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 용서받을 자격과 용서할 권리에 대하여
시몬 비젠탈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시몬 비젠탈은 나치 점령 시절 한 나치 군인 앞으로 불려가게 되었다.

그 나치 군인은 심한 부상 때문에 병상에서 죽어가고 있었고 임종을 앞두고 있었는데, 밖에 유대인이 일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간호사에게 그중 아무나 한 명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그 한 명이 시몬 비젠탈이었던 것이다.

죽어가는 나치 군인은 넋두리를 하듯 자기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이 유대인에게 했던 만행, 석유통이 옮겨진 건물에 유대인들을 몰아넣고 수류탄으로 불을 붙였던 것, 활활 타오르는 건물 창문으로 불이 붙은 사람들이 뛰어내린 것까지 이야기한다.

나치 때문에 편지조차 보낼 수 없는 곳으로 어머니를 보내야 했고, 유대인 수용소에서 힘든 날들을 보낸 시몬 비젠탈은 그 끔찍한 이야기를 바로 앞에서 들어야만 했다.

자리를 뜨려고 하면 나치 군인은 애원하듯 그를 붙잡았다.

나치 군인은 자신이 부상의 고통 속에서 죄의식으로 몸부림치고 있으며 진심으로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한다고, 죽기 전에 어느 유대인이든 만나면 모든 것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고 한다.

마음 편하게 죽고 싶다는 이 나치 군인에게 시몬 비젠탈은 어떤 말을 했을까?


... 그는 아무 말없이 그 방을 나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자유가 찾아온 뒤, 시몬 비젠탈은 그 나치 군인의 집에 찾아간다.


마치 영화 같은 이야기이지만 그의 행동은 어렸을 때부터 내가 접했던 이야기와는 달랐는데, 만약 내가 지금까지 접했던 이야기와 같은 흐름이었다면 시몬 비젠탈이 나치 군인을 용서하는 것으로 아름답게 포장되었을지도 모른다.

용서하지도, 비난의 말을 퍼붓지도 않고 말없이 방을 떠난 그의 행동은 그 어떤 말을 하는 것보다 내 안에서 더 큰소리를 내는 듯했다.


1부 해바라기에는 이렇게 시몬 비젠탈의 경험이 담겨 있고, 시몬 비젠탈의 이야기와 나치 군인의 이야기가 얽힌 1부는 너무 강렬해서 머리에,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 나를 어지럽게 했다.

 내가 그 죽어 가는 나치의 침대 곁에 앉아 끝까지 침묵을 지킨 것은 옳은 일이었을까, 아니면 틀린 일이었을까? 이것이야말로 한때 내 양심과 정신에 가해진 것과 똑같이,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양심에 던져지는 심각한 윤리적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처한 딜레마에 공감하면서 내 행동이 정당하다고 두둔했지만, 또 어떤 사람은 살인자가 참회를 했는데도 죽음의 순간까지 그를 편하게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어 나를 비난하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벌어진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읽은 독자들도, 나와 입장을 바꾸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p.156

이어지는 2부 심포지엄은 시몬 비젠탈이 던전 묵직한 질문에 답변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글로 채워졌다.

그 수는 보스니아인이자 유대인으로 시몬 비젠탈과 같은 질문과 딜레마를 겪었다는 외교관부터, 작가, 종교인, 언론인, 법조인, 방송인, 건축가, 평론가, 중국의 강제 수용소를 경험한 인권운동가까지 총 53명에 달한다.

참고로 2005년에 국내에 <해바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초판에 수록되었던 국내 필자의 글 세 편을 뺀 대신 그때 제외되었던 글을 모두 실어서 원저(원서)의 모습을 살린 완역본으로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가 뜨인돌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된 것이다.

이들 53인의 글은 앞서 시몬 비젠탈의 이야기를 읽고 어지러웠던 나의 머리와 가슴을 차분하게 해주는 듯했다.



내가 이 책에 처음 눈길이 간 이유는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장면 속에서 용서가 아름답게만 비치는 게 마냥 보기 좋지 않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용서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세뇌하듯 해서 용서를 하지 못하는 마음을 뒤끝이 있거나 옹졸한 마음인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게 싫었다.

