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묻는 사회 -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와 멸칭 문화
정회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이의 의미


최근에는 좀 지양하는 분위기지만 한국 사회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몇 살이세요?”라고 묻는 순간은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한 인사와 동시에 서열과 호칭, 관계의 방식이 정리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책은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미처 돌아보지 않았던 그 장면을 다시 보게 한다

저자는 <나이 묻는 사회>에서 노인을 "틀딱충", 청년을 "급식충"으로 부르는 것이 익숙해져 버린 우리의 현실을 톺아보고 한국 사회에 깊게 스며든 연령주의와 연령차별주의를 이야기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나이를 이해의 기준으로 삼기보다, 누군가를 더 빠르게 분류하기 위한 기준으로 사용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잼민이'부터 '틀딱충'까지.

세대를 향한 수많은 말들은 한국 사회가 서로를 어떻게 소비하고 판단하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풍경이다.



멸칭은 왜 생겼으며 무엇을 겨누는가


책은 이런 멸칭의 발생과 진화를 단순한 언어 현상이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서 바라본다.

이 멸칭은 계속해서 진화하는데 '영포티', '젊꼰'같이 세대별로 생산된 수많은 표현들은 결국 특정 연령대를 웃음거리이자 조롱의 대상으로 만든다.

노인은 시대에 뒤처진 존재, 청년은 무능한 세대, 어린이는 미숙한 존재로 규정하고 표현된다.


빠른 경제 성장 속에서 경쟁과 효율을 중시해온 사회, 그리고 서열을 중시하는 문화는 이를 비꼬는 인터넷 밈을 타고 나이를 삶의 과정이 아닌 평가의 기준으로 만들어 버렸다.

어쩌면 지금도 생산되는 이 멸칭들은 특정 세대를 향한 농담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생산성과 쓸모로 판단하려는 사회의 오래된 습관일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나이로 규정되는 삶의 경계와 제도적 차별


이렇게 저자는 멸칭의 문제를 언어에서 끝내지 않고 제도와 구조로 확장해 보여준다.

정년제, 임금피크제, 노키즈존, 노시니어존처럼 우리는 이미 일상 곳곳에서 나이를 기준으로 누군가를 제한하거나 배제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런 환경아래 노년은 쇠퇴로, 어린 세대는 미성숙으로 쉽게 규정된다.


심지어 "젊으니까 괜찮다", "나이 들었으니까 물러나야 한다"는 식의 사고는 각종 주거 정책과 제도 안에도 스며 있다.

문제는 이런 기준들이 단순한 구분을 넘어 세대 간 단절과 혐오를 강화한다는 사실이다.

나이는 원래 삶의 흐름을 설명하는 정보일 뿐인데, 어느새 기회와 권리, 자원의 배분 기준이 되어버렸다.


책은 이 지점을 날카롭게 짚는다.

나이가 사람을 설명하는 요소일 수는 있어도, 사람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나이 전쟁을 멈추기 위한 연대의 조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나이 전쟁'을 멈출 수 있을까.

책은 문제를 세대 간 연대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그 실마리를 찾는다.

서로 다른 세대가 자연스럽게 만나고 이해할 수 있는 환경, 어린 세대와 노년 세대가 분리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구조, 그리고 교과서와 미디어 속 부정적 언어를 바꾸는 일.


결국 중요한 것은 접촉과 경험이다.

자주 만나고, 함께 살아보고, 서로를 이야기 속 대상이 아니라 실제 얼굴로 마주할 때 편견은 조금씩 힘을 잃는다.

세대를 향한 혐오는 대개 경험 부족에서 시작된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자라 그 사랑을 알고 있는 아이는 그렇게 쉽게 노인세대를 재단하지 못한다.


나이를 기준으로 선을 긋는 사회보다, 서로의 시간을 이해하려는 사회.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출발점일지도 모르겠다.



나이는 숫자인가, 경계인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우리는 쉽게 말하지만 과연 그러한지 한번쯤은 돌아보면 좋겠다.

우리는 그 숫자 위에 너무 많은 편견과 기대, 역할을 덧씌우며 살아간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시대에 뒤처진 존재로 여기고, 어리다는 이유로 가볍게 소비하는 순간,

언젠가 우리는 그 칼날이 내게도 돌아오는 걸 경험하게 될 것이다.


