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있는 여행자를 위한 내 손안의 스페인사 - 단숨에 읽는 스페인 역사 100장면 교양 있는 여행자를 위한 내 손안의 역사
나가타 도모나리.히사키 마사오 지음, 한세희 옮김 / 현익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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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지리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유럽에서 한국인의 기질과 가장 흡사한 나라가 이탈리아와 스페인이다. 공교롭게도 모두 반도(이태리반도, 이베리아반도)에 위치한 국가다. 새해 목표의 하나인 스페인어를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데, 마침 스페인 역사를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 있는 교양서가 나왔기에 펼쳐 들었다. 말미에 '스페인사 연표'가 나오는데 상단은 본문에서 언급한 '스페인 사건'이, 하단은 '세계 사건'이 있어, 거시적 시각에서 본문을 복습하거나 예습하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기원전 한반도에 예맥족과 한족이 살았다면, 이베리아반도에는 남에서 올라온 이베리아인과 북에서 내려온 캘트족이 살았다. 주로 북아프리카에서 이주한 것으로 보이는 이베리아인은 반도 남부와 동부에, 피레네산맥을 넘어 북쪽에서 침입해 온 캘트족은 반도 서부와 중부에 각각 정착했다. 그들의 융합 문화를 켈티베리아 문화라고 부른다. 이어서 로마, 이슬람, 가톨릭의 문화가 섞이게 된다.

기원전 197년 로마인은 이베리아반도에 속주 '히스파니아'를 설치한다. 이는 이후 '스페인(에스파냐)'의 어원이 되었다. 로마 제국의 '팍스 로마나(로마에 의한 평화)' 시절, 히스파니아는 크게 발전하는데, 로마 제국 최고 전성기를 이끈 오현제 가운데 트라야누스와 하드리아누스가 히스파니아 출신이었다. 황제 네로의 스승인 철학자 세네카, 시인 루카누스도 히스파니아 출신이다. 1세기 무렵, 히스파니아에 기독교가 들어온다.

5세기가 되어 게르만족 일파가 세운 서고트 왕국이 들어서고, 서로마 제국의 붕괴 시기와 맞물려 서고트 왕국은 남갈리아 지역부터 이베리아반도 전역까지 지배하는 유력 국가로 성장한다. 이슬람 세력이 침입해 서고트 왕국이 멸망하고 서고트 유민(펠라요)은 북부의 칸타브리아산맥 인근에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세운다. 이어서 기독교 세력에 의한 이베리아반도의 탈환운동인 '레콩키스타(재정복)'가 시작된다.

레콩키스타(722년~1492년)는 약 800년간 벌어지는데,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유대교도 그리고 개종자 사이에 팽팽한 긴장 관계가 이어지지만 그 덕분에 풍부한 문화가 탄생했다. 레콩키스타를 종결하고 스페인 왕국의 시대를 개막한 이는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과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다.

"1469년,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결혼이 성사되었습니다. 이사벨은 1474년에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 1세로 즉위했고, 페르난도는 1479년에 아라곤 왕 페르난도 2세로 즉위했습니다. 그 결과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연합 왕국의 동군연합으로서 '스페인 왕국'이 탄생했습니다."(67쪽)