또 용서가 피해자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게 모든 경우에 통용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아무튼 '모든' 용서가 아름다운가 하고 의문을 가지는 책에 손이 가지 않을 수 없었고,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이 책은 강렬하고 의미있었다.

개인은 살면서 수많은 용서와 마주하게 되며,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도 마찬가지다.

(많은 일들이 있지만 특히) 시몬 비젠탈이 겪었던 나치의 유대인 탄압과 학살과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욱 과거의 일에 대한, 현재의 일에 대한 용서를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나 또한 올해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역사와 용서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그래서 이 책이 더욱 와닿았다.


용서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므로 용서에 대한 기준과 생각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이 책이 용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고, 이 책 안의 용서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통해 나 자신을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의 미국 초판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1976년인데, 토론할 만한 요소가 많아서 교재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나도 이 책이 독서 모임이나 토론 활동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고, 교재처럼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책 추천을 해달라고 할 때 내가 자주 언급하는 책들이 몇 권 있는데, 지금부터는 이 책도 그 몇 권 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나는 이 책을 읽는 것이 당신에게도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르나르 베르베르 인생소설 - 나는 왜 작가가 되었나
다니엘 이치비아 지음, 이주영 옮김 / 예미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 낸 신간 소설 <죽음>이 또다시 베스트셀러가 된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고향인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인기가 더 많다고 알려질 만큼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나도 학창시절 점심시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기발한 상상력, 그리고 그걸 풀어내는 능력에 감탄하며 책을 읽었었다.

나도 그렇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이런 상상력은 어디서 나왔을지 궁금하지 않을까?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인생소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인생영화나 인생음악을 얘기하듯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사랑하는 소설을 다룬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이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인생을 담은 책으로, 저자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열 시간 넘게 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하고 주변인의 이야기를 더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아닌가.

감탄을 자아내던 상상력을 가진 작가가 궁금했던 나는 이 책을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중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이 소개되기도 하므로 내가 처음 제목을 보고 가졌던 인상도 영 틀린 것은 아니었다)



보통 한 사람의 이야기는 그 사람이 태어난 이후로 시작을 하는데, 이 책은 무려 수정란이었을 때부터 시작이 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말하길, 자신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를 어렴풋이 기억한다고.

황당해 보이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경우이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시작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는데, 맞춤법은 틀린 부분이 많았지만 프랑스어 선생님은 일찌감치 그의 재능을 알아보았다.

열 살이 되기도 전에 에드거 앨런 포와 쥘 베른의 영향을 받아 가짜 단서와 진짜 단서를 교묘하게 배치한 소설을 쓸 생각을 했다는 것에 나도 놀라워했다.

그리고 지금 나도 읽을 수 있을까 싶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어린 나이에 읽고 동양 철학에도 관심을 갖는 모습과 어렸을 때부터 과학자의 꿈을 가지고 있었던 모습에서 그 특유의 소설의 뿌리가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자주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거였다.

성적은 좋지 못했지만 서클을 만들어 교내지를 성공적으로 펴내기도 했고, 범죄학 학교라는 재미있어 보이는 곳에 다니기도 하는 등 여러 활동과 경험을 하며 꾸준히 글을 썼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캠핑을 하거나 비틀스의 음악을 듣는 것과 같이, 책에서는 작가로서의 베르나르 베르베르뿐만 아니라 한 남자아이의 인생을 읽을 수 있었다.

책 속의 여러 경험들과 생각들이 모여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만든 것일 테다.


책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그중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대표작인 <개미>에 대한 이야기는 뺴놓을 수 없겠다.

<개미>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독자조차 이 책만큼은 좋은 책이라고 말할 정도인데, 베르나르 베르베르에게도 특별한, 오랜 친구 같은 책으로 보인다.

