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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왜 사느냐 묻는다면
미나미 지키사이 지음, 백운숙 옮김 / 서사원 / 2023년 6월
평점 :
부처님의 잠언이다. 학부시절 불교철학을 공부하며 기독교의 채움과 묘하게 비교되는 비움에 대해 꽤 빠져 들었던 적이 있다. 이 책은 꼭 그때를 떠올리게 했다. 이미 생활 속에 녹아들어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수박 겉핥기 식으로만 알고 있던 지혜들. 책은 그 지혜들을 하나씩 풀어 설명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얇고 짧은 문단으로 되어있어 쉽게 읽히는 듯 하지만 생각하고 고민할 거리가 제법 많다. 그 이야기를 다할 수는 없고 내가 밑줄 그은 몇 가지.
1. 죽고 사는 문제로까지 범위를 넓히면 지금껏 거대해 보였던 문제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작아 보인다. 그러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눈앞의 문제가 얼마나 큰가? 혼자서는 버거울까? 남의 도움이 필요할까, 아니면 그저 흘러가게 놔두면 될까? 차분히 살피면 답이 보인다.
- 사실 문제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큰 문제 앞에 서는 것이다.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서 모든 문제는 사소해진다. 가령 오늘 출근길에 에어팟 맥스를 긁었거나, 휴대폰을 떨어뜨려 액정을 깨뜨렸다 할지라도 말이다. 친구나 연인과의 사소한 다툼도 마찬가지다. 죽고 사는 문제 앞에 그저 작은 이벤트의 하나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많은 것이 쉬워진다.
2. 내가 심긴 곳은 '우연히 놓인 자리'일 뿐이다. 우연히 뿌리 내린 곳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꽃까지 피우라는 건 너무나 가혹한 말이다. 제 아무리 불합리하고 힘겨운 상황이라도 순순히 받아들이고 견디며 꿈을 위해 노력하라니, 공평과도 거리가 멀다.
- 가끔 ‘나만 마음을 고쳐먹으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마인드로 살면서, 상대에게도 그것을 강요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불합리한 시스템은 누군가 해결할 테니 네 마음만 고쳐먹으면 된다는 뜻이다. 물론 일체유심조는 그 자체로 유효한 말이나 이를 폭력을 눈 감는 이유로 쓰는 건 조금 곤란하다. 지금 내가 선 곳은 나의 선택이 조금은 들어갔다 할지라도 크게 보면 우연히 놓인 자리다. 그리고 그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니다.
3. 선루에는 '일일시호일' '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날마다 좋은 날"라고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좋은 날인지 나쁜 날인지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매일이 소중하니 좋고 나쁨을 따질 필요가 없다.
- 옳다. 좋은 날과 나쁜 날은 굳이 구분해 봐야 선긋는 이들만 피곤해진다. 좋은 날이 있으면 나쁜 날이 있어야 하고 이렇게 흑백을 구분할 때 인생은 행복과 불행으로 나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라.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볼 때 행,불행을 떠나 하루라도 의미 없는 날이 있었던가? 그때 내가 너무 불행했다고 해서 그 날이 내게 의미 없는 날이었던가. 모든 날은 소중하다. 당신의 오늘도 그렇다.
4. 스님의 바람직한 모습 1)질문을 불편해 하지 않는다. 남의 말을 가로막고 자기 밀어붙이지 않는다. 2)무엇이든 잘 안다고 말하지 않는다. 3)돈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4)자기 자랑을 늘어놓지 않는다. 중요한 건 두 번째다. 잘 안다고 믿으면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자기 말에만 따르라는 거다. 또한 깨달음이니 진리니 번지르르해 보여도 실체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도 멀리하는 편이 낫다.
- 스님의 모습이지만 이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가깝게는 리더, 어른이라 불리는 이들에게도 적용된다. 개인적으로 늙어가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는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고 연차가 쌓일수록 모른다고 말하기 어려워지는데 누구 앞에서건 모르는 걸 배우는 겸손이야 말로 어른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저자는 이 네 가지 중 두 가지만이라도 갖춘 사람의 이야기는 들어볼 법하다고 말한다.
바야흐로 자본주의를 제외하곤 철학이 없는 시대다. 일등으로 졸업하고 좋은 대학 가고, 좋은데 취직하고 돈 많이 벌어서 좋은(돈 많고 권력 있는) 집에 장가들고 시집가면 좋은 인생이라고 말하는 시대. 어디까지 가져야 찾아오는지 알 수 없지만 끊임없이 가지려 할 때 인생의 허무는 반드시 찾아온다고 한다. 왜 사는가? 답을 찾는다면 한 번은 들어볼법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