1492년 이사벨 1세가 콜럼버스의 첫 항해를 지원하면서 대항해시대가 열린다. 이베리아반도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중남미 일대를 향한 신대륙 개척을 본격화하는데, 스페인의 식민지는 북미 대륙의 멕시코부터 중미를 거쳐, 포르투갈령이었던 브라질 이외의 남미 대륙까지 뻗어 있었다. 16세기 후반의 스페인은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는 세계 제국이었지만 실제로는 외화내빈의 상태로 큰 빚을 지고 있었다. 스페인의 재정난은 펠리페 2세의 아버지인 카를로스 1세 시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7세기에는 외국과의 전쟁과 국내의 반란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스페인 제국의 몰락과 미국의 부상을 알리는 신호탄이 미국ㅡ스페인 전쟁이다. 1898년 4월부터 8월까지 쿠바의 독립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스페인 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전쟁은 태평양과 카리브해에서 전개되었는데, 필리핀의 카비데와 쿠바의 산티아고 해전 등에서 패하며 스페인의 완패로 막을 내리게 된다. 스페인은 파리 강화조약에서 쿠바의 독립을 인정하고, 카리브해의 푸에르토리코와 태평양의 필리핀과 괌을 미국에 할양했다. 쇠락하는 상태로 20세기 초반을 맞이한 스페인은 세계가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곤혹을 치룰 때 모두 참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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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가 들려주는 화학 이야기 - 16개의 결정적 장면으로 읽는 500년 화학사
후지시마 아키라 외 지음, 정한뉘 옮김 / 동아엠앤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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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요즘 같은 한파에 외출할 때는 핫팩이 요긴하다. 살살 흔들기만 했는데 오랫동안 따뜻하다. 핫팩 온도는 평균 40도라고 하는데, 대체 안에 뭐가 들었길래 이럴까 궁금한 적이 있다. 알고 보니 핫팩 안에는 철가루, 활성탄, 나트륨 등이 있다고 한다. 주재료인 철이 산소와 만나면 산화반응이 일어나는데, 그 때 열이 발생하고 그 열의 발생을 활성화하고 지속시키기 위한 부재료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산화반응, 그래 이런 게 바로 화학이다. 연금술에서 자라난 화학은 역시 생활밀착형 학문이다.

16개의 결정적 장면으로 500년 화학사를 들려준다는, 매우 용감한 책을 접했다. 입문서라면 도가 튼 일본 과학자들이 공동 집필한 책이라서 믿음이 간다. 난생 처음 본 화학사 관련서이기도 하다. 책의 구성은 총 16장으로, '화학의 기초, 수소·산소의 발견과 플로지스톤설, 탄산가스·질소의 발견과 라부아지에, 주기율, 물리화학 분야의 세 선구자, 전기화학, 열역학과 화학 에너지, 방사선화학, 반응속도, 화학결합, 광화학, 고분자화학, 유기화학, 양자화학, 표면 분석, 유기 화합물의 구조 결정'의 순이다.

각 장마다 세 명의 화학자가 등장한다. 가령 전기와 관련된 화학의 하위 학문인 '전기화학'을 예로 들면, 이탈리아의 알레산드로 볼타, 영국의 마이클 패러데이, 독일의 발터 헤르만 네른스트가 대표적 인물로 등장한다. 1800년 볼타가 구리와 아연으로 전기를 발생시키는 볼타 전지를 발명했는데, 덕분에 영국의 험프리 데이비는 전기분해 연구로 나트륨(Na), 칼륨(K), 칼슘(Ca), 마그네슘(Mg), 스트론튬(Sr) 등의 원소를 발견했고, 데이비의 조수 출신이던 패러데이는 1831년 전자기 유도 현상을 발견했다.

물리학에 뉴톤과 갈릴레이가 있다면, 화학에는 라부아지에와 멘델레예프가 있다. 프랑스의 앙투안 라부아지에는 질량 보존의 법칙을 발견했고, 러시아의 드미트리 멘델레예프는 주기율표를 발표했다. 라부아지에는 1789년 최초의 근대 화학 교과서인 『화학원론』에서 질량 보존의 법칙을 언급하고, 물질의 궁극적인 구성 및 요소를 '원소'로 명명했으며 수소, 산소, 질소 등 33종의 원소를 분류했다. 라부아지에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화학자'로도 유명한데, 단두대에서 처형된 다음 날 수학자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는 이런 말을 남겼다. "그의 머리를 떨어뜨리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같은 머리를 얻으려면 한 세기로도 부족할 것이다."

한편, 주기율표는 모든 원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한 표로, 1870년대 당시 알려져 있던 63종의 원소를 원자량과 성질에 따라 나열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지구상에 존재하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소 자리를 빈칸으로 두었는데, 빈칸에 들어갈 미지 원소의 성질까지 정확히 예측했다. 가령 멘델레예프가 명명한 에카붕소, 에카알루미늄, 에카규소는 훗날 각각 스칸듐(Sc), 갈륨(Ga), 저마늄(Ge)이라는 이름의 원소로 발견되었다. 원자번호 101번에는 그의 이름을 따 멘델레븀(Md)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원자번호 113번 원소는 일본인 연구자 모리타 고스케가 발견했는데, 니호늄(Nh)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공학도 출신의 배우 윤소희가 방송에서 주기율표 20번까지 외우는 암기법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정말 도움이 된다. '허허, 리베비씨는 엔오플네요, 나마알씨는 인황염아라, 카칼슘.'