어렸을 적 약한 올챙이를 강한 올챙이가 잡아먹는 올챙이의 세계보다 그와 다르게 서로 협력하는 개미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서 학창시절에는 개미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썼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방에 큰 개미집을 들여놓아 개미를 관찰하는 일을 하는 등의 모습에서 오래 전부터 가진, 개미에 대한 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미>뿐만 아니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다른 소설들도 어디에서 영감을 받았고 어떻게 쓰였는지 이 책을 읽으며 알 수 있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와의 인터뷰를 기본으로 삼았지만, 그의 이야기의 시작 또는 사이에 그 시절 프랑스가 어땠는지를 넣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그때의 분위기를 잘 떠올리게 했다는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그의 소설은 무엇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작가가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면, 그리고 (저자처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애독자는 아니더라도 작가가 글을 쓰는 과정이나 소설이 만들어지기 까지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김그린 옮김 / 모모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올해는 <데미안> 출간 100주년이면서 헤르만 헤세 탄생 140주년이라고 한다.

이를 기념하여 몇 권의 <데미안>이 출간되었는데, 이 책은 일러스트와 함께하는 <데미안>이라는 것에 솔깃했다.

솔직히 외국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어독문학과에 재학중이라는 옮긴이의 한 줄 이력을 보고 걱정을 하기는 했는데, 다른 번역본과 몇 문장만 비교해보았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 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책을 읽기 전, 책 제목은 상당히 많이 들어봤지만 내가 <데미안>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었다.

아는 건 아래의 그 유명한 문구 하나와 책의 제목 <데미안>이 화자(주인공) 이름이 아니라는 것 정도?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p.152

그리고 주워들은 얘기가 하나 있는데, <데미안>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읽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유가 짐작이 가면서도 이런 말은 은근히 <데미안>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게 해서, 도대체 어떤 작품일까 궁금해하며 책장을 펼쳤다.


책의 처음부터 화자 에밀 싱클레어가 열 살 때쯤 처한 상황 때문에 고구마가 절로 떠올랐다.

넉넉한 가정에서 자란 싱클레어가 친구와 함께 동네에서 행실이 좋지 못한 세 살쯤 위의 프란츠 크로머와 어울리게 되었을 때,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고 도둑질 한 일을 꾸며내 이야기했다가 되려 약점을 잡히고 만 것이다.

크로머는 싱클레어에게 돈을 요구하는데, 자신이 싱크레어보다 가난하다는 것으로 돈을 요구하는 것을 합리화하며 오히려 자기가 피해를 입은 양 말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분노하게 만든다.

그런데 싱클레어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도둑질을 한 게 아니라고 맹세했다는 이유로 괴로워하며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도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하고, 저금통을 몰래 털거나 집에서 잔돈을 훔쳐서 크로머에게 가져다주었으니 내 목이 턱턱 막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답답해하면서도 이 일화에 이입하며 싱클레어의 심리에 공감까지 할 수 있었는데, 우리도 한때 이런 비슷한 일을 경험하거나 생각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친구들 무리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거짓말이나 과장된 말을 하거나, 내가 잘못한 게 아니었는데도 혼이 날까 봐 말을 못 하거나,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상대방의 말에 휘둘린 적이 없었는가?


싱클레어는 스트레스로 구토까지 할 정도로 힘든 상황에서 같은 학교로 전학 온 상급생 막스 데미안을 만나게 된다.

데미안은 다른 아이들과 달리 어른스러워 보였으며 싱클레어의 눈길을 사로잡은 인물이었다.



데미안의 반과 합반 수업을 하게 되었던 어느 날, 하교를 하며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싱클레어가 공부했던 카인 이야기에 대한 대화였는데, 성서에 카인이 나쁘게 그려진 것과는 달리 데미안은 카인은 강한 사람일 뿐이고 표적은 훈장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도둑질을 했다고 하나님께 맹세했다고 괴로워하고, 가족들이 모여 기도를 하고 예배를 하는 가정에서 자란 신실한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이런 시각이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라며 경악했다.

하지만 데미안의 말은 싱클레어를 흔들었고,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나를 흔들어 깨우는 지식은 불편하더라도 매력적인 것처럼,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그런 존재가 아닌가 싶다.

데미안 덕분에 싱클레어는 크로머에게서 벗어날 수 있기도 했고 말이다.


이렇게 싱클레어의 10살 무렵부터 시작해서 방황을 하고, 사랑도 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읽으며 왜 이 책은 세상에서 정의하는 청춘일 때 읽는 게 좋다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읽어야 한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만남을 구원이면서도 그 영향이 (이야기 서술 시점인) 오늘날까지도 계속되는 완전 새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 책을 읽는 것이 당신에게 그런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 사이에서 핫한 방송 프로그램 <요즘 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에 소개되는 책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 올더스 헉스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가 그 책들 중 하나다.

