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행복을 찾고 싶은 너에게
변진서 지음 / 부크럼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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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진서님이 운영하는 유튜북의 초기 구독자이자 팬이다. 지금 이 북스타그램을 운영하게 된 계기도 유튜북이기도 했고(어쭙잖게 북튜브도 해보려다 그건 포기..) 처음 북튜브를 운영하며 단순히 회사원으로 자기를 소개하던 진서님이 어떻게 인플루언서로 성장했는지, 꽤 먼 거리지만 응원하며 지켜본 1인이기도 하다. 

그런 그의 책이 나왔다. 사실 이건 내용의 유무를 떠나 내 입장에선 사서 사인받아야 하는 책이다. 나만 알던 유튜버, 나만 알고 싶은 인플루언서가 이렇게 성장해 있다니 팬으로서 느끼는 뿌듯함과 아쉬움 뭐.. 아 이런 걸 덕질이라고 하는 건가.


해외출장 중이라 꽤 오랜 시간 집을 비운 탓에 한참 전에 도착한 책을 이제야 열었다. 그리고 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읽었다. 개인적으로 책은 쉽게 읽혀야 한다고 믿는데 너무너무 좋은 책이다. 저자의 삶에 대해, 진서님이 그리는 삶의 방향에 대해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행복에 대해 한 방향으로 그려나가는, 읽는 내도록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었다.


고백컨대 사실 진서님에 대한 오해가 좀 있었다. 여느 슈퍼셀럽에 해당하는 예쁘고 끼 많은 사람. 그런데 책에서 보이는 진서 님의 모습은 단편적으로 인스타에서 보이는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금속재료공학 전공, 무명배우 10년 그리고 책을 통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쭉 놓인 고속도로 위를 달렸을 것만 같았던 사람이 사실 우리와 같은 울퉁불퉁한 길에 놓여있던 평범한 사람 중 하나라는 걸 발견하게 될 때 기분이 묘해진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이야기들이 허투루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괜한 포장을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게 된다.


언젠가부터 유행한 주문. '가슴이 뛰는 대로 살라'는 이야기에 대한 편견이 내겐 있었다. 20대는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렇게 살 때에 가져오게 되는 성취에 대한 결과가 필요한 나이지만, 30대가 되고 이제 너도 사회에 정착해야 할 시기임에도 여전히 '가슴이 어쩌고'하며 자꾸 다른 인생을 꿈꾸는 이들이 조금은 답답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들을 꿈돌이라고 불렀고 이제 그만 네 자리에 앉으라고 말했다. 그런데 진서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괜히 떤 입방정에 이불킥을 시작했다. 


사실 그건 내가 판단해서는 안되는 영역이다. 그가 꿈을 좇든 돈을 좇든 그건 그의 삶이고 나는 가만히 지켜보든 응원하든 하면 될 일이다. 혹시 아는가. 그가 정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며 새 삶을 살아낼는지. 그리고 나는, 그 도전의 자리에 가지 않을 거라고 감히 확신할 수 있는가. 지금도 이렇게 다른 삶을 꿈꾸면서.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유튜북의 주인답게 그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책을 매개로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그렇다. 책은 우리에게 자기 계발을 제외하고도 너무 많은 것을 전해준다. 삶의 태도, 지혜, 관계에 대한 이야기까지. <오만과 편견>, <페스트>, <변신>, <아티스트 웨이> 등 그가 인용하는 책들을 통해 이야기되는 삶의 모양들이 자연스레 풀어지는 게 함께 책 읽는 사람으로 괜히 뿌듯하고 좋았다.


대한민국에 책 읽는 사람 별로 없다고. 그래서 책 관련 콘텐츠는 한계가 있다고 그랬다. 그런데 그 한계를 계속 부수어 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여기 있다. 그래서 진서 님의 내일이 어떨지 더 많이 기대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이런 모델이 우리 곁에 있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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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 - 윤석열 정부 600일, 각자도생 대한민국
신장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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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단식 투쟁으로 시작한 이 봄, 우리가 목도한 것은 이 땅의 정치의 참담한 실패입니다. 그것은 단지 차별 금지법을 못 만드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불평등과 부정의로부터 변화시킬 능력이 지금의 정치에 없다는 뜻입니다. 저는 더 이상 국회 앞에 밥상을 차려 놓고 기다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국회가 찾아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찾아올 정치가 부재함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_차별 금지법 제정을 위해 40일간 곡기를 끊었던 인권활동가 미류 씨가 단식 농성 중단 기자 회견 중에서

(p.122)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의 일부이자 지금은 인터넷 밈으로 더 많이 통용되는 말이다. 실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코로나의 영향이 크긴 했으나 우리는 진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부동산 시장을 보았고, 이건 곧 문정부와 180도 다른 정권을 탄생시켰다.


