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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전시회 관람 - 대림 미술관 수석 에듀케이터가 알려주는 미술관 사용
한정희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미술관에 가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사실 나는 미술을 잘 알지도 못하고 작품을 평가할 눈도 없다. 그런데 그저 그곳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조금은 멋진 사람이 된 것 같고 일상에서 벗어난 기분이 든다. 그래서 가끔은 그냥 미술관에 발을 들이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하얀 벽과 높은 천장 그 속에서 부드럽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은 정돈되는 듯한 기분도 든다.
사실 이 책을 펼치면서도 그런 마음이었다. 미술관에 가는 법을 조금 더 배우고 싶어서 이런 책들을 가끔 집어 든다.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인지 어떤 작가가 유명한지 정도는 알아야 할 것만 같아서 집어 드는 교양 혹은 스터디 책 같은 마음이었다. 오 그런데 이 책은 내가 기대한 것과는 달랐다.
이 책은 어떤 작품이, 어떤 작가가 같은 걸 가르쳐 주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미술관을 즐길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어느 미술관을 가면 좋은지, 언제 가야 덜 붐비는지, 작품 앞에 서서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면 되는지, 심지어 전시 기획자들이 전시를 어떻게 구성하는지까지 현직 미술관 직원이 풀어놓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미술관은 더 이상 어렵고 거창한 곳이 아니라 내가 시간을 보내도 괜찮은 곳이 되었다.
책에는 내가 그동안 몰랐던 이야기들이 참 많이 나온다. 미술관에서는 꼭 조용히 걸어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미술관마다 분위기도 다르고 동선이나 작품 배치도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기획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떤 시간에 미술관이 왜 그토록 붐비는지 그 혼잡을 피하려면 언제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소소한 팁 들이었지만 이런데 문외한인 내게는 꽤 큰 팁이다.
그림을 보는 내 눈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기도 했다. 작품을 보는데 자꾸 뭘 공부하려 하기 보다 그냥 천천히 바라보고 느끼는 것이면 된다는 것이 조금은 좋았다.
책의 마지막에는 전 세계의 미술관 10곳을 소개한다. 당연하게도 나는 한곳도 가본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그 목록을 읽으면서 마음 한 켠이 설레었다. 언젠가 저곳들을 하나씩 가보는 게 나의 새로운 버킷리스트가 될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국내에 있는 미술관들부터 한번 가보기로 한다.
01 영국 게이츠헤드, 발틱 현대미술센터
02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
03 독일 에센, 루르 뮤지엄
04 독일 카를스루에, ZKM
05 프랑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06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반 아베 뮤지엄
07 미국 시카고, 시카고 미술관
08 미국 뉴욕, 프릭 컬렉션
09 대한민국 서울, 대림 미술관
10 대한민국 서울, 디 뮤지엄
머지않아 대구에 생긴 간송미술관에 아이를 데리고 가볼 계획이다. 전에 비해 조금은 더 여유롭고 조금은 더 잘 볼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가볍게 그림을 감상할 것 같고, 조금 더 경쾌하게 미술관을 걷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다 미술관에서 길을 잃어도 괜찮다.
미술관에 간다는 건 어쩌면 잠깐의 여행과도 같다. 먼 곳까지 떠날 필요 없이, 버스 한 번 타고 도착한 하얀 전시실 안에서 여행은 시작된다.
오늘은 당신도 잠깐 길을 잃으러 미술관에 가보는 게 어떨까. 그전에 이 책은 꽤 괜찮은 가이드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