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 주기율표 - 교과서 개념에 밝아지는 배경지식 이야기
제임스 M. 러셀 지음, 고은주 옮김 / 키출판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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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50주년을 맞이한, 알록달록한 칸에 원소 이름과 번호가 적혀서 나열된 원소 주기율표는 지적인 매력이 있다.

그래서 평소에 굿즈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던 나도 온라인 서점에서 원서 주기율표를 사용해서 흔히 굿즈라고 부르는 MD를 이것저것 만든 것을 봤을 때는 눈이 절로 갔다.

하지만 학창시절에는 외워야 할 거리를 늘리는 원소가 싫었는데, 지금은 원소들에 대해 외워야 할 필요가 없으니 마음 편하게 원소의 세계를 즐길 수 있었다.

제목만 보면 큼직하고 두꺼울 것 같지만, 실제로 손에 쥐어보면 세로 길이가 한 뼘도 되지 않아 가방에 넣고 다니며 틈틈이 읽기에도 괜찮은 책이다.



서문에서는 원소 주기율표를 처음 만든 러시아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가 어떻게 원소 주기율표를 만들게 되었는지, 원소 나열은 어떤 기준으로 했는지, 원소 주기율표가 어떻게 보완되었는지 등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원소 주기율표 이미지만 좋아했지 누가 만들었는지, 왜 이름이 원소 '주기율'표인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1869년 처음 원소 주기율표를 만든 드미트리 멘델레예프가 원소를 재배열하고 원소 주기율표를 보완했고, 1913년에는 헨리 모즐리의 연구 결과로 원소가 재배열 되었는데, 드미트리 멘델레예프가 첫 번째 주기율표를 만들었을 때 비슷한 성질을 한 원소가 '주기(period)'를 갖고 배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표가 원서 주기율표라고 이름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드미트리 멘델레예프가 재배열한 원소 주기율표나 헨리 모즐리의 연구 결과 때문에 재배열된 원소 주기율표나 중간에 빈칸들이 있었는데, 그게 당시에는 이상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원소가 발견되면서 빈칸이 알맞게 채워졌다는 것이다.

원소 주기율표는 발견되지 않은 원소를 예측하고 원자에 대해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본문은 원자번호 1번 수소부터 94번 플루토늄까지는 각 원자를 소개하는 페이지 앞부분에 한눈에 보기 좋게 원자 번호, 계열, 색, 녹는점과 끓는점, 발견된 해가 표로 정리되어 있으며, 각 2-3페이지를 할애해서 해당 원소가 어떻게 발견되었는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어디에 사용되는지, 간헐적으로는 원소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간결하게 알려준다.

예외적으로 원자 번호 57번부터 71번까지인 란타넘족 원소와 95번 이후의 원소는 훨씬 간소화되어 수록되었다.

1번부터 118번까지의 원소가 모두 수록된 만큼, 수소, 헬륨, 질소, 산소, 마그네슘, 칼슘, 철 등 그동안 여러 번 듣고 보았던 원소부터 포타슘, 이트륨, 가돌리늄, 탄탈럼, 비스무트처럼, 처음 보는 원소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었다.

쿵쿵따를 할 때 뭔지도 모르면서 타음 타자를 보내버리는 끝내기 단어로 자주 쓰였던 이리듐이나 카드뮴이 무엇인지도 이번에서야 알게 됐다.

이리듐과 카드뮴 외에도 슘, 늄, 륨, 븀, 듐, 뮴으로 끝나는 이름의 원소가 많아서 쿵쿵따 할 때 유용하겠다는 웃긴 생각도 했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원소는 마리 퀴리가 발견한 라듐이었다.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라듐은 20세기 초 시계 눈금판의 야광 페인트에 사용되었고, 라듐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암에 걸려서 소송을 하기도 했다.

이 산업재해 이야기는 <라듐 걸스>라는 책소개를 통해 알게 되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만났다.

마리 퀴리도 라듐 때문에 사망했을 거라는 얘기가 있다.

