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 대한민국 정책 생태계의 민낯과 가능성
이창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선거철이다


"정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학원에서 사회복지정책을 전공했다. 꽤 이것저것 많이 배웠는데 그 수많은 배움에도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질문이다.

하필이면 선거철이다. 누군가 세상은 계속 진보한다고 했지만 그 선언이 무색하게 자꾸 뒤로만 가고 있는 공약들을 보는 것이 힘겹기도 하다.


이번 선거도 그랬다.

집으로 배달되어 온 공보물에는 모두가 노동을 이야기하고, 복지를 이야기하고, 청년과 주거를 이야기하는데 자신이 약속하고 있는 공약이

이전에 한번 실패했거나 상대측의 공약이라거나 혹은 자기 진영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공약이라는 걸 알고는 있는 걸까?


더 심각한 건 선거 이후 누가 당선되더라도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이 한 약속을 너무 쉽게 잊고 4년 뒤에 똑같은 소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더 큰 문제는 이걸 우리도 잊는다는 점이다.


한겨레 기자로 오래 일해온 이창곤의 책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는 이 문제를 마주한다.

정책이라는 키워드로 정치를 둘러싼 생태계 전체를 톱아보며 우리에게 정책은 왜 늘 실패하는지를 풀어낸다.



정책 생태계


그는 정책 실패의 근본 원인을 시민이 배제된 채 움직이는 폐쇄적 정책 생태계에서 찾는다.


사실 우리는 세금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복지 예산이 왜 늘거나 줄어드는지, 교육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시행되는지 잘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관심도 없다.

행여 유난한 사람이 이 과정을 알라치면 지난한 과정이 따라온다.


기자로써 이러한 일을 우리 대신해왔던 저자는 대통령과 관료, 정당, 언론, 시민단체, 기업 등 다양한 정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이야를 들려준다.

그리고 권력이 특정 집단에 집중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부는데 이 과정에서 어떻게든 시민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순간 이 정치와 정책이 어떻게 우리의 삶과 멀어지는지 들려준다.



정치와 언론


개인적으로 이런 책을 좋아한다.

그래서 저자의 다른 칼럼들도 꽤 찾아보았다.


그의 문제의식은 정당이나 언론에도 있는데


첫째, 그는 정당에 관해 이야기하며 한국 정치는 왜 정책 중심으로 움직이지 못하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우리는 선거 때마다 사람을 뽑지 정책을 선택하지 않는다.

누가 더 좋은 비전을 제시하는지 보다 누가 더 강한 사람인지가 선택의 기준이 되어 버린 선거는 무언가 잘못되었다.


둘째, 우리는 언론이 정책을 감시한다고 배웠는데 실제로 요즘은 언론은 클릭 수에 더 관심이 많다.

정치적 갈등이나 싸구려 정쟁은 늘 정책을 뒷자리로 밀어버리고 이런 제목뿐인 이슈를 모든 언론은 전면에 내세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책 논쟁은 설자리를 잃는다.

설령 이에 집중하는 언론이나 정치인이 있다손 치더라도 우리는 아마 구글링 가장 끝자락에서 그를 만날지도 모르겠다.



좋은 정책이 실패하는 이유


저자가 복지를 전공한 것 같지는 않는데 의외로 그는 복지정책에도 깊이 관여한다.

커뮤니티 케어. 즉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노인과 장애인을 돌보는 체계를 말한다.


언뜻 들으면 너무 당연하고 좋은 이야기 같지만 이 정책은 아직도 제대로 된 기틀을 잡지도 못했다.

기존에 이 업에 있는 수많은 이해관계와 예산, 제도의 벽은 기득권이 되어 정책의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

복지현장의 변화를 열망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이 기득권의 벽은 이들이 넘기에는 굉장히 큰 산으로 존재한다.


아마도 좋은 정책이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기존의 기득권을 깨고 움직일 사람들의 조직화된 힘이 없어서.

어쩌면 이것 또한 결국 사람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어떤 시민이 되어야 할까


저자는 이 정책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시민의회와 공론장, 장기 국가 비전과 같은 다양한 대안을 제시한다.

