현대사를 이렇게 정교하게 꿰뚫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저자가 매우 많은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 책은 우리 근현대사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503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매우 흥미진진한 역사로 가득 차 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중적 유산, 도서관-

 

정조의 규장각, 고종의 집옥재. 이 책에도 소개되어 있지만, 분명 우리에게도 도서관의 뿌리는 존재한다. 하지만 조선의 멸망과 함께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를 약탈하기 위해 민가를 드나들었던 프랑스군이 남긴 기록에서 허름한 집에도 책이 있어 놀랐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우리는 분명 책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충분히 도서관을 세워 인재를 양성할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저자도 지적하고 있지만, 도서관은 그저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점령된 지 오래다. 장서가 얼마나 있는지, 책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보다 열람실 좌석 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지만, 이것이 일제 강점의 잔재라고 한다.

 

식민 잔재는 청산하지 못하고, ‘유산은 상실해 버린 불행한 역사가 압축된 곳이 바로 철도 도서관이다.”(47, 철도도서관)

 

비단 도서관만의 문제이겠는가. 일제 잔재를 제대로 청산할 수 없는 것도, 우리의 유산을 모두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도, 모두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다. 도서관 사서가 도서관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기억해야 하는 것처럼, 교사인 내가 학교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고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잔재는 계속해서 우리의 전통인 양 미래를 잠식할 것이고, 소중한 유산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 테니까.

 

 

-도서관의 존재 이유-

 

동양의 먼 나라에서 우리 도서관을 찾아 준 것이 더 고맙다. 당신 같은 사람을 위해서 도서관은 존재한다.”(251, 도서관 앞 광장)

 

도서관은 왜 필요할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일까, 지식의 연구와 발전을 위해서일까. 나는 도서관이 찾는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 문장이 가장 가슴에 뜨겁게 와 닿았다. 이 책에 따르면 도서관은 늘 권력자의 의도에 의해 존재하거나, 또는 철저히 외면당해 왔다. 독재 정권 시절에는 책을 보관하기에도 불편한 건물에 억지로 욱여넣거나, 사람들이 찾기도 어려운 곳으로 도서관을 옮겨버리기도 했다. 통치에 필요하지 않은 책은 불태워지고, 쓸모를 다 했다고 여겨진 책들은 습기 찬 바닥에 내팽개쳐지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진정한 존재 이유를 가진 도서관을 갖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은 책을 읽는 사람과 책을 쓰는 사람, 책을 만드는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물론 책뿐만은 아닐 것이다. 모든 도서와 관계된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도서관의 역할이다. 도서관은 열심히 책을 모아야 하고, 또 그것을 활용하기 편리하게 분류해야 한다. 또한, 어떤 자료가 더 좋은 것인지, 더 가치 있는 것인지를 판단하고 그것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 역할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사람은 바로 사서다. 사서는 도서관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내는 직업이어야 한다.

 

 

-새로운 독서 문화-

 

“(일제 강점기) 철도망 확대로 지루한 열차 여행을 달래 줄 열차 안 독서가 출현했다.”(43, 철도도서관)

 

일제는 식민 지배를 위해 한반도에 철도를 구축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새로운 형태의 독서 문화가 등장했다. 예를 들자면 소리를 내 읽는 음독보다 조용히 읽는 묵독이 더 일반적인 모습이 된 점 등이 있다. 오랜 시간 열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사람을 위한 문고판이나, 잡지류 등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철도의 영향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와 비슷하게 새로운 독서 문화를 만들 정책을 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보았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래서 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줄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 도서가 비치되는 것이다. 그리고 책을 펼칠 수 있도록 충분한 좌석과 공간이 확보된 교통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열차 안에 무한정 손님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독서를 할 사람을 위한 인원 제한 칸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이동하기 위해 더 열심히 그 칸을 이용하려 할 것이다.(예약을 받아도 될지 모른다.) 물론 책을 안 보고 휴대폰을 볼 수도 있으니 그 칸에서는 휴대폰 이용이 제한되는 환경을 만들어둘 필요도 있겠다. 비록 내 상상에 불과하지만, 정부나 대중교통 기관에서 새로운 독서 문화를 보급할 생각과 의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정책으로 시행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345, 국회 도서관)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리고 충분한 도서관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SNS와 유튜브의 세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이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의 미래를 제대로 만들어나가려면 결국 우리 스스로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그 방법이 독서라고 믿는다. 그리고 도서관은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나갈 자양분이 되어야 한다. 아마도 저자처럼 도서관 덕후들이 이 중대한 과업을 이끌어나갈 적임자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도 그 과업에 동참할 용의가 충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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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 - 개발과 손익에 갇힌 아름드리나무 이야기
김양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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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쓰기 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 (김양진, 한겨레출판, 2025, 초판 1)

