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흐르는 강 : 토멕과 신비의 물 거꾸로 흐르는 강
장 클로드 무를르바 지음, 정혜승 옮김 / 문학세계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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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를 마주할 때 좀 난감할 때가 종종 있다. 5월 첫 주, 황금연휴가 출판사들의 골든타임인지라 연휴 때마다 쌓이는 열댓 권의 책을 도장 깨기 수준으로 읽고 쓰는 와중에 만나는 이런 난감한 표지라니. 그것도 부제가 '토멕과 신비의 물'이라니!!

'장 클로드 무를르바'라는 작가도 좀 생소해서 읽기 전 구글링부터 좀 해보았다. 그런데 이 작가. 내 생각보다 훨씬 크고 유명한 사람이다. 그리고 B급 SF물 같아 보였던 이 이야기도 여러 언어로 번역되고(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몇 번이나 번역되었다!!) 변주된 고전 같은 느낌이었다. 이번에도 껍데기만 보고 판단해 버린 내 무지를 탓하며 책을 펴들었다.


<스포주의>

책은 토멕과 한나 주인공의 모험담이다. 잡화점 직원인 토멕은 어느 날 죽지 않게 하는 물을 찾는 소녀(한나)를 만나게 되고 그 소녀를 쫓아 거꾸로 흐르는 강 '크자르강'을 찾아 떠난다. 망각의 숲, 향수마을, 존재하지 않는 섬 등을 차례로 지나며 토멕은 한나를 만나 그들의 모험을 이어간다. 한나가 죽지 않는 물을 찾는 이유는 하나, 아버지가 남겨준 새를 살리기 위한 것. 둘은 우여곡절 끝에 그 물을 찾고 돌아와 한나의 새에게 그 물을 먹이게 된다.

모험이 끝나고 둘은 새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다. 그리고 마냥 꿈같았던 그 모험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 부분이 난 참 좋았다. 물방울이 새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던 순간 어쩌면 크자크강과 그 모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제자리를 찾았을지 모르겠다고. 결국 빈손으로 떠났다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한나의 이야기에 토멕은 숨겨온 향수병을 꺼낸다. 그 병을 열자 악사들이 춤추고 꽃비가 날린다. 마치 그 여정의 끝을 축하한다는 듯이. 여행의 끝에는 둘이 남아있었다.


어른이 읽기에도 무리는 없지만 전반적인 골격은 청소년 소설이고, 이런 판타지 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류의 책은 어떠한 뭉클함까지 선사한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모험을 떠나고 할아버지 역할의 조력자가 있고, 여행의 순간순간마다 만나는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차근차근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 생각해 보라. 해리포터도 반지의제왕도 사실 다 이 포맷 아니던가.


우리나라 번역본 중에 그래픽 노블로 토멕이 주인공인 1권과 한나가 주인공인 2권이 있는 걸 봤는데 다음번에 도서관 가면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영화로 만들어도 꽤 흥미로울 것 같다. 간만에 판타지 소설이라니. 그래 쉴때는 이런 책이 제격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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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은 없고요?
이주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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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읽는 순간 마음이 놓였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별일 없지?'는 나도 종종 오랜만에 만난 누군가에게 쉽게 묻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딱히 그의 삶이 궁금하거나 한건 아니다. 아니 그렇다고 명절에 건네는 큰아버지의 인사처럼 무성의 한 인사도 아니다. 약간의 관심, 하지만 너의 세계에 함부로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는 약간의 주저. 눈앞의 상대에게 건네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호의다.

 '별일 없지?'라는 질문에 대부분은 '응 별일 없지 뭐'하고 씩 웃고 만다. 응 나 그냥저냥 잘 버티고 있어. 아직은 괜찮아.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잘 견디고 있다며 건네는 인사. 생각하면 할 수록 '별일은 없고요?'라는 제목은 그 음절 하나하나가 따뜻하다. 꽤 오래 만나지 못했지만 언젠가 다정했던 누군가가 지금의 퍽퍽한 내게 찾아와 건네는 조심스럽지만 마음을 담은 말처럼.


고등학교 때 소설은 '발단-전개-위기-절정'으로 이루어진다고 교과서에 써 있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드는 의문이 내가 즐겨 읽던 소설 들에는 '위기' 따위 없는 것 같은데 저건 대체 누가 무슨 기준으로 정해둔 것일까? 언어영역 만큼은 꽤 자신 있었던 나도 저 문제 앞에서는 꽤 소심 해졌다. 없는 위기를 찾으려니 꽤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 다들 좀 평화롭게 살면 어디 덧나나.