물론 이런 제도들도 필요하지만 결국 남는 질문은 이거다.


당신은 정책의 소비자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정책의 주체가 될 것인가.


성숙한 시민사회는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선거철에만 분노하고 투표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후보의 공약을 읽고, 언론의 보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지역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시민단체와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는 일상적인 행동들이 매일의 생활에서 쌓여야 한다.


누군가 대신 해결해 주길 기다리는 사회 보다 함께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

정답을 외치는 사람보다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많은 사회.

그리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사회.


그리고 좋은 정책은 좋은 시민 없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책은 묻는다.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질문을 조금 바꾸어 보자.


당신은 좋은 시민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출근길의 주문 - 일하는 여자들을 지탱하는 언어와 관계, 그리고 마음, 개정증보판
이다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문을 외울 때, 길이 보인다


이다혜 작가를 좋아한다.


영화 이야기를 할 때도, 책 이야기를 할 때도, 사람 이야기를 할 때도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이 좋다.

이다혜 작가의 글이 딱 그렇다. 지나치게 냉소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섣불리 희망을 팔지도 않는다.


그래서인가. 책 이야기를 좋아하고 자주 하는 사람으로 그의 첫 책 <책 읽기 좋은 날>은 지금도 내가 추천하는 책 제일 위 칸에 있다.

그의 책을 만나면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출근길의 주문>도 그랬다.


몰랐는데 7년 만에 개정증보판으로 돌아온 책이다.

커버에는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책으로 소개되지만, 사실은 오래 일하고 싶은 모든 사람을 위한 책에 가깝다.


언어와 관계, 마음과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읽다 보면 누군가의 성공담보다 실패담과 고민이 더 큰 위로가 된다는 걸 알게 된다.

언젠가부터 달게 된 시니어의 직책.

권한은 많지 않은데 책임은 늘어나는 시기.

많다고 생각했던 후배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떠나고 그에 반해 조직은 움직이지 않는, 그 답답한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자꾸만 지치고 흔들린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 서 있는 내게 말하는 듯했다.



언어 – 라뗴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책의 첫 번째 주제는 언어다.


우리는 일을 배우지만 말하는 법은 잘 배우지 못한다.

특히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내 의견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이다혜 작가는 쿠션어와 스몰토크, 호칭 같은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사회생활의 중요한 기술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릴 때는 직설적인 말이 효율이라고 생각했다.

요점만 말하는 것이 좋은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의 직언이 누군가에게는 압박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조금 다르게 말하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들리기도 한다.

나이가 들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같은 말도 다르게 들린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상대가 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하는 능력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소위 말하는 '잘'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고.



네트워크 – 혼자 잘하는 사람보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결국 일보다 사람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과 일하는 것도 좋지만,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과 일하는 것이 훨씬 긍정적인 경험이다.


책은 여성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조금 더 조언한다.

업계를 넘고 세대를 넘는 관계를 만들라고 권한다.


나도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비즈니스적인 관계를 떠나 지금도 가끔 연락하며 안부를 묻는 사람들.

힘든 시기에 마음을 터놓고 물어보고 조언해주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터에서 만났지만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갔던 사람들이다.



마인드셋 – 오래달리기 위한 마음의 체력


지금 가장 고민하고 또 공부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이 번아웃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늘 더 빨리 가야 한다고 배운다.

더 성장해야 하고, 더 성과를 내야 하고, 더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속도를 내는 것보다, 멈추지 않는 것 즉 나만의 속도로 조금씩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그렇게 일단 해보는 사람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도 대부분 그랬다.

사회복지사에서 NGO 마케터가 된 일도, 블로그를 시작한 일도, 브런치에 글을 쓰려 했던 일도 처음부터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한번 해본 일이었다.

생각보다 인생은 준비된 사람보다 먼저 손을 드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경우가 많다.



커리어 – 오래 일하는 사람의 비밀


이 책의 제목은 <출근길의 주문>이다.


왜 하필 주문일까.


그가 말하는 주문은 마법이 아니다. 현실을 바꾸는 것도 아니다.