 

길을 막고 선 나무가 아니라 나무 있는 곳에 길을 낸 것이니까.”(294, 서울 궁산 나무 지도)

 

지금껏 나무를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무는 그저 그 자리에 그대로 계속 서 있는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아름다운나무는 충분히 공감했지만, 위태로운지 몰랐다. ‘거대한나무를 본 적은 많지만, 천년을 살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가 나무를 너무 쉽게 대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도 우리 동네 나무들이 말라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안타깝다고만 생각하고 있었지 행동하지 않았다. 남들이 나무를 죽이는 행동을 한다고만 믿었지, 내가 나무를 죽이고 있다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

 

 

-나무와 인간-

 

인간은 도시에 살기에 더욱 나무에 관심을 잃는다. 도로와 건물만으로도 빼곡한 공간에 살아가니 나무가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땅과 하늘을 허락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생명과도 같은 재산인 공간을 나무에 나눠줄 여유 따위는 없다. 게다가 내 재산 가치를 높일 수만 있다면, 나무 정도는 쉽게 치워버릴 수 있는 존재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너른 들판에 사는 사람은 다를 것이다. 나무가 없는 황량한 벌판은 인간이 살아가기 어렵다. 밭에서 일하던 농부는 시원한 나무 그늘을 찾기 마련이다. 가을엔 열매를 맺는 나무를 찾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겨울엔 쓸모없는 가지를 떨군 나무 아래를 찾을 수밖에 없다. 삶 그 자체를 나무에 의지해 살았던 사람들은 나무를 다르게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나무에 붙인 이름을 보면, 그들이 나무 덕분에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을, 그 나무를 사랑하고 보듬으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특히 나무 이름에 대한 설명이 상세히 나온다. 미루나무, 버즘나무, 이팝나무 등, 그 이름을 들으면 그 나무에 이름을 붙인 사람의 애정이 느껴진다. 물론 나무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할 수 있는 이름들도 나온다. 순전히 우리 인간의 관점에서 붙인 이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주변에 서 있는 그 수많은 나무의 이름조차 모른다. 아니 관심이 없다. 매일 등교하면서 지나치는 숲에 어떤 나무들이 서 있는지, 내 발걸음 때문에 그 나무들이 죽어가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인간의 발길이 나무뿌리에 엄청난 피해를 준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나무는 동물처럼 금방 죽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수년에 걸쳐 죽어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이제껏 나무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안타까워만 했지, 내가 그들의 죽음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이 책을 읽었기에, 이제는 내 주변에 있는 나무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며, 또 그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나무의 시간-

 

인간은 기껏해야 100년을 살 수 있다. 인간에게 10, 20년은 긴 시간이다. 하지만 나무는 어떨까. 천년을 살 수 있다는 표현이 어떤 느낌인지, 나무의 시간은 어떤 것인지 상상해볼 수 있는 표현이 있었다.

 

공룡이 멸종한 뒤 은행나무 가문은 급격하게 줄어들어 동아시아에 단 한 종만 생존하게 됩니다. 급격한 기후변화를 비롯해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새로운 포식자의 출현을 견뎌낸 은행나무종에겐 인간의 지각으론 헤아릴 수조차 없는 긴 시간과 큰 기적이 새겨져 있습니다.”(22, 오리발 공손수)

 

은행나무의 조상은 공룡과 함께 살았다. 그 친척들이 멸종되는 과정에서도 단 한 종은 살아남았다. 인간이 구석기를 만들던 시절부터, 휴대폰을 들고 돌아다니는 지금까지 그들은 같은 모습으로 살아왔다. 아마 인간이 멸종된 이후에도 은행나무는 그대로 살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은행나무는 이 시간을 어떻게 느낄까. 그들에게 인간의 시간은, 인간에게 하루살이의 시간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그러니 예로부터 천년을 살아온 노거수를 마을을 지키는 ()’으로 모셔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책에 나오는 나무 중 진주 중평마을의 당산나무였던 1,200살 팽나무는 무려 삼국 시대부터 살아왔다고 한다.(지금은 사라졌다.) 과연 인간의 인지능력으로 이 정도 시간을 견뎌낸 나무의 시간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

