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꿈을 그리다 - 반 고흐의 예술과 영성
라영환 지음 / 피톤치드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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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 빈센트 반 고흐는 현재 가장 사랑받는 화가가 아닌가 싶은데, 그만큼 지금까지 출판된 그에 대한 책은 그 수가 많고,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좋아하기 때문에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책은 몇 권이나 읽었다.

그렇게 그에 대한 책으르 여러 권 읽었음에도 이번에 또 <반 고흐, 꿈을 그리다>를 읽게 된 이유는 저자가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작품을 기독교와 영성이라는 다른 시간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빈센트 반 고흐는 목사의 아들이고 자신도 목회자가 되고 싶어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것은 이전에 그에 대한 책을 읽으며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뿐 그의 삶이나 작품을 종교적으로 보거나 해석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게 의아하다.

 반 고흐의 소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한 소명이 인생 전반부에서는 성직자로서, 후반부에는 화가로서 표현된 것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자를 위해 헌신하셨듯이, 자신도 예술을 통해 사회적인 약자를 섬기고자 하였다.


p.18

<반 고흐, 꿈을 그리다>는 신학자 라영환 교수가 2017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의 결과다



1부 '반 고흐 해석의 난점들'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작품에 대해 알려진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데,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해 가장 널리 알려졌다고 생각하는 이야기, 빈센트 반 고흐가 스스로 귀를 잘랐다는 이야기는 빈센트가 아니라 고갱의 증언을 바탕으로 알려졌다며 빈센트 스스로가 아닌 고갱이 펜싱 칼로 빈센트의 귀를 잘랐을 가능성을 말하며 시작한다.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한 <까마귀 나는 밀밭>은 편견 때문에 이 작품이 가지고 있던 어두운 죽음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까마귀를 보고 봄을 떠올리며 하나님이 이 땅을 새롭게 하실 거라고 쓴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를 인용하며 고통 속에서 솟아나는 힘을 말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책을 읽으며 <까마귀 나는 밀밭> 외에도 이런 식으로 그의 여러 작품들을 해석한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오늘 아침 교회 위를 날아다니는 까마귀 떼를 보았어. 이제 곧 봄이 오겠지. 종달새도 돌아올 것이고. "하나님은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신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할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처럼 하나님은 이 땅을 새롭게 하실 거야. 그리고 그 하나님은 사람의 몸과 마음도 새롭게 하실 것이고. (1877.1.21)


p.66

2부 '반 고흐가 되어 반 고흐를 보다'에서는 그의 가족관계와 성장과정을 통해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해서 더 깊게 알아본다.

여기에서 빈센트가 보낸 편지 2/3이상의 수취인일 정도로 절친한 친구이자 후원자로 잘 알려진 친동생 테오와, 빈센트가 죽고 6개월 후 테오도 따라가 뒤에 남아 빈센트의 편지와 작품을 보관하며 빈센트 반 고흐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테오의 배우자 요한나의 이야기를 읽으며 감명받지 않을 수 없었다.

요한나가 남편 테오에 대한 그리움에 빈센트와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를 몇 번이고 읽다가 빈센트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게 인상적이다.


3부 '반 고흐의 예술과 영성'에서는 노동의 신성함을 그린 밀레의 작품을 모작하고 재해석한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중 <씨 뿌리는 사람>을 시작으로, 직업적 소명설과 세속적 금욕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그의 신앙적 배경인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칼뱅주의가 그의 그림에 영향을 주었다며 빈센트 반 고흐의 유명작 <해바라기>를 비롯하여 그의 여러 작품에 대해 말한다.

 반 고흐의 생애를 다룬 BBC 다큐멘터리 <명작의 사생활: 빈센트 반 고흐>에서 그가 해바라기를 그리는 데 그토록 집착했던 이유를 흥미롭게 설명한다. 더글라스 드루윅은 해바라기가 오랫동안 기독교에서는 세상의 빛이 되신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신자들의 갈망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다고 주장하였다. 즉 해바라기는 '이미타티오 크리스티(그리스도를 본받음)'의 상징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 성경책 요한복음 1장에는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하여 해바라기 삽화가 있었다고 한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반 고흐는 어릴적부터 해바라기의 이러한 상징적인 의미에 익숙했을 것이다. 반 고흐는 해바라기가 갖는 이러한 상징성과 해바라기의 색채 그리고 태양을 바라보는 꽃의 특성을 연결시켜 영원을 사모하는 신자들의 갈망을 표현했다.


p.281-282

저자는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작품을 기독교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해석했지만, 그 해석의 근거로 빈센트 반 고흐의 서신을 인용하며 제시했다는 것은 저자의 의견에 힘을 보태준다.