흔들리는 순간마다 다시 꺼내 읽게 되는 문장 혹은 루틴 같은 것이다.


다들 성공을 말하는 시대에 이 책은 성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오래 일하는 법을 이야기한다. 버티는 법을 이야기하고, 함께 가는 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오래 일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라고 나는 믿는다.


오늘도 너무 조급해하지 말 것.

혼자만 잘하려 하지 말 것.

그리고 가능하면 오래 일할 것.


이 주문이 나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길.

꽤 뿌듯하게 마지막 장을 덮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이 묻는 사회 -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와 멸칭 문화
정회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이의 의미


최근에는 좀 지양하는 분위기지만 한국 사회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몇 살이세요?”라고 묻는 순간은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한 인사와 동시에 서열과 호칭, 관계의 방식이 정리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책은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미처 돌아보지 않았던 그 장면을 다시 보게 한다

저자는 <나이 묻는 사회>에서 노인을 "틀딱충", 청년을 "급식충"으로 부르는 것이 익숙해져 버린 우리의 현실을 톺아보고 한국 사회에 깊게 스며든 연령주의와 연령차별주의를 이야기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나이를 이해의 기준으로 삼기보다, 누군가를 더 빠르게 분류하기 위한 기준으로 사용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잼민이'부터 '틀딱충'까지.

세대를 향한 수많은 말들은 한국 사회가 서로를 어떻게 소비하고 판단하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풍경이다.



멸칭은 왜 생겼으며 무엇을 겨누는가


책은 이런 멸칭의 발생과 진화를 단순한 언어 현상이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서 바라본다.

이 멸칭은 계속해서 진화하는데 '영포티', '젊꼰'같이 세대별로 생산된 수많은 표현들은 결국 특정 연령대를 웃음거리이자 조롱의 대상으로 만든다.

노인은 시대에 뒤처진 존재, 청년은 무능한 세대, 어린이는 미숙한 존재로 규정하고 표현된다.


빠른 경제 성장 속에서 경쟁과 효율을 중시해온 사회, 그리고 서열을 중시하는 문화는 이를 비꼬는 인터넷 밈을 타고 나이를 삶의 과정이 아닌 평가의 기준으로 만들어 버렸다.

어쩌면 지금도 생산되는 이 멸칭들은 특정 세대를 향한 농담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생산성과 쓸모로 판단하려는 사회의 오래된 습관일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나이로 규정되는 삶의 경계와 제도적 차별


이렇게 저자는 멸칭의 문제를 언어에서 끝내지 않고 제도와 구조로 확장해 보여준다.

정년제, 임금피크제, 노키즈존, 노시니어존처럼 우리는 이미 일상 곳곳에서 나이를 기준으로 누군가를 제한하거나 배제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런 환경아래 노년은 쇠퇴로, 어린 세대는 미성숙으로 쉽게 규정된다.


심지어 "젊으니까 괜찮다", "나이 들었으니까 물러나야 한다"는 식의 사고는 각종 주거 정책과 제도 안에도 스며 있다.

문제는 이런 기준들이 단순한 구분을 넘어 세대 간 단절과 혐오를 강화한다는 사실이다.

나이는 원래 삶의 흐름을 설명하는 정보일 뿐인데, 어느새 기회와 권리, 자원의 배분 기준이 되어버렸다.


책은 이 지점을 날카롭게 짚는다.

나이가 사람을 설명하는 요소일 수는 있어도, 사람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나이 전쟁을 멈추기 위한 연대의 조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나이 전쟁'을 멈출 수 있을까.

책은 문제를 세대 간 연대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그 실마리를 찾는다.

서로 다른 세대가 자연스럽게 만나고 이해할 수 있는 환경, 어린 세대와 노년 세대가 분리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구조, 그리고 교과서와 미디어 속 부정적 언어를 바꾸는 일.


결국 중요한 것은 접촉과 경험이다.

자주 만나고, 함께 살아보고, 서로를 이야기 속 대상이 아니라 실제 얼굴로 마주할 때 편견은 조금씩 힘을 잃는다.