마리 퀴리가 남긴 노트와 논문은 납 상자 안에 보관되어 방사선 방호를 한 상태에서만 볼 수 있다고, 심지어 주방에 있던 요리책도 여전히 방사선을 방출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잘 알지 못하는 물질이 가지는 위험성을 알려주는 동시에 흥미를 가지게 한다.



이런 책이니 마지막에 있는 색인은 특히 더 도움이 되었다.

궁금한 원소가 있을 때는 물론이고 원소에 대한 이야기 일부만 기억이 나는데 그 원소가 무엇인지 잘 모를 때도 색인을 사용하면 됐다.

예를 들어 마리 퀴리와 관련된 원소가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을 때는 색인에서 '마리 퀴리'를 찾으면 222, 229, 231, 233페이지를 보면 된다고 알려준다.

이전에는 원소 주기율표의 이미지만 좋아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원소 주기율표에 대해 알게 되고 원소 주기율표 속 원소들을 모두 만나면서 원소 주기율표가 더 좋아졌다.


저번에 "너는 베릴륨(Be), 금(Au), 타이타늄(Ti)으로 가득 차(Full) 있을 거야. 왜냐하면 Beautiful 하니까!"라는 신박한 주접 댓글을 본 적이 있는데, 나도 그런 문장을 써보고 싶었다.

나의 주접력이 미약하여 주접을 떨 수 있는 단어는 아니지만, 인간(Ingan)은 인듐(In), 갈륨(Ga), 질소(N)로 만들어진 거 아니냐는 이상한 개그를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이번에 원소에 대해 너무 많이 읽은 모양이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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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삶
마르타 바탈랴 지음, 김정아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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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브라질에서 태어나고 자란 작가가 쓴 소설이어서인지 이야기의 배경은 수십 년 전의 브라질, 작가의 할머니 세대 시절의 브라질이다.

이 책에는 여러 여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작가는 이 책을 '무언가가 됐을 수도 있는 여성, 에우리지시 구스망에 대한 이야기 (p.51)'라고 했으니 거기에 집중하도록 하겠다.



소설은 에우리지시가 안테노르와 결혼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시작부터 난관이다.

첫날밤, 침대보에 얼룩이 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에우리지시는 남편이 된 안테노르로부터 '걸레 같은 년'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 일로 결혼이 깨지지는 않았지만 오해라는 에우리지시의 말을 안테노르는 믿지 않았고, 이후 결혼생활을 하면서 에우리지시는 가끔 위스키에 취한 안테노르로부터 그날의 일을 상기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에우리지시가 생각하기에 남편 안테노르는 좋은 남편이었다.

까다롭기는 했지만 중앙은행에 다니며 돈도 잘 벌어오고, 유흥을 즐기거나 손찌검을 하지도 낳으며, 슬하에 있는 자녀들에게도 잘 해줬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나 현실에서나, 유흥을 하지 않고, 손찌검을 하지 않고, 자녀들에게 잘해주는 것은 배우자로서, 부모로서 당연한 일인데도 이게 다른 단점을 덮을 만큼 장점이 되는 세상이라니 씁쓸해졌다.


에우리지시는 요리에 소질이 있었다.

이모의 요리책을 보고 요리를 하던 에우리지시는 요리법을 연구해서 문구점에서 신중하게 고른 노트를 채워 요리책을 출간할 꿈을 꾸게 되었다.

하지만 남편 안테노르는 주부가 출간한 책을 누가 보겠느냐며 비웃었고, 에우리지시는 자신의 요리법으로 가득한 노트를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그리고 새벽에 다시 쓰레기통을 뒤져 더러워진 노트를 닦아 책장 뒤에 숨겨놓는다.


에우리지시는 또 다른 프로젝트를 찾았다.

미용실에서 잡지를 보며 옷 만드는 것에 대해 읽었고, 그 뒤로 재봉틀을 사서 옷 만드는 일에 열중하게 된 것이다.

얼마나 열심히였는지, 살이 다 빠지고 나중에는 잡지에 나온 옷이면 다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다 만들어 더 이상 만들 것이 없게 되자, 에우리지시는 동네 여자들에게 옷을 주문받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이것도 남편 안테노르가 알게되자 반대해서 그만두게 되었는데, 이후 에우리지시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반송장이 되어 지낸다.

