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오후 4시 반 - 당신의 성장은 계속되어야 한다
양윤정.이승우 지음 / 더퀘스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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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부를 썩 잘했거나 잘하는 편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도 하버드나 아이비리그에 대한 이상한 로망이 있다. 한 때 유행처럼 돌았던 하버드의 새벽 4시 도서관 풍경 짤에는 또 얼마나 설렜는지.(내가 왜..) 세상에 늦은 건 없다지만 그래도 이미 한참 늦어버린 나이에 또 난 하버드라는 제목에 설레버렸다. 그런데 새벽 4시는 알겠는데 오후 4시 반은 또 무슨 소리람?


책은 하버드에서 유학하게 된 아내와 우연찮게 그 유학 생활에 가정주부로 동행하게 된 남편의 이야기다. 하버드로 유학 가는 여자친구를 보낼 수 없어 결혼을 했고, 또 혼자 만리타국에 있는 아내가 안타까워 급하게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떠나버린 젊은 부부의 이야기. 얼핏 사랑꾼 이야기처럼 들리는데, 정확히는 이 부부가 하버드 안팎에서 경험한 그리고 관찰한 하버드 사람들의 이야기다. 


1. 오후 4시 반이 제목이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갓생, 마라클모닝으로 대표되는 열심인 삶은 주로 아침형 인간을 강조한다. 아침형 인간이 되려면 높은 확률로 일찍 잠들진 대 그렇게 되면 실제 깨어있는 시간은 아침형 인간이나 저녁형 인간이나 사실 거기서 거기다. 그리고 실제로 저녁형 인간이 성공할 확률도 만만찮게 높다. 하버드 사람들은 그러니까. 저자는 하버드에서 만난 이들의 이 ‘다양성’을 이야기한다. 

또 오후 4시 반은 수업이 어느 정도 마치고 난 여유로운 시간이다. 실제로 이들은 수업시간 뿐 아니라 강의실 밖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오후 햇살이 따사로이 비치는 캠퍼스에서의 대화, 네트워킹, 독서, 명상 그들은 다양하게 자신들의 시간을 보내고 또 쉰다. 그리고 이 배움이 진짜 배움이 되는 경우가 더 많으니 어쩌면 이 제목 꽤 적확하다.


2. 하버드라는 공간에서 공부하는 아내는 하버드 사람들이 결코 놓치지 않는 4가지를 저자는 멘탈 관리, 관계 관리, 시간관리, 커리어 관리의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물론 이들의 '기본기'로 도전, 통찰력, 실행력, 인내, 회복탄력성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건 좀 익히 들어온 이야기니 이 정도로 갈무리 하고) 관계나 커리어 관리야 대외활동, 네트워크 모임 등으로 대체되며 우리도 꽤 관심 있어 하는 것들이지만 멘탈과 시간관리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한국인에게는 늘 부족하고 또 부족하다.

꽤 재미났던 건 멘탈 관리란 ‘엄마나 친구와 얘기하기’, '오늘 한잔 콜' 정도가 전부인 우리 사회와 비교하여 다양하고 체계적인 자신만의 관리 방법을 만들고 학교와 사회가 이 마인드 셋을 지원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없지만 미국에는 있는 개인상담 같은 것부터 시작해서, 우리는 더 좋은 네트워킹의 도구(????)로 활용되는 MBTI나 에니어그램도 이들은 자기이해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었다.(이 간극은 꽤 크다) 

또 중요하다고 말만 하지 사실 크게 중요하게 생각 않는 시간관리도 마찬가지다. 중요하고 긴급한 것을 먼저 하고 중요하지 않고 급하지 않은 것을 맨 뒤로 미루거나 폐기하라. 이거 어디선가 들어본 말이다. 그런데 하버드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이 버릇을 들이려 노력하고 있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할 건 해야지. 24시간을 모든 것을 '할 것'으로 지정하고 3-4시간 자며(주말에 몰아 자기)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삶이라 이야기하는 우리와 비교해 이들은 자기가 정한 쉬는 시간은 그냥 쉰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꽤 긴 페이지를 할애하여 설명한다.