물론 편지글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어서 빈센트가 솔직하게 진실만을 적었을 거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현존하는 기록 중에서 그와 가장 가까운 글일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저자는 사무실에만 앉아 있었던 게 아니라 빈센트 반 고흐의 자취를 따라 그가 머물렀던 곳과 같은 관련 장소를 직접 걸어가 보았다.



또 책 속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초기부터 후기까지의 작품과 다른 화가의 그림 몇 점,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의 생가, 그가 다녔던 서점, 그의 그림의 소재가 된 장소 등 많은 양의 그림과 사진 또한 수록되었는데, 소수인 몇 개의 그림은 감상하기에는 크기나 선명함에 아쉬움이 조금 있었지만 사진과 함께 참고 자료가 되어 책을 풍성하게 했다.



이번에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작품을 기독교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한 <반 고흐, 꿈을 그리다>를 읽으며 어둡고 광기 어린 비운의 빈센트 반 고흐가 아닌 그와 그의 작품의 다른 면모를 알 수 있었고, 이전과는 다르게 보게 되었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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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 서양철학사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부터 니체와 러셀까지
프랭크 틸리 지음, 김기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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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의 역사 입문서를 하나 읽고 다음 책으로 <틸리 서양철학사>를 읽게 되었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세 가지인데, 첫째는 이 책이 미국 대학에서 교과서로써 쓰였다는 것, 둘째는 오랜 시간 읽힌 저서라는 것이고, 셋째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인정받았다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이 쓴 글이 온전히 객관적이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먼저 수많은 정보 중에서 글에 적어 넣을 것을 고르는 것부터가 개인의 판단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객관적인 글은 존재 가능하다고 보고, 역사에서 객관성과 공정성은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틸리 서양철학사>가 객관성과 공정성을 인정받았다는 소개를 보고 관심을 가졌다.

이 특징 때문에 이 책이 미국 대학에서 교과서로 쓰이고 오랜 시간 읽혔을 것이라 생각한다.


철학 교수 프랭크 틸리가 쓴 <틸리 서양철학사> 원서(A History of Philosophy)는 1914년에 첫 출판되었다니 100년도 더 지난 책이고 개정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국내에서는 이전에 현대지성사에서 <표준 서양철학사>라는 제목으로 1998년에 출판되었던 책이 올해 <틸리 서양철학사>로 다시 출판되었는데, 국내 출판계는 넉넉지 않은 형편이어서 팔리지 않는 책은 오래 지나지 않아 절판되어 만나기 힘들기 때문에 국내 첫 출판 후 20년이 더 지난 시점에 다시 출판되었다는 사실은 이 책이 오랜 시간 읽혔다는 말을 뒷받침해 준다.


무엇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가장 큰 특징은 '교과서적'이라는 것이다.

책을 펼치고 서론을 지나면 가장 먼저 그리스 철학부터 만나게 되는데, 그리스의 환경, 정치, 문학, 종교부터 짚는 것을 보고 좋은 인상을 받았고, 특히 소개하는 철학자나 사상의 문제 또는 한계를 적은 부분은 더 관심 가지고 읽었다.

프랭크 틸리는 서양 철학의 역사 흐름 속 다양한 학파와 철학자들을 설명할 때 세부적으로 나누어 폭넓게 다루었는데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서는 신학, 물리학, 생물학, 정치학 등의 분야로 나누어 알려준다) 이러한 점도 학창시절에 공부하던 교과서를 떠올리게 했다.

부드러운 설명이 선호되기 때문에 예전과는 달리 친근한 설명을 강점으로 내새운 책들이 출간되었고 교과서라 이름 붙인 책들 중에도 딱딱함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한 책들이 존재하지만 아직도 교과서라고 하면 딱딱한 이미지가 있는데, 그러한 교과서적인 문체이지만 이런 문체는 명료하다는 장점이 있다.



