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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의 정석 - 취향 속에서 흥청망청 마시며 얻은 공식
심현희 지음 / 에이엠스토리(amStory) / 2023년 6월
평점 :
나는 기본적으로 호방함과는 거리가 멀다. 나도 한때 호방한 사람이 되고 싶기도 했다. 어디서나 분위기를 주도할 줄 알고, 입만 열면 유머가 넘쳐흐르며, 세상 진지한 거라곤 1도 없이 항상 호탕함과 쾌활함으로 삶을 주도하는 사람. 그들이 멋져 보였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한때 호방한 척하고 살아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살면 살수록 불편하고 뭐랄까 그 삶이 싫었다. 세상엔 다양한 모양의 사람이 있는데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모든 사람을 덮어버릴 것 같지만 아니 사실 1도 타인을 이해하지 못했다. '에이 뭐 그런 걸로' '에이 그럴 수도 있지' '에어 뭐 쪼잔하게' 이해심이나 배려심이라곤 1도 없이 제 쪼대로 하면서 스스로 뒤끝 없는 호방을 표방하는 게 지긋지긋해졌다. 아니 내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 미안해졌다. 이 호방한 이들이 모인 재밌다는 술자리. 술을 빌어 진심을 말한답시며 밑도 끝도 없는 욕과 뒷담화, 정도껏 허용되는 희롱이 끊임없이 도돌이표 되는 자리는 늘 불편하고 집에 가고 싶었다. 쓸데없이 먹고 싶지도 않은 술과 음식을 구겨 넣은 다음날은 늘 최악이었다. 누군가는 숙취를 훈장처럼 이야기하지만 왜 내 돈 내고 아파야 하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랬다. 내가 이 호방함을 포기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술이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술을 아니 정확히 '술자리'라 불리는 그 흥청망청 호방한 모임을 혐오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술을 마시지 않느냐? 그건 아니다. 우리 집에는 각종 와인과 위스키가 늘 상비 되어있다. 가는 곳마다 그 동네의 양조장도 꼭 들러보는 편이다. 그렇게 강릉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술자리를 제외하고 단지 술만 놓고 이야기하자면 나는 술을 사랑하는 편이다.
술에 관한 책을 집어드는데 술자리에 대한 악담으로 글을 시작한다. 아마도 이 책이 술자리 예찬으로 시작해서 블랙아웃 실수담이나 엮었다면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주류전문기자인 저자는 서두에서 분명히 밝힌다.
'희석식 소주'를 즐기지 않는다. (중략) 취하기 위한 알코올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술의 '맛'자체를 느끼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한 잔의 술에서 복합적인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오로지 인간으로 태어나 느낄 수 있는 행복이라고 생각한다.(p.16)
그렇다면 읽어야 한다. 양조장, 펍 사장님 이야기가 진지로 통용되는 나의 세계관에는 아직 또 다른 술 이야기가 필요하다. 세상은 넓고 술은 많을진대, 오늘 밤 나와 함께 할 내 술을 찾는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와인과 맥주를 가장 좋아한다는 저자는 와인과 맥주에 관한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다. 시리아에서 시작된 와인 이야기로 시작하는 책은 첫사랑 와인 이야기(그러고 보니 내 첫 와인은 뭐였더라...), 하이볼, K 위스키를 지나 막걸리 그리고 소주에 이른다. 읽으며 좋았던 점은 주류 전문 썰쟁이답게 백과사전처럼 어느 술은 어디서 났고 어떻게 생산되었고 같은 나열이 아니라 그 술에 대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뽑아내 들려준다는 점이었다. 마지막 장마다 붙어있는 추천 와인은 고이 적어두었다가 다음번 백화점에 가면 차례로 쟁여올 모양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이 글을 쓰기 위해 책을 한번 더 읽었다. 그런데 여기서 처음에 광광대느라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 보였다. 사람.
술의 본질은 무엇일까. 우리는 왜 술을 마실까. 술에 취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일까?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일까? 사실은 사람으로 받은 상처를 사람으로 치유할 수 밖에 없는 우리가 결국 사람을 잃지 못해서가 아닐까.(p.292)
괜히 술 땡기는 밤이다. 이런 날은 좋은 사람에 마주 앉아 시원한 맥주 한 잔 기울여도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