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의 기록
존 버거.장 모르 지음, 민지현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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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는 눈


<급류>의 작가 정대건은 창작자들이 가장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결국 매일 보던 것을 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보는 눈,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세계 앞에서 다시 멈춰 설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이 책<세상 끝의 기록>을 권한다. 세상을 분석하거나 해석하기 이전의 시선, 설명보다 경탄이 먼저 도착하는 상태 말이다. 이 책을 펼치면 독자는 무언가를 배우기보다, 잊고 있던 어떤 것을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여행이란 결국 새로운 장소로 이동하는 일이 아니라, 익숙한 세계를 다시 바라보는 방식의 변화라는 사실을 이 책은 상기시킨다.



2. 이방인의 시선, 그러나 그리움이 스며드는 풍경


다큐작가 장 모르가 세상의 변방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과 존 버거의 글을 함께 엮은 책이다. 장 모르의 사진은 늘 한 걸음 물러나 있다. 대상에 지나치게 다가가지도, 멀찍이 도망치지도 않는다. 그 미묘한 거리는 사진 속 인물과 풍경을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삶으로 남겨둔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는 늘 이방인의 시선이 담겨 있으면서도 따뜻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머물다 떠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리움 같은 감정마저 은근히 배어 나온다. 존 버거의 글은 그 감정을 확대하지 않는다. 읽는 이가 스스로 그 여백을 느끼도록 내버려 둔다.

떠나기 전 사진을 많이 빼앗겼다고도 기록되어있는데 그의 여행지 중에는 북한도 있다. 몇 장 되지 않지만 그가 평양에서 찍은 사진들에는 괜히 마음이 찡해지기도 한다. 가까이 두고도 가지 못하는 나라. 이 사진에 담겨 있는 이들은 지금쯤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3. 여행은 장소가 아니라 기억으로 완성된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자신의 기억으로 미끄러진다. 낯선 도시의 골목을 보다가, 문득 오래전의 여행의 공기와 냄새, 함께 걷던 사람의 얼굴이 겹쳐진다. 책을 읽다보면 이 사진들이 정작 어디서 찍혔는지는 크게 중요치 않다. 다만 작가의 카메라가 머물던 그 시간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그래서 <세상 끝의 기록>은 여행기라기보다는 어떤 기억의 기록에 가깝다.

좋은 사진집이 늘 그렇지만 이 책도 한번의 호흡에 다 읽히지는 않는다. 어쩌면 한 장을 보고 덮었다가, 며칠 뒤 다시 펼치게 되는 책이다.

그 느린 리듬 속에서 독자는 그의 발걸음과 겹쳐지는 자신만의 여행과 삶의 여정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4. 책을 덮은 뒤에 시작되는 또 하나의 여정


책을 덮으니 아주 먼 곳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매일 보던 풍경인데도 잠시 낯설게 느껴졌고, 그 낯섦이 이상하게 반가웠다.

세상의 끝의 풍경. 이 책의 제목이다. 당신에게 세상 끝의 풍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지구 반대편의 황량한 풍경일 수도, 이미 지나온 삶의 어느 평범한 하루일 수도 있다.

지금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면. 그래서 오늘 당신의 삶을 좀 더 새롭게 보고 싶다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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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독서 ㅣ 교양 100그램 1
김영란 지음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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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영란의 <인생 독서>


김영란 전 대법관이 쓴 <인생 독서>는 창비에서 나온 얇고 가벼운 ‘교양 100그램’ 시리즈 중 한 권이다. 두꺼운 책, 큰 책만 보다 일단 책을 집어 드는 것 자체가 부담이 없다. 하지만 이 작은 책에 담긴 내밀한 이야기들은 그가 왜 평생 ‘쓸모없는 공부’에 매달렸는지를 조근조근 우리에게 들려준다.

김 전 대법관은 법률을 다루며 살았지만, 판결문에는 도움이 안 되는 시와 소설을 주로 읽었다고 고백한다. 시나 소설의 아름다운 문장은 감동을 줄 뿐 판결문을 쓰는 데는 무용했고, “문학 작품을 판결문에 인용하는 ‘파격’은 허용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는 시력이 나빠질 때까지 독서를 멈추지 않았고 끝내 이를 포기하지 못했다고 회고한다.