모두는 늙고, 한때는 어린아이였다.

너무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는다.


그래서 이 책은 묻는다. 우리는 왜 나이를 묻는가. 이해하기 위해서인가, 구분하기 위해서인가.

책을 덮고 나면 그 익숙한 질문 하나의 무게가 좀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업(生業) - 그 징하고도 찡한 노동의 표정들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늘에 가려진 노동을 비추다


은유의 인터뷰집 <생업>은 1년 6개월 동안 17명의 밥벌이와 삶을 들여다본 기록이다.

급식 노동자, 배달 노동자, 청년 농부, 타투이스트, 변호사까지.

어쩌면 매일 스쳐 지나가면서도 제대로 바라본 적 없던, 이른바 그림자 노동이라 불리는 직업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 책은 노동의 본질을 다시 묻는다.


우리는 늘 거대한 성공담과 눈에 띄는 성취를 좇고 있지만 사실 세상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이들의 손 위에서 더 단단히 굴러간다.

각자의 삶의 무게를 질어진 채 매일매일 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

우리가 매일 마주치지만 쉽게 지나쳐버리는 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떠받치는지,

밥 한 그릇을 통해 인간다움을 어떻게 회복하는지 이 책은 집요할 만큼 깊게 들여다본다.


책에서 저자가 정의하는 밥은 단순한 생계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사랑의 실행이고, 흩어진 존재들을 다시 모으는 강력한 연결이다.

그렇게 이 책은 높은 연봉이나 번듯한 명함 대신,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권리를 새로운 척도로 세운다.



먹이는 사람들


1부는 밥을 짓고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학교 급식실에서 하루 수천 인분의 밥을 짓는 김규희 님은 돈을 벌기 위해 출근하지만 결국 책임감으로 아이들의 한 끼를 완성한다.

무른 밥 한 술이 콘크리트 같은 편견을 깨고, 따뜻한 밥 한 끼가 흩어진 존재들을 다시 모은다는 믿음.

그 믿음은 생각보다 강하다.


청년 농부 김후주 님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농사를 자신의 생계에서 끝내지 않고 농촌 현실을 세상에 알리는 목소리가 된다.

우리밥연대의 김주휘 님은 세월호 유가족과 해고 노동자 곁에서 자신의 돈으로 밥을 차려낸다.

요양 보호사 강석경 님은 요양원을 삶의 끝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는 집으로 바꾸려 애쓴다.


그렇게 이들의 노동은 먹이는 일을 넘어 사람을 살리는 일에 가까워진다.

밥의 힘을 믿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결국 무엇으로 살아가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짓는 사람들


2부는 표현하고 창작하며 세상을 다시 짓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오랜 무명의 시간을 견딘 배우 이정은 님은 노동의 가치를 잊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꾸준히 연대한다.

안예은님은 사랑받는 가수이지만 그 사랑을 자신만의 성공으로 두지 않고 다시 세상으로 환원하려 한다.

타투이스트 황도 님은 불법이라는 낙인 속에서도 자기 몸과 기술로 자기다움을 지켜낸다.

유튜버 김가인 님은 소비보다 기부를, 편리보다 지속가능함을 고민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자기 일의 의미를 자기 안에만 가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표현하고 창작하고 나누는 방식으로 세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려 한다.

생계와 철학이 겹쳐질 때 일이 단순한 직업을 넘어 삶의 태도가 된다는 걸 그것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한다.



아우르는 사람들


3부에 이르면 이야기는 개인의 생존을 넘어 공동체로 확장된다.

청소 노동자 김덕경 님은 긴 세월 빚을 감당하며 살아냈고, 자신의 삶을 넘어 더 큰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박미숙님 은 과로사한 아들의 죽음이 다음 세대의 징검돌이 되기를 바라며 거대한 구조와 맞선다.

노동 변호사 윤지영 님은 안정된 길 대신 불안정 노동자들의 편에 서고 국어 교사 박민영 님은 아이들에게 교과서만이 아니라 자신이 사는 동네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친다.

유금분 님은 마음의 병을 개인의 약함으로 보지 않고 사회 구조의 문제로 바라본다.


들은 하나같이 개인의 안위를 넘어 '같이'를 고민한다.

타인을 자기 삶의 영역 안으로 받아들이며, 살 만한 세상의 경계를 조금씩 넓혀간다.



