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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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 사이에서 핫한 방송 프로그램 <요즘 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에 소개되는 책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 올더스 헉스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가 그 책들 중 하나다.

이전에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와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를 비교한 만화를 보고 읽어봐야지 했는데, 이번에서야 읽게 되었다.

위에서 말한 만화를 보고 읽고 싶은 책 목록에 <멋진 신세계>를 담아둘 때도, 검색을 해보니 안정효 씨가 번역한 소담 출판사 책으로 많이들 추천해서 이 책으로 담아두었었다.

기왕 읽는 책, 역시 좋은 번역으로 읽는 게 좋지 않는가?


책을 펴면 먼저 작가가 쓴 짧지 않은 머리글이 나오는데, 이 머리글을 읽으면서 예상했던 대로 어려운 책이구나 싶어 머리를 짚었다.

만약 이 머리글이 이해가 잘되지 않고 어렵게 느껴진다면 과감하게 건너뛰고 본 소설부터 읽기를 제안한다.

나 또한 머리글을 읽으며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은 그냥 넘겼는데, 소설을 읽고서 머리글을 다시 읽으니 한결 나았기 때문이다.

소설 자체는 어렵지 않으니 머리말을 보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소설을 읽을 때는 전체적으로 책 표지와 같은 분위기로 상상하며 읽었다.

영화채널에서 잠깐 봤었던 영화 <이퀄스>와 유사한 느낌이라고 하면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올 거다.

숨 막히게 절제되고 정제된 하얀색의 느낌.



소설은 학생들에게 부화-습성 훈련 런던 본부를 한 무리의 학생들에게 안내하면서 시작된다.

책을 읽는 독자는 학생들 사이에 섞여 안내를 받으며 소설 속 세계는 어떠한지 설명을 듣는다.

이런 방법은 나중에도 쓰이는데, 꽤 자연스럽게 책 속 세계를 알아가며 이입할 수 있게 했다.

(자동차 대량 생산으로 알려진 그) 포드가 신의 자리를 대신한 <멋진 신세계>속 세상은 더 이상 모체에서 생명이 탄생하지 않는다.

대신 체외 수정으로 유리병에 담긴 태아가 부화-습성 훈련 건물에서 벨트를 통해 서서히 이동하며 여러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으로 철저하게 계급이 나뉘어서 태어나기도 전부터 계급에 맞는 기능이 설정되는데, 예를 들어 엡실론의 경우는 단순노동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일부러 알코올을 주입하여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게 해서 지능을 떨어뜨리고 키가 작은 외모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계급뿐만 아니라 직업도 어렸을 때부터 정해져서 그에 따른 최면 학습을 받는다.

보카노프스키라는 과정을 통해 수십 명의 쌍둥이를 만들어서 같은 일에 투입하여 효율을 높이기도 했다.

(...) 유리병에서 옮겨 배양할 때쯤이면 태아들은 추위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끔 그렇게 훈련이 된다. 그들은 열대 지방으로 보내서 광부와 초산 인조견 직조공과 철강 근로자가 되도록 미리 결정된 인력이었다. 나중에 그들의 이성은 육체의 판단에 따르도록 저절로 길이 들 터였다.

p.48

사람을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드는 이런 모든 과정이 존재하는 이유는 '안정'을 위해서라고 한다.

기계는 계속 돌아가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라고 말했던 것 그대로, 사람들을 기계의 부품으로 보는 것이다.

다른 특징으로는 성에 대해 심하게 관대하며 모든 사람을 공유한다는 것이 있따.

아이들은 성교 놀이를 하는데, 이를 거부하면 오히려 이상한 아이로 생각되어 심리 센터에 불려간다.

우리 세상은 일부일처제가 보편적이지만, 소설 속 세상에서는 한 사람과 4개월 이상을 만나면 걱정을 받는다.

모든 사람을 공유한다는 건 이런 의미다.

그리고 마약과 같은 기능을 가진 '소마' 복용이 일상화되고 권장되는 세상이다.

이 모든 건 감정을 부담이라고 생각하며 욕망은 의식하면 시달리게 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기괴한 일들이 벌어지는 세상이라니, 소설에 제대로 이입할 수 있을까, 과도하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설정이 아닌가,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나가면서 설득력이 있는 설정이라는걸, 심지어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닮았다는 걸 알게 된다.

특히 최면 학습에 대해 읽을 때 그랬다.

'꿰매면 꿰맬수록 가난이 깃든다'는 말을 반복해서 듣게 해서 소비를 권장하고, 계급별로 외형이 다르다는 점 때문에 외모에 대한 편견을 심어두기도 한다.

원하는 문장을 반복해서 노출함으로써 사람들의 무의식에 작용하게 하는 이 방식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알게 모르게 쓰이고 있는데, 소비를 부추기거나 외모에 대한 미의 기준을 획일화 시키는 온갖 미디어와 소셜네트워크가 떠올랐다.

마약과도 같은 소마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이는 마약만을 떠올리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현실에서 도피하게 하고 생각을 마비시키는 온갖 것들을 대표하는 것일 테다.

이처럼 곳곳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통찰력 있게 바라보고 반영하고 비판하는 부분을 읽을 때마다, 이 책이 왜 SF의 고전으로 불리며 그렇게 유명하고 추천되는지 알 수 있었다.

“죽은 다음에도 우리들이 계속해서 사회적으로 쓸모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요. 식물들을 자라게 해주니까요.”

(...)

“하지만 알파들과 베타들이라고 해서 저 아래 지저분하고 하찮은 감마들이나 델타들, 엡실론들보다 식물이 조금이라도 더 잘 자라도록 하지 못한다는 걸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져요.”

“모든 인간은 물리-화학적으로 평등하기 때문이죠.”

p.128

소설은 '버나드 마르크스'와 '헬름홀츠 왓슨'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흥미로워진다.

중심인물은 버나드 마르크스라고 할 수 있으니 그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는 알파 계급인데도 키가 작은 편이어서 이에 열등감도 가지고 있고, 이 열등감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몰라도 다른 인물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멋진 신세게> 속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의문을 느끼는 사람.

“난 차라리 나 자신 그대로 남아 있고 싶어요.” 그가 말했다. “불쾌하더라도 나 자신 그대로요. 아무리 즐겁더라도 남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p.149

그는 어느 날 레니나 크라운이라는 여성과 야만인 보호 구역에 방문하는데, 야만인 보호 구역이란 소설의 배경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일부일처제가 있고 어머니의 몸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그런 곳이다.

소설의 주요 배경인 런던에서는 어머니가 외설적인 단어로, 아버지가 모욕적인 단어로 쓰일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버나드와 레니나가 야만인 보호 구역에 가서 충격을 받는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실 나도 이 부분을 읽으며 야만성에 구역질이 날 것 같았는데 이 둘은 오죽할까.

아무튼 이 둘은 야만인 보호 구역에서 충격만 받은 게 아니라 두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야만인 구역에 살지만 야만인 태생은 아닌 사람들인 존과 린다였다.

버나드가 사는 세상에서는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는 남자인 존과 그의 어머니 린다, 이들과의 만남 이후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는 소설을 계속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은 기괴함의 탈을 써서 인간적이지 않은 것 같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소설이라고 평하겠다.

읽는 데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지명이나 셰익스피어 구절에 대해서는 세심한 각주가 있어 소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니, 두려워하지 말고 읽기에 도전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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