<틸리 서양철학사>는 입문서보다 좀 더 구체적이고 깊이 있으면서도 서양철학사 전체를 정리할 수 있는 책을 찾는 독자가 살펴보기에 알맞은 책으로, 철학의 흐름과 변화를 따라가는 것은 생각보다 흥미로웠으며 여러 학파와 철학자들의 사상을 만나면서 내 사고가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읽기에 쉽지만은 않은 책을 계속 읽어나갈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이 책은 이렇게 눈으로 한 번 읽고 끝낼 게 아니라 교과서로 공부하던 때처럼 필기하며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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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하고 찬란한 고대 로마 - 전 세계의 박물관 소장품에서 선정한 유물로 읽는 문명 이야기 손바닥 박물관 1
버지니아 L. 캠벨 지음, 김지선 옮김 / 성안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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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역사 중에서도 사람들이 주목하는 역사가 있는데, 바로 고대 최대의 제국인 로마 제국으로 잘 알려진 고대 로마 시대가 그렇다.

이전부터 수많은 책이 출간되었을 정도로 관심받는, 찬란했던 고대 로마의 역사는 어떤 형태로 나아 전해지고 있을까.

이 책은 고대 로마의 시작부터 몰락까지를 시기별로 나누어 그 시기 고대 로마 역사를 설명한 후에 본격적으로 다양한 유물을 큼직하고 선명한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그간 사진이나 그림이 중요한 책임에도 흐릿하거나 꺠진 이미지가 수록되어서 아쉬웠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데, 이 책은 그런 아쉬움 없이 큼직하고 선명한 사진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이 더 특별한 이유는 '손바닥 박물관' 시리즈라는 이름에 있다.

사진으로 본 유물을 박물관이나 유적지에 가서 직접 보았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크기가 크거나 작았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나는 교과서 속 사진으로만 보았던 옛 장신구들을 박물관에 가서 직접 보았을 때 하고 다니기 힘들었겠다 싶을 정도로 커서 놀랐던 적이 있고, 반대로 생각보다 유물이 작아서 김이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유물의 크기를 수치고 적어 알려주는 책도 있지만 아이들은 수치를 봐도 잘 와닿지 않을 것이고, 성인인 나에게도 '손바닥 박물관' 시리즈가 사용한 방법이 더 와닿았다.


그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 유물과 사람의 손바닥을 비교하여 유물의 크기를 가늠하게 한 것이다.

유물 사진 옆에 아이코으로 해당 유물과 사람의 손바닥 실루엣이 그려져 있어 그것을 보면 유물의 크기가 어느 정도 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크기가 큰 유물들은 손바닥이 아니라 사람 실루엣과 비교해놓아서 크기를 가늠하는 데 더 도움이 되었다.

내가 앞서 말한 짧은 경험담에서 드러나듯 크기는 유물의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유물의 크기를 대략적으로 아는 게 좋다.

그리고 손바닥이나 사람으로 크기를 비교하는 건 자연스럽게 직접 유물을 마주할 때를 상상하게 해서 더 재미있게 유물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다.

그 밖에도 유물의 출처, 연도, 소장된 박물관 등의 정보와 함께 이 유물이 어디에 쓰였는지와 특징을 알려주는데, 사진 속 유물을 보며 유물 이야기를 읽으면 고대 로마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 책으로 고대 로마인들이 실생활에서 사용하던 소품부터 번쩍이는 금으로 된 장신구와 섬세한 조각이나 벽화 같은 예술 작품까지 만나볼 수 있는데, 나는 사람 냄새가 날 것만 같은 유물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예를 들면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했을 때 탄화되어 모양이 그대로 보존된 '탄화된 빵'과 '고양이 발자국이 찍힌 로마 타일'이 그러한데, 지금도 길을 걷다가 보면 콘크리트 반죽이 굳기 전에 동물이나 사람이 밟아서 발자국이 나 있는 걸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풍경이 그 옛날에도 있었다니 고대 로마가 더 친숙하게 느껴졌다.

보다시피 로마 타일에 찍힌 고양이의 발자국이 귀엽기도 하고!



그리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나처럼 고대 로마의 도서관에 관심이 갈 거라 생각하는데, 도서관 규칙의 일부가 새겨진 '판타이노스의 도서관 규칙들' 대리석 명판을 보며 당시 도서관의 모습을 조금 상상해볼 수 있었다.

이 도서관에 대해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건물에서 책을 가지고 나가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했다고 하니 참고 도서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다른 의미로 기억에 남은 유물은 '탄화된 아기 요람'이다.

이 유물도 베수비오 화산 폭발 때 즉시 탄화되어 보존된 물품 중 하나인데, 화산 폭발 당시 잠들어있던 아기의 유해와 함께 발견되었다는 사연에 유물의 모습이 더 쓸쓸해 보였다.