잘 알다시피, 주기율표의 가로줄은 '주기', 세로줄은 '족'이라고 하는데, 현재 총 7주기 18족이 있다. 영국의 윌리엄 램지는 희토류 원소를 발견해 18족 원소의 존재를 증명했다. 헬륨(He), 네온(Ne), 아르곤(Ar), 크립톤(Kr), 제논(Xe), 라돈(Rn) 같은 비활성 기체가 그러하다. 18족 원소는 화학적으로 안정되어 화학 반응을 잘 일으키지 않는다고 하여 비활성 기체라고 부른다. 책은 비활성 기체의 전자 개수를 그림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전자껍질에도 K 껍질, L 껍질처럼 기호가 있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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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도연명 - 농사꾼 아나키스트 시인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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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아나키스트 인문학자 박홍규는 동진의 전원시인 도연명을 '농사꾼 아나키스트'로 자리매김한다. 도연명에게서 농업을 중심에 둔 비지배, 비착취의 아나키스트 정신과 태도를 읽어냈기에, 그동안 도연명의 산문과 시에 드러난 유불선 사상의 비중 여부는 저자가 보기에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가령 혹자는 도연명이 젊은 시절엔 선비로서의 포부가 있었지만 불혹의 나이 이후부터는 노장의 초탈과 은일 사상에 기울었다고 말하고, 혹자는 도연명 시에 나오는 술 주(酒)를 고요할 선(禪)으로 바꾸면 음주시가 그대로 '선시'가 된다고 했지만, 저자에게 도연명은 유불선 삼교를 회통한 먹물이 아니라 권력과 부를 거부하고서 자급자족하는 평등 공동체를 이상으로 내세운 '농사꾼 아나키스트'의 모범일 뿐이다. 그래서 저자는 도연명의 삶과 시가 제자백가 가운데 농가를 대표하는 허행의 사상과 깊은 친연성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벼슬보다 밭을 택한 시인, 세상과 불화한 자유인. 1600여년 전, 도연명은 출세 대신 퇴장을 택했다. 명예보다 흙을, 권력보다 거문고를, 소음보다 양심의 리듬을 선택했다. 그는 말없이 물러났지만, 그 침묵이야말로 가장 급진적인 저항의 언어였다."

저자는 도연명의 시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시가 바로 「잡시」 1수라고 고백한다. 직접 농사를 짓고 농민과 친구가 된 도연명은 이 시에서 평등을 노래하고 있는데, 인생의 '지금 여기'를 즐기라는 낙관주의와 '모든 사람은 형제'라는 평등한 우정에 기초한 공동체주의가 눈길을 끈다.

"인생은 뿌리도 꼭지도 없는 것

길 위의 먼지처럼 부질없이 나부끼네

흩어져 바람 따라 떠도니

이는 이미 무상한 몸이라

세상에 태어나면 형제 된 것이니

어찌 반드시 골육끼리만 친할까?

기쁜 일 생기면 마땅히 즐기리니

한 말의 술 있으면 이웃을 불러 모으게.

청춘은 다시 오지 않으니

하루에 새벽 두 번 오기 어려워라.

때가 되면 마땅히 힘써 노력할지니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네."

(190, 191쪽)

도연명을 흔히 술의 시인이라고도 한다. 젊어서부터 술을 무척 좋아한 성향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저자는 도연명이 술에 입을 댄 것은 중년 이후, 정확히는 50대 이후라고 토를 단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이런 저자의 단언은 너무 지나치다. 도연명의 다섯 아들이 아비 발끝에도 못미치는 하나같이 못난 이유가 도연명의 애주 때문이라는 설도 있는데 말이다.