3. 공동저자인 가정주부인 남편이 만난 하버드 밖의 하버드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실 좀 더 흥미로웠는데, 남편은 끊임없이 하버드를 배회하며(수업은 못 들어가도) 그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들은 주로 수업 이후 운동을 하고 책을 읽는다. 명상을 하기도 하고 네트워킹에 꽤 많은 시간을 쏟기도 한다는데 재미있는 건 우리나라처럼 취업을 위한 대외 활동은 ‘이래야 한다’는 규칙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 자신의 방법대로 자기의 시간을 보낸다. 

재미있는 건 이는 투자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데 그들은 철저히 공부하고 자신의 분야에 투자한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이든 실패든 그 투자에서 배움을 이끌어 낸다. 일희일비 하지 않고 자신만의 보폭으로 자신이 갈 수 있는 길을 간다. 이것이 수업이 끝난 하버드 사람들의 특징이었다.


4. 하루는 남편이 그렇게 알게 된 친구 노라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간 자리에서, 노라의 아버지가 한국의 남자들은 군대를 다녀오고 서른이 넘어서야 취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이런 이야기를 했더란다.


자네 지금 나이가 몇인가? 그걸 3으로 나누게. 그렇게 해서 나오는 숫자를 시간으로 생각해 보게나. 나이가 30이면 오전 10시가 되겠지? 인생을 하루라고 생각해 보게, 어떤가. 뭔가를 시작하거나 이루기에 많이 늦은 때라고 생각하는가?"(p.233)


내 나이가 40이니 나누기 3이면 13 정도 될게다. 오후 1시를 조금 넘은 시간. 그렇다면 아직은 괜찮다. 내가 12시까지 늘어지게 잤더라도 오후 1시 정도면 오늘 내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기 충분한 시간이다. 좀 모자라면 야근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늦게 시작한 만큼의 페널티는 충분히 지불할 용의가 있다.


5.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묘한 도전, 오기 같은 게 솟아올랐다. 아직은 내 인생을 이렇게 마무리하기에 나는 못 해본 것도, 하고 싶은 일도 너무 많다. 조금씩 나를 그 일에 더할 생각이다. 앞으로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꽤 나은 모습일 것 같다. 혹시 아는가. 나도 언젠가 하버드에 가게 될런지도.


덧. 에니어그램은 내가 가장 잘 아는 툴이고(나 나름 에니어그램 강사), 시간관리는 후배들과의 멘토링 때 빼놓지 않고 강조하는 주제다. 하버드 사람들도 이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니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기도 했고, 조금 더 깊이 이 주제에 대해 들고 파야겠다는 묘한 오기나 다짐도 생겼다. 이 부분은 브런치에 따로 정리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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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 - 씩씩한 실패를 넘어 새로운 길을 만드는 모험
김수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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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목만으로 위로가 된다. 그래. 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


2. 운전할 일이 많던 시절, 운전하며 SBS 라디오를 주로 듣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SBS 아나운서 라인에 대해 내적 친밀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원래 S 본부 아나운서 라인이 뛰어나서인지 몰라도 박선영, 배성재, 장예원 등 꽤 쟁쟁한 아나운서 선배들 사이에서도 김수민 아나운서는 촉망받는 막내였다. 이 선배들과의 티키타카에서 얻은 수망구라는 별명도, 입사 3년차에 그녀는 아마 장예원의 바통을 이어받아 S 본부의 얼굴이 될 후보 1순위였을 것이다. 때마침 그 잘나가던 선배들이 모두 프리를 선언하고 생각보다 빨리 메인이 되겠구나 싶었는데 그런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퇴사를 선언했다. 프리도 아니고 말 그대로 퇴사였다. 왜??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김수민 아나운서의 대답이자, 그녀가 추구하는 삶의 기록이다.