밥을 통한 연대


<생업>을 읽다 보면 밥과 밥벌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개인의 생존이면서 동시에 연대의 방식.


이름 없는 직업인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느끼는 자부심과 고단함은 결국 나를 키워낸 타인의 노동을 돌아보게 만든다.

급식실의 밥, 파업 현장의 밥, 요양원의 밥, 농촌의 밥. 그 한 끼 한 끼가 모여 세상을 지탱한다.


그리고 문득 나는 지금 누구의 노동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너무 익숙해서 보이지 않았던 수많은 손길들, 그 노동의 결을 이해하는 순간 세상을 보는 태도도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일과 인간의 존엄


<생업>은 밥벌이가 어떻게 삶과 연결되는지, 노동이 어떻게 인간을 만드는지 묻는다.

17명의 인터뷰이는 모두 세상이 말하는 방식의 특별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세상을 떠받치는 이들의 생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오히려 더 존엄하고, 단단하고, 아름답다.


“혼자만 먹으면 도치기, 나누어 먹으면 부챗님”이라는 말처럼 결국 사람은 함께 먹고, 함께 살아갈 때 더 인간다워진다.

책을 덮고 나면 배달 노동자에게, 청소 노동자에게, 요양 보호사에게 조금 다른 마음으로 인사하고 싶어진다.


일은 밥벌이지만 밥벌이에만 머물지 않는다.

밥을 함께 먹는 삶, 서로를 먹이고 살리는 삶.


이것이 <생업>이 끝내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노동의 얼굴일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의 삶을 살아라 - 니체가 전하는 삶의 자세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회주 옮김 / 데이지북스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시 시작하기에 늦은 때는 없다


우리는 자주 그렇게 살아간다.

‘어쩔 수 없잖아’, ‘다들 이렇게 사니까’ 같은 익숙한 말들로 오늘을 넘긴다.

해야 할 일이 많고, 책임질 것도 많고, 지금껏 여기까지 왔는데 갑자기 방향을 묻는 일이 사치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니체는 그런 익숙함을 경계했다. 이 니체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너의 삶을 살아라>도 그 익숙한 체념의 문장을 단호히 끊어낸다.

남이 정해준 삶의 궤도에서 잠시 내려와 정말 나의 길이 무엇인지 다시 보라고 말한다.


저자는 니체의 방대한 철학을 해설하려 들지 않는다.(하긴 그런 책이라면 요즘 팔리지도 않겠지)

대신 니체가 끝내 붙들었던 삶의 태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오늘의 언어로 건넨다.

감사하게도 짧다. 한 챕터가 한 장 남짓이라 어디를 펼쳐도 부담 없이 읽힌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잠들기 전 침대맡에서도 좋다.

사실 철학이란 게 원래 그렇다. 책상 위에서의 어려운 말잔치가 아니라 매일 나의 방향을 점검하는 것이 철학이다.

지친 일상 속에서 저자는 "지금, 나는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라 말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차근차근 답하는 니체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할 용기를 불러낸다.



관계와 감정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법


책은 다섯 개의 파트로 이어진다.

1부가 낡은 습관을 벗고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면, 2부는 관계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에게 더 깊이 닿는다.

좋은 사람이 되려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순간들, "아니요"라고 말하지 못해 마음이 닳아가던 시간들.

읽다 보면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내 이야기 같은 문장들이 툭 튀어나온다.


'너를 실망시키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네가 쥐고 있던 기대다.'


솔직히 돌아보자. 진짜 내가 실망한 건 사람이었나 아니면 그를 통해 무언가를 얻고자 한 내 기대였나.


3부에서는 슬픔과 불안, 죄책감 같은 감정 역시 없애야 할 결함이 아니라 해석해야 할 신호라고 말한다.

흔들리는 건 실패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아직 변화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니체의 이야기는 숨도 못 쉴 정도로 강력하기도 하지만 또 반대로 그 강함 속에 위로가 있다.

뭐랄까. 저자가 읽어내는 그 시선이 좋았다.

삶이 무너지는 것 같던 순간조차 결국 나를 다시 세우는 재료가 될 수 있다. 사실 이걸 믿지 못하면 우리 정말 어렵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당신의 삶은 당신이 결정한다


4부와 5부는 삶의 주도권에 대한 이야기다.