이전에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와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를 비교한 만화를 보고 읽어봐야지 했는데, 이번에서야 읽게 되었다.

위에서 말한 만화를 보고 읽고 싶은 책 목록에 <멋진 신세계>를 담아둘 때도, 검색을 해보니 안정효 씨가 번역한 소담 출판사 책으로 많이들 추천해서 이 책으로 담아두었었다.

기왕 읽는 책, 역시 좋은 번역으로 읽는 게 좋지 않는가?


책을 펴면 먼저 작가가 쓴 짧지 않은 머리글이 나오는데, 이 머리글을 읽으면서 예상했던 대로 어려운 책이구나 싶어 머리를 짚었다.

만약 이 머리글이 이해가 잘되지 않고 어렵게 느껴진다면 과감하게 건너뛰고 본 소설부터 읽기를 제안한다.

나 또한 머리글을 읽으며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은 그냥 넘겼는데, 소설을 읽고서 머리글을 다시 읽으니 한결 나았기 때문이다.

소설 자체는 어렵지 않으니 머리말을 보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소설을 읽을 때는 전체적으로 책 표지와 같은 분위기로 상상하며 읽었다.

영화채널에서 잠깐 봤었던 영화 <이퀄스>와 유사한 느낌이라고 하면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올 거다.

숨 막히게 절제되고 정제된 하얀색의 느낌.



소설은 학생들에게 부화-습성 훈련 런던 본부를 한 무리의 학생들에게 안내하면서 시작된다.

책을 읽는 독자는 학생들 사이에 섞여 안내를 받으며 소설 속 세계는 어떠한지 설명을 듣는다.

이런 방법은 나중에도 쓰이는데, 꽤 자연스럽게 책 속 세계를 알아가며 이입할 수 있게 했다.

(자동차 대량 생산으로 알려진 그) 포드가 신의 자리를 대신한 <멋진 신세계>속 세상은 더 이상 모체에서 생명이 탄생하지 않는다.

대신 체외 수정으로 유리병에 담긴 태아가 부화-습성 훈련 건물에서 벨트를 통해 서서히 이동하며 여러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으로 철저하게 계급이 나뉘어서 태어나기도 전부터 계급에 맞는 기능이 설정되는데, 예를 들어 엡실론의 경우는 단순노동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일부러 알코올을 주입하여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게 해서 지능을 떨어뜨리고 키가 작은 외모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계급뿐만 아니라 직업도 어렸을 때부터 정해져서 그에 따른 최면 학습을 받는다.

보카노프스키라는 과정을 통해 수십 명의 쌍둥이를 만들어서 같은 일에 투입하여 효율을 높이기도 했다.

(...) 유리병에서 옮겨 배양할 때쯤이면 태아들은 추위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끔 그렇게 훈련이 된다. 그들은 열대 지방으로 보내서 광부와 초산 인조견 직조공과 철강 근로자가 되도록 미리 결정된 인력이었다. 나중에 그들의 이성은 육체의 판단에 따르도록 저절로 길이 들 터였다.

p.48

사람을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드는 이런 모든 과정이 존재하는 이유는 '안정'을 위해서라고 한다.

기계는 계속 돌아가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라고 말했던 것 그대로, 사람들을 기계의 부품으로 보는 것이다.

다른 특징으로는 성에 대해 심하게 관대하며 모든 사람을 공유한다는 것이 있따.

아이들은 성교 놀이를 하는데, 이를 거부하면 오히려 이상한 아이로 생각되어 심리 센터에 불려간다.

우리 세상은 일부일처제가 보편적이지만, 소설 속 세상에서는 한 사람과 4개월 이상을 만나면 걱정을 받는다.

모든 사람을 공유한다는 건 이런 의미다.

그리고 마약과 같은 기능을 가진 '소마' 복용이 일상화되고 권장되는 세상이다.