 

우리는 나무를 일방적으로 이용해왔다. 나무는 항상 아낌없이 주는 존재였다. 그래서 우리는 나무를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우리가 나무와 함께 살아갈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무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진화의 경로를 겪어 오늘에 이른 고등 생명체입니다. 나무의 생리에 대한 오해는 어쩌면 당연하고,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한한 시간 동안 끝끝내 그 오해를 풀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70, 도계 긴잎느티나무의 속은 누가 채웠나.)

 

우리가 나무에 대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도 이 책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뿌리가 땅 위로 올라오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당연하다고 한다. 뿌리도 숨을 쉬어야 하는데, 땅 위로 나온 뿌리를 흙으로 덮어버리면 숨을 쉬지 못해 말라 죽을 수밖에 없단다. .. 여태껏 내가 왜 식물들을 죽여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나무에 대해 알아야 한다.

 

“(나무와 관련된) 민원이 들어오면 문제가 진짜 해결되게끔 시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공무원과 연구자의 역할인데, 쓴소리가 듣기 싫으니 벌레가 많아? 그럼 농약 쳐!’라는 단순 논리로 접근합니다.”(194, 서울 봉산)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사실을 알아갈 동안, 연구자들이 그것을 밝혀내는 동안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벌레가 많다고, 새가 시끄럽고 냄새난다고 그냥 나무를 베어버리거나, 옮겨 싦는 것은 선택지가 되어선 안 된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안타깝지만, 인간을 배제하는 것이다. 자연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인간이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는 방법이 가장 좋다. 가덕도 동백군락지(236)를 읽으면서 생각했다.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군부대가, 북한과의 경계에 있는 DMZ,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는 산지가 더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간의 무관심이, 인위적인 통제가 자연을 되살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가장 바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남아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마구 나무를 죽이고 있지만, 최소한 인위적으로 죽일 수 없는 나무들은 지금도 그 생명의 가치를 계속 키워나가고 있을 테니까. 우리가 깨닫는 일만 남았다. 나무들이 다 죽기 전에 깨닫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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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엄격함 - 보르헤스, 하이젠베르크, 칸트 그리고 실재의 궁극적 본질
윌리엄 에긴턴 지음, 김한영 옮김 / 까치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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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쓰기 천사들의 엄격함 (윌리엄 에긴턴, 까치, 2025, 초판 1)

보르헤스, 하이젠베르크, 칸트. 나는 이 세 사람 모두가 낯설다. 그나마 칸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많아서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철학책일 것으로 생각했다. 최근에 철학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약간은 자신이 있었다. 분명 나는 이 책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고, 기존에 읽었던 책들과 어떤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특히 보르헤스는 유명한 시인이자 소설가였고,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을 발견한 물리학자였으며, 철학자 칸트와 함께 모두 그리스 철학과 중세 신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 책은 하나의 좁은 영역을 깊고 정확하게 파헤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마치 이 세상의 전체인 실재(實在)를 들여다보려고 한 의도를 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의 내용을 모두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가진 기초 소양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무슨 말인지, 저자가 사용하는 관용 표현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같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뭔가 읽는 동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결국 돌아서고 나면 무슨 의미인지를 한참 고민해야 하는 그런 정답이 없는 모호한 문제를 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위 세 인물의 삶을 생생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시간적 순서대로 인생의 주요 사건을 나열하는 식이 아니라, 저자가 하고 싶은 주제와 의도에 맞는 인물의 삶을 특히 부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알아내야 할 그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

 