아무튼 도연명의 「음주」 20수 가운데 5수가 제일 유명하다. 여기에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은일 이미지로 국화, 남산, 새들이 나오는데, 평정심이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먼저 언급하면서, 자연과의 합일 경지인 '참뜻'은 말로 풀어내기 어렵다고 고백한다. 책 본문에 한시 원문이 전혀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 음주시는 너무나 유명하기에 특별히 원문을 소개하고 싶다.

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결려재인경, 이무거마훤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문군하능이, 심원지자편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산기일석가, 비조상여환

此中有真意, 欲辯已忘言. 차중유진의, 욕변이망언

"초가집 짓고 마을 근처에 살아도

수레와 말 시끄럽지 않네.

그대는 어찌 그럴 수 있는가 묻는다면

마음 멀어지니 땅도 절로 멀어지네.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니

멀리 남산이 눈에 들어오네.

해 질 녁 산 기운은 더욱 아름답고

떠돌던 새들도 무리 지어 돌아오네.

여기에 참뜻이 있으니

말하려 해도 말을 잊었네."

(202, 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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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의 메뉴판 - 한 장의 메뉴에 담긴 시대의 취향, 계층, 문화 이야기
나탈리 쿡 지음, 정영은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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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소문난 맛집에 가면 보통 셰프들이 선보이는 일품요리와 레시피에 주목하는 법이다. 그런데 요리와 레시피 이전에 우리 손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메뉴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메뉴판은 볼수록 매력적인 다면체다.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음식을 알리는 손님의 길잡이가 되기도 하고 영업 실적을 올리려는 레스토랑 홍보물이기도 하고 화려한 만찬 초대장이나 역사적인 문화 전시물, 심지어 이름난 미술품이 되기도 한다. 캐나다 영문학자 나탈리 쿡이 바로 그런 '볼매' 메뉴판을 다각도로 조명해 세계 음식문화와 외식업의 변천사를 선보인다.

메뉴판은 음식을 책임진 셰프의 사적인 취향과 레스토랑의 개성은 물론, 당시의 음식 문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소중한 사료다. 동시에 메뉴판은 "그 시대의 대중 예술과 인쇄 기법, 나아가 소통 기술의 변화까지" 보여주는 문화 텍스트다. 우리는 메뉴판에서 식문화의 발전과 변천사를 엿볼 수 있고, 메뉴판 한 장에서 취향과 권력의 위계, 디자인의 유행까지 일별할 수 있다. 언어학자 댄 주래프스키에 따르면, "메뉴판의 음식 설명에는 온갖 종류의 잠재적인 언어적 단서가 숨어 있다. 이러한 단서들은 우리가 지닌 부와 사회적 계층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고, 사회가 음식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보여준다."

우리는 과거의 메뉴판을 통해 대중문화(특히 식문화)의 패러다임 전환을 읽어낼 수 있다. 패러다임이란 당대의 지배적인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말하는데, 메뉴판이 "사회·정치·문화·의학·상업·요리 역사의 흐름 속에 나타난 결정적인 변화의 순간과 끈질기게 이어진 연속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왕의 만찬과 호화 여객선의 메뉴판은 권위와 품격을 담은 유물이 되었고, 메뉴판에 실린 삽화나 소박한 레스토랑의 메뉴들은 대중의 일상을 기록하는 작은 문서가 되었다."(35쪽)

저자는 총 여섯 가지 범주의 메뉴판을 살핀다. '눈으로 즐기는 만찬, 기념품으로 변신한 메뉴판, 세계 무대로 떠난 메뉴, 우리 안의 어린 시절을 위한 메뉴, 건강을 위한 새로운 미식, 우리를 사로잡는 수수께끼 메뉴'의 순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메뉴 사전'이 있어 플럼 푸딩, 요크셔 푸딩, 비스크, 페슈 멜바, 콘드 비프, 크넬, 마렝고 닭요리, 필레 미뇽, 스위트브레드, 삼부사, 검보, 체리 주빌리, 스트루폴리 등 낯선 요리 이름에 대해 알려준다.