남편 안테노르는 좋은 아내는 남편이 편안하나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게 기운을 북돋아주고 아이를 돌봐야 하며, 남편과 자식들 외에는 쳐다도 보지 말아야 한다고 소리쳤다.

요리책 출간에 이어 옷 만드는 일까지 그만두게 되었으니 얼마나 힘이 빠지고 무기력해졌겠는가?


이쯤되면 왜 에우리지시는 남편 안테노르의 말에 제대로 반박하지도 않고 따르는 걸까 답답할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옛날에 언니 기다가 가출한 뒤로 에우리지시는 착한 딸이 되기로, 반항하지 않기로 다짐했던 게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는 에우리지시가 능력이 많다는 걸, 에우리지시의 인생이 바뀌었을 기회가 많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모두에게 인정받은 자신만의 레시피가 있는 요리책을 출간하는 일이나, 재단사를 고용해야 했을 정도로 주문이 쇄도했던 옷 만드는 일뿐만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플루트를 배웠던 에우리지시는 브라질 유명 음악가로부터 음악학교 입학을 제안받았었는데, 음악을 목적이 아닌 시집을 잘 보내기 위한 수단으로 본 에우리지시의 부모는 끝까지 반대했다.


소설은 가부장제와 남녀차별적은 부분을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위 글에 적은 것들 외에도 여자가 일자리를 찾는 것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가정주부를 무시하는 발언, 에우리지시의 딸 세실리아는 식사 후 설거지를 돕고 재봉틀로는 앞치마를 만들어줄까 생각하고, 아들 아폰수는 식사 후 아빠 안테르노와 함께 라디오를 듣고 재봉틀로는 청바지를 만들어줄까 하는 모습 등이 그렇다.


안테노르는 에우리지시의 부모 세대의 생각에서 더 나아간 것 같지만, 여전히 공부하는 것을, 대학을 좋은 곳에 시집가기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는 것을 보여줬다.


 (...) 그는 세실리아가 공부를 계속 하길 바랐다. 누가 알겠는가, 대학도 갈 수 있을지. 그러면 좋은 집에도 시집갈 수 있겠지.


p.58


만약 에우리지시가 음악학교에 진학했다면 어땠을까? 요리책을 출판했다면? 옷 만드는 일을 계속했다면?

그 기회 중 하나라도 잡았다면, 그랬다면 에우리지시의 삶은 어땠을까?

작가의 말대로 '무언가가 됐을 수도' 있지 않을까?

 자, 독자 여러분도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사실 에우리지시는 똑 부러지는 여자다. 잘 계산된 수치 몇 개만 가져다준다면 교량 하나 정도는 혼자서도 뚝딱 설계해낼 수 있을 것이다. 실험실에 자리 하나만 내준다면 백신이라도 발명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에우리지시의 두 손에 주어진 것은 더러운 팬티뿐이었다. 그녀는 그걸 눈 깜빡할 사이에 깨끗하게 빨아낼 수 있었고, 그러고 나서는 소파에 앉아 손톱을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를 생각하곤 했다.


p.17

에우리지시는 또 다른 프로젝트를 위해 타자기를 사서 글을 쓰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소설을 읽는 나는 에우리지시를 응원하게 된다.


이런 에우리지시의 이야기는 소설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어떤 여자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작가의 할머니 세대 브라질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지구 정반대편에 있는 우리나라의 할머니 세대, 어머니 세대 이야기 같은 것은 물론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내 세대에 남겨진 잔재들을 볼 수 있었다..

배경이 되는 시대도 현재가 아니고 장소도 멀지만 이야기는 결코 멀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에우리지시처럼 재능과 기회가 있는데도 지나쳐버렸을, 지나쳐야 했을 수많은 여자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더이상 이런 이야기가 누군가의 이야기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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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 용서받을 자격과 용서할 권리에 대하여
시몬 비젠탈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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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시몬 비젠탈은 나치 점령 시절 한 나치 군인 앞으로 불려가게 되었다.