인간은 길어야 백 년을 살 수 있는 존재다. 내가 가르치는 역사도 그래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채 백 년을 살 수 없는 존재가, 살면서 깨달은 지식을 후대에 물려주고 싶었던 것. 그래서 인간의 삶이 조금은 더 윤택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낸 것이 역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역사는 가장 기본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의 변화에 따라 사건과 사건의 인과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떤 배경을 원인으로 하여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어떤 결과또는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한다. 결국, 그 인과 관계가 시험 문제가 된다. 학생들이 그래서 역사를 싫어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계는, 우주는 영원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을 가진 존재다. 만약 신이 있다면, 그 신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의 시간적 변화라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없다. 시작은 곧 끝이요, 끝과 시작이 결국 다르지 않은 것이다. 나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무엇인지 정확히 잘 모른다. 하지만 빛의 속도로 이동할 때 나타나는 시간과 공간의 왜곡 현상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들어본 적이 있다. 그래서 이 설명을 약간은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우주)는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에게는 너무도 버겁고 어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결국 유한한 인간은 무한한 세계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세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인간이 가진 환상이나 편견이 실재(實在)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저자는 그래서 보르헤스, 하이젠베르크, 칸트 세 사람을 이 책에 모두 모아 두었다. 그들이 어떻게 그 깨달음을 얻는지, 그리고 그들이 그 깨달음에 따라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재밌는 점은, 그들이 위대한 깨달음을 얻은 존재이지만, 유한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깨달은 존재들이지만, 결국 그들은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 살다가 죽었다.

 

 

-과학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

 

오늘날 과학은 모든 학문을 제치고 최고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문이과 구분이 폐지된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이과 우위 현상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학이 인류 문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만능열쇠가 아니라는 점을 이 책에서 알게 되었다. 과학은 반드시 철학이 필요하다. 이 책에 따르면 신학과 종교도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 이러한 이성을 과도하게 투사할 때, 우리는 세계에 관한 일관된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 사용하는 그 도구(이성)로부터 우상을 만들고 그 개념으로부터 유령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영원하고 형언할 수 없는 진리를 가정하는 것은 물리적 세계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에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우리가 자주 그러한 가정을 변질시켜 만들어내는 유령과 우상은 과학의 성공을 방해하기만 하는 형이상학적 편견으로 반드시 전락한다.”(79, 2장 바로 이 순간의 짧은 역사)

 

고학력자이면서 상류층인 사람들이 종교적 우상이나 사이비 종교에 빠진 모습을 볼 때마다 그들이 미쳤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이성적인 사회에서는 절대로 통할 수 없는 논리를 내세우는 일이 있을 수 없다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믿을 수 없는 주장을 내세우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그들이 우매하기 때문도 아니고, 가난하기 때문도 아니다. 칸트의 말처럼 그들은 형이상학적 편견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과도한 이성을 내세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한, 하이젠베르크의 중간지대(90)’개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리적으로 세상을 재단하여 옳고 그름의 영역으로 나눈다거나, 정답이 단 하나만 존재하는 문제로만 모든 것을 바라보는 행위는 반드시 극단적인 결론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이젠베르크가 도보여행을 떠난 것처럼, 칸트가 지인들과 만찬을 즐겼던 것처럼, 우리는 과학으로 절대적 진리에 다가가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이성이 너무 과도한 것은 아닌지, 편견과 실수가 발생하지 않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도 필요하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

 

그리스 역사를 대충 훑어보면서, 나는 소피스트들이 그저 말장난에 불과한 가르침으로 당시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일부 주장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그리스 철학에 대해, 소피스트들에 대해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제논의 역설처럼 이 책에서 다뤄진 철학적 난제들이 실제 우리 삶으로부터 출발했고, 그것에 대한 오랜 논쟁과 탐구의 결과가 현재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철학과 과학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 철학을 공부한 플로티노스의 책(178), 보르헤스의 소설, 바벨의 도서관(219),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291), 단테의 신곡까지 위 세 사람의 깨달음에 영향을 준 중요한 책과 그 흐름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책을 찾아 읽어보고 싶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겪었던 그 이해할 수 없는 한계를 조금은 극복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신비에 대한 답을 찾기를 원하지만, 또한 확정적으로 매듭짓기를 원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새로운 것을 알고 싶어하지만, 동시에 또한 말이 되는 것,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맞아떨어지는 것을 알고 싶어한다.”(263, 9장 측정하기 좋게 만들어진 우주)

 

이 책이 내게 어려운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 너무 적었던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면, 알고 있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은 내게 너무도 많은 것을 전해줄 수 있는 책이지만, 내가 그 지식을 이해하기엔 너무도 부족하다.

 

만일 나무가 쓰러졌는데 아무도 몰랐다면, 쓰러지는 소리가 난 것인가?”(114, 3장 시각화하라!)