또 아기 요람 하니 생각난 건데, 뜨개질로 만들어진 '어린아이의 왼쪽 양말'은 보존이 잘 되어서 고대 로마의 것으로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고, 뜨개질의 역사가 내 생각보다 더 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로마 저주 서판'은 그 이름부터가 무시무시한데, 납조각에 신이 앙갚음 해주기를 바라는 내용을 적은 것으로 로마 제국 전역에서 흔히 사용되었으며 암호로 적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렇게 흥미로운 유물들을 큼직하고 선명한 사진으로 만날 수 있는 책이어서 나처럼 고대 로마에 관심이 있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가 중요한 요즘이니 박물관이나 유적지에 가는 기분을 이 책으로 내보는 것도 좋겠다.

'손바닥 박물관' 시리즈로는 현재 성안북스 출판사에서 이 <위대하고 찬란한 고대 로마>와 <인류 문명의 보물 고대 그리스> 두 권이 출간되었고 앞으로 <품위 있고 매혹적인 고대 이집트>와 <대담하고 역동적인 바이킹>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나는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고대 이집트의 유물이 담긴 <품위 있고 매혹적인 고대 이집트>를 만나기를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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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작은 아씨들 1 (1868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초호화 벨벳 에디션) - 영화 원작 소설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박지선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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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은 세계명작동화나 전집 사이에 끼어 있던 작품 중 하나이니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동화나 축약본으로 먼저 만난 독자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되는데, 나도 어렸을 적에 <작은 아씨들>을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따뜻하고 좋았던 것으로 남아있고, 무엇보다 여성 서사를 좋아하기 때문에 <작은 아씨들>을 완역본으로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영화 <작은 아씨들>의 개봉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영화 원작 소설인 <작은 아씨들>을 출판한 이때가 적기로 보였다.



다양한 출판사에서 출간된 <작은 아씨들>은 저마다 특징이 있어서 비교하며 고르는 재미가 있다.

더스토리 출판사에서는 두 가지 버전으로 출판되었고, 패브릭 재질의 커버와 1896년 오리지널 일러스트가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 끌려 '1868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 초호화 패브릭 벨벳 에디션 양장본'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렇게 선택한 책의 실물을 보고 소설을 읽으면서 이 책은 '클래식한 느낌을 제대로 살렸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했는데, 1868년 초판본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고 손에 착 감기는 패브릭 커버는 책을 손에 들자마자 반하게 했고, 책 내부의 1896년 일러스트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고전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만끽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가름끈도 있고 표지의 금박이 떨어지는 등의 문제도 없었기 때문에 완성도도 만족스러웠다.


<작은 아씨들>은 원래 1부와 2부가 따로 출간되었지만 이후 합본으로 출판되는 경우가 많은데, 합본은 두께가 상당하기 때문에 두꺼운 책이 부담스럽다면 1부와 2부가 따로 출판된 더스토리 출판사 버전을 고려해볼 수 있겠다.




소설은 남북전쟁(1861년~1865년) 당시의 미국으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던 때 마치 가의 집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마치 가에는 메그, 조, 베스, 에이미 네 자매와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가 화목하게 살았는데, 아버지인 마치 씨가 사정이 나쁜 친구를 돕다가 재산을 잃은 데다 전쟁 때문에 집을 비워서 사정이 넉넉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네 자매의 어머니 마치 부인은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먹을 것과 옷과 땔감을 내어주며 적극적으로 돕는 사람이었고, 자매들도 어머니의 제안에 크리스마스 아침 식사를 더 가난한 이들에게 양보하고 빵과 우유로 배를 채우고, 용돈을 모아 어머니에게 드릴 소박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장만하는 등 따뜻한 마음을 가진, 마음은 부자인 가족이었다.


네 자매 중 첫째 메그(마거릿)는 이전에 부족하지 않았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어서 가난을 더 힘들어했으며, 화려한 삶을 동경하는 예쁜 열여섯 살 소녀다.

반대로 열다섯 살 둘째 조(조세핀)은 조세핀이라는 이름보다 조로 불리기를 원했고, 얌전한 숙녀는 되고 싶지 않은, 소위 말해 왈가닥이다.

조는 작가 루이자 메이 올콧이 투영된 등장인물인데, 그렇지 않아도 조가 지니고 있는 특징은 명랑소녀 이야기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했다.

열세 살 셋째 베스(엘리자베스)는 수줍음이 많지만 다른 자매들이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 인형들을 보살필 정도로 따스한 마음씨를 가졌고, 생각이며 행동이 사려 깊고 어른스러워서 왜 모두에게 사랑받는지 이해가 갔다.

