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왕국 서로마 제국이 ‘시시껄렁하게’사라지는 순간 - 프로와 아마의 차이 100페이지 톡톡 인문학
최봉수 지음 / 가디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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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고대사는 그렇게 끝난다. 시오노 나나미의 말처럼 '시시껄렁하게'(p.82)


그랬다. 나 예전에 <로마인 이야기> 참 열심히 읽었다. 어릴 적 읽었던 로마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웠지만 그 마지막이 꽤 허탈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찬란했고, 언제고 이어질 것 같던 로마는 하루아침에 너무도 허망하게 사라졌다. 피비린내 나는 권력의 다툼이 있었던 것도, 백 년을 내려온 전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로마 역사에 수없이 반복되던 네로 황제의 방화 같은 이벤트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로마가 무엇인지, 천년왕국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는 이방인에 의해 로마는 그저 접수 되었고, 그것이 못마땅한 동로마 황제는 또 다른 이민족에게 그 이방인과 이탈리아왕국을 내어주었다. 그렇게 로마제국은 역사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이 어이없는 결론은 꽤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천년만년 갈 것 같은 권력도,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당연한 것들도 어쩌면 하루아침에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것. 왕관의 무게를 알지 못하는 자가 함부로 왕관을 탐냈을 때 몰락하는 공동체. 이 모든 것을 천년을 이어져온 역사 가운데 수십 번을 답습했음에도 어떠한 배움도 없는 후대 로마인들의 모습. 그렇게 로마는 끝났다. '시시껄렁하게'


마치 <로마인 이야기>를 100페이지로 축약해 놓은 듯한 책에 꽤 마음이 저릿해왔다. <100페이지 톡톡 인문학>이라는 제목을 달고 시작하는 인문학 시리즈인데 100페이지 내외의 짧고 간결한 책이다. 글도 출퇴근길 교양서적처럼 쉽게 읽히는데, 내용만큼은 책의 무게만큼 가볍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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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漢)의 몰락, 그 이후 숨기고 싶은 어리석은 시간 - 권력자와 지식인의 관계 100페이지 톡톡 인문학
최봉수 지음 / 가디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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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로 시작하여 '삼국지'로 망한 한나라. 맞다. 장기판에 쓰인 그 빨간 돌이 한나라다. 서양에 로마제국이 있었다면 중국에는 그 광활한 대륙을 400년이나 통치한 한나라가 있었다. 물론 천년 제국 로마에 비해 그 역사가 짧지 않느냐 항변할 수 있지만, 로마도 큰 나라였지만 중국은 사이즈가 다르다. 서쪽으로는 티베트, 북으로는 러시아, 남으로는 베트만, 동으로는 한반도에 이르는 이 나라를 우리는 중국 대륙이라 부른다. 이 넓디 넓은 땅을 단일국가가 지금처럼 통신이나 기술의 발달 없이 400년간 통치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책은 소위 망탁조의로 통칭되는 한의 네 명의 역적. 왕망, 동탁, 조조, 사마의의 행적을 따른다. 전한을 무너뜨린 왕망이 건국해 고작 15년을 다스린 신나라는 중국 왕조 변천사에 끼워주지도 않는다. 그의 급진적 세제정책은 후대에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개혁의 기치를 든 패륜아. 입으로는 개혁을 말하지만 폭정을 일삼았던 폭군으로 역사는 그를 평가한다. 삼국지를 통해 우리게 익숙한 동탁과 조조, 사마의 중 동탁은 권력에 눈먼 두꺼비로 비유된다. 물론 조조와 사마의는 오늘날 재평가 되기도 한다.

난세에 영웅이 등장하는지 영웅들의 나열하는 시기가 난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저자는 이 망탁조의가 뛰놀던 시대, 하루아침에 나라가 망하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던 시기에 삼국지를 통해 우리게 익숙한 당대 지식인들을 톱아본다.