3.

위태롭다. 위태롭다. / 땅에 금을 긋고 / 그 안에서 종종걸음. /

가시나무여 가시나무여 / 내 가는 길 막지 마라. 내 발길 구불구불 / 내 발을 해치마라. /

산 나무는 스스로를 자르고 등불은 스스로를 태운다. /

계수나무를 먹을 수 있어 잘리고 , 옻나무는 쓸모 있어 베인다. / 

사람들 모두 '쓸모 있음의 쓸모'는 알고 있어도 '쓸모 없음의 쓸모'는 모르고 있구나.

-<미친 사람 접여의 노래> 중에서(<장자>, 218쪽 p. 108)


퇴사할 즈음 그녀가 읽었다는 장자의 한 구절이다. 우리는 모두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살아간다. 그런데 이 '쓸모'에 집착하다 보니 결국 우리는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서로를 나누게 되고, '쓸모 없는'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사사로운 것을 좇다 곧잘 나를 잃어버리곤 한다. 장자는 우리게 '쓸모 있는'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았다. 세상의 자질구레한 유용성에 목메지 말고 내게 맞는 시기를 기다리라고 한다. 

'쓸모 없음의 쓸모' 진짜 내가 세상에 필요한 곳을 찾아 가는 기다림의 시간. 

그녀는 이 시간을 되찾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무엇에도 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의 인생을 받아 들이고 사랑하겠다고 한다. '쓸모 없음의 쓸모' 그녀가 찾겠다는 그 시간이, 이 이야기가 나는 참 좋았다. 


4. 책은 퇴사를 즈음 하여 그녀가 겪은 일들, 생각한 것들 그리고 앞으로 그녀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해 잠잠하게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MZ라고 하고, 누군가는 치열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하고, 누군가는 또 다른 이유라고 했는데 그녀는 이런 세간의 이야기를 이렇게 쿨하게 넘긴다.


"학교로 돌아가 대졸자가 된 다음 대학원을 갈 생각이에요!" 라고 했더니 대학원생이 되려고 그만둔다는 말이 돌았고, 남자친구 있느냐는 질문에 "있어요!" 했더니 결혼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누군가는 이 모든 소문 중에 무엇이 진실이냐고 직접 묻기도 했는데 다 일정 부분 사실이라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니까 다 맞 고 다 틀린 말이 있다. 소문이 원래 다 그렇지, 뭐.(p.41)


소문이 다 그렇지 뭐. 맞다. 사실 내가 결정했다면 누군가의 수군거림은 다 '그렇지 뭐'하고 넘겨버리면 그만인 것들이다. 아마 그 수군거림도 받아들이는 내게 나 큰 일이지 그들 입장에서는 하룻저녁 술안주로 떠들어제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지난해 내 결혼식에 오고서도 명절에 만나 '결혼은 했느냐' 묻는  먼 친척의 사사로운 질문과 비슷한 부류 아닐까. 알면서도 늘 기분 나쁜 이 수군거림에서도 좀 자유로워져야 할 텐데.


5. 너무 늦은 나이라는 없다지만 사실 이미 난 틀려버린 나이일는지도 모르겠다. 사표를 확 던져버리진 못해도 내 삶에서, 나를 찾아가려는 노력을 다시 경주해야겠다는 작은 용기가 생겼다. 그러다 안되면 도망치지 뭐. 그래 도망치는 게 어때서. 의미 없는 삶을 견디고 버티는 것보다 도망치는 게 더 낫다. 맞다. 나도 예전에 이렇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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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왕국 서로마 제국이 ‘시시껄렁하게’사라지는 순간 - 프로와 아마의 차이 100페이지 톡톡 인문학
최봉수 지음 / 가디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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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고대사는 그렇게 끝난다. 시오노 나나미의 말처럼 '시시껄렁하게'(p.82)


