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 용서받을 자격과 용서할 권리에 대하여
시몬 비젠탈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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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시몬 비젠탈은 나치 점령 시절 한 나치 군인 앞으로 불려가게 되었다.

그 나치 군인은 심한 부상 때문에 병상에서 죽어가고 있었고 임종을 앞두고 있었는데, 밖에 유대인이 일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간호사에게 그중 아무나 한 명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그 한 명이 시몬 비젠탈이었던 것이다.

죽어가는 나치 군인은 넋두리를 하듯 자기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이 유대인에게 했던 만행, 석유통이 옮겨진 건물에 유대인들을 몰아넣고 수류탄으로 불을 붙였던 것, 활활 타오르는 건물 창문으로 불이 붙은 사람들이 뛰어내린 것까지 이야기한다.

나치 때문에 편지조차 보낼 수 없는 곳으로 어머니를 보내야 했고, 유대인 수용소에서 힘든 날들을 보낸 시몬 비젠탈은 그 끔찍한 이야기를 바로 앞에서 들어야만 했다.

자리를 뜨려고 하면 나치 군인은 애원하듯 그를 붙잡았다.

나치 군인은 자신이 부상의 고통 속에서 죄의식으로 몸부림치고 있으며 진심으로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한다고, 죽기 전에 어느 유대인이든 만나면 모든 것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고 한다.

마음 편하게 죽고 싶다는 이 나치 군인에게 시몬 비젠탈은 어떤 말을 했을까?


... 그는 아무 말없이 그 방을 나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자유가 찾아온 뒤, 시몬 비젠탈은 그 나치 군인의 집에 찾아간다.


마치 영화 같은 이야기이지만 그의 행동은 어렸을 때부터 내가 접했던 이야기와는 달랐는데, 만약 내가 지금까지 접했던 이야기와 같은 흐름이었다면 시몬 비젠탈이 나치 군인을 용서하는 것으로 아름답게 포장되었을지도 모른다.

용서하지도, 비난의 말을 퍼붓지도 않고 말없이 방을 떠난 그의 행동은 그 어떤 말을 하는 것보다 내 안에서 더 큰소리를 내는 듯했다.


1부 해바라기에는 이렇게 시몬 비젠탈의 경험이 담겨 있고, 시몬 비젠탈의 이야기와 나치 군인의 이야기가 얽힌 1부는 너무 강렬해서 머리에,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 나를 어지럽게 했다.

 내가 그 죽어 가는 나치의 침대 곁에 앉아 끝까지 침묵을 지킨 것은 옳은 일이었을까, 아니면 틀린 일이었을까? 이것이야말로 한때 내 양심과 정신에 가해진 것과 똑같이,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양심에 던져지는 심각한 윤리적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처한 딜레마에 공감하면서 내 행동이 정당하다고 두둔했지만, 또 어떤 사람은 살인자가 참회를 했는데도 죽음의 순간까지 그를 편하게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어 나를 비난하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벌어진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읽은 독자들도, 나와 입장을 바꾸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p.156

이어지는 2부 심포지엄은 시몬 비젠탈이 던전 묵직한 질문에 답변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글로 채워졌다.

그 수는 보스니아인이자 유대인으로 시몬 비젠탈과 같은 질문과 딜레마를 겪었다는 외교관부터, 작가, 종교인, 언론인, 법조인, 방송인, 건축가, 평론가, 중국의 강제 수용소를 경험한 인권운동가까지 총 53명에 달한다.

참고로 2005년에 국내에 <해바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초판에 수록되었던 국내 필자의 글 세 편을 뺀 대신 그때 제외되었던 글을 모두 실어서 원저(원서)의 모습을 살린 완역본으로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가 뜨인돌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된 것이다.

이들 53인의 글은 앞서 시몬 비젠탈의 이야기를 읽고 어지러웠던 나의 머리와 가슴을 차분하게 해주는 듯했다.



내가 이 책에 처음 눈길이 간 이유는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장면 속에서 용서가 아름답게만 비치는 게 마냥 보기 좋지 않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용서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세뇌하듯 해서 용서를 하지 못하는 마음을 뒤끝이 있거나 옹졸한 마음인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게 싫었다.

또 용서가 피해자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게 모든 경우에 통용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아무튼 '모든' 용서가 아름다운가 하고 의문을 가지는 책에 손이 가지 않을 수 없었고,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이 책은 강렬하고 의미있었다.

개인은 살면서 수많은 용서와 마주하게 되며,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도 마찬가지다.

(많은 일들이 있지만 특히) 시몬 비젠탈이 겪었던 나치의 유대인 탄압과 학살과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욱 과거의 일에 대한, 현재의 일에 대한 용서를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나 또한 올해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역사와 용서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그래서 이 책이 더욱 와닿았다.


용서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므로 용서에 대한 기준과 생각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이 책이 용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고, 이 책 안의 용서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통해 나 자신을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의 미국 초판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1976년인데, 토론할 만한 요소가 많아서 교재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나도 이 책이 독서 모임이나 토론 활동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고, 교재처럼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책 추천을 해달라고 할 때 내가 자주 언급하는 책들이 몇 권 있는데, 지금부터는 이 책도 그 몇 권 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나는 이 책을 읽는 것이 당신에게도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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