세대를 향한 혐오는 대개 경험 부족에서 시작된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자라 그 사랑을 알고 있는 아이는 그렇게 쉽게 노인세대를 재단하지 못한다.


나이를 기준으로 선을 긋는 사회보다, 서로의 시간을 이해하려는 사회.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출발점일지도 모르겠다.



나이는 숫자인가, 경계인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우리는 쉽게 말하지만 과연 그러한지 한번쯤은 돌아보면 좋겠다.

우리는 그 숫자 위에 너무 많은 편견과 기대, 역할을 덧씌우며 살아간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시대에 뒤처진 존재로 여기고, 어리다는 이유로 가볍게 소비하는 순간,

언젠가 우리는 그 칼날이 내게도 돌아오는 걸 경험하게 될 것이다.


모두는 늙고, 한때는 어린아이였다.

너무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는다.


그래서 이 책은 묻는다. 우리는 왜 나이를 묻는가. 이해하기 위해서인가, 구분하기 위해서인가.

책을 덮고 나면 그 익숙한 질문 하나의 무게가 좀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업(生業) - 그 징하고도 찡한 노동의 표정들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늘에 가려진 노동을 비추다


은유의 인터뷰집 <생업>은 1년 6개월 동안 17명의 밥벌이와 삶을 들여다본 기록이다.

급식 노동자, 배달 노동자, 청년 농부, 타투이스트, 변호사까지.

어쩌면 매일 스쳐 지나가면서도 제대로 바라본 적 없던, 이른바 그림자 노동이라 불리는 직업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 책은 노동의 본질을 다시 묻는다.


우리는 늘 거대한 성공담과 눈에 띄는 성취를 좇고 있지만 사실 세상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이들의 손 위에서 더 단단히 굴러간다.

각자의 삶의 무게를 질어진 채 매일매일 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

우리가 매일 마주치지만 쉽게 지나쳐버리는 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떠받치는지,

밥 한 그릇을 통해 인간다움을 어떻게 회복하는지 이 책은 집요할 만큼 깊게 들여다본다.


책에서 저자가 정의하는 밥은 단순한 생계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사랑의 실행이고, 흩어진 존재들을 다시 모으는 강력한 연결이다.

그렇게 이 책은 높은 연봉이나 번듯한 명함 대신,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권리를 새로운 척도로 세운다.



먹이는 사람들


1부는 밥을 짓고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학교 급식실에서 하루 수천 인분의 밥을 짓는 김규희 님은 돈을 벌기 위해 출근하지만 결국 책임감으로 아이들의 한 끼를 완성한다.

무른 밥 한 술이 콘크리트 같은 편견을 깨고, 따뜻한 밥 한 끼가 흩어진 존재들을 다시 모은다는 믿음.

그 믿음은 생각보다 강하다.


청년 농부 김후주 님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농사를 자신의 생계에서 끝내지 않고 농촌 현실을 세상에 알리는 목소리가 된다.

우리밥연대의 김주휘 님은 세월호 유가족과 해고 노동자 곁에서 자신의 돈으로 밥을 차려낸다.

요양 보호사 강석경 님은 요양원을 삶의 끝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는 집으로 바꾸려 애쓴다.


그렇게 이들의 노동은 먹이는 일을 넘어 사람을 살리는 일에 가까워진다.

밥의 힘을 믿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결국 무엇으로 살아가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짓는 사람들


2부는 표현하고 창작하며 세상을 다시 짓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오랜 무명의 시간을 견딘 배우 이정은 님은 노동의 가치를 잊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꾸준히 연대한다.

안예은님은 사랑받는 가수이지만 그 사랑을 자신만의 성공으로 두지 않고 다시 세상으로 환원하려 한다.

타투이스트 황도 님은 불법이라는 낙인 속에서도 자기 몸과 기술로 자기다움을 지켜낸다.

유튜버 김가인 님은 소비보다 기부를, 편리보다 지속가능함을 고민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자기 일의 의미를 자기 안에만 가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표현하고 창작하고 나누는 방식으로 세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려 한다.