많은 이들이 역대 최악의 정권으로 MB정권을 꼽는다. 물론 미처 임기를 마치지 못한 그 다음 정부가 더 최악이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지만, 슬프게도 그 정부는 사람들의 마음에 평가 거리도 되지 않는 듯 했다. 여하튼 이해 관계자들의 이합집산으로 가득 찼던 그들만의 나라. 사실 그들 뿐 아니라 모두가 돈을 위해 달리던 그 최악의 5년 동안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이후의 식물 대통령이야 말할 것도 없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역설하며 기대를 받던 대통령도 큰 성과 없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MB정부와 가장 닮은 정권을 목도하는 중이다.


검사들의 나라. 사실 이는 그렇게 중요치 않다. 검사든 군인이든 그들이 정치를 잘한다면야, 그들의 말마따나 능력이 있다면야 그것이 검사든 뭐든 상관없다. 하지만 우리가 목도하는 건,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과 한 테이블에 앉는 것조차 거부당하는 이들이다. 그 지엄하던 군사정부 시절도 야당 대표가 단식을 시작하면 대통령이든 그에 준하는 이가 나와서 '왜 그러느냐' 물어보는 게 상대에 대한 예우이자 '정치'였는데, 야당 대표가 20일이 넘도록 금식하는데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경우는 헌정 사상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에게 정치란 무엇인가.


'바이든이 날리면', '수해라고 대통령이 퇴근하지 마란 말이냐', '출퇴근길 (반포대교를 통제할 수 있지만) 시민 불편을 최소화 하겠다', '잼버리 사태(그 당시만 시끌하고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등등 누가 봐도 민망한 실책 앞에서 언제나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이어야 하는가.


<뉴스하이킥> 신장식 변호사의 칼럼을 모아놓은 책은 그래서 아프다.


좋다. 다 차치하고서 우리는 어쩌면 지금 역대 최악의 경제난을 맞이하고 있다. 내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농담이 아니라 눈앞에 닥친 괴담이 되어버렸고 자영업자들의 폐업률을 역대 최악의 수치로 치솟고 있다. 코로나 때는 이것만 끝나면 괜찮아 질 줄 알았다. 끝이 보이는 어려움은 견딜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가 실패한 자리, 찾아올 정치가 부재한 자리에 희망은 없다. 부탁하건대 부디 그가 정치의 자리로 돌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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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노피에 매달린 말들 - 톨게이트 투쟁 그 후, 불안정노동의 실제
기선 외 지음, 치명타 그림, 전주희 해제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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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노량진을 지나가다 꽤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젊은 친구들이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들의 정규직화를 반대한다는 서명을 받고 있었는데, 비정규직, 청년, 여성을 동의어로 생각해온 내게 이 또 다른 청년들의 목소리는 새로웠고 조금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이후 청년들을 대상으로 FGI를 실시했었는데 이때 이들의 입을 통해 들은 메세지는 내가 이들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공평'한 시합에서 '탈락'한 이들은 '다른' 처우를 받아야 한다고. 그들이 청년을 대표하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많은 이들은 정말이지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본인의 처우는 온당하냐는 물음에 지금은 좀 모자라지만 스스로 더 노력해서 '성공' 할 것이라고. 그들은 답했고, 실제로 그렇게 믿는 것 같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지는 모르겠지만 소위 사회적 약자로, 이슈들에 맞서 연대했던 그들은 그렇게 조금씩 갈라지고 있었다. 맞다. 사실 모든 비정규직, 모든 청년, 모든 여성을 사회적 약자라고 부를 순 없다. 일부 괜찮은 환경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도 있고 그들의 목소리가 SNS를 통해 더 크게 울려 퍼지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기득권의 반대편에서 함께 살기 위해 뭉쳤던 이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연대는 이제 추억 속의 이야기일 뿐 거의 대부분의 이들은 이제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


책은 그 중에서도 톨게이트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2019년 1,500여 명의 대량 해고 사태에 도로공사에 맞서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경부고속도로 서울요금소 톨게이트 지붕 위로 오른 이들의 이야기다. 책은 이들을 직접적으로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대법원은 당시 이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들 중 다수가 불법파견을 받은 것으로 인정하면서, 이들도 도로공사 직원임을. 도로공사는 함부로 해고했던 직원들을 해고 철회하고 직접 고용할 것을 명령했다.


