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인류
이상희 지음 / 김영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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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사소한 인류 (이상희, 김영사, 2025, 11)

 

제목‘OO한 인류에서 ‘OO’에 어떤 말을 넣어야 어울릴까.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제목 맞추기 이벤트였다. 한국인 최초 고인류학을 전공한 저자는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썼을지 상상해 댓글을 달았다. 사실 내가 뭐라고 답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상희 교수가 사소라는 말을 넣은 이유가 무엇일지 대강 상상해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저자가사소(些少_작디 작다.)’ 또는, 사소(辭疏_말로 소통하다)’의 뜻을 담고자 한 것으로 생각했다. 화석을 통해 알아낼 수 있는 고인류의 모습은 아주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과 저자가 미국에서 연구자로 살아가면서 말로 소통했던 결과물들을 이 책에 담고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 둘을 연결하는 것은 저자의 사사로운 이야기(6, 프롤로그). 저자는 현재 인류의 모습을 통해 고인류의 삶을 비판적으로 복원한다. 그 과정에서 저자가 언급한 그 사소함이 우리의 편견과 지적 한계를 극복하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사소(些少)한 고인류-

 

화석으로 남은 우리의 옛 조상은 그들의 작은 파편 중의 파편 중의 파편이다. 누구의 성에도 안 차는 이 극소량의 파편이 말해주지 않는 나머지는 상상과 복원으로 메꿔진다.”(56, 선사시대의 사내들)

 

저자는 본인이 수십 년을 연구한 고인류학을 성장 중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고인류학이 가진 한계를 인정하고, 자신이 그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저자의 마음이 참 좋았다. 자신의 평생 연구를 절대적 진리라 내세워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학자이면서 자신의 성과를 겸손하게 평가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그런 겸손함이 오히려 손해였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유교 문화권에 사는 나로서는 그 마음이 저자를 더욱 위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사소(些少)’한 제목이 더욱 마음에 크게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극소량의 파편으로 만들어낸 기존의 고인류학은 과학적 사실보다는 온갖 상상과 추측과 욕망이 투영된 결과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특히 루시화석에 대해 우리가 가진 여성 편견이 어떤 것인지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고, ‘몽골이라는 인류학 용어가 우리에게 어떤 착각을 불러일으키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베이징인은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선전이 고인류에게 투영될 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고, ‘사냥이라는 말에 현대 남성 중심 사고가 반영되면서 고인류에 대한 편견이 만들어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1부 배우는 인류에서는 우리가 지금껏 상식처럼 통용되던 고인류학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사람은 올바르게 배워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이 잘 정리된 부분이었다. 기초 과학 소양이나 탐구 방법조차 제대로 배우지 않았던 저자가 고인류학을 전공하면서 느꼈던 어려움을 우리에게 쉽고 편하게 정리해준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저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가장 압축적으로 강의할 수 있는 탁월한 교수법(한국에서 주로 통용되는, 저자처럼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적합한)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사소(辭疏)한 저자-

 

엄마가 된 뒤 딸아이 또래 아이들을 보면서 부모의 성격을 가늠해 보곤 했는데, 반려견도 다르지 않은 듯 하다.”(172, 어르신이 되는 길)

 

2부 살아있는 인류에서는 정말 저자의 생생한 삶이 펼쳐진다. 결혼과 유산, 부모님의 죽음, 반려견 기르기까지 그녀가 실제 살아있는 인류로서 경험한 생각들이 나열되어 있다. 결혼과 출산을 경험한 여성이라면, 부모님의 죽음을 경험한 중년이라면, 반려견을 기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저자의 일상에도 고인류학적 깨달음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후각이 깊은 기억을 관장한다는 점(104), 후각이 시간이 흐르면 무감해져서 우리가 막강한 적응력을 갖게 되었다는 점(119)이 재미있다. 그녀는 단순히 살아있는 인류의 특징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삶을 바꿔나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함께 제시한다.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후각의 막강한 적응력을 확인한 저자는 그 적응력 자체를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식물 쓰레기에 대해 둔감해지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 자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반려견의 행동 교정 과정에서 칭찬하는 교수법(224)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강의실에서도 실천하고자 노력한다.

 

요즘은 거리낌 없이 생리대를 들고 다니고 생리 휴가나 생리통으로 인한 결석 통보도 일상적이다. 완경(폐경)도 그렇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244, 완경과 할머니 가설)

 

3부 여자라는 인류에는 특히 저자가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얻게 된 성찰을 담고 있다. 저자가 여자이기 때문에, 소수 유색인종이기 때문에 소통 과정에서 발생한 다양한 문제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공론화)하고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집안일 전쟁(191)’이다. 저자와 남편은 집안일 분담 문제로 다퉜다. 거기까지는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그 다툼 이후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두 사람이 통계학을 전공해서 일지 모르지만, 집안일을 수치화해서 분담률을 확인하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부부싸움마저도 학자처럼 연구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 그것을 부부가 공론화해서 적절한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 그 결과를 수긍하고 최종적인 합의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총천연색의 다양성-

 

저자는 고인류학이, 현대 우리 삶이 많은 편견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경계한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선배들의 노력이 자신의 기반이 되었듯, 자신의 노력이 후배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는 결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전략적이고 복잡한 본능의 총천연색 다양성을 지우고 흑백으로 표현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61, 본능이 부르는 소리)

 

여자다움은 천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그중 가부장제가 원하는 몇 얼굴만 여자다움으로 포장되어 왔을 뿐이다.”(183, 여자답다는 말)

 

목욕탕에서 마주한 몸들은 천차만별이었다. 피부색도 생김새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속옷 광고에서나 보던 몸을 가진 사람도 있었지만 대개는 팔다리의 길이에서부터 가슴, 허리, 엉덩이까지 서로 비슷한 부분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했다.”(246, 목욕탕의 비너스)

 

 

저자는 현대 인류가 다양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고인류학도 다양한 관점의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녀가 만난 세라 넬슨의 사례를 통해 젠더 관점도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경주 황남대총의 주인이 누구일지를 추론하는 과정에서도 더 크고 화려한 무덤의 주인이 꼭 남자여야만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나도 여고에서 역사를 가르치면서 매년 가졌던 의문 중 하나였다. 여성은 왜 교과서에서 주목받지 못할까. 여성은 왜 학력평가나 수능에서 출제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에 대한 문제 제기를 왜 여학생이 아닌 나만(나는 남자 교사다) 하고 있을까 생각했다. 저자의 연구 활동을 통해 더 다양하고 자연스러운 인류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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