니체는 늘 말한다. 남들이 써준 대본대로 살지 말라고. 익숙하고 안전한 길이 반드시 나의 길은 아니라고.


돌이켜 보면 우리는 너무 자주 타인의 기준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적당한 성공, 적당한 관계, 적당한 인정. 그런데 그 모든 기준을 통과해도 이상하게 공허할 때가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방향을 틀게 만든다.

'나는, 나에게서 시작된다.'


낡았지만 발에 잘 맞는 구두처럼 익숙한 삶을 벗어나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결국 삶의 항로를 바꾸는 건 거대한 사건보다 오늘의 작은 결단일지도 모른다.

타인을 바꾸려는 집착보다 나를 바꾸는 용기.

완벽한 삶을 기다리기보다 불완전한 지금 이 순간을 선택하는 태도.

사실 이게 우리를 살게 한다.



영원회귀와 자기극복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나는 철학도였고 심지어 니체에 미쳐 4년을 보낸 사람이다.

니체를 여러 번 읽었지만 늘 쉽진 않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너무 높았고, <선악의 저편>은 날카로웠으며, <도덕의 계보학>은 내가 믿던 기준 자체를 흔들었다.

<이 사람을 보라>는 뭐랄까.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나를 가르쳤던 철학 선생님들의 4년이 모이지 않고는 아마 니체를 현대인이 공부하는 건 거의 불가능할 거다.

그래서 행여 니체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 <너의 삶을 살아라>부터 출발하기를 권한다.


이 책은 니체 철학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니체가 가진 핵심적인 삶의 태도, 영원회귀와 자기극복을 오늘의 질문으로 바꿔놓는다.


'지금의 선택이 영원히 반복돼도 괜찮은가?'


당신은 지금 하는 일, 지금의 관계, 지금 반복하는 태도를 나는 정말 사랑할 수 있는가.

영원회귀는 결국 삶을 향해 온전히 '예'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초인이 되라는 선언보다, 적어도 비겁하게 살지는 않겠다는 다짐에 더 가깝다.

당신은 어떠한가?



삶의 설계자는 결국 나 자신이다


늘 이야기하지만 좋은 책은 위로보다 질문을 남긴다.


<너의 삶을 살아라>도 그런 책이다.

짧고, 쉽게 읽히고, 어디를 펼쳐도 금세 닿지만 질문과 생각할 거리는 꽤 많다.


남이 써준 대본에서 벗어나 나만의 길을 다시 쓰는 것. 불안하더라도, 흔들리더라도, 그 삶을 내 것이라 부를 수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

삶은 단 한 번뿐이지만 질문은 끝없이 가능하다.


니체는 끊임없이 묻는다.

당신은 지금 정말 당신의 삶을 살고 있는가.

어쩌면 삶은 좋은 날이 오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내가 선택하는 순간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당신이 선택할 차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케터의 팔리는 글쓰기 - 20년 차 문학동네 마케터의 영업비밀 本(본)
정민호 지음 / sbi(한국출판인회의)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펼치기 전부터 조금 궁금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하루키의 <1Q84>, 김훈의 <하얼빈> 같은 빛나는 책들 뒤에서, 대체 어떤 사람이 그 문장을 ‘읽고 싶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출판 마케터는 아닐지언정 북콘텐츠를 만드는 한 사람으로서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마법을 부리길래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한 문장에 쓱 지갑을 열까 이 방법은 알아야겠다 싶기도 했다.


좋은 책은 작가가 쓰지만, 읽히는 책은 누군가의 질문과 전략을 통과해 세상에 나온다.

그리고 이 <마케터의 팔리는 글쓰기>는 바로 그 보이지 않던 자리, 책과 독자 사이에서 수많은 문장을 다듬어온 사람의 기록이다.


짱고책방을 오래 운영하며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과, 읽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지금도 나는 우왕좌왕한다.

단순히 내 감정을 쏟아내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결국 누군가의 클릭과 머무름까지를 고민해야 하는가.


물론 어떤 길을 선택하든 내 몫이긴 한데 이 책은 팔리는 글을 쓰고 싶다면 그에 꽤 분명한 답을 준다.

팔리는 글을 쓰려면 단순히 잘 쓸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서 움직이는지 알아야 한다.


첫 번째, 사람은 정보보다 ‘나와 닿는 이유’에 반응한다


책이 가장 먼저 말하는 건 독자의 니즈다.

