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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세계를 이해하는 완벽한 장소
호르헤 카리온 지음, 정창 옮김 / 이봄 / 2024년 9월
평점 :
죽을 때까지 책만 보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전 세계의 서점들을 찾아다니며 그 책 속에 파묻혀 살고 싶다는 상상도 했다. 이루지 못할 꿈이지만 그 마음으로도 꽤 오래 살아왔고 아마도 그럴 것 같다. 장동건이 진행하던 프로그램 <백 투 더 북스>를 보면서 그런 삶이 아주 불가능하지도 않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지금 프로그램이 아니라 진짜로 전 세계의 서점들을 찾아나선 여행자 호르헤 카리온이 지나온 길 위의 서점들을 따라가고 있다.
책을 집어 든 건 역시나 목차에 버젓이 표기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때문이었다. 영화 <비포 선셋>에서 에단 호크가 낭독회를 가지던 거기. 나는 언제쯤 거기를 갈 수 있을까. 이런 낭만에 빠져 페이지를 넘기는데 아테네의 고서점이 나타났고, 독일의 카를 마르크스 서점과 런던의 포일스 서점이 이어졌다.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그곳들에 나 역시 낯선 여행자가 되어 그의 이야기에 발을 옮겼다.
그의 발길은 유럽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스탄불의 책 시장과 도쿄와 중국의 오래된 책방까지 펼쳐진다. 더 멀리 태평양을 건너 미국의 서점과 남미의 서점들, 리우 데 자네이루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서점’에 닿는 순간에는 그에게 부러움을 넘어 묘한 시기마저 느꼈다. 이런 풍경을 직접 보고 그 냄새를 맡고 오래된 책장에 손을 대 본 사람이라니.(그의 여정은 더 나아가 호주로 건너간다. 아이고 배야.)
책을 읽으며 적어두고 계속해서 머릿속에 남은 문장이 있다.
서점은 새로운 것과 비축된 것 사이의 갈등하에 늘 고비에 놓여 있으며 바로 그 갈등 때문에 문화 규범을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 자리한다.(p.52)
문화는 기억 없이 존재할 수 없고 망각 없이도 존재할 수 없다. '도서관'이 모든 것을 기억하기를 고수하는 반면, 서점'은 필연적인 망각 덕분에 현재를 선택하고, 배척하고, 적응한다. 미래는 노후화를 발판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거짓이나 낡은 과거의 사상을, 허구를, 최소량의 빛의 포기를 중단했던 담론들을 폐기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지식을 포기하는 일은 바람직한 것일 수도, 필요한 것일 수도 있는데, 적어도 어느 정도는 잃는 만큼 얻는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피터 버크가 지적했듯이 말이다.(p.370)
서점은 늘 지금과 과거 사이를 오가고 그 긴장 속에서 살아남는다. 서점의 책들은 도서관처럼 모두를 기억하지도 않고 인터넷처럼 무한히 축적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서점은 선택하고, 버리고, 잊는 일을 감수한다. 서점은 자신이 지닌 오래된 지식들을 적당히 폐기해야만 새로운 현재를 만들 수 있다. 그 잃음 속에서 우리는 늘 얻어 왔다는 사실을 책장은 담담하게 증명한다.
어쩌면 서점은 그 갈등과 망각을 허락해 주는 곳인지도 모른다. 어떤 날은 지난 시절을 소환하게 만들고 또 어떤 날은 과감히 어제를 지우고 오늘의 책 한 권을 사게 만든다.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남기고 잃어야 할 것들을 스스로 고르게 해주는 공간. 그것이 서점이 우리에게 오래도록 남아 있는 이유일 것이다.
적어도 어느 정도는 잃는 만큼 얻는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문장을 곱씹으면서 서점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거기서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을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