책에 나오는 8가지의 에피소드들도 그렇다. 내가 너무 나이브 한 것일 수도 있지만 각자의 이야기를 안고 살아가는 제 각각의 삶에 딱히 위기 같은 건 없어 보였다. 그들은 아니 우리 모두는 누군가와 헤어졌다가 만난다. 그 누군가는 가족이기도 하고, 헤어진 옛 연인이기도 하다. 심지어 어제 잠깐 만났던 누군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그 안부라는 것도 사실 시시콜콜한 우리네 일상의 한 부분이다. 죽거나, 사기를 당하거나, 로또에 당첨되는 것 같은 인생이 송두리 채 바뀔 일은 어차피 우리 삶에 잘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삶을 아침에 일어나고, 출근을 하고, 누군가를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일상을 산다. 그 일상 속에 작은 다툼이 있기도 하고, 때론 속상할 일이 생기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런 시시콜콜한 일상을 SNS에 중계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일상을 굳이 노출하지 않는다. 매일 같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매일 다른 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오가며 언젠가 만났던 다정한 사람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 다양한 군상들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묻는다. '별일은 없고요?'


뭐랄까. 따뜻한데 왜 따뜻한지는 도무지 모르겠는 소설은 오랜만이다. 그런데 굉장히 오랫동안 보이는 곳에 꽂아두고 차 마시는 동안 유튜브 대신 한 쳅터씩 다시 꺼내볼 것만 같다. 괜히 몽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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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책 -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이 카피다 카피책 시리즈
정철 지음, 손영삼 비주얼 / 블랙피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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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름 행사명이나 제목 같은 걸 잘 짓는다고 스스로 생각한 적이 있다. 짓는 건 꽤 간단했다. 비슷한 예제를 책이든, 어디든(노래방 책이 이때 꽤 괜찮았다) 쭉 훑어보면 비슷한 예제들이 널려있었고 그걸 그대로 가져다 쓰던, 살짝 비틀든 하면 꽤 괜찮은 제목이 등장했다. 이때 마음 깊이 깨달았아. 하늘 아래 새 것은 없구나. 


물론 언제까지 베끼기로 연명할 수 없었으니 '나 생각보다 크리에이티브 하지 않다'는 걸 나이가 들어가며 그만 인정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언젠가 광고학 수업 때 CF 카피를 보다 무릎을 치고 감탄한 적이 있는데 속이 시원해지는 카피에 이 사람 레퍼런스 찾아봐야겠다 싶어 카피라이터의 이름을 찾아 일부러 적어두었다. 그가 정철이었다. 그리고 한참을 잊어먹고 있다가 우연찮게 도서관에서 <내 머리 사용법>이라는 책을 발견했고 그길로 서점에 달려가 이 책 <카피책> 초판을 구입했다. 그리고 오늘 7년 만에 다시 썼다는 그 책의 그 개정판이 내 손에 들어왔다. 꽤 설렜다.


책을 구분할 때 일반적으로 주제에 따라 구분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번 읽고 마는 책, 두 세번은 더 읽을 필요가 있는 책,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두고 시시때때로 꺼내보는 책으로 구분하곤 하는데 이 책은 인사이트가 막힐 때마다 꺼내 보는 책이다. 

나름 마케터다 보니 제품명을 짓거나 광고 카피 라이팅을 해야 할 일이 제법 되는데 그때마다 책 이곳 저곳을 펼쳐보면서 그가 코칭 하는 여러 방법들을 내 아이템에 대입해 보기도 하고 이미 결정된 아이템임에도 재고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정답이 짜잔 하고 튀어나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가 일러주는 생각을 전환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그렇게 생각을 돌리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답을 얻기도 한다. 


책은 좋은 카피를 쓰기 위한 프로 카피라이터의 32가지 조언이다. '나눠써라, 접속사를 줄여라, 공감하라, 리듬감을 가지라, 단정의 힘을 믿어라' 등 카피를 쓰는 실제적 조언들과 함께 예제가 제시되는데 사실 레퍼런스만으로도 감탄하고 감동할법한 카피들이 꽤 많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람이 먼저다'도 정철 님의 카피인데 초판에 이러한 정치 카피들이 많아 적잖이 불편했던 사람들을 위해 개정판에는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장들을 가급적이면 제하려 노력한 흔적들도 보인다. 또 군데군데 연습문제를 두어 실습도 시켜주는데 읽다 말고 책을 덮고 한참을 예제를 풀라치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된다. 하긴 그게 쉬우면 모두 돈 벌지..


엄숙주의를 탈피하고 싶다는 그의 글은 유쾌하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어쩌면 나도 카피라이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던 찰나 그가 말한다.

당신이 쓰는 모든 것이 카피라고.