그랬다. 나 예전에 <로마인 이야기> 참 열심히 읽었다. 어릴 적 읽었던 로마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웠지만 그 마지막이 꽤 허탈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찬란했고, 언제고 이어질 것 같던 로마는 하루아침에 너무도 허망하게 사라졌다. 피비린내 나는 권력의 다툼이 있었던 것도, 백 년을 내려온 전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로마 역사에 수없이 반복되던 네로 황제의 방화 같은 이벤트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로마가 무엇인지, 천년왕국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는 이방인에 의해 로마는 그저 접수 되었고, 그것이 못마땅한 동로마 황제는 또 다른 이민족에게 그 이방인과 이탈리아왕국을 내어주었다. 그렇게 로마제국은 역사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이 어이없는 결론은 꽤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천년만년 갈 것 같은 권력도,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당연한 것들도 어쩌면 하루아침에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것. 왕관의 무게를 알지 못하는 자가 함부로 왕관을 탐냈을 때 몰락하는 공동체. 이 모든 것을 천년을 이어져온 역사 가운데 수십 번을 답습했음에도 어떠한 배움도 없는 후대 로마인들의 모습. 그렇게 로마는 끝났다. '시시껄렁하게'


마치 <로마인 이야기>를 100페이지로 축약해 놓은 듯한 책에 꽤 마음이 저릿해왔다. <100페이지 톡톡 인문학>이라는 제목을 달고 시작하는 인문학 시리즈인데 100페이지 내외의 짧고 간결한 책이다. 글도 출퇴근길 교양서적처럼 쉽게 읽히는데, 내용만큼은 책의 무게만큼 가볍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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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漢)의 몰락, 그 이후 숨기고 싶은 어리석은 시간 - 권력자와 지식인의 관계 100페이지 톡톡 인문학
최봉수 지음 / 가디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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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로 시작하여 '삼국지'로 망한 한나라. 맞다. 장기판에 쓰인 그 빨간 돌이 한나라다. 서양에 로마제국이 있었다면 중국에는 그 광활한 대륙을 400년이나 통치한 한나라가 있었다. 물론 천년 제국 로마에 비해 그 역사가 짧지 않느냐 항변할 수 있지만, 로마도 큰 나라였지만 중국은 사이즈가 다르다. 서쪽으로는 티베트, 북으로는 러시아, 남으로는 베트만, 동으로는 한반도에 이르는 이 나라를 우리는 중국 대륙이라 부른다. 이 넓디 넓은 땅을 단일국가가 지금처럼 통신이나 기술의 발달 없이 400년간 통치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책은 소위 망탁조의로 통칭되는 한의 네 명의 역적. 왕망, 동탁, 조조, 사마의의 행적을 따른다. 전한을 무너뜨린 왕망이 건국해 고작 15년을 다스린 신나라는 중국 왕조 변천사에 끼워주지도 않는다. 그의 급진적 세제정책은 후대에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개혁의 기치를 든 패륜아. 입으로는 개혁을 말하지만 폭정을 일삼았던 폭군으로 역사는 그를 평가한다. 삼국지를 통해 우리게 익숙한 동탁과 조조, 사마의 중 동탁은 권력에 눈먼 두꺼비로 비유된다. 물론 조조와 사마의는 오늘날 재평가 되기도 한다.

난세에 영웅이 등장하는지 영웅들의 나열하는 시기가 난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저자는 이 망탁조의가 뛰놀던 시대, 하루아침에 나라가 망하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던 시기에 삼국지를 통해 우리게 익숙한 당대 지식인들을 톱아본다.


