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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의 종말 - 평균이라는 허상은 어떻게 교육을 속여왔나
토드 로즈 지음, 정미나 옮김, 이우일 감수 / 21세기북스 / 2021년 6월
평점 :
자라나는 내 아이를 나는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나는 내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남이 정해준 것이 아닌 오롯이 자기 몫의 기쁨을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막상 아직 3살 꼬맹이인 아이가 또래에 비해 말이나 행동이 뒤처진다는 말을 들어도 뭔가 마음이 덜컥거린다.
살고 싶은 삶을 사는 것도 좋지만 결국 남들이 하는건 먼저 해야 한다고 어떤 조건을 계속 덧대진 않을까.
부모가 되기전에 막역하게 생각했던 아이의 미래를 생각할수록 내가 말한 것과 같은 부모가 될 수 없을 것 같아 조금 자신이 없어진다.
그리고 이 생각을 떠올린건 아이러니 하게도 토드 로즈의 <평균의 종말>을 읽으면서다.
우리는 한 사람을 이해할 때 평균으로 그 사람이 얼마나 크거나 작은 사람인지 알곤 한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 사람의 능력을 더하는 실수를 종종 한다. 사람의 능력은 점수로 매겨지지도 않을 뿐 더러 혹 매겨진다하더라도 이러한 평균이라는 숫자는 그 사람이 무엇을 잘하고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아는데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책에 등장하는 미 공군의 조종석 이야기는 이 문제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조종사들의 신체 치수를 평균 내어 설계한 조종석임에도 실제 조종사들에게는 맞지 않았다. 여러 치수에서 모든 값이 평균에 해당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해결을 위해 도입한 것이 각자의 몸에 맞게 조절할 수 있는 설계였다. 이 어이없을 만큼 쉬운 사례를 우리 교실로 가져와보자.
시험점수가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이를테면 단순히 공부 하나 못하는 아이에게 우리는 얼마나 쉽게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는가.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차원적 등급 매기기에 가학적일 정도로 초점을 맞추면서 모든 학생이 평균적 학생과 똑같이 하도록, 더 정확히 말하면 다른 모든 학생과 똑같이 하되 더 뛰어나도록 강요한다.’
우리는 평균에 만족하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하되 더 뛰어나야 한다. 생각해보면 참 어려운 주문이다. 같은 것을 같은 시간 동안 배우고 같은 방식으로 답을 쓰면서, 그 안에서 남보다 잘해야 한단다. 다행인 것은 이것은 미국 교육에 관한 이야기다. 또 큰일났다 싶은 것은 한국의 교실이라고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아니 우리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개성을 존중해야한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그것과 등수를 매기는 일이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함께 가는데 이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저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몇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들쭉날쭉의 원칙’이다. 이는 한 사람의 능력이 고르게 생기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어떤 일을 잘하고 다른 일은 어려워하는 모습까지 보아야 온전히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아이의 부족한 점을 채우는 데만 신경 쓰다 보면 오히려 잘하는 것을 더 해볼 시간을 줄일 수 밖에 없다. 골고루 잘하는 아이를 만들겠다는 욕심이 어쩌면 정작 그 아이가 가진 특징을 지워버리지는 않을까.
둘째, ‘맥락의 원칙’은 아이를 바라보는 말을 바꾸게 한다. 집중력이 없는 아이라고 결론 내리기 전에 어떤 상황에서 집중하기 어려운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아이가 설명을 들으며 집중하는 것과 직접 만져보며 집중하는 방식이 다르다면 그 차이에 대해서도 한번 알아볼 필요가 있다. 아이가 좋아하거나 집중하는 환경을 바꾸어보는 일은 부모인 내가 해볼 수 있는, 아니 해야할 일이다.
그리고 ‘경로의 원칙’. 같은 것을 배우더라도 필요한 시간과 거쳐가는 과정은 서로 다를 수 있다. 빨리 이해하는 능력은 배우는 능력이 아니다. 이해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한 아이가 있고, 교과서의 순서가 아니라 다른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전체를 알아가는 아이도 있다. 책이 제안하는 자율 속도형 학습은 이 지점을 말한다. 정해진 시간에 어디까지 갔는지 평가하던 방식을 바꾸어, 충분히 익힐 수 있도록 배움의 시간을 조정하자는 것이다.
사실 서두에서 밝혔듯 책이 미국의 이야기라 어쩌면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 사이에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입시와 채용의 기준까지 얽힌 일은 부모의 결심만으로 풀 수는 없고 이를 위해 더 많은 학원과 더 비싼 수업을 찾으려는 것도 곤란하다.
저자는 나아가 ‘평등한 맞춤’이라고 말하며 서로 다른 아이들이 배울 기회를 어떻게 함께 보장할 것인가까지도 함께 고민하자고 권한다. 이를 위해 공교육이 감당해야 할 몫을 그는 빼놓지 않는다.
여전히 내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모르겠고 걱정이 된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평균과 비교해 내 아이를 결론 짓지는 않으려 한다. 아이는 아직 해보지 않은 일이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다. 지금 조금 부족하다고 내 아이의 가능성을 좁히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걱정되기는 한국의 교육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 변화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내 아이가 남들보다 얼마나 앞서 있는지 궁금하겠지만 그런것보다 내 아이가 무엇을 할 때 눈빛이 달라지는지를 먼저 살펴보려 한다.
부모라면 <평균의 종말>을 읽으며 자신이 생각하는 ‘잘한다’의 기준을 한번 돌아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