 

이 문장도 얼마 전 보았던 넷플릭스 드라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2024)”에서 본 대사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아무도 없는 숲속 펜션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단순한 묘사라고 생각하였는데, 이게 철학적 난제라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처럼 우리 일상에 관련된 철학적 난제는 매우 많을 것이다. 앞으로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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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폴라 일지
김금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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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쓰기 나의 폴라 일지 (김금희, 한겨레출판, 2025, 초판 1)


작가는 거대한 고독을 만나러 가서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작가는 완전한 결핍으로 들어가 최대의 풍요로운 칼로리(식사)를 마주한다.

작가는 펭귄 세상의 비펭귄이 되어 인류 문명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유명한 작가님의 산문을 만나는데도, 나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 그에 대해 알아보는 작은 수고로움조차 없었다. 반면에 작가가 남극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녀의 작품을 읽는 것은 기본이고, 팀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며, 그녀의 작품 활동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인다. 나는 그래서 이 책이 단순한 남극 여행 기록이 아니라 그녀가 경험한 완전히 다른 세상에 대한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남극은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면서, 인간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노력하는, 인간적 온기(溫氣)로 가득 찬 세상이었다. 남극의 가혹하고 척박한 이미지는 모든 생명체가 생존이 최대 목표인 양 살아가야만 할 듯 보이게 만들지만, 그 절박함이 오히려 생()의 다채로움과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배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평소 내 성격이라면 절대로 가겠다고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을 것 같은 남극이지만, 작가의 따뜻한 글은 기회가 된다면 나도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했다. 게다가 그 칼로리 높은 풍요로운 식단을 매일 경험할 수 있다니!! 남극 세종 기지를 가보고 싶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였다.

 

 

-완전한 결핍-

 

인간과 그것이 만들어낸 문명이 없는 자연 속에서 나는 압도적인 경이로움을 느끼고 싶었다. 자연이 만든 지리적 경계 이외에 다른 인위적인 경계가 없다는 사실도 매혹적이었다. 지구상에 그런 없는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숨이 좀 트였다.”(14~15)

 

내가 남극에 간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이유는 작가의 말처럼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만든 문명에서 벗어난다면 나는 단 하루도 생존할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나는 작가만큼 적극적으로 남극에 가고자 노력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남극행을 완강히 반대하는 작가의 부모님과도 같은 존재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나는 경계가 있기에 안도할 수 있고, 무언가로 가득 찬 상황을 만족스럽게 여긴다.

작가는 어떻게 완전한 결핍을 동경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것이 내내 궁금했다. 그녀의 작품을 읽지 않은 탓이기도 하고, 순전히 내 상상이지만, 아마도 작가는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경계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을 가진 것이 아닐까 짐작해보았다. 마치 영화 한국이 싫어서(2024)’ 속 주인공 계나와 같은 마음일 것 같았다. 내가 태어난 한국에서 적응해야 한다는 그 거부할 수 없는 절대 원칙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에 너무도 완벽하게 적응해버린, 기성세대에 가까우니까. 하지만 작가 덕분에 없는 상태’, 즉 결핍의 가능성에 대해 상상해볼 수 있게 되었다. 내 인생을 규정하는 이 모든 것들이 없는 상태가 된다면, 나는 곧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아니, 어떤 삶을 살 수 있게 될까 상상해 보았다. 물론 생존 가능성 제로에 가깝다는 결론만 계속 나오긴 하지만.

 

 

-인류 문명-

 

남극에는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이 제대로 없을 거라 믿었다. 사람이 잠시만 머물며 과학 연구만 진행하는 기지이기에 인간의 흔적이 크게 남지 않겠지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곳도 결국 문명이 그대로 자리하고 있었다. 무엇이 문명이고, 어떤 모습을 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인지에 대한 평가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단지 내가 사는 이곳 서울과 멀리 떨어진 세상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 참 놀라울 따름이었다.

 

책의 자리는 언제나 좁고 그늘지고 조용하니까.”(50)

 

남극 세종 기지에 있는 도서관에서 작가는 이렇게 느낀다. 책은 언제나 가장자리에 조용히 자리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인간이 닿는 곳 어디에도 지금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다고. 그곳이 남극이든, 우주든 말이다. 그래서 남극에 있는 사람들은 그토록 인간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가 의도하든 하지 않든 간에 남극으로 흘러 들어가는 인류 문명은 엄청나게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테니까.