언뜻 해피엔딩 같지만 책은, 회사로 돌아간 이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복직 후 이들에게 돌아온 일은 원래 하던 업무가 아닌 담배꽁초 줍기, 풀 뽑기, 화장실 청소였다. 차별과 왜곡, 모욕과 보복으로 이들의 새로운 일은 시작되었다. 

그런데 사실 이 대목은 도로공사의 입장도 들어볼 필요가 있다. 하이패스는 톨게이트의 지형, 구조를 바꾸어 버렸다. 사람들은 더 이상 줄을 서서 통행료를 수납하는 걸 원치 않을 뿐 더러 더 넓고 빠른 하이패스의 설치를 요구한다. 많은 고속도로가 하이패스 도입 초기 30km, 1차선으로 들어갔던 것과 달리 요즘은 많은 고속도로가 톨게이트를 철거해 버린 채 하이패스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달릴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급격한 변화 앞에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잃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이제 와 톨게이트를 다시 설치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면 남은 건 이들에게 어떤 임무를 다시 부여할 것인가다. 도로공사가 지탄받아야 할 부분은 여기에 있다. 그들은 이러한 변화를 충분히 예측했음에도 잉여인력을 너무 쉽게 해고로 마무리하려 했다. 그리고 이것이 불발되자  남은 노동자들에게 줄 수 있는 모든 모욕을 선사하며 스스로 그만두기를 바랐다. 슬픈 일은 사실 이건 도로공사 뿐 아니라 지금도 여느 회사에서 자행되는 해고의 기술이기도 하다. 


효율성 강화라는 미명 아래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우려는 사실 하루 이틀에 걸친 일이 아니다. 꾸준히 경고해왔고, 대책을 요구받았다. 4차 산업혁명. 더 많은 일자리는 AI가 대체할 것이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어쩌면 대량 해고 사태를 경험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톨게이트 노동자들이지만 내일은 나 그리고 당신의 일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어른이 될수록 열심히 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이 꼭 비례하지 않다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되는데, 열심히 살면 내가 더 열심히 하면 잘 될 거라는 환상을 좇는 이들이 21세기에 더 많이 생겨나는 기현상 앞에 딱히 할 말은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당신의 일자리도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고 이것이 현실이 될 가능성은 꽤 높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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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뷰티 - 장애, 모성, 아름다움에 관한 또 한 번의 전복
클로이 쿠퍼 존스 지음, 안진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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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신간이어도 그렇지 이렇게 사전 정보가 없는 책이 있나 싶었다. 이지 뷰티. 쉬운 아름다움. 천골무형성증이라는 장애를 가진 저자의 자서전이자 에세이다.

우리는 이미 사회에 울림을 주는 장애인에 대한 스토리를 몇 가지 가지고 있다. 스티븐 호킹이라든지 닉 부이치치 같은. 이들은 하나 같이 신체적 장애의 어려움을 딛고 무언가를 이룬 극복의 아이콘이다. 긍정적 마음과 불굴의 의지만 가지면 장애는 더 이상 장애가 아니다. 나도 할 수 있다. 저 사람들도 하는데.. 이런 동기부여 메시지를 쏟아내는 성공한 장애인들의 자기고백, 처음에는 그런 책인가 했다.


오해였다. 저자는 자신의 장애인이며 그로 인해 받게 되는 차별에 대해 인지하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앞서 언급한 이들처럼 학문이나 내적인 부분으로 자꾸만 파고들어간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도 있을 수 밖에 없는 외적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 심지어 섹스에 대한 원초적 욕구들과도 점차 마주하게 되고 남들의 시선에 관계없이 스스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이 외적인 것이건, 내적인 것이건 간에.


그리고 클로이는 이 외적인 욕망들을 거절하지 않는다. 여느 성자들 처럼 그것들을 속된 것이라 무시하고 내적인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고 사유하기 시작한다. 철학자이기도 한 그녀의 사유는 여행을 통해 점점 깊어진다. 나아가 모두가 안될 거라고 말했던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며 어느새 그녀는 장애를 극복한 게 아니라 삶에서 장애를 지워버린다.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지닌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그 삶을 누리는 클로이를 우리는 결국 만나게 된다.


