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 우리의 비밀 과외 오늘의 청소년 문학 47
이민항 지음 / 다른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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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1941, 우리의 비밀 과외_말과 글이 금지된 시대의 시인과 소녀(이민항, 다른, 2026, 초판1, 163)

 

#1941우리의비밀과외 #청소년역사소설 #청소년소설 #교과연계도서

#윤동주 #창씨개명 #순이 #어울리는 #전자공학자

 

험상궂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161, 작가의 말) 저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책은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였다. 작가가 전자공학을 전공한 개발자였다는 점도 험상궂은 얼굴만큼이나 이 시집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부조화(?) 속에서 탄생한 이 소설은 어쩐지 모든 요소가 잘 어울렸다. 1941, 암울한 역사적 현실과 윤동주의 시가 그럴듯하게 연결되었고, 윤동주의 삶과 주인공 을순의 삶이 매우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1941, 말과 글이 금지된 시대-

#창씨개명 #민족말살 #변명

 

작가는 1941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사용한다. 조선의 말과 글이 금지된 시대. 그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시인 윤동주의 삶을 을순이라는 인물의 삶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내고 싶어서일 것이다. 실제로 윤동주는 1930년대 연희전문학교에 재학하는 중 시인이 되었고, 1942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하였다. 그가 일본 유학을 위해 일본식 성명을 만든 것이 알려져 한때 논란이 되기도 하였으며, 그의 사후에 시집이 출간되었다.

작가는 그 시대를 살았던 윤동주의 시를 읽으며, 그가 느꼈을 부끄러움, 참회의 마음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했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부끄럽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던 작가는 스스로 윤동주의 시대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시대를 주인공 을순으로 살아보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작가가 부끄러워하는 윤동주의 마음을 대신 전해주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윤동주의 삶에서 그 어떤 오점조차 용납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대신 변명해주고 싶어하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상과 현실-

#이상 #목표 #현실 #욕망

 

주인공 을순의 아버지 한문주는 1940년대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지식인이었다. 그는 조선말과 글을 모르는 사람을 돕고 싶어 출판사를 차리겠다는(21) 드높은 이상을 가지고 있다. 그의 딸 을순은 그런 아버지의 꿈을 이어받기 위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매우 모범적인 학생이다. 하지만 시대는 매우 엄중했다. 그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드높은 이상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한문주는 인쇄소를 지키기 위해 총독부가 지시하는 인쇄물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을순은 하고 싶은 것이 많은 10대 소녀의 현실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가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 넓고 넓은 세상에는 어떤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 작은아버지께서 일생에 한 번은 꼭 봐야 한다고 편지로 말씀하신 뉴우요크의 자유의 여신상을 직접 보고 싶기도 하고.”(36, 시의 형태)

 

아무리 고상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라도, 드높은 이상을 품고 사는 지사(志士)라고 하더라도 결국 발은 땅에 딛고 살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생각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시인 윤동주도 당시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시를 쓰기 위해서는 현실에 어느 정도는 천착(穿鑿)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시인을 위해 준비한 작가의 변명은 아니었을까

 

 

-시를 사랑하는 마음-

##와카 #하이쿠 #내선일체

 

1940년대, 일본은 전쟁 수행을 위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말살하는 민족 말살 정책을 시행한다. 한국인들은 말과 글을 금지당했을 뿐 아니라 일본인이 되어야 하는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만이 옳은 길이었을까 작가는 반문한다. 내지인(일본인)이 되는 것이 지상 목표인 소명이의 모습을 보며, 을순이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낀다. 을순은 소명이 적극적으로 조선인임을 포기하고 내지인이 되고자 발버둥치는 모습을 아니꼽게 보면서도, 결국 그 모습이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나는 이 지점을 조금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내가 시인이 아니라 역사 교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그 시가 일본말이든 조선말이든 어떤 말로 되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시에서 중요한 건 감정이고 말은 그 감정을 담는 그릇에 지나지 않거든요.”(41, 시의 형태)

와카에 관해 학교에서 듣던 수업 자료인데 하이쿠를 처음 지은 사람이 우리 조상이라고 하더군요.”(42, 시의 형태)

조선말의 형태는 없어져도 말이 품고 있던 의미 정도는 살릴 수 있지 않을까?”(119, 복습)

 

시인은 정말 이렇게 생각할까. 정말 궁금했다. 일제강점기에 시인은 이렇게 생각하며 살았을까. 조선말이 아닌 일본말로도 그들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고 여기면서?

 

하늘을 우러러 소라오미떼

부끄러움이 없기를 하지나이요오니

죽는 날까지 사이고마데

(142, 시를 읽는 밤)

 

나는 을순이 윤동주의 시를 하이쿠로 만들어 발표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윤동주는 차마 할 수 없었던 그 행동을 을순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윤동주는 조선말로 시집을 발간하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후일을 도모한다. 하지만 을순은 일본말로 윤동주의 시를 일본인들에게 낭독하고, 그 뜻을 조선말로 다시 전한다. 아마도 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조선인과 내지인(일본인)을 연결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 교사인 나는 이 을순의 행동이 매우 이상적인 행동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현실적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절대로 이런 행동이 용납받을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시를 배우는 을순을 보며,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할 수 있었다. 1941년과 같은 그 암울한 식민지 조선에서도 을순이 시인이 된 것처럼(그것도 일본말로 하이쿠를 짓는 어려운 일을 해낸 것처럼), 지금도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작가는 잘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시인이 되고 싶은 청소년에게 이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또한, 윤동주의 시를 조금 더 세심하게 감상하고 싶은 이에게도 이 소설을 추천한다. 작가가 윤동주의 시를 당시 상황에 맞춰 생생하게 읽어낼 수 있도록 글을 써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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