 

 

-거대한 고독 속 인간관계-

 

작가가 남극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결국 사람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나 역시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 그런지 평소 경험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이런 깨달음은 남극에서 배워와 우리가 사는 이 도시에 정착시켜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만큼 나도 사람이 고팠던(?)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어디에서 뭘 하는지 누군가는 알고 있어야 했고 내 생활은 모두와 결속되어 있었다.”(75)

저녁 식사 시간은 각자 오늘 무엇을 했는지 정보를 나누는 때였다.”(91)

며칠 되지 않았지만 나도 공간과 사람들, 물리적 한계가 만들어내는 밀도 높은 정다움과 애틋함을 느끼고 있었다.”(108)

남극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나는 실제 내 삶은 이곳과 얼마나 다른가를 동시에 감각했다.”(138)

그리고 환영받지 못하면 어때요, 그것도 배워가는 거잖아요.”(178)

내가 혼밥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여기 와서야 깨달았다.”(193)

 

많은 표현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밀도 높은 정다움과 애틋함이라는 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최근 폐쇄된 공간에서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다 돌아왔는데, 그때 그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평소대로라면 제대로 대화도 나눌 수 없었을 그 소중한 인연들이 그 당시에는 바로 내 곁에 있었다. 그들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휴대폰과 인터넷은 아예 금지되어 있었다. 내 속마음을 털어내 줄 수 있도록 돕는 알코올(?)이 항시 냉장고에 저장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한 그 상황은 마치 다시 20년 전 학부생 답사 뒤풀이 같은 시간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하루를 치열하게 살았고, 밤은 더 뜨겁게 보낼 수 있었다. 그게 행복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작가는 왜 남극을 다녀오고자 했을까. 책 곳곳에 살짝 언급된 것처럼 남극을 배경으로 소설을 쓸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 그녀를 남극으로 이끌었던 다른 것이 있을 것만 같았다. 작가는 그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언덕을 내려오는데 남극에 오고 싶어 한 정확한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싶어서였다.”(281)

 


다른 마음은 무엇일까. 지금 내가 사는 이 물리적인 공간만을 벗어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마음은 아닌 듯하다. 나는 남극이라는 물리적 한계가 만들어낸 인간관계 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남극에 머무는 사람들이 공동생활을 통해 갖게 되는 마음이 곧 다른 마음인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지금 이 대한민국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견딜 수 없는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해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모두가 가능할 것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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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셋 2025
김혜수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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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셋셋 (김혜수 외, 한겨레출판, 2025, 초판 1)

신인(新人)의 소설은 기대보다 만족이 크다. 소설 전체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하나만이라도 찾을 수 있어도 작품과 작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 마음 덕분에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 읽고, 새로운 작품을 읽으며 좋아하는 문장이 쌓인다. 그렇게 그 작가에 대한 기대가 만들어진다. 이 소설집은 신인 작가에 대한 기대를 만들어가는 기초를 제공하려 한다. 그래서 이름이 셋(3) (Set)인가보다. 신인 작가를 독자와 만나게 해주는 출판사, 그 세 존재가 첫 만남을 갖는 소설집이기에 셋셋은 생소하면서도 매력적인 이름이다.

신인 작가는 알려진 것이 적다. 그러다 보니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이 곧 작가의 삶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는 어떤 삶을 살아온 사람이고, 무엇에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는 사람일까에 대한 궁금증을 소설이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소설집 속 주인공들은 나와 다른 삶을 살았다. 그들이 처해 있는 현실은 내겐 머나먼 우주와도 같은 생소한 모습투성이다. 충분히 내 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내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사람들 같았다. 아니, 관심을 가지려 노력할 마음조차 없었다. 그래서일까. 앞으로 이들을 만난다면 나는 그들에게 조금 더 관대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 삶보다 더 힘겨운 고통을 겪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에게는 위로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아픔, 상처-

 

소설 속에서 만난 아픔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린 시절의 상처였다. 아무래도 내가 세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기에 그런 마음이 들었나 보다. 부모나 나 자신의 아픔보다 아이들의 아픔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그들은 부모에 의해 이 세상에 던져졌고, 부모가 충분히 보살펴주었다면 평생 절대로 알 수 없는 아픔이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그들의 아픔에 가장 공감했다.

여름방학(김혜수)’의 주인공 는 아빠를 잃었고, 친지들을 떠나야 했으며,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엄마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 그녀는 부모로부터 안정적인 보호와 지원을 받아본 적 없는 아이였다. 그런데 그녀의 삶이 더 아프게 다가온 것은 지하 곰팡내인 군내같이 자리 잡은 결핍이었다.