막내 에이미는 고상함과 우아함을 추구하며 허염심이 있지만 귀여운 열두 살 꼬마 숙녀다.

이들의 어머니 마치 부인은 자애롭고 현명하면서도 듬직하고, 마치 씨는 전쟁으로 집을 비웠음에도 아내와 네 딸을 그리워하며 사랑을 담아 편지를 보내는 아버지다.


마치 가의 옆집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옆집 소년 로런스' 로리도 뺴놓을 수 없는 등장인물인데, 몸은 약하지만 예의 바른 조 또래의 소년이다.

조와 로리가 친해진 작은 파티에서는 로리의 배려심이 돋보이고, 조도 로리의 외로운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주기 때문에 둘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게 된다.

 (...) "멋진 폴카야. 가서 춤추지?"

 "네가 같이 가면." 로리는 프랑스식으로 허리를 약간 굽히는 낯선 인사를 하며 대답했다.

 "난 안 돼. 메그 언니한테 춤 안 추겠다고 했거든 왜냐하면......."

 (...)

 "음, 난로 앞에 서 있는 별난 버릇 때문에 드레스를 태워먹을 적이 몇 번 있는데 이것도 그랬어. 말끔하게 고친다고 고쳤는데도 자국이 보여서 언니가 아무도 못 보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 웃고 싶으면 웃어도 돼. 웃긴 거 나도 알아."

 하지만 로리는 웃지 않고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그 표정에 조가 당혹스러워하고 있을 때 그가 매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괜찮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줄게. 저기 긴 복도에서 당당하게 추면 돼. 아무도 못 볼 거야. 가자."


p.68-69

 

1896년 오리지널 일러스트 덕분에 자매가 함께 모여 앉아 식사를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하고, 베스의 피아노 반주와 함께 노래를 하는 등의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풍경과 분위기, 그리고 소설의 배경인 1860년의 모습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고, 일러스트가 소설의 분위기를 얼마나 좌지우지 할 수 있는지도 다시금 느꼈다.

 "얘야, 이 놀이를 하는데 나이는 상관없단다. 방식만 다를 뿐 언제나 하고 있어. 우리 짐은 여기에 있고 앞에는 길이 펼쳐져 있지. 그리고 선함과 행복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무지와 실수를 수없이 극복하고 진정한 천상의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평화로 이끄는 안내자란다. 자, 나의 작은 순례자들아, 순례를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해보렴. 놀이가 아니라 실제 삶에서 말이야.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보자."


p.27

이상적인 모습의 가족이어도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짐'이 있는데, 네 자매가 성장하는 것을 순례자가 천상의 도시로 가기 위해 죄라는 짐을 짊어지고 떠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천로역정>에 비유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작은 아씨들>을 읽으면서 네 자매의 이야기 자체를 즐길 뿐만 아니라 내가 짊어지고 있는 짐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됐다.

그리고 소설의 배경이며 소설이 출간된 시기인 1860년대에 여성들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당시로서는 진취적인 여성의 모습이었다는 소설 속의 조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번역에 대해서는 영어 원서와 일일이 비교해보지 않아서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소설을 읽는 데 번역이 방해되지 않았고, 벙어리장갑이 아니라 엄지 장갑으로 번역했다는 것에서 역자가 이야기처럼 따뜻한 시선으로 번역했다는 것을 짐작게 했다.


150년 이상이란 긴 시간동안 사랑받아온, 사랑스러운 소설을 클래식한 느낌을 한껏 살린 멋진 디자인의 판본으로 만날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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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신과 영웅들 - 레전드 오브 레전드
댄 그린 지음, 데이비드 리틀턴 그림, 고정아 옮김 / 제제의숲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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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적에 만화로 그려진 그리스 로마 신화가 유행해서 여러 번 보았는데, 만화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그때 알게 된 신화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도움이 되고 있다.

신화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영화, 소설, 그림, 조각, 음악과 같은 다양한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어 녹아들었기 때문에 예술을 깊이있게 즐기기 위해서는 신화를 알아야 하기도 하지만, 이는 오래전 인류의 생각이 반영된 신화가 현재 인류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신화는 더 중요해진다.

'판도라의 상자'같은 단어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같은 용어도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알면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알 수 있는데, 신화가 다양한 분야와 언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려주는 예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경험했던 것처럼 지금의, 그리고 앞으로의 아이들도 신화를 알았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이 책이 의도한 것처럼 다양한 신화를 즐겼으면 좋겠다.