조금 뻔한 말 같지만, 우리는 글을 쓰며 이 단순한 사실을 자주 잊고 살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우리는 종종 ‘내가 좋았던 것’을 말하려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래서 그게 지금 내게 왜 필요한데?’를 먼저 묻는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그랬다.

육아가 버거운 날엔 위로를 찾고, 일이 흔들리는 날엔 방향을 찾는다.

결국 책도, 콘텐츠도, 브랜드도 지금의 나와 연결될 이유가 있을 때 비로소 손이 간다.


짱고책방 서평을 쓰며 종종 가장 잘 쓰이는 부분도 결국 줄거리의 요약보다 “이 책이 지금 내 삶에 왜 들어왔는가”를 적은 부분이었다.

문득 드는 생각은 독자의 욕망을 읽는다는 건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결국 사람의 하루를 이해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마케팅은 부풀리는 일이 아니라 본질을 더 또렷하게 만드는 일


이 책에게 가장 좋았던 문장은 이것이었다.

‘1을 100으로 부풀리는 게 아니라, 1이 왜 1인지 알리는 것.’


수많은 캠페인을 기획하며 제일 어려웠던 건, 그리고 결국 중요했던 건 감동을 쥐어짜 내는 일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진심, 이미 존재하는 필요, 이미 존재하는 가치를 더 잘 보이게 하는 일이다.


저자는 글도 그렇다고 한다.

어그로로 가득한 문장은 순간 시선을 끌 수 있지만 오래 남지는 않는다.

조회수는 높을지언정 신뢰도는 떨어진다.


돌이켜 보면 내가 오래 좋아한 글들도 대개 그랬다.

온갖 수식어가 덕지덕지 한 글보다 진짜 마음이 먼저 보이는 글.

글쎄 이상하게도 그런 글을 문장 몇 개만 읽어도 알 수 있다.


팔리는 글의 핵심이 의외로 ‘진짜를 더 진짜답게 말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조금 반가웠다.


세 번째, 안전한 문장은 기억되지 않는다


“7초에 1권 팔린 소설.”


무려 하루키의 책을 마케팅하면서도 하루키라는 이름보다 먼저 속도를 말한 문장.

익숙한 방식 대신 완전히 다른 각도로 독자의 시선을 붙잡은 카피.


나 역시 글을 쓰거나 캠페인 카피를 정할 때 무난한 표현, 실패하지 않을 문장을 고르는 편이다.

그런데 무난한 문장은 대체로 무난하게 흘러간다.

튀지도 않고 그저 그렇게 안전하게 머물러 있다 사라지는 문장.


책은 그 안전지대를 벗어나라고 말한다.

조금 다르게 보고, 다르게 묻고, 다르게 설명하라고.


결국 사람을 멈춰 세우는 건 정보의 양보다 관점의 각도일지도 모르겠다.

내 글도 조금 뾰족해지려면 이 부분에게 도약해야 한다.



네 번째, 장점을 발견하는 사람만이 끝내 팔리게 만든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책의 단점을 찾기보다 끝내 장점을 발견해 내려는 태도였다.


사실 단점을 말하는 건 쉽다.

별로였다고, 아쉽다고, 흔하다고 말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데 장점을 끝까지 찾아내는 건 애정이고 실력이다.


언젠가 단점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게 솔직하고 정직한 글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좋은 마케터가 장점을 발견하듯, 좋은 독자 역시 책 속에서 자기만의 문장을 발견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며 자꾸 들었다.



결국 <마케터의 팔리는 글쓰기>는 단순히 책을 많이 파는 기술보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본질을 발견하고, 더 나은 문장으로 연결하는 법을 알려준다.


어쩌면 팔리는 글이란, 많이 속이는 글이 아니라 많이 이해한 글일지도 모르겠다.

텍스트를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마음을 이해하고, 지금 이 시대의 시선을 이해하는 글.


그리고 그런 글이라면

비단 책뿐 아니라, 우리의 삶도 조금 더 깊이 닿게 만들지 않을까.


더 잘 쓰기를 바라지만 늘 쉽지 않다.

천권이 넘는 책을 리뷰했지만 아직도 어렵다.


그래도 써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싯다르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8
헤르만 헤세 지음, 박병덕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승을 떠나야만 들리는 목소리


낯익은 제목을 들고 책장을 넘겼다.