후한 최고의 독설가 예형, 공자의 후손 공융, 조조의 양자였음에도 그를 무시한 하안 그리고 부패한 정권에 등진 죽림칠현의 이야기까지. 저자는 입바른 소리로 일관한 이들 지식인들이 누구 앞에서도 굽히지 않은 대쪽같은 이들이었음에도 자기 과신에 빠져 그 누구도 역사를 단 한 발짝도 나아가게 하지 못했음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아마 이들은 똑똑하고 옳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손가락질 했던 누구도 그 손가락에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권력자들은 그들을 짖는 개쯤으로 취급하고 몽둥이로 내어 쫓던지, 적당한 망나니의 손에 넘겼다. 물론 여의치 않으면 제 손에 피를 묻히기도 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자기가 걷던 길로 그렇게 천천히 나아갔다. 이들을 두고 훗날 절개를 지켰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은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말과 삶이 분리된 위선자들이었고, 멍청이들이었다고. 

이런 이들이 지식인이랍시고 이름을 날리던 시기에, 한나라는 망하고 말았다고.


오늘 이 나라에 지적질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많으나,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이들은 몇이나 될까. 뜨끔하면서도 서글픈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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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
염기원 지음 / 문학세계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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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얼마의 수익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들어 '경제적 자유'를 얻었고, 몇 명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쳤으며, 이 모든 것들을 이룬 자신은 사실 '흙수저'에 '루저'였다며. '그러니 당신도 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파는 게 그들 사업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수익을 증명하는 건 보통 인터넷 뱅킹 화면을 스크린 켭처한 게 전부다. 선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건 대개 본인만의 일방적 주장인데, 이건 자기가 봐도 약한 것 같으니 지인을 내세워 자신의 도움으로 크게 성공했다는 간증이 담긴 블로그 포스팅이나 인터뷰 동영상을 올린다. 객관적 증빙은 하나도 없다.(p.153)


책에 나오는 책기꾼, 아니 자기 계발 인플루언서 사기꾼의 전형이다.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느낌에 정말이지 ㅋㅋㅋㅋ 현웃이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와 진짜 나 이런 거 요즘 너무 많이 본다. 


코로나 이후 누구는 코인으로 몇억을 벌었고 또 누구는 유튜브로 대박이 났으며 또 누구는 전자책을 만들어 떼 돈을 벌었단다(경제적 자유를 얻었단다). 예전에는 로또 한방, 조상이 물려준 땅문서 하나에 인생 역전했다는 게 레퍼토리의 전부였다. 그리고 이건 사실 노력으로 되는 부분이 아니기에 사람들은 이런 한방을 하늘에서 떨어지는 선물 정도로 생각하며,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고 살았다. TV에서 '내 집 마련이 꿈'이라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대니 그냥 그게 꾸겠거니 하고 한 푼 두 푼 살뜰히 모아 집을 사기도 하고 그랬다. 하긴 그때는 그게 가능한 세상이었다.


숨도 안 쉬고 월급을 50년 이상 모아야 집 한 채 장만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했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월급의 힘을 믿지 않는다. '노동이 아니라 자본이 일하게 하라=경제적 자유'는 이상한 구호가 온 나라를 휩쓸어 대니, 사람들은 더 이상 노동에 어떤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조용한 퇴사'가 붐이라는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자기 계발'에 열을 올린다. 어쩌면 우리 사기꾼들이 딱 놀기 좋은 판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책은 이 사기꾼(인 줄 알았던) 오빠를 잡으러 태백에서 무작정 상경한 동생, 즉 남매의 이야기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에세이처럼 무난히 읽히며, 처음 소개한 문단같이 이게 르포인지 소설인지 가끔 헷갈리는 부분도 있기도 하다. 같이 분개하고, 시원하게 쏟아대는 속사포 비난에 통쾌하기도 할 무렵 동생은 묻는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질문이기도 한 이 질문에 오빠는 "손을 맞잡고 한 발짝씩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산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사랑에는 힘이 있다"고.