생계와 철학이 겹쳐질 때 일이 단순한 직업을 넘어 삶의 태도가 된다는 걸 그것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한다.



아우르는 사람들


3부에 이르면 이야기는 개인의 생존을 넘어 공동체로 확장된다.

청소 노동자 김덕경 님은 긴 세월 빚을 감당하며 살아냈고, 자신의 삶을 넘어 더 큰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박미숙님 은 과로사한 아들의 죽음이 다음 세대의 징검돌이 되기를 바라며 거대한 구조와 맞선다.

노동 변호사 윤지영 님은 안정된 길 대신 불안정 노동자들의 편에 서고 국어 교사 박민영 님은 아이들에게 교과서만이 아니라 자신이 사는 동네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친다.

유금분 님은 마음의 병을 개인의 약함으로 보지 않고 사회 구조의 문제로 바라본다.


들은 하나같이 개인의 안위를 넘어 '같이'를 고민한다.

타인을 자기 삶의 영역 안으로 받아들이며, 살 만한 세상의 경계를 조금씩 넓혀간다.



밥을 통한 연대


<생업>을 읽다 보면 밥과 밥벌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개인의 생존이면서 동시에 연대의 방식.


이름 없는 직업인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느끼는 자부심과 고단함은 결국 나를 키워낸 타인의 노동을 돌아보게 만든다.

급식실의 밥, 파업 현장의 밥, 요양원의 밥, 농촌의 밥. 그 한 끼 한 끼가 모여 세상을 지탱한다.


그리고 문득 나는 지금 누구의 노동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너무 익숙해서 보이지 않았던 수많은 손길들, 그 노동의 결을 이해하는 순간 세상을 보는 태도도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일과 인간의 존엄


<생업>은 밥벌이가 어떻게 삶과 연결되는지, 노동이 어떻게 인간을 만드는지 묻는다.

17명의 인터뷰이는 모두 세상이 말하는 방식의 특별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세상을 떠받치는 이들의 생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오히려 더 존엄하고, 단단하고, 아름답다.


“혼자만 먹으면 도치기, 나누어 먹으면 부챗님”이라는 말처럼 결국 사람은 함께 먹고, 함께 살아갈 때 더 인간다워진다.

책을 덮고 나면 배달 노동자에게, 청소 노동자에게, 요양 보호사에게 조금 다른 마음으로 인사하고 싶어진다.


일은 밥벌이지만 밥벌이에만 머물지 않는다.

밥을 함께 먹는 삶, 서로를 먹이고 살리는 삶.


이것이 <생업>이 끝내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노동의 얼굴일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의 삶을 살아라 - 니체가 전하는 삶의 자세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회주 옮김 / 데이지북스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시 시작하기에 늦은 때는 없다


우리는 자주 그렇게 살아간다.

‘어쩔 수 없잖아’, ‘다들 이렇게 사니까’ 같은 익숙한 말들로 오늘을 넘긴다.

해야 할 일이 많고, 책임질 것도 많고, 지금껏 여기까지 왔는데 갑자기 방향을 묻는 일이 사치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니체는 그런 익숙함을 경계했다. 이 니체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너의 삶을 살아라>도 그 익숙한 체념의 문장을 단호히 끊어낸다.

남이 정해준 삶의 궤도에서 잠시 내려와 정말 나의 길이 무엇인지 다시 보라고 말한다.


저자는 니체의 방대한 철학을 해설하려 들지 않는다.(하긴 그런 책이라면 요즘 팔리지도 않겠지)

대신 니체가 끝내 붙들었던 삶의 태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오늘의 언어로 건넨다.

감사하게도 짧다. 한 챕터가 한 장 남짓이라 어디를 펼쳐도 부담 없이 읽힌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잠들기 전 침대맡에서도 좋다.

사실 철학이란 게 원래 그렇다. 책상 위에서의 어려운 말잔치가 아니라 매일 나의 방향을 점검하는 것이 철학이다.

지친 일상 속에서 저자는 "지금, 나는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라 말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차근차근 답하는 니체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할 용기를 불러낸다.



관계와 감정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법


책은 다섯 개의 파트로 이어진다.

