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필사적 - 쓸수록 선명해지는 사랑,한 글자씩 마음에 새기는 필사의 시간
노연경 지음 / 필름(Feelm)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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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사랑이라는 단어에 무감각해지는 것 같다. 농담처럼 이 나이 먹고 사랑까지 할 거냐며 누군가를 타박한 적도 있다. 뭐 그런 거 어릴 때나 하는 거지 이 나이 먹고 뭔 사랑이야. 말은 마음을 나아가 몸까지도 무감각하게 만든다. 그렇게 사랑이란 단어는 그저 하나님의 사랑, 아버지의 사랑(물론 이것도 사랑이다) 정도로 멈춰져 있었다. 그러다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멈칫했다. <사랑은 필사적>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내 마음을 건드렸다. 아, 맞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머리로 따지고 계산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필사적으로 하게 되는 것. 사랑이라는 감정이 나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앞으로 내모는 감정이었다는걸.


당신을 사랑한 덕분에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어요. 더 지혜롭고, 더 여유로우며, 더 빛나는 존재로요.

-헨리 제임스 <여인의 초상> p.90


책은 사랑에 관한 짧은 문장들을 모아놓았다. 말 그대로 격언집이다. 그러나 단순히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을 손으로 직접 필사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읽는 책이 아니라 쓰는 책이다. 어떤 문장은 아주 오래전의 누군가가 했던 말일 수도 있고 어떤 문장은 내가 예전에 써놓고 잊었던 일기장 속 문장 같기도 헀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고 마음도 금세 달아올랐다 식는 시대에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는 행위는 묘한 감정을 불러온다. 마음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손은 자꾸 써 내려간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내가 하지 못한 말 혹은 내가 들었던 어떤 말이 떠오른다. 그 말에 걸려 한참을 멈추기도 한다. 쓴다는 행위는, 이 책은 그런 시간의 틈을 만든다. 더군다나 이 책의 문장들은 따라 쓰다 보면 결국은 나의 이야기가 되어 돌아오는 그런 문장들이기도 하다.


나는 아직 이 책의 80개 문장을 다 필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미 몇 줄을 따라 쓰는 사이 어떤 감정이 피어났다. 어떤 사랑은 그렇게 다시 시작된다. 누군가의 문장을 따라 쓰다가 결국 나의 마음을 발견하게 되는 방식으로.


문득 나이가 들면서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선명해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랑이란 필사적으로 해야만 가능한 감정이라는 것.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사를 만큼 후회 없이 사랑했던 기억이야말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나를 부끄럽지 않게 만든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의 나도 후배들에게 누군가에게 그렇게 후회 없이 사랑하라고 자꾸만 잔소리하고 다녔다는걸.


책을 읽으며 혹은 쓰며 떠오른 장면이 있다. 어느 새벽 창밖에는 아직 어둠이 짙고 나는 누군가의 이름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이름 하나, 문장 하나에 마음을 담는 그 순간이 그렇게 절실하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다. 사랑은 어쩌면 그저 그런 순간들을 몇 번이라도 더 만들어보려는 시도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나도 모르게 마음을 키워나가는 어떤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다 쓰고 나면 나도 조금은 사랑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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