크리에이티브 한 모든 직종에 계시는 분들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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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 - 줍고 고치고 사고팔며 가끔 나누는 SF 작가의 신기한 중고생활
이건해 지음 / 에이치비프레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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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이 여기저기 유행처럼 쓰이는 건 알고 있었지만,(나도 가끔 써먹기는 하지만) 아끼는 날들이라니.. ‘줍고 고치고 사고팔며 가끔 나누는 SF 작가의 신기한 중고 생활’이라는 제목에 이건 소설인가, 에세이인가 싶었는데 책은 줍고 고치고 사고팔며 가끔 나누는 작가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읽으면서도 들었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단언컨대 이 작가 ‘당근 마켓’을 수시로 열어보는 (그래서 주변에서 어플 좀 제발 지우라고 타박 받는)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아 이 묘한 동질감이라니.


​1. 스티브 잡스가 오픈한 사과농장을 운영한지도 나도 어연 15년차다. 나도 아이폰 4부터 시작해(3GS는 당시 별난 앱등이들이 보기 싫어 안산..) 맥북, 아이패드, 애플워치까지 처음 나온 시리즈부터 지금까지 쭉 사과 제품만 사용 중인 유저다.(물론 중간에 삼성페이가 궁금해 한번 다녀오긴 했지만) 그러던 내가 얼마 전부터 10년 전에 산 아날로그 시계를 차고 다닌다. 이유는 단순했다. 손목에 자꾸 울리는 알림이 어느 날 갑자기 짜증스러워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에 와 서랍장을 열어보았는데 의외로 해결은 쉬웠다. 돌이켜보면 세 번째 애플워치를 갈아치우며 '더 이상 일반 시계를 찰 일은 없겠구나'라고 생각한 내가 ‘언젠가는 쓰겠지’라는 나조차 믿지 않을 소리를 해대며 저걸 버리지도 팔지도 않고 그냥 둔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날 줄이야. 인터넷으로 시계줄을 사서 셀프로 갈며 나름 이런 기술이 내게 있음이 뿌듯했는데, 시계 약을 직접 가신다고.. 아 작가님 뭔지 정말 나랑 비슷하다.


2. 사과농장주로 살아가며 가장 마음이 지랄맞을 때가 ‘미친 건가’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AS 비용 청구서를 받아들 때다. 휴대폰 액정을 깨먹을 때도 있고, 패드는 배터리가 켠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닳아 없어질 때도 있다. 구입한지 2년 이내의 기기는 웬만하면 수리를 맡기는 편이지만(높은 확률로 나와 같은 앱등이들은 무조건 정품을 선호한다), 2년을 기점으로는 나도 셀프 수리를 시도하곤 한다. '알리'에서 부품을 구입한 뒤 유튜브나 블로그의 성공기를 연습해 보며 몇 개의 휴대폰 액정 및 배터리 자가수리 해봤는데 왠열 성공! 신이 나버린 나는 함부로 배터리 교체를 위해 패드를 열었다가 영영 돌아올 수 없는 사과별로 보내기도 했다.. (하…) 그 다음부터는 함부로 기계를 열지 않는다.


3. 당근을 통해 만나게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그랬다. 내 중고거래에 대한 썰도 풀자면 끝도 없는데, 전자레인지 하나 팔고 봉투에 곱게 넣어 받은 만 원짜리 사연을 브런치에 올렸다 브런치 스타가 된 썰, 언젠가 전자피아노 나눔을 받으러 갔다가 네 명의 아이들이 멀뚱하게 에어컨도 없는 집에 앉아있는 걸 보곤, 아이스크림 한 봉다리를 가득 사서 피아노 값이라며 도로 넣어주고 온 썰. 지난주는 이미 거래 한지 한참 지난 분이 연락이 오셔서 당시 빠뜨렸던 물건과 함께 츄르 두 개를 넣어주셨는데 하필이면 그 때가 고양이가 아파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던 때라 그렇게 한참을 위로 받던 썰. 아끼고 나누다 보면 만나는 좋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이 세상 아직 살만하다.


4. 아! 이 작가님도 도대체 작가님을 좋아하는 것 같다.


5. 선물에 대한 로망도 비슷했다. 선물에 대한 지론이 있는데 어차피 필요한 건 제 돈 주고 살 테니 ‘갖고는 싶은데 내 돈 주고 사기는 좀 애매한 물건을 주는 이가 기가 막히게 찾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나조차 생일선물은 주로 ‘카톡 선물하기’에 올라온 리스트에서 골라주고 마는 편이 되어버렸다. 생일을 당한 이가 위시리스트에 넣어놓은 목록 중 가격이 맞으면 사기도 하고, 이도 저도 아니면 만만한 브랜드의 커피 2-3잔 선물하곤 한다.(큰 금액의 상품보다 이렇게 쪼개주는 게 사용하기 쉽다.) 뭐 이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왠지 언젠가 생일을 당한 이를 떠올리며 선물을 고르고, 사고, 포장하고 가끔은 작은 메모도 남기고 그걸 생일을 맞은 이가 눈앞에서 풀어보는 걸 뿌듯해하던 낭만이 이제는 없다는 게 제법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이 변한걸.