언제부터 우리에게 사랑과 믿음이 가치 없는 단어가 된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런데 오빠는 믿음으로, 사랑으로 산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선택은 각자의 몫일진대 나는 자꾸만 사랑을 믿고 싶어진다. 우리 사는 이유가 결국 돈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새삼 책기꾼에 혹해 나도 그렇게 되고팠던 나의 잠깐이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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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확인 홀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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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각자의 사정이 있다.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윤리나 도덕, 규범 같은 것들이 있지만 각자의 사정이라는 건 꽤 복잡다단해서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에 꼭 들어 맞지 않기도 한다. 어떤 이는 이를 깊숙이 감추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이 알아왔던 모든 것들과 등지면서까지 그 사정을 지켜내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윤리적이나 도덕 같은 것들도 사람이 만들어낸 제도가 아니었던가.


경남의 작은 시골마을, 은수리에서 나고 자란 희영의 곁에 어느 날 서울에서 필희가 전학을 온다. 희영은 동네 친구 은정, 전학 온 필희까지 삼총사가 되어 우정을 쌓아가지만, 어느 날 필희 엄마와 은정 아빠가 함께 사라지며 마을의 모든 것이 바뀌고 만다(이후 둘은 본인의 이름으로 자신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등장한다).


죽고 싶다. 한 번 정도는 누구나 했던 생각일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실패에 의해서든, 타인의 의도에 의해서든 혹은 어떤 이벤트이거나, 이도 저도 아닌 일에 떠밀려서 그렇게 되었든 간에 누구나 한 번 정도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 해보았을 것이다. 만약 가장 손쉽게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장소. 심지어 아픔이나 두려움도 없이 순식간에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 시체도 남지 않고 그냥 내가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수 있는 곳을 우리가 알고 있다면 어떨까? 우리는 아마 평생 그곳을 누구에게도 일러주지 않은 채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그 장소를 꺼내볼지도 모른다.


희영과 필희는 필희 엄마가 사라진 그 사건 이후, 우연히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는 이 미확인 홀을 발견한다. 그리고 희영은 이 곳에서 필희를 잃고(사실 이건 확실치 않다) 평생을 그 미확인홀 근처에서 머뭇거린다. 희영은 서울로 떠났고 이미 그 사건은 한참 전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희영은 단 한순간도 이 날을 잊은 적이 없다. 

희영의 주위에는 그때의 필희처럼 이 미확인 홀을 찾아 헤매는 이들이 도처에 있었으니까. 엄마를 잃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미정도, 쇼핑몰 사기 이후 죽기만을 기다리던 혜윤도, 도망가 잘 살 줄 알았지만 돌아오지 않는 남자를 기다리며 평생을 남겨진 아들과 살게 된 순옥도, 그 순옥의 집에서 오백 원짜리를 훔쳐내며 수학여행비를 모으던 이든도 심지어 이런 희영과 살며 마음의 구멍이 더 커져버린 남편 찬영도. 아니 심지어 희영마저도 언젠가는 그곳에 자신을 던져야겠다고 마음 먹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희영은 그 곳을 다시 찾지 않는다. 그녀는 이 미확인홀을 찾는 이들을 필사적으로 만난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손길을 내밀며 그날의 필희를 구해내려 노력한다. 이후 그녀는 30년 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 은정을 만나 묻는다.


"내가 살고 싶어 해도 될까?"

"... 그럼"


희영은 평생을 가져온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은정을 통해 듣는다. 평생 아빠가 부끄러웠던 은정은 이 대답을 통해 필희 엄마를 찾아갔던 그날의 아빠의 사정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각자의 사정들이 다른 이에게는 위태로워 보였을 지언정 어쩌면 그 순간만큼 스스로는 가장 아름다웠음을 알게 된다.


그랬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사정을 가지고 '살아'낸다. 이 사정 때문에 때론 끊어버리고 싶은 지긋지긋한 삶의 굴레에 갇혀서도, 우리는 살아낸다. 그리고 우린 때론 완벽하진 않더라도 서로의 손을 잡기도 하고, 가끔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하며 그렇게 자신의 삶을 살아낸다. 그 아름다웠던 기억 때문에. 