 

우리는 머리를 어떻게 감아야 하는지 부모님한테서 배운 적이 없었다. 우리는 눈치껏 알아서 자라고 있었다. 그때 놓친 것들은 지금에 와서 다시 찾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다.”(27)

 

지영(이서희)’ 속 지영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이 트라우마였음을 모르고 자란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그녀의 부모가 그것을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56) 당연히 상처는 오롯이 그녀 몫이 되었고, 가장 믿고 기댈 수 있는 존재여야 할 부모가 사실상 없는 것과 같은 상황에 부닥친다. 어찌할 수 있단 말인가. 궁지에 몰린 삶은 결국 극단적인 공감과 위로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들의 선택을 우리가 함부로 판단하고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주 작은 공감이었고, 다만 그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자들이 나쁘다는 사실만 남을 뿐이다.

 

쿰쿰한 지하방에서 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나랑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줬어. 정말 힘들었겠구나, 위로해주는 거야. 누군가는 날 안아주고, 누군가는 울어주고.”(64)

 

 

-냄새-

 

아픔과 상처는 강렬한 냄새로 찾아온다. 어린 시절의 결핍을 느낀 이들은 곰팡내가 섞인 군내, 치매 부모를 보살피는 이에게는 익숙한 지린내. ‘동물원을 탈출한 고양이(김현민)’ 속 해연은 현실이 곧 냄새다. 직장은 퇴식구의 음식물이 내뿜는 악취로, 집안은 엄마가 내뿜는 익숙한 지린내로 가득하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냄새는 그녀가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어떤 몸부림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냄새 같은 존재가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소설 속 주인공과 달리 위로나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어떤 기억은 냄새로 인해 우연히 되살아난다. 억지로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냄새를 맡으면 기억이 갑자기 떠오는 경우가 있다. 현실에 매몰되어 잊고 살아가던 그 기억은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는 매개물이 된다. 해연에게는 맛동산의 피맛과 고소한 냄새가 그것이었다. 냄새는 곧 위로와 구원이었다.

 

지금보다 물엿과 땅콩 가루가 담뿍 버무려져 고소했지만, 오물오물 씹다보면 입천장이 까질 정도로 딱딱했던 맛동산은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과자였다.”(87)

 

나도 막상 지금 좋았던 기억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잘 생각나지 않는다. 희미한 장막 속에 갇혀있는 그 기억들은 나를 만들고, 내 삶을 규정하는 중요한 기초들임이 틀림없지만, 그것들을 인위적으로 끄집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젠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현실이 힘들고 괴로울 때, 냄새는 그 기억을 끄집어내 주는 장치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연과 그녀의 어머니는 맛동산이 그런 매개였다.

 

 

-말할 수 없는 비밀-

 

나이가 들수록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늘어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취업하면 당연히 직장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학생 때처럼 떠들어 댈 수 없었다. 무조건 견디거나, 그렇지 못하면 일을 그만두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 참 힘겨웠었다. ‘아이리시커피(이지연)’의 희수도 직장을 견딜 수 없기에 새로운 직장을 창출(?)해 낸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병원에서 근무하던 마지막 해, 희수는 모든 것이 소진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수위의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무뎌지는 게 단단해지는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아무 감정 없이 기계적으로 출근해서 업무를 수행하는 자신에게 느껴지는 건 자괴감뿐이었다.”(128)

 

그런데 희수가 만들어낸 새로운 직장마저도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견딜 수 없는 공간으로 변해버린다. 심지어 그 공간에서 희수가 느꼈던 감정은 절대로 다른 이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되어버린다. 희수는 과연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내지 않은 채 자신만의 비법으로 그 상황을 견뎌낼 수 있을까.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그녀에게 어떤 위로와 공감이 필요할까.

 

호날두의 눈물(양현모)’ 개저씨는 이제 내 일상이 되었다. 개저씨로 살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익숙하다. ‘경유지(전은서)’ 속 쉽게 끊어질 수 있는 관계도 여럿 경험해 봤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다는 것만 남는다. 소설 속 주인공들도 결국 친구로부터, 직장 동료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위안을 얻는다. 그게 우리가 살아갈 힘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집은 우리에게 그런 위안을 전해준다. 삶이 피폐하거나 헛헛한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위로를 얻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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