<세계의 신과 영웅들>은 아이들이 자기 전에 가볍게 읽기 좋게, 재미있게 신화 이야기를 맛볼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의 큰 특징은 다양한 지역의 신화와 전설(설화)를 다양한 글 형식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친근한 구어체를 사용해서 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게 하며, 영웅 오디세우스와 함께 트로이 전쟁에 참여했다는 할아버지가 해주는 모험 이야기를 듣는 손자의 시점에서 글을 쓰거나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와 현장에 나가있는 기자가 생방송 연결을 했다는 재미있는 설정, 그밖에도 경기 해설, 일기, 안건이나 고민 상담과 그에 대한 답변을 담은 편지 형식 등 다양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사이사이 사용해서 읽는 이를 지루하지 않게 했다.

그리고 유머감각이 드러나는 글에 더해 글과 잘 어울리는, 선명하고 시원시원한 그림은 책을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다양한 스토리텔링 방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의 신화와 설화를 만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신화보다도 더 잘 알려진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이아손과 황금 양털’, ‘하늘이 맺어 준 인연’은 네이버 웹툰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 속 등장인물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되는 ‘메데이아’와 ‘프시케’가 등장하므로 그 웹툰을 즐기는 독자라면 반갑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만 메데이아는 조금만 등장하는데, 이후 메데이아의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요즘 케이블 TV 영화 채널에서 디즈니 영화 <모아나>를 여러 번 방영해주었는데 그 <모아나>의 모티브가 된 마우이 이야기를 마우이 누나가 들려주는 ‘마우이의 1001가지 재주’는 영화를 본 아이라면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신화는 그저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 속 여러 이야기 중 나에게 가장 강렬했던 이야기는 ‘노래하고 싶었던 아르마딜로’이다.

이야기 속 아르마딜로는 귀뚜라미처럼, 개구리처럼, 참새처럼 노래를 하고 싶었지만 아르마딜로가 노래를 부르면 동물들은 비웃거나 자리를 떴고, 그래서 아르마딜로는 여러 날을 굴러서 현명한 할머니를 찾아갔다.

아르마딜로의 사연을 들은 현명한 할머니는 노래를 하게 되는 대가가 가혹할 것이라고 했지만, 아르마딜로는 어떠한 대가도 치르겠다고 말했다.

아르마딜로가 치르게 된 가혹한 대가란 무엇이었을까?

...현명한 할머니는 아르마딜로를 죽여서 그의 등껍질로 차랑고라는 악기를 만들어 연주했다.

아르마딜로의 등껍질로 만든 차랑고는 다른 동물 모두가 음악을 들으러 찾아올 만큼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고 한다.

이야기는 충격적이지만, 그 때문에 때로는 원하는 걸 얻어도 생각했던 방식과 다를 수 있다는, 노래하고 싶었던 아르마딜로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현명한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였어요. 아르마딜로는 멋진 동물이었거든요. 하지만 할머니가 할 일은 결정되었어요. 할머니는 아르마딜로를 죽여서 그 털투성이 등껍질로 차랑고*를 만들었어요. 현명한 할머니가 차랑고를 연주하자, 아주 아름다운 소리가 났어요. 모두 그 소리에 감탄했지요.

 "아아, 아르마딜로가 노래하는 법을 배웠구나!"

 사방에서 온 동물이 아르마딜로의 음악을 들으러 왔어요.

 

다른 사람들이 너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다고 단정 짓는 말을 듣지 마세요. 그 사람들이 뭘 알겠어요? 하지만 명심해야 할 건 때로는 원하는 걸 얻어도, 자신이 생각했던 방식과 다를 수 있다는 거예요!


*아르마딜로의 등껍질에 열 개의 줄을 달아서 만드는 악기.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 지역에서 사용한다.

p.170

책 뒷부분에는 그림지도와 사진을 넣어 각 지역별 문화 및 신화의 특징을 한 바닥(그러니까 두 페이지) 분량으로 간단히 소개했는데, 나는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문명이 흥미로워 보였다.



<세계의 신과 영웅들 (레전드 오브 레전드)>은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다양한 신화와 전설을 맛보게 하는 것이 목적으로 보이는 만큼 깊이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만큼 유머감각 있고 색다른 방법으로 풀어냈다.

다만 몇 개의 이야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이야기인지 추측할 수밖에 없었는데, 어디에서 비롯된 이야기인지를 '길가메시와 엔키두’ 이야기처럼 글을 시작할 때 언급하거나 제목 아래에 써두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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