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아름다움 - 어느 우정의 역사
앤 패칫 지음, 메이 옮김 / 복복서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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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일생 동안 견딜 수 있는 고통의 총량이란 게 있을까.

한 사람은 고통을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까.


힘든 일을 겪은 사람에게 위로랍시고 이제는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말할 때가 있다. 그만큼 아팠으니 앞으로는 덜 아파도 되지 않겠느냐는 어떤 바람이기도 하다. 나도 삶이 그런 식으로 계산된다면 좋겠다. 불행과 행복이 모두에게 같은 양으로 공평하게 부여되면 좋겠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간단치 않다. 여기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아니 행복한 이가 있다. 책의 주인공 루시 그릴리의 삶이다.


앤 패칫의 <진실과 아름다움>은 시인 루시 그릴리와 나눈 우정을 기록한 회고록이다. 같은 대학에 다녔던 두 사람은 아이오와 문예창작과정에서 만나 한집에 살며 가까워진다. 아직 작가로서 앞날을 알 수 없던 시절, 글을 쓰고 생활비를 걱정하고 서로의 연애에 참견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던 시절. 둘에가 확실한 거라고는 서로가 마음을 줄 수 있는 친구라는 것 뿐이었다.


루시는 어린 시절 암으로 턱의 일부를 잃었다. 치료 이후에도 재건 수술을 거듭했고, 아픔과 함께 이방인을 보는듯한 타인의 시선을 견뎌야 했다. 우리는 거대한 고난을 이겨낸 이들을 '승리'라는 표현으로 퉁친다. 그리고 그들은 어디서든 행복하게 살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살아난 이들의 삶은 오히려 죽는 것만 못할때가 있다. 수술이 끝났다고 해서 루시의 몸과 함께 마음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루시가 늘 슬픔에 갇혀있던 사람은 아니다. 그녀는 재능 있고 유쾌했으며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앤은 친구 루시를 돌보았지만, 루시 역시 앤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었다. 둘은 문학과 세상에 관해 이야기했고 함께 있는 시간을 좋아했다. 앤은 자꾸만 루시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 그 루시의 편지들을 책에 담은 덕분에 우리는 루시는 알 수 있다.


물론 이 우정이 늘 좋지만은 않았다. 루시는 사랑을 바라면서도 자신이 사랑받는다는 확신을 얻기 어려워한다. 곁에 있는 사람이 거듭 마음을 보여주어도 늘 불안해 했다. 앤은 수술 뒤의 루시를 돌보며 그녀의 생활의 어려움까지 함께 감당해준다. 사랑한다는 말을 성실하게, 때로는 자기 몫 이상의 일을 하며 루시에게 전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시는 끝내 세상을 떠나고 앤은 절망한다.


무엇이 널 구할 수 있었을까.


앤의 사랑이 모자랐다고 말하기에는 둘 사이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있었고, 누군가 조금만 더 애썼으면 달라졌을 거라고 말하기에는 앤이 이미 감당한 것들이 너무 크다.


어쩌면 우리는 사랑에 많은 일을 맡긴다. 충분히 사랑받으면 상처가 아물고, 진심으로 곁을 지키면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거라고 믿는다. 사실 실제로 그럴 때도 있다. 다만 모든 고통이 사랑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가끔 분명한 끝을 알지만 그 걸음을 멈출 수 없을 때가 있다. 이 모든게 헛될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기를 멈출수 없을때가 있다. 함께 살며 나눈 대화와 서로의 글을 응원하던. 서로를웃게 했고, 서로의 아픈 날을 돌아보던 시간들은 루시가 세상에 없다고 해서 함부로 의미 없다 말할 수 있는 시간들이 아니다.


앤은 떠난 루시를 추모하며 그녀를 흠 없는 사람으로 꾸미지 않는다. 불안과 의존, 곁에 있는 이들을 힘들게 했던 모습까지. 루시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꾹꾹 눌러 쓴다. 그리고 이 기억 덕분에 앤이 사랑한 루시가 조금 더 또렷해진다. 좋은 모습만 골라 기억하는 것은 어쩌면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


꽤 긴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온다.

이 이야기는 성실한 사랑으로도 구할 수 없는 절망의 이야기다. 그러나 끝까지 사랑한 사랑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안부 인사가 있다면 이런 책일까.

잘 지내느냐고 물어놓고 괜찮다는 대답만 기다리는 인사가 아니라, 괜찮지 않은 날의 모습도 알고 싶어 하는 사랑의 인사.


앤이 기록한 루시는 아프고 불안했고 사랑했고 황홀했다. 그 모든 시간이 앤과 루시의 시간이었다.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행복할거라 믿었던 시간을 지나고 있지 않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좋겠다. 그리고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안부를 물어보자. 아무말이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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