2.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된 독서


김영란에게 독서는 “나 자신을 찾는 공부”였다. 그는 어린 시절 책 읽기가 사고의 틀을 형성해 주었고, 사춘기에는 자신의 한계를 일깨워 줬으며 성인이 된 뒤에는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주었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독서가 직업적 성공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진 않았지만, 그 자체로 자기를 닦는 과정이었다고.

한 인터뷰에서 그는 책을 통해 세상을 납득하는 도구를 얻었고 상처를 치유했으며, 책을 통해 “경의를 배웠다”고 말했다. 이런 고백은 독서가 추상적인 교양이나 단순한 취마가 아니라 그의 삶에서 얼마나 구체적인 의미를 지녔는지 보여준다.



3. 쓸모없는 공부의 쓸모


<인생 독서>의 중심 키워드는 ‘쓸모없는 공부’다. 그는 일견 쓸모없어 보이는 독서가 실제로는 자신의 삶과 세계를 이해하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을 줬는지 이야기한다. 그는 독서를 “돈을 버는 일이 아니기에 쓸모없다”고 표현하면서도, 그 무용한 공부가 오히려 자신을 치유하고 성찰하게 했다고 말한다. 책을 읽는 행위는 반복적인 명상이나 수행과도 같아 한 장 한 장 넘기며 마음을 가다듬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독서는 나에게 수행”이라는 그의 고백도 제법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작가는 3대에 걸친 여성 작가들의 목소리를 따라가면서 루이자 메이 올컷과 브론테 자매, 버지니아 울프, 도리스 레싱, 마거릿 애트우드,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 커트 보네거트, 안데르센 등 다양한 작품을 읽으며 자신의 내면을 비춰 보인다.

그는 이들 책을 통해 세계의 불의를 발견하고, 상상력이 어떻게 한계를 뛰어넘는지를 체험한다.



4. 독서가 준 위안과 공감


책은 추억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서가 그의 인간적 품성과 공감 능력을 어떻게 길러주었는지를 담담히 보여준다.

TV가 없던 어린 시절 책만이 유일한 놀이터였던 그는 책을 늘 집안 곳곳에 놓아두고 틈만 나면 읽었고 여행에 가져갈 책을 옷보다 더 신중하게 고를 만큼 열혈 독서가였다고 한다.

그리고 책은 슬플 때마다 위로가 되었고, 글을 쓸 때 적확한 문장과 표현을 찾는 데 길잡이가 되었으며 책을 통해 공정함과 공감을 배우면서 어쩌면 판결에 더욱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도 말한다.

이런 개인적 기억과 독서 경험의 교차는 <인생 독서>를 단순한 독서 목록이 아니라 한 인간의 성장 기록으로 만든다.



5. 궁극적으로 나를 위한 독서


독서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는 결국 “독서는 궁극적으로 나를 위한 것”이라고 귀결된다. 그는 법률가로서, 사회적 인물로서, 그리고 독자로서 끝없는 기대와 압박 속에서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책을 읽으며 자신을 찾았다. 그는 믿었다. 독서는 세상 기준으로는 보상이 없는 일일지 모르지만 누구에게나 필요한 내적 근육을 키워준다고.


짧은 책이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인생 독서>는 무겁지 않게 읽히면서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짧아서 그런지 한 글자 한 글자마다 작가의 생애가 포개져 있는 느낌이다. 책 속에는 삶의 기쁨과 상처, 성장과 후회가 스며 있고, 무엇보다도 “책을 읽는 것이 그 자체로 저를 닦는 것”이라는 진심 어린 고백이 있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독서 경험을 떠올릴 것이고 아직 독서를 시작하지 않은 이라면 “인생을 지탱하는 기둥”으로서 책을 만나보라는 따뜻한 권유를 듣게 될 것이다.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책린이라면 입문서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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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북극곰의 파업을 막아라 - 기후 붕괴 현장에서 마주친 인간과 비인간동물들
남종영 지음, 불키드 그림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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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팍런에서 시작된 기후 이야기


프로야구 삼성 팬들을 긁는 말이 있다.