작가님은 소매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단추처럼 삶과의 연결이 위태로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다행이었다. 이런 우리들도 함께 손잡아 주고 살자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렇게 살자. 살아내자. 당신이 어떤 사정을 가지고 있던, 우리 어느 공간에서 서있던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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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 - 언어치료사가 쓴 말하기와 마음 쌓기의 기록
김지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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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앞선 글에서도 몇 번 밝혔듯이 나는 사회복지사다. 물론 지금은 복지관이 아니라 여의도 빌딩에 근무하지만 이전에 꽤 오랜 기간 아동청소년 복지를 담당하며 많은 아이들을 만났고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운영했다. 복지관을 찾는 친구들은 대부분 경제적 사정이 있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나 개 중에는 장애나 경계선의 문제를 가진 친구들도 있다. 이 경우 사실 내가 직접적으로 만난 사람은 아이들보다는 이들의 부모님이었다.(치료는 치료사님의 영역이니) 이 부모님들을 만나며 세상에는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또 다른 백만 개의 사연과 백만 개의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히 '힘내라'라고 말하는 입이 부끄러운 순간, 그저 티슈 통을 그 앞에 놓거나, 가만히 손을 잡아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순간들이 책을 읽으며 문득문득 떠올랐다.


2. 천재 동화 작가로 불리는 전이수 어머니와 '학부모와의 대화'라는 행사를 진행했었다. 엄마들의 여러 질문들이 있었는데 꽤 절박한 질문 중 '아이가 글을 못써요' , '아이가 말을 안 해요' 이런 질문이 있었다. 이수 엄마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는데 이수도 8살 때까지 글을 못썼다는 것이었다. 그 천재가? 어머니의 대답은 이랬다. '나도 이수가 첫 아이여서 너무 걱정이 됐다. 그런데 이수가 글은 못쓰는데 자신의 생각을 오히려 그림으로 표현하더라'라는 것이다. 그게 신기해서 아이의 그림을 몇 장 지켜봤는데 그제야 알겠더라는 것이다. 

아이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 표현하기 어색하고 서툴 뿐이지 그 내면에 충분히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자신의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었다고. 그래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줘야 한다고 이수 엄마는 말했다. 

그랬다. 아이의 세계를 어른의 언어로 재단하는 순간 아이는 어른의 언어에 갇히게 되고, 갇힌 그 경계까지만 자라나는 것 같았다. 자신이 아니라 부모의 눈에 차기만 하면 그만인 아이로. 


3.'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라는 책 제목이 참 멋졌다. 책은 언어치료사가 만난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세계에 관한 기록이다. 그 눈길이 따뜻해서, 아이들을 바라는 진심이 책장 너머의 내게도 느껴져서 참 고마웠다. 저자는 분명하고 또렷하게 세상이 장애라고 선 그어버린 아이 내면의 세계와 가능성을 보았던 것 같다. 

아이들은 마음의 문을 열었고, 천천히 우리들의 세계로 한 걸음씩 걸어 나왔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하나하나 다 알지는 못지만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좋은 어른의 따뜻한 손길, 눈길 그리고 마음을 담은 한마디는 아이들의 마음에 평생 남아 그 아이의 빛이 된다고.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아이들은, 그 상처를 언젠가 오롯이 자신을 안아줬던 이의 온기 하나로 치유하고 살아가기도 한다. 아마도 이 치료사님이 만났던 친구들은 모두가 그 온기를 가지고 있을 거다. 그리고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다리에 힘을 주어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4.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까만 여의도는 여전히 빌딩과 사람으로 가득하다.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며, 스마트폰을 보느라 옆에 누가 서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커다란 광고판과 네온 사인은 매일 같이 오늘의 최신 트렌드를 알려주며, 이것을 사야 힙한 사람이 된다고 유혹한다. 화려한 회색 빌딩 아래서 문득 복지관의 작은 내 책상이 그리워졌다. 쭈볏거리며 복지관 문을 열고 들어오던 아이들이 보고 싶어졌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과 마음이 통하던 그 순간들이. 사무치게 아련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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