1부가 낡은 습관을 벗고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면, 2부는 관계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에게 더 깊이 닿는다.

좋은 사람이 되려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순간들, "아니요"라고 말하지 못해 마음이 닳아가던 시간들.

읽다 보면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내 이야기 같은 문장들이 툭 튀어나온다.


'너를 실망시키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네가 쥐고 있던 기대다.'


솔직히 돌아보자. 진짜 내가 실망한 건 사람이었나 아니면 그를 통해 무언가를 얻고자 한 내 기대였나.


3부에서는 슬픔과 불안, 죄책감 같은 감정 역시 없애야 할 결함이 아니라 해석해야 할 신호라고 말한다.

흔들리는 건 실패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아직 변화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니체의 이야기는 숨도 못 쉴 정도로 강력하기도 하지만 또 반대로 그 강함 속에 위로가 있다.

뭐랄까. 저자가 읽어내는 그 시선이 좋았다.

삶이 무너지는 것 같던 순간조차 결국 나를 다시 세우는 재료가 될 수 있다. 사실 이걸 믿지 못하면 우리 정말 어렵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당신의 삶은 당신이 결정한다


4부와 5부는 삶의 주도권에 대한 이야기다.

니체는 늘 말한다. 남들이 써준 대본대로 살지 말라고. 익숙하고 안전한 길이 반드시 나의 길은 아니라고.


돌이켜 보면 우리는 너무 자주 타인의 기준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적당한 성공, 적당한 관계, 적당한 인정. 그런데 그 모든 기준을 통과해도 이상하게 공허할 때가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방향을 틀게 만든다.

'나는, 나에게서 시작된다.'


낡았지만 발에 잘 맞는 구두처럼 익숙한 삶을 벗어나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결국 삶의 항로를 바꾸는 건 거대한 사건보다 오늘의 작은 결단일지도 모른다.

타인을 바꾸려는 집착보다 나를 바꾸는 용기.

완벽한 삶을 기다리기보다 불완전한 지금 이 순간을 선택하는 태도.

사실 이게 우리를 살게 한다.



영원회귀와 자기극복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나는 철학도였고 심지어 니체에 미쳐 4년을 보낸 사람이다.

니체를 여러 번 읽었지만 늘 쉽진 않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너무 높았고, <선악의 저편>은 날카로웠으며, <도덕의 계보학>은 내가 믿던 기준 자체를 흔들었다.

<이 사람을 보라>는 뭐랄까.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나를 가르쳤던 철학 선생님들의 4년이 모이지 않고는 아마 니체를 현대인이 공부하는 건 거의 불가능할 거다.

그래서 행여 니체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 <너의 삶을 살아라>부터 출발하기를 권한다.


이 책은 니체 철학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니체가 가진 핵심적인 삶의 태도, 영원회귀와 자기극복을 오늘의 질문으로 바꿔놓는다.


'지금의 선택이 영원히 반복돼도 괜찮은가?'


당신은 지금 하는 일, 지금의 관계, 지금 반복하는 태도를 나는 정말 사랑할 수 있는가.

영원회귀는 결국 삶을 향해 온전히 '예'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초인이 되라는 선언보다, 적어도 비겁하게 살지는 않겠다는 다짐에 더 가깝다.

당신은 어떠한가?



삶의 설계자는 결국 나 자신이다


늘 이야기하지만 좋은 책은 위로보다 질문을 남긴다.


<너의 삶을 살아라>도 그런 책이다.

짧고, 쉽게 읽히고, 어디를 펼쳐도 금세 닿지만 질문과 생각할 거리는 꽤 많다.


남이 써준 대본에서 벗어나 나만의 길을 다시 쓰는 것. 불안하더라도, 흔들리더라도, 그 삶을 내 것이라 부를 수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

삶은 단 한 번뿐이지만 질문은 끝없이 가능하다.


니체는 끊임없이 묻는다.

당신은 지금 정말 당신의 삶을 살고 있는가.

어쩌면 삶은 좋은 날이 오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내가 선택하는 순간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당신이 선택할 차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