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
염기원 지음 / 문학세계사 / 2023년 3월
평점 :
매달 얼마의 수익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들어 '경제적 자유'를 얻었고, 몇 명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쳤으며, 이 모든 것들을 이룬 자신은 사실 '흙수저'에 '루저'였다며. '그러니 당신도 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파는 게 그들 사업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수익을 증명하는 건 보통 인터넷 뱅킹 화면을 스크린 켭처한 게 전부다. 선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건 대개 본인만의 일방적 주장인데, 이건 자기가 봐도 약한 것 같으니 지인을 내세워 자신의 도움으로 크게 성공했다는 간증이 담긴 블로그 포스팅이나 인터뷰 동영상을 올린다. 객관적 증빙은 하나도 없다.(p.153)
책에 나오는 책기꾼, 아니 자기 계발 인플루언서 사기꾼의 전형이다.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느낌에 정말이지 ㅋㅋㅋㅋ 현웃이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와 진짜 나 이런 거 요즘 너무 많이 본다.
코로나 이후 누구는 코인으로 몇억을 벌었고 또 누구는 유튜브로 대박이 났으며 또 누구는 전자책을 만들어 떼 돈을 벌었단다(경제적 자유를 얻었단다). 예전에는 로또 한방, 조상이 물려준 땅문서 하나에 인생 역전했다는 게 레퍼토리의 전부였다. 그리고 이건 사실 노력으로 되는 부분이 아니기에 사람들은 이런 한방을 하늘에서 떨어지는 선물 정도로 생각하며,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고 살았다. TV에서 '내 집 마련이 꿈'이라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대니 그냥 그게 꾸겠거니 하고 한 푼 두 푼 살뜰히 모아 집을 사기도 하고 그랬다. 하긴 그때는 그게 가능한 세상이었다.
숨도 안 쉬고 월급을 50년 이상 모아야 집 한 채 장만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했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월급의 힘을 믿지 않는다. '노동이 아니라 자본이 일하게 하라=경제적 자유'는 이상한 구호가 온 나라를 휩쓸어 대니, 사람들은 더 이상 노동에 어떤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조용한 퇴사'가 붐이라는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자기 계발'에 열을 올린다. 어쩌면 우리 사기꾼들이 딱 놀기 좋은 판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책은 이 사기꾼(인 줄 알았던) 오빠를 잡으러 태백에서 무작정 상경한 동생, 즉 남매의 이야기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에세이처럼 무난히 읽히며, 처음 소개한 문단같이 이게 르포인지 소설인지 가끔 헷갈리는 부분도 있기도 하다. 같이 분개하고, 시원하게 쏟아대는 속사포 비난에 통쾌하기도 할 무렵 동생은 묻는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질문이기도 한 이 질문에 오빠는 "손을 맞잡고 한 발짝씩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산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사랑에는 힘이 있다"고.
언제부터 우리에게 사랑과 믿음이 가치 없는 단어가 된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런데 오빠는 믿음으로, 사랑으로 산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선택은 각자의 몫일진대 나는 자꾸만 사랑을 믿고 싶어진다. 우리 사는 이유가 결국 돈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새삼 책기꾼에 혹해 나도 그렇게 되고팠던 나의 잠깐이 부끄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