그 나치 군인은 심한 부상 때문에 병상에서 죽어가고 있었고 임종을 앞두고 있었는데, 밖에 유대인이 일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간호사에게 그중 아무나 한 명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그 한 명이 시몬 비젠탈이었던 것이다.

죽어가는 나치 군인은 넋두리를 하듯 자기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이 유대인에게 했던 만행, 석유통이 옮겨진 건물에 유대인들을 몰아넣고 수류탄으로 불을 붙였던 것, 활활 타오르는 건물 창문으로 불이 붙은 사람들이 뛰어내린 것까지 이야기한다.

나치 때문에 편지조차 보낼 수 없는 곳으로 어머니를 보내야 했고, 유대인 수용소에서 힘든 날들을 보낸 시몬 비젠탈은 그 끔찍한 이야기를 바로 앞에서 들어야만 했다.

자리를 뜨려고 하면 나치 군인은 애원하듯 그를 붙잡았다.

나치 군인은 자신이 부상의 고통 속에서 죄의식으로 몸부림치고 있으며 진심으로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한다고, 죽기 전에 어느 유대인이든 만나면 모든 것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고 한다.

마음 편하게 죽고 싶다는 이 나치 군인에게 시몬 비젠탈은 어떤 말을 했을까?


... 그는 아무 말없이 그 방을 나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자유가 찾아온 뒤, 시몬 비젠탈은 그 나치 군인의 집에 찾아간다.


마치 영화 같은 이야기이지만 그의 행동은 어렸을 때부터 내가 접했던 이야기와는 달랐는데, 만약 내가 지금까지 접했던 이야기와 같은 흐름이었다면 시몬 비젠탈이 나치 군인을 용서하는 것으로 아름답게 포장되었을지도 모른다.

용서하지도, 비난의 말을 퍼붓지도 않고 말없이 방을 떠난 그의 행동은 그 어떤 말을 하는 것보다 내 안에서 더 큰소리를 내는 듯했다.


1부 해바라기에는 이렇게 시몬 비젠탈의 경험이 담겨 있고, 시몬 비젠탈의 이야기와 나치 군인의 이야기가 얽힌 1부는 너무 강렬해서 머리에,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 나를 어지럽게 했다.

 내가 그 죽어 가는 나치의 침대 곁에 앉아 끝까지 침묵을 지킨 것은 옳은 일이었을까, 아니면 틀린 일이었을까? 이것이야말로 한때 내 양심과 정신에 가해진 것과 똑같이,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양심에 던져지는 심각한 윤리적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처한 딜레마에 공감하면서 내 행동이 정당하다고 두둔했지만, 또 어떤 사람은 살인자가 참회를 했는데도 죽음의 순간까지 그를 편하게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어 나를 비난하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벌어진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읽은 독자들도, 나와 입장을 바꾸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p.156

이어지는 2부 심포지엄은 시몬 비젠탈이 던전 묵직한 질문에 답변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글로 채워졌다.

그 수는 보스니아인이자 유대인으로 시몬 비젠탈과 같은 질문과 딜레마를 겪었다는 외교관부터, 작가, 종교인, 언론인, 법조인, 방송인, 건축가, 평론가, 중국의 강제 수용소를 경험한 인권운동가까지 총 53명에 달한다.

참고로 2005년에 국내에 <해바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초판에 수록되었던 국내 필자의 글 세 편을 뺀 대신 그때 제외되었던 글을 모두 실어서 원저(원서)의 모습을 살린 완역본으로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가 뜨인돌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된 것이다.

이들 53인의 글은 앞서 시몬 비젠탈의 이야기를 읽고 어지러웠던 나의 머리와 가슴을 차분하게 해주는 듯했다.



내가 이 책에 처음 눈길이 간 이유는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장면 속에서 용서가 아름답게만 비치는 게 마냥 보기 좋지 않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용서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세뇌하듯 해서 용서를 하지 못하는 마음을 뒤끝이 있거나 옹졸한 마음인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게 싫었다.

또 용서가 피해자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게 모든 경우에 통용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아무튼 '모든' 용서가 아름다운가 하고 의문을 가지는 책에 손이 가지 않을 수 없었고,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이 책은 강렬하고 의미있었다.