이 모든 건 감정을 부담이라고 생각하며 욕망은 의식하면 시달리게 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기괴한 일들이 벌어지는 세상이라니, 소설에 제대로 이입할 수 있을까, 과도하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설정이 아닌가,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나가면서 설득력이 있는 설정이라는걸, 심지어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닮았다는 걸 알게 된다.

특히 최면 학습에 대해 읽을 때 그랬다.

'꿰매면 꿰맬수록 가난이 깃든다'는 말을 반복해서 듣게 해서 소비를 권장하고, 계급별로 외형이 다르다는 점 때문에 외모에 대한 편견을 심어두기도 한다.

원하는 문장을 반복해서 노출함으로써 사람들의 무의식에 작용하게 하는 이 방식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알게 모르게 쓰이고 있는데, 소비를 부추기거나 외모에 대한 미의 기준을 획일화 시키는 온갖 미디어와 소셜네트워크가 떠올랐다.

마약과도 같은 소마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이는 마약만을 떠올리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현실에서 도피하게 하고 생각을 마비시키는 온갖 것들을 대표하는 것일 테다.

이처럼 곳곳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통찰력 있게 바라보고 반영하고 비판하는 부분을 읽을 때마다, 이 책이 왜 SF의 고전으로 불리며 그렇게 유명하고 추천되는지 알 수 있었다.

“죽은 다음에도 우리들이 계속해서 사회적으로 쓸모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요. 식물들을 자라게 해주니까요.”

(...)

“하지만 알파들과 베타들이라고 해서 저 아래 지저분하고 하찮은 감마들이나 델타들, 엡실론들보다 식물이 조금이라도 더 잘 자라도록 하지 못한다는 걸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져요.”

“모든 인간은 물리-화학적으로 평등하기 때문이죠.”

p.128

소설은 '버나드 마르크스'와 '헬름홀츠 왓슨'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흥미로워진다.

중심인물은 버나드 마르크스라고 할 수 있으니 그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는 알파 계급인데도 키가 작은 편이어서 이에 열등감도 가지고 있고, 이 열등감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몰라도 다른 인물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멋진 신세게> 속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의문을 느끼는 사람.

“난 차라리 나 자신 그대로 남아 있고 싶어요.” 그가 말했다. “불쾌하더라도 나 자신 그대로요. 아무리 즐겁더라도 남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p.149

그는 어느 날 레니나 크라운이라는 여성과 야만인 보호 구역에 방문하는데, 야만인 보호 구역이란 소설의 배경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일부일처제가 있고 어머니의 몸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그런 곳이다.

소설의 주요 배경인 런던에서는 어머니가 외설적인 단어로, 아버지가 모욕적인 단어로 쓰일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버나드와 레니나가 야만인 보호 구역에 가서 충격을 받는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실 나도 이 부분을 읽으며 야만성에 구역질이 날 것 같았는데 이 둘은 오죽할까.

아무튼 이 둘은 야만인 보호 구역에서 충격만 받은 게 아니라 두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야만인 구역에 살지만 야만인 태생은 아닌 사람들인 존과 린다였다.

버나드가 사는 세상에서는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는 남자인 존과 그의 어머니 린다, 이들과의 만남 이후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는 소설을 계속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은 기괴함의 탈을 써서 인간적이지 않은 것 같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소설이라고 평하겠다.

읽는 데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지명이나 셰익스피어 구절에 대해서는 세심한 각주가 있어 소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니, 두려워하지 말고 읽기에 도전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he 바른 그리스어 첫걸음 - 알파벳부터 시작하는 왕초보 독학 첫걸음! The 바른 시리즈
권세라.임혜림 지음 / ECKBOOKS(이씨케이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맘마 미아!>의 매력은 아바의 노래 외에도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영화의 배경인 그리스 섬이다!

<맘마 미아!>를 보면서 아바의 노래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배경에 반했고, 영화 촬영지인 그리스 섬은 내가 가보고 싶은 장소가 되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심을 가졌던 이후로 오랜만에 그리스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된 것이다.