‘라팍런’


라이온즈 파크 외야가 짧아서 다른 구장에서는 뜬공으로 끝날 타구가 여기서는 홈런이 된다는 농담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농담을 아주 진지하게 뒤집는다.


문제는 구장이 아니라 기온이라고. 대프리카라 불리는 대구의 더운 공기, 기후 위기로 달라진 조건이 공의 비거리를 바꾸고 있다는 이야기다.

웃자고 던진 말을 다큐로 받는 것도 모자라 이왜진이 되어버린 기후 위기의 실상.

이 책은 이렇게, 일상의 사소한 농담 하나가 진짜로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들려주며 우리를 끌고 간다.



2.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사건의 중심에는 ‘비인간’이 있다


<엉망진창 행성조사반 북극곰의 파업을 막아라>는 최신 기후 이슈를 다루지만 방식은 독특하다.

다른 곳에서 늘 보이는 숫자 대신 에피소드는 사건 파일 형식으로

인간뿐 아니라 닭, 북극곰, 명태 같은 비인간 존재들이 제보자이자 증인으로 등장한다.


북극의 바다얼음이 줄어들며 사냥터를 잃은 북극곰, 수온 상승으로 자취를 감춘 명태, 서늘한 기후를 잃어버린 사과까지.

이들은 모두 인간의 편리함이 남긴 흔적 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존재들이다.


1979년 이후 매년 제주도 42개 면적에 해당하는 북극의 바다얼음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 사건 개요로 시작하는 북극곰의 다이어트 이야기.

얼핏 가볍게 들리지만 읽다 보면 저자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그가 얼마나 쉬운 이야기들을 하면서까지 우리에게 들려줘야 했던 기후 위기의 진짜 문제는

이것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이젠 우리의 식탁, 우리의 동네, 우리의 일상 한가운데에 이미 들어와 있다는 점이다.



3. 기후 위기는 ‘현상’이 아니라 ‘구조’다


이 책은 나가가 기후 위기를 단순한 자연재해나 과학 문제로 축소하지 않는다.

투발루가 그렇다.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나라.

하지만 저자는 한 번 더 묻는다. 정말 그 비극은 기후 때문이기만 한가.


산업도 자원도 없는 나라, 오래전부터 이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청년들,

그리고 ‘2050년 투발루 소멸’이라는 자극적인 이미지 소비.

여기에는 기후 위기 위에 덧씌워진 불평등한 자본 구조와 정치의 문제는 가뜩이나 가라앉는 투발루를 소멸로 몰아가고 있다.


그린워싱 사례도 마찬가지다.

‘저탄소 소’를 내세운 육류 기업의 광고는 어쩌면 친환경의 탈을 쓴 기만에 가깝다.

스파 브랜드가 내세우는 재활용 캠페인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이러한 기만은 재생 에너지조차 피해 가기 힘들다.

풍력 발전소 건설로 삶의 터전을 잃는 순록과 원주민의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 쉽게 ‘옳다’고 말해온 선택들을 다시 보게 만든다.



4. 1.5도 이후의 세계, 절망 말고 다른 상상


이미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6도 상승했다고 한다.

1.5도를 넘기지 말자고 세계가 한 약속은 이미 깨졌고, 티핑 포인트는 넘어섰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멸망뿐일까.

이 책은 그 질문 앞에서 과도한 비관도, 근거 없는 낙관도 경계한다.

인류는 과거 더 뜨거운 지구에서도 살아남았고, 문제는 ‘끝’이 아니라 ‘어떻게 적응하고 전환할 것인가’에 있다.


에필로그에 그려진 2100년의 세계는 암울하지만 동시에 희미한 가능성을 남긴다.

기술 중심의 해결이 아니라 생태계 복원과 연대, 가난한 나라와 비인간 존재의 권리를 먼저 고려하는 느린 전환.

그 변화는 거창한 영웅담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는 선택에서 시작된다.



5. 공감과 연대, 기후 문해력이 남기는 것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은 분명하다. 기후 위기를 이해하는 힘, 즉 기후 문해력은 숫자를 외우는 능력이 아니라 구조를 읽고 타인의 자리에 서보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엉망진창인 행성 위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묻는다. 그 엉망진창 속에서 우리는 어떤 편에 설 것인가.