개인은 살면서 수많은 용서와 마주하게 되며,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도 마찬가지다.

(많은 일들이 있지만 특히) 시몬 비젠탈이 겪었던 나치의 유대인 탄압과 학살과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욱 과거의 일에 대한, 현재의 일에 대한 용서를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나 또한 올해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역사와 용서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그래서 이 책이 더욱 와닿았다.


용서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므로 용서에 대한 기준과 생각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이 책이 용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고, 이 책 안의 용서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통해 나 자신을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의 미국 초판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1976년인데, 토론할 만한 요소가 많아서 교재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나도 이 책이 독서 모임이나 토론 활동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고, 교재처럼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책 추천을 해달라고 할 때 내가 자주 언급하는 책들이 몇 권 있는데, 지금부터는 이 책도 그 몇 권 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나는 이 책을 읽는 것이 당신에게도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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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 인생소설 - 나는 왜 작가가 되었나
다니엘 이치비아 지음, 이주영 옮김 / 예미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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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낸 신간 소설 <죽음>이 또다시 베스트셀러가 된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고향인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인기가 더 많다고 알려질 만큼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나도 학창시절 점심시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기발한 상상력, 그리고 그걸 풀어내는 능력에 감탄하며 책을 읽었었다.

나도 그렇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이런 상상력은 어디서 나왔을지 궁금하지 않을까?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인생소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인생영화나 인생음악을 얘기하듯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사랑하는 소설을 다룬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이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인생을 담은 책으로, 저자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열 시간 넘게 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하고 주변인의 이야기를 더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아닌가.

감탄을 자아내던 상상력을 가진 작가가 궁금했던 나는 이 책을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중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이 소개되기도 하므로 내가 처음 제목을 보고 가졌던 인상도 영 틀린 것은 아니었다)



보통 한 사람의 이야기는 그 사람이 태어난 이후로 시작을 하는데, 이 책은 무려 수정란이었을 때부터 시작이 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말하길, 자신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를 어렴풋이 기억한다고.

황당해 보이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경우이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시작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는데, 맞춤법은 틀린 부분이 많았지만 프랑스어 선생님은 일찌감치 그의 재능을 알아보았다.

열 살이 되기도 전에 에드거 앨런 포와 쥘 베른의 영향을 받아 가짜 단서와 진짜 단서를 교묘하게 배치한 소설을 쓸 생각을 했다는 것에 나도 놀라워했다.

그리고 지금 나도 읽을 수 있을까 싶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어린 나이에 읽고 동양 철학에도 관심을 갖는 모습과 어렸을 때부터 과학자의 꿈을 가지고 있었던 모습에서 그 특유의 소설의 뿌리가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자주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거였다.

성적은 좋지 못했지만 서클을 만들어 교내지를 성공적으로 펴내기도 했고, 범죄학 학교라는 재미있어 보이는 곳에 다니기도 하는 등 여러 활동과 경험을 하며 꾸준히 글을 썼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캠핑을 하거나 비틀스의 음악을 듣는 것과 같이, 책에서는 작가로서의 베르나르 베르베르뿐만 아니라 한 남자아이의 인생을 읽을 수 있었다.

책 속의 여러 경험들과 생각들이 모여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만든 것일 테다.


책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그중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대표작인 <개미>에 대한 이야기는 뺴놓을 수 없겠다.

<개미>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독자조차 이 책만큼은 좋은 책이라고 말할 정도인데, 베르나르 베르베르에게도 특별한, 오랜 친구 같은 책으로 보인다.

어렸을 적 약한 올챙이를 강한 올챙이가 잡아먹는 올챙이의 세계보다 그와 다르게 서로 협력하는 개미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서 학창시절에는 개미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썼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방에 큰 개미집을 들여놓아 개미를 관찰하는 일을 하는 등의 모습에서 오래 전부터 가진, 개미에 대한 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미>뿐만 아니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다른 소설들도 어디에서 영감을 받았고 어떻게 쓰였는지 이 책을 읽으며 알 수 있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와의 인터뷰를 기본으로 삼았지만, 그의 이야기의 시작 또는 사이에 그 시절 프랑스가 어땠는지를 넣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그때의 분위기를 잘 떠올리게 했다는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그의 소설은 무엇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작가가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면, 그리고 (저자처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애독자는 아니더라도 작가가 글을 쓰는 과정이나 소설이 만들어지기 까지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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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김그린 옮김 / 모모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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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데미안> 출간 100주년이면서 헤르만 헤세 탄생 140주년이라고 한다.