훗날 그리스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간단한 인사말을 할 줄 알고 표지판 정도는 읽을 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그리스어 교재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평소에 잘만 이용했던 온라인 서점에서 마땅한 그리스어 책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스어가 한국에서 마이너한 비주류 언어인 줄은 알았지만 교재 찾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영어처럼 다양한 교재는 아니더라도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 여러 언어를 처음 접할 때 흔히 사용하는 회화/문법/단어가 통합된 교재는 있을 줄 알았는데 그마저도 없었기 때문이다.

성경을 해석하고 고대 그리스를 이해할 때 유용할 고대 그리스어인 헬라어에 관한 책은 여럿 있었는데, 고대 그리스어라... 이쪽도 흥미가 가기는 했지만 내가 원하는 건 지금 그리스에서 사용하고 있는 '그리스어'였다.

요즘은 온라인 사이트와 앱으로 여러 언어를 공부할 수 있기는 하지만 책으로 공부해야 제대로 공부한 맛이 나는데 아쉬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바로 이 책 <The 바른 그리스어 첫걸음>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보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내가 찾던 그리스어 교재였다!

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 ECK북스는 외국어 교재 전문 출판사인데, 다른 외국어 교재 전문 출판사와 차별점이 있었다.

그리스어부터 원어민이 집필한 헝가리어, 체코어나 스와힐리어 교재까지, 국내에서 마이너한 언어를 포함하여 다양한 제2외국어 교재를 출판했다는 점이다.



본격적으로 교재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알파벳, 발음과 강세, 어순 등 그리스어의 기본적인 것을 배울 수 있는 '예비 학습'부터 말해야겠다.

영어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수학 교재에서 본 알파벳도 있지만, 낯선 느낌이 큰 그리스어를 예비 학습 장으로 공부하면서 어떤 언어인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때 그리스어의 기본적인 어순은 영어와 같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글이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다지만 f와 p의 차이를 적어내지는 못하는 것처럼 한계가 분명히 있다는 걸 아는 나는, 예비 학습에서 발음을 처음 알려주는 부분에는 한글과 영어를 동원하여 최대한 발음을 정확하게 적어두려 한 게 인상적이었다.



발음에 대한 말이 나온 김에 말하자면, 홈페이지에 mp3파일이 제공되지만 교재 초반에는 전체적으로 한글로 발음이 적혀 있는데, 중반부터는 한글 발음을 적어두지 않아 어느 정도 진도가 나간 뒤에는 한글로 적어둔 발음에 의존하지 않게 했다.

이후 1장부터 15장까지로 구성된 본문은 회화 2페이지 - 문법 3페이지 - 어휘 1페이지 - 문화산책으로 동일하게 구성되었고, 모든 언어 교재의 시작인 인사와 자기소개부터 시간과 숫자에 대한 공부를 지나 아픈 상황과 같은 필수 상황과 쇼핑, 음식 주문, 길찾기처럼 여행을 갔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문장과 어휘를 간단하게 공부할 수 있다.





회화 부분에는 다이얼로그 대화 아래에 새 단어와 표현을 따로 모았고, 문법 부분은 정리가 잘 되어있는 편이었으며, 어휘 부분은 그림을 잘 활용한 게 좋았다.

각 장의 연습문제 뒤 마지막에 위치한 '문화산책' 코너는 익숙하지 않은 그리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공부하는 중간중간 환기하며 읽을 수 있었다.

교재 본문이 끝나고 연습문제 정답이 모여 있는 부분을 지나면 부록으로 기본 동사가 시제별로 정리되어 있는 것도 빼놓지 말자.



<The 바른 그리스어 첫걸음>은 전체적으로 지금까지 봤던 다른 언어 교재와 크게 다른 점 없이 무난하게 공부할 수 있는 교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게 이 책의 큰 장점이다.

많은 교재에서 비슷한 구성을 사용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간 이런 구성을 가진 그리스어 교재를 찾기가 어려웠던 만큼 그리스어에 관심을 가지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한줄기 빛이 되어줄 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교재 가격이 높게 느껴지는 감이 없지 않은데, 같은 출판사의 다른 언어 교재와 비교해보니 그리스어는 수요가 적은 외국어라는 게 가격 책정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홈페이지(eckonline.com)에서 유료 동영상 강의도 수강할 수 있으니 그리스어뿐만 아니라 다른 마이너한 비주류 언어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역시 고마운 존재가 될 것이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