책은 브루클린의 허름한 술집에서 두 남자가 장애 있는 여성을 두고 살 가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책의 마지막 챕터에서 저자는 우리를 브루클린의 그 술집으로 다시 데려간다. 남자의 이름은 카일. '선생님의 남편은 선생님의 몸이 부담스러울 때 어떻게 하는지 알고 싶다'라는 그의 무례한 질문에 더 이상 그녀는 중립지대로 도망가지 않는다. 클로이에게 이제 장애를 판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허영심에 상처를 입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자아는 사라졌다. 이제 아무것도 없고 황조롱이 한 마리만 있다. 그리고 내가 아까 그 문제를 다시 떠올릴 무렵에는 그 문제가 덜 중요해 보인다.(p.490)


철학자 머독의 이야기다. 그는 아름다움을 매개로 우리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말하는데 그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더 멋진 비례나 완벽한 비율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우리가 바깥의 세계와 만나는 어떤 지점, 모든 것이 사라지고 홀로 남은 황조롱이 한 마리. 그것이 아름답다. 직설적이고 자신만만한. 이지 뷰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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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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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언제나 강자의 기록이다. 잉글랜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네 개의 연방으로 구성된 영국을 처음에는 꽤 멋진 국가로 알았다. 하지만 언젠가 알게 된 영국 변방이자 허울뿐인 연방, 독립되지 못한 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인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 마음이 저릿했다. 만약 조선이 일본에 독립되지 못한 채 오늘날 일본의 연방 국가처럼 존재한다면 아마 우리 또한 이들과 비슷한 마음으로 오늘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독립운동을 하던 할아버지는 일제의 총칼에 죽고, 시간은 흐르고 경제발전을 거듭하며 100년 전 흘린 피는 잊힌 채 누군가는 적응하고, 누군가는 저항하며 또 누군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말이다.


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아일랜드의 한 가문의 이야기. 독립을 원한 아일랜드에 숨어든 영국의 첩자가 혀가 잘리고 목이 달린 채로 발견되면서부터  삼대를 걸쳐 내려온 사랑과 증오에 관한 이야기다. 첩자의 죽음이 있었던 퀸턴가는 영국의 무장단체에 의해 피로 물든다. 학살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은 윌리는 유일하게 생존했지만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버린 어머니와 함께 근근이 살아간다. 그러던 중 찾아온 외사촌 메리엔과 사랑에 빠지지만, 보이지 않는 현실 앞에 그 사랑을 지탱할 수 없었던 그는 떠나고 메리엔과 딸 이엘라만 남는다. 윌리가 떠난 이후 메리엔은 끊임없이 영국으로 되돌아 갈 것을 종용 받지만 그녀는 떠나지 못한다. 그렇게 삶은 계속되고 이야기는 메리엔을 거쳐 이엘라에게로 옮겨진다. 이들의 이야기는 다음 세대가, 또 다음 세대가 언제까지 이어나갈 것이다.


월리와 메리엔, 이멜다, 세 명의 시점으로 옮겨가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묵직하다. 독립전쟁, 종교분쟁, 사랑 등 역사의 풍경이 담아내는 이야기의 풍경도 다양하다.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 <파친코> 같기도 했다. 


뭐랄까. 이런 긴 호흡의 책을 읽고 나면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하고 싶은 말은 목까지 차오르는데 켜켜이 쌓인 시간 앞에 나의 존재가 보잘 것 없어지는 느낌이고, 내 할아버지, 내 아버지의 선택이 만든 나의 처지에 대한 생각과 함께 지금 나의 선택이 나의 자녀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두려워지기도 한다.

이런 저런 생각에 답답할 즈음 저어기 방문 너머 한잠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 내 고양이가 기지개를 양껏 켜고는 자박자박 내게 걸어온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무릎 위로 뛰어올라와서는 이내 고개를 처박고 갸릉거리기 시작한다. 이 고양이는 나를 선택했다. 10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매일 매 순간 나를 선택했고, 내 무릎 위에서, 내 팔을 베고 누워 나를 필요로 했다. 물론 '아빠 바빠'하고 무릎의 고양이를 바닥에 살포시 내려놓으면 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쿨하게 제 길을 간다. 이 작은 하루하루, 진지하다기 보다 돌이켜보면 한없이 가볍고 한없이 즐거웠던 오늘이 모여 10년이 되었고 나는 이 녀석의 집사, 이 녀석은 나의 고양이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아무리 거대한 세월의 무게라도 괜스레 먼저 쫄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 이 사랑의 결국이야 어떻든 간에 나는 지금 이 곳에서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것. 결과야 어쨌건 간에 나의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것. 이 하루가 모여 삶이 되고 역사가 된다. 그리고 이 하루를 모아서 뒤돌아 볼 때 우리는 그것을 감히 운명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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