후한 최고의 독설가 예형, 공자의 후손 공융, 조조의 양자였음에도 그를 무시한 하안 그리고 부패한 정권에 등진 죽림칠현의 이야기까지. 저자는 입바른 소리로 일관한 이들 지식인들이 누구 앞에서도 굽히지 않은 대쪽같은 이들이었음에도 자기 과신에 빠져 그 누구도 역사를 단 한 발짝도 나아가게 하지 못했음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아마 이들은 똑똑하고 옳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손가락질 했던 누구도 그 손가락에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권력자들은 그들을 짖는 개쯤으로 취급하고 몽둥이로 내어 쫓던지, 적당한 망나니의 손에 넘겼다. 물론 여의치 않으면 제 손에 피를 묻히기도 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자기가 걷던 길로 그렇게 천천히 나아갔다. 이들을 두고 훗날 절개를 지켰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은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말과 삶이 분리된 위선자들이었고, 멍청이들이었다고. 

이런 이들이 지식인이랍시고 이름을 날리던 시기에, 한나라는 망하고 말았다고.


오늘 이 나라에 지적질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많으나,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이들은 몇이나 될까. 뜨끔하면서도 서글픈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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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
염기원 지음 / 문학세계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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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얼마의 수익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들어 '경제적 자유'를 얻었고, 몇 명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쳤으며, 이 모든 것들을 이룬 자신은 사실 '흙수저'에 '루저'였다며. '그러니 당신도 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파는 게 그들 사업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수익을 증명하는 건 보통 인터넷 뱅킹 화면을 스크린 켭처한 게 전부다. 선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건 대개 본인만의 일방적 주장인데, 이건 자기가 봐도 약한 것 같으니 지인을 내세워 자신의 도움으로 크게 성공했다는 간증이 담긴 블로그 포스팅이나 인터뷰 동영상을 올린다. 객관적 증빙은 하나도 없다.(p.153)


책에 나오는 책기꾼, 아니 자기 계발 인플루언서 사기꾼의 전형이다.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느낌에 정말이지 ㅋㅋㅋㅋ 현웃이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와 진짜 나 이런 거 요즘 너무 많이 본다. 


코로나 이후 누구는 코인으로 몇억을 벌었고 또 누구는 유튜브로 대박이 났으며 또 누구는 전자책을 만들어 떼 돈을 벌었단다(경제적 자유를 얻었단다). 예전에는 로또 한방, 조상이 물려준 땅문서 하나에 인생 역전했다는 게 레퍼토리의 전부였다. 그리고 이건 사실 노력으로 되는 부분이 아니기에 사람들은 이런 한방을 하늘에서 떨어지는 선물 정도로 생각하며,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고 살았다. TV에서 '내 집 마련이 꿈'이라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대니 그냥 그게 꾸겠거니 하고 한 푼 두 푼 살뜰히 모아 집을 사기도 하고 그랬다. 하긴 그때는 그게 가능한 세상이었다.


숨도 안 쉬고 월급을 50년 이상 모아야 집 한 채 장만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했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월급의 힘을 믿지 않는다. '노동이 아니라 자본이 일하게 하라=경제적 자유'는 이상한 구호가 온 나라를 휩쓸어 대니, 사람들은 더 이상 노동에 어떤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조용한 퇴사'가 붐이라는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자기 계발'에 열을 올린다. 어쩌면 우리 사기꾼들이 딱 놀기 좋은 판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책은 이 사기꾼(인 줄 알았던) 오빠를 잡으러 태백에서 무작정 상경한 동생, 즉 남매의 이야기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에세이처럼 무난히 읽히며, 처음 소개한 문단같이 이게 르포인지 소설인지 가끔 헷갈리는 부분도 있기도 하다. 같이 분개하고, 시원하게 쏟아대는 속사포 비난에 통쾌하기도 할 무렵 동생은 묻는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질문이기도 한 이 질문에 오빠는 "손을 맞잡고 한 발짝씩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산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사랑에는 힘이 있다"고.

언제부터 우리에게 사랑과 믿음이 가치 없는 단어가 된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런데 오빠는 믿음으로, 사랑으로 산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선택은 각자의 몫일진대 나는 자꾸만 사랑을 믿고 싶어진다. 우리 사는 이유가 결국 돈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새삼 책기꾼에 혹해 나도 그렇게 되고팠던 나의 잠깐이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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