여기까지 쓰고 나니 이 책, 리뷰가 아니라 내가 새로 쓰는 것처럼 애정이 가는 글이 되어버렸다. 딱히 지구를 위한 삶이라는 거대한 이유는 아니지만 ‘웬만하면 이제 새 옷은 사지 말자’라는 다짐을 중고거래를 하다 문득 해버린 적이 있다. 내 옷장에도 옷이 쌓여있고, 중고 장터에도 입을만한 옷이 널려있다. 내가 무슨 대단한 패셔니스타라고 나를 위한 새 옷은 이제 지구가 만들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사실 옷 뿐 아니라 모든 것이 과하다 못해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잘 들여다보면 누군가의 손때 묻은 모든 것에는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꽤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사람 냄새랄까. 가끔 잊어버리고 사는 그 냄새를 중고 물건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새삥’을 노래하며 사는 삶도 좋은 삶이지만, 누군가의 손때를 어루만지며 사는 삶도 나쁘진 않다. 아니 나는 사실 이 삶이 더 정겹고 내 삶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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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중국은 왜 성장하는가 - 부패의 역설이 완성한 중국의 도금 시대
위엔위엔 앙 지음, 양영빈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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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의 사회과학 논문은 일반적으로 재미가 없다. 아니 논문이 재미있다는 분들도 가끔 계시기는 하지만(여기도 그 사람 추가) 와 근데 이 책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1. 비즈니스 해본 분들은 아는 단어이지만, 중국에는 꽌시 문화라는 게 있다. 설명하기 좀 복잡하긴 하지만 줄여 말하면 인맥이 형성되지 않은 사람과는 어떠한 비즈니스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이 좋아 꽌시지 어떻게 생각해 보면 이거 부패의 전형 아닌가?

2.2013년 시진핑은 대대적으로 반부패 운동을 표방하며 중국 내 부패 척결을 시작했다. 2018년까지 35만여 명의 공직자가 처벌받았으며, 이 시기에 장쩌민 시지보다 3배, 후진타오 시기보다는 7배 많은 고위급 인사가 처벌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반부패운동 국제투명성기구의 2017년 국가별 부패인식 지수에서 중국은 77위에 그쳤다.


저자의 근원적 질문은 제목과 같다. 부패한 나라든 조직이든 성장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고 사실 상식에 부합하는 이야기인데 왜 중국은, 그렇게 부패가 많다고 하는 중국은 성장하고 있는가? 


저자는 재밌는 비유로 책을 시작하는데 '모든 부패는 나쁘지만 모든 유형의 부패가 동일하게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라(p.24)며 부패를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1) 바늘도둑:비엘리트, 도둑질, 불법 / 유해약물

2) 소도둑:엘리트, 도둑질, 불법 / 유해약물

3) 급행료(소규모 뇌물):비엘리트, 교환, 불법/진통제

4) 인허가료(비즈니스 뇌물):엘리트, 교환, 불법과 합법/스테로이드


1~3의 경우는 여지 없는 범죄지만 사실이 4번 인허가료는 불법적인 리베이트 뿐 아니라 합법적인 교환도 포함하기에 케이스에 따라 구분이 애매한 경우도 있다. 여하튼 그는 중국의 부패를 이 네 가지로 분류하고 독이 되는 부패와 약이 되는 부패로 나누어 부패를 설명한다. 그리고 중국과 비슷한 수준의 인도와 비교하여 중국을 성장시킨 부패와 시스템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들은 그것들을 어떻게 이겨내고(함께?) 성장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을 다니며 그들의 정치 경제적인 상황을 알게 되었는데 비슷한 사회주의, 독재국가(심지어 시장경제 도입도 비슷함, 시장경제와 동떨어진 나라는 현재 북한, 쿠바 정도가 유일)임에도 계속 내리막을 걷는 국가들과의 차이점을 생각하며 읽을 수 있어 꽤 새롭고 신선했다. 


꽤 많은 연구결과들이 있지만 이 짧은 글에서 다 요약할 수는 없고,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부패는 항상 나쁘지만, 모든 유형의 부패는 똑같이 나쁘지 않고 같은 종류의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다. 둘째, 자본주의는 부패를 박멸함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라 부패를 진화시키면서 발전했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의 성장기를 되짚어 보면 알 수 있다. 아이러니 하게 중국은 소련의 길이 아니라 옛날 미국의 길을 걷는 중이고, 매년 급성장하며 이제는 명실상부한 G2로 올라서 있다. 이들이 더 무서운 저은 아직도 그 성장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순히 부패국가로 낙인찍어 중국을 평가절하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연한 부패에도 중국은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 또 어떤 종류의 부패 때문에 중국이 오히려 성장하는 것인지 이제는 찬찬히 뜯어볼 필요가 있다. 후속 연구들이 계속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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