고전이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인생책으로 꼽는책이다.

예전에 한번 읽은 기억이 있는 것도 같은데, 그러거나 말았거나 다시 책장을 넘겼다.

분명 읽은 책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읽으면서 꽤 오래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교 1학년, 내 인생이 가장 빛났을지도 모를 그저 젊은 것 밖에 없던 시절.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누가 정답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순간을 지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지금 가는 길이 맞는지.

이미 성공한 이가 걸어간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덜 불안할 것 같았다.


그런데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그 가장 편한 유혹을 아주 단호하게 거절한다.

브라만의 아들로 모든 것을 가진 청년 싯다르타는 가장 높은 가르침조차 자신의 길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떠난다.

부처조차 존경하지만 따르지 않는다.


진리는 위대하지만, 타인의 진리는 끝내 타인의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문득 학부시절 철학과 강의실에서 ‘그래서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묻던 교수님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내 삶을 바꾼 질문들은 대부분 답이 아니라 물음의 형태로 남아 있었다.


싯다르타 역시 그랬다. 그는 정답을 버리고 질문을 선택했다.

어쩌면 성장이라는 건 더 좋은 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더 깊은 질문과 함께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멀리 돌아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


젊은 날의 나는 어떤 이상에 사로잡혀 있었다다.

더 나은 의미, 더 나은 가치, 더 나은 방향 같은 것들. 그런데 현실은 늘 그런 식으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그래서 싯다르타가 수행자의 길을 떠나 사랑을 배우고, 돈을 벌고, 욕망과 권태 속에 빠져드는 장면이 더 그럴듯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무너진다. 세속에 취하고, 점점 자신을 잃는다.


하지만 헤세는 그 시간을 실패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길마저 지나야만 자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그랬다.

완벽한 선택보다 후회스러운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더 많이 설명하고 만들어갔다.


관계에서의 실수, 일에서의 조급함, 인정받고 싶어 애썼던 시간들. 부끄럽지만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문장도 없었을 것이다.

싯다르타는 욕망의 한가운데서 영혼의 공허를 발견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그래서 이 소설은 성자의 이야기라기보다, 결국 돌아오기 위해 멀리 떠났던 한 인간의 이야기다.



강물은 아무 말 없이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친다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사실 거창한 깨달음보다는 강물의 존재다.

뱃사공 바수데바 곁에서 싯다르타는 비로소 듣는다.


설교도, 교리도, 성공도 아닌 흐르는 물소리.

강물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나누지 않는다. 그저 흐른다.


기쁜 날도, 후회되는 날도, 잃어버린 날도 모두 하나의 물줄기처럼 지나간다.

아이를 키우며 하루가 너무 빠르다고 느낄 때가 있다. 또 어떤 밤은 유난히 길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그 모든 시간이 결국 하나의 강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짱고가 내 곁에 처음 왔고 그렇게 떠난 날도, 아이가 태어난 날도, 지쳐서 아무 말 없이 하루를 버티던 날도.

삶은 각각의 사건 같지만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


싯다르타가 강가에서 배운 것은 아마 이것이었을 것이다.

삶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귀 기울여야 할 흐름이라는 것.


우리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너무 애써 해석하려 하지말자.

모든 걸 당장 알지 못해도 괜찮다고, 강물은 이미 알고 있으니.



결국 각자의 강가에 도착하기 위하여


25년전 처음 <싯다르타>를 읽을때와 지금의 나는 꽤 많이 달라져있다.

어릴때 고민했던 진짜 삶과 지금 내가 살아내는 삶은 설명하기 애매하지만 분명 조금은 달라져있다.


그리고 지금의 내게 이 책은 ‘누군가처럼 살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처럼 다가왔다.

우리는 너무 자주 비교하고, 너무 쉽게 조급해진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말한다. 깨달음은 경쟁해서 먼저 도착하는 곳이 아니라고.

각자의 길을 걷고, 넘어지고, 사랑하고, 잃고, 다시 흘러가며 도착하는 자리라고.


그래서 이 책은 종교가 아니라 삶에 가깝다.


오늘도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 사람, 정답보다 방향이 필요한 사람,

너무 많은 소음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강가에 앉아봐도 좋겠다.


어쩌면 당신이 찾던 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당신 안에서 흐르고 있었는지도 모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