이를 기념하여 몇 권의 <데미안>이 출간되었는데, 이 책은 일러스트와 함께하는 <데미안>이라는 것에 솔깃했다.

솔직히 외국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어독문학과에 재학중이라는 옮긴이의 한 줄 이력을 보고 걱정을 하기는 했는데, 다른 번역본과 몇 문장만 비교해보았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 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책을 읽기 전, 책 제목은 상당히 많이 들어봤지만 내가 <데미안>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었다.

아는 건 아래의 그 유명한 문구 하나와 책의 제목 <데미안>이 화자(주인공) 이름이 아니라는 것 정도?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p.152

그리고 주워들은 얘기가 하나 있는데, <데미안>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읽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유가 짐작이 가면서도 이런 말은 은근히 <데미안>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게 해서, 도대체 어떤 작품일까 궁금해하며 책장을 펼쳤다.


책의 처음부터 화자 에밀 싱클레어가 열 살 때쯤 처한 상황 때문에 고구마가 절로 떠올랐다.

넉넉한 가정에서 자란 싱클레어가 친구와 함께 동네에서 행실이 좋지 못한 세 살쯤 위의 프란츠 크로머와 어울리게 되었을 때,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고 도둑질 한 일을 꾸며내 이야기했다가 되려 약점을 잡히고 만 것이다.

크로머는 싱클레어에게 돈을 요구하는데, 자신이 싱크레어보다 가난하다는 것으로 돈을 요구하는 것을 합리화하며 오히려 자기가 피해를 입은 양 말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분노하게 만든다.

그런데 싱클레어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도둑질을 한 게 아니라고 맹세했다는 이유로 괴로워하며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도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하고, 저금통을 몰래 털거나 집에서 잔돈을 훔쳐서 크로머에게 가져다주었으니 내 목이 턱턱 막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답답해하면서도 이 일화에 이입하며 싱클레어의 심리에 공감까지 할 수 있었는데, 우리도 한때 이런 비슷한 일을 경험하거나 생각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친구들 무리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거짓말이나 과장된 말을 하거나, 내가 잘못한 게 아니었는데도 혼이 날까 봐 말을 못 하거나,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상대방의 말에 휘둘린 적이 없었는가?


싱클레어는 스트레스로 구토까지 할 정도로 힘든 상황에서 같은 학교로 전학 온 상급생 막스 데미안을 만나게 된다.

데미안은 다른 아이들과 달리 어른스러워 보였으며 싱클레어의 눈길을 사로잡은 인물이었다.



데미안의 반과 합반 수업을 하게 되었던 어느 날, 하교를 하며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싱클레어가 공부했던 카인 이야기에 대한 대화였는데, 성서에 카인이 나쁘게 그려진 것과는 달리 데미안은 카인은 강한 사람일 뿐이고 표적은 훈장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도둑질을 했다고 하나님께 맹세했다고 괴로워하고, 가족들이 모여 기도를 하고 예배를 하는 가정에서 자란 신실한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이런 시각이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라며 경악했다.

하지만 데미안의 말은 싱클레어를 흔들었고,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나를 흔들어 깨우는 지식은 불편하더라도 매력적인 것처럼,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그런 존재가 아닌가 싶다.

데미안 덕분에 싱클레어는 크로머에게서 벗어날 수 있기도 했고 말이다.


이렇게 싱클레어의 10살 무렵부터 시작해서 방황을 하고, 사랑도 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읽으며 왜 이 책은 세상에서 정의하는 청춘일 때 읽는 게 좋다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읽어야 한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만남을 구원이면서도 그 영향이 (이야기 서술 시점인) 오늘날까지도 계속되는 완전 새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 책을 읽는 것이 당신에게 그런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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