북극곰의 파업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쩌면 더 많은 기술이 아니라, 더 많은 공감일지도 모른다.

책장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 보라.


우리가 웃고 넘겼던 말들 뒤에 어떤 온도가 숨어 있는지, 어제 지나친 나의 발걸음 아래로 어떤 생이 밀려나고 있는지..

지금 이 행성의 조사반이 되어야 할 차례는 어쩌면 우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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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과 삶 사이에서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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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또 한겨레다


읽다가 헛웃음이 나왔다. 뭐랄까. 한겨레 책을 읽다 보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카테고리가 있다,

그건 내가 예전에 그토록 살고 싶었고 쓰고 싶었던 글. 나의 청춘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때 미쳐 살았던 세계였다.

난생처음 걸린 A형 독감으로 집에 격리되어 할 수 있는 거라곤 읽고 쓰는 것밖에 없던 막다른 골목에서 이 책을 만났다.

책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을 거절할 수 있었다면 거절했을까. 잘 모르겠다.


<앎과 삶 사이>에서는 그렇게, 내가 한동안 멀찍이 떨어져 두었던 질문을 다시 내 앞으로 끌어당겼다. 알고 있는 것과 살아내는 것 사이의 거리,

정의를 말해왔던 언어와 지금의 나 사이의 어색한 침묵 같은 것들.

내 헛웃음 뒤에는 오래 묵은 마음의 찌꺼기 같은 게 남아있다.

그리고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지점을 비켜 가지 않았다.



2. 어중간한 사람들


이 책이 가장 집요하게 붙드는 존재는 ‘악인’도 ‘영웅’도 아니다. 저자가 반복해서 호출하는 건 늘 ‘어중간한 사람들’이다.

법을 지키며 자기 이해를 추구하고, 대체로 무해하고 선한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다수의 얼굴들. 바로 우리다.

조형근은 거악과 구조를 비판하면서도, 그 구조가 유지되는 데 기여하는 개별 행위자로서의 소시민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그리고 저자 본인 또한 “이런 세상을 만든 데 나의 기여분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한다.

그래서 불편하다. 동시에 너무 정확해서 외면하기 어렵다.


이 책은 누군가를 죄인으로 몰아붙이기보다, 책임의 결을 세밀하게 나눈다. 모두의 책임이라는 말이 결국 아무의 책임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저자는 다시 ‘작은 개인들’을 정치적 주체로 호명한다. 독일에서 나치가 등장했고, 1987년 군부 독재가 무너졌으며, 2024년의 내란이 막혔던 이유를 그는 이 ‘어중간한 사람들’의 선택에서 찾는다.



3. 앎과 삶은 다르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자.


책은 2019년부터 2025년까지 매체와 개인 SNS에 발표된 글을 묶은 칼럼집이다.

그래서 책은 늘 구체적인 장면에서 출발한다.

집, 가족, 이웃, 마을, 친구, 그리고 동시대를 통과한 사건들. 세월호와 이태원, 미얀마와 팬데믹, 산재 사고와 내란 이후의 광장까지.

다만 저자는 언제나 한 발 더 들어간다. 사건을 소비하지 않고 구조만 탓하지 않으며, 그 안에서 ‘나’의 위치를 다시 묻는다.


읽다 보면 저자는 '글은 자신의 삶보다 정의로워서 쓰기 어렵다'고 몇 차례 고백한다.

나도 그랬다. 말은 언제나 삶보다 앞서 있었고, 그 말에 미치지 못하는 나의 일상은 늘 어딘가 비겁해 보였다.

이 책은 그 간극을 없애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간극 앞에 고민하는 이가 나뿐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었다.

그렇다고 쓰는 걸 멈추어야 할까.

삶보다 정의로운 글 때문에 때로 민망하고 부끄러울 때도 많지만,

그 민망함을 걱정하는 마음이 또 나를 잘 살게 하기도 한다.

저자는 마치 내게 그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하는 듯했다.



4. 어떻게 살아야 할까


책의 마지막은 결국 이 질문으로 돌아온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거창한 해답은 없다.

대신 저자는 냉소로 물러서지 말자고, 죄책감과 화해하는 데서 멈추지 말자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내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만 진보적인’ 태도가 얼마나 많은 문제를 방치해왔는지를 짚으면서도,

변화의 가능성은 여전히 ‘작은 사람들’에게 남아 있다고 믿는다.


조형근의 글은 불편하지만 차갑지 않고, 비판적이지만 쉽게 단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군가를 각성시키기보다는, 스스로를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게 만든다.

앎과 삶 사이에서 자꾸만 중심을 잃는 사람에게, 이 책은 정답 대신 질문을 건넨다.

그리고 그 질문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 우리와 함께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확인시켜 준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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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너는 더 강한 사람 - 어차피 지나고 나면 먼지 같은 일이야
김묘정 지음 / 필름(Feelm)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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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살아내야 했던 사람의 기록


이 책은 '잘 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끝까지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썼던 사람의 기록이다.

우리는 흔히 저자를 ‘마이오헤어 원장’,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AthanBe 대표’라는 말로 요약한다.

젊은 나이에 성공한 사업가, 자수성가의 아이콘 같은 수식어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표면적인 성취를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리에 오기까지, 아니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할 것 같던 수많은 날들을 이야기한다.


이 에세이는 불운한 어린 시절, 관계에서 받은 상처, 반복되는 불안과 이별을 지나온 한 사람의 삶을 담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과거를 감동적으로 포장하거나 눈물겨운 서사로 끌어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말한다. 그 시간들은 분명 힘들었고, 버거웠고, 자주 무너졌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내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고.


이 책에서 말하는 ‘강함’은 타고난 성격도, 특별한 능력도 아니다. 잘 해내지 못해도 오늘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 그거다.



2. 어느 날 갑자기는 없고, 매일만 남는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은 분명하다. ‘어느 날 갑자기는 없다.’ 우리는 종종 인생을 바꿀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린다.

단번에 상황을 뒤집어 줄 기회, 모든 걸 해결해 줄 사건을 상상한다.

하지만 김묘정은 그 환상을 단호하게 걷어낸다. 그의 삶을 바꾼 것은 기적 같은 하루가 아니라, 수없이 반복된 평범한 하루들이었다고 말한다.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또 살아내고, 그렇게 쌓인 시간들이 결국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사실 이 이야기는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당연한 이야기를, 실제로 살아낸 사람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그래서 공허하지 않고, 쉽게 흘려보낼 수 없게 만든다.



3. 강해진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리지 않았을 뿐


저자는 ‘강해지는 법’ 대신에 ‘스스로를 버리지 않는 법’을 이야기한다.

외로움과 두려움, 자기부정의 시간을 통과하며 배운 교훈이 그것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때의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말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그 힘겨운 삶을 통과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증언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 책은 자기 계발서처럼 행동 지침을 나열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 이렇게 하면 강해진다는 공식도 없다. 대신 독자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다.

지금의 당신은 오늘의 당신을 버리지 않고 있는지. 충분히 힘들어하면서도, 그래도 한 걸음은 내딛고 있는지.



4.여전히 진행 중인 이야기


<생각보다 너는 더 강한 사람>이 특별한 이유는, 이 이야기는 지금도 이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극복 완료’ 상태로 정리하지 않는다.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고민하고,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남겨둔다.

그래서 이 책은 성공한 사람의 회고록이 아니라, 지금도 길 위에 있는 사람이 건네는 응원처럼 읽힌다.


프롤로그에서 말하듯, “내가 나를 믿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는 문장은 그래서 더 무겁다.

이 문장은 이미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보다, 지금 겨우 하루를 버텨낸 사람에게 더 깊이 닿는다.

오늘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사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오늘을 지나왔다는 사실을 이 책은 조용히 상기시킨다.



5.오늘을 살아낸 사람에게


이 책은 가만히 앉아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잘 해내지 못해도, 그래도 매일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이야기다.

좌절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 하루를 버텨낸 사람에게, 원하는 목적지를 향해 여전히 걸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만큼 무너진 사람에게 이 책은 말한다.


이미 충분히 잘 버텨왔다고.

그리고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라고.


복지관에서 이런저런 봉사활동을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한 번쯤은 마주칠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인 크게 받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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