먼저 레 상 비블리오필 정기 만찬 메뉴판처럼 "인쇄술과 예술, 그래픽 디자인이 정교하게 어우러진 복합적 산물"로서의 메뉴판들을 살핀다. 이어서 귀중한 소장품이 된 메뉴판이 등장하는데, 가령 행사를 홍보하거나 유명한 인물이 담긴 경우, 디자인을 맡은 예술가의 이름값 때문에 기념품이 된 메뉴판이 그러하다. 여기서 개인 수집가들의 노고와 헌신을 무시할 수 없다. 세계 최대 규모의 메뉴판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뉴욕 공립도서관인데, 안과의사 출신의 수집가 버나드 프리드가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수집한 메뉴판들이 그곳에 있다. 저자는 또한 '감사의 글'에서 메뉴판을 통해 미국 사회사를 분석한 헨리 보이트와 왕실 메뉴판 전문 수집가인 호주의 제이크 스미스 등을 따로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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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척학전집 : 훔친 철학 편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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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사전에 따르면, "인간과 세계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지식 유튜버 이클립스는 '학문'이 아닌 '태도', 특히 회의적인 태도에다 방점을 찍는다. 철학이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 '왜?'라고 묻는 태도"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얄굿게도 저자는 그런 철학적 태도를 15분이면 훔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이런 장담은 철학적인 태도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취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 역시 데카르트, 칸트, 니체, 하이데거, 카뮈 같은 천재들의 뇌를 충분히 빌려쓸 수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그게 철학서를 읽는 가장 큰 쓸모일 수도 있다.

유명 철학자는 질풍노도의 시대를 살아낸 생존 전문가이고, 이들이 담금질한 철학 개념은 믿음직한 '생존 도구'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실을 찾는 도구, 도파민 중독의 시대에 진짜 기쁨을 찾는 도구, 고립의 시대에 타인을 이해하는 도구"가 바로 이런저런 철학 개념인 것이다. 철학을 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철학 도구를 제대로 쓸 줄 안다는 얘기다. 철학 공구의 쓸모는 크게 '진리와 인식'(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윤리와 정의'(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자유와 실존'(나는 누구인가)의 삼대 영역에 걸쳐 있다.

진리와 인식의 영역에서, 나는 유독 꿈과 기억에 관심이 많다. 꿈과 기억이 창조성과 상상력의 원천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영감이 필요한 과학자와 뮤즈가 절실한 예술가는 꿈을 창조적 상상력의 캔버스로 활용하곤 했다. 가령 멘델레예프의 원소 주기율표와 비틀스의 명곡 '예스터데이'가 다 꿈에서 얻은 영감 덕분이었다. 철학자도 꿈인가 현실인가, 진짜인가 가짜인가, 실재인가 가상인가에 관심이 많았다. 플라톤의 동굴 비유나 장자의 호접몽(나비의 꿈), 데카르트의 악마의 가설, 베이컨의 네 가지 우상, 불타의 마야가 대표적이다. 오늘날 인공지능과 가상 현실 기술의 발달 덕분에, 꿈과 기억의 테마는 여전히 뜨거운 이슈가 아닐 수 없다.

윤리의 정의의 영역에선 도덕철학이 핵심인데, 세 가지 윤리 모델이 유명하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 칸트의 의무론, 벤담의 공리주의다. 저자는 공리주의나 의무론의 교리보다도 "결과와 원칙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법, 상황에 따라 어느 쪽을 우선할지 판단하는 법, 그리고 도덕적 선택의 무게를 감당하는 법"을 강조한다. "벤담과 칸트 사이 어디쯤, 당신만의 윤리적 지점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하면서 말이다. 실제로 현대 사회는 의무론과 공리주의 두 관점을 모두 사용하는데, 법 체계는 대체로 칸트적이고, 정부의 정책 결정은 대체로 공리주의적이다.

자유와 실존의 영역에선 실존주의와 정신분석, 불교의 무아론에 주목하고 있다. 사르트르의 무신론적 실존주의와 키르케고르의 유신론적 실존주의,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불안과 카뮈의 부조리를 언급한 뒤,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라캉의 거울단계를 소개한다. 책을 데카르트의 회의론으로 시작해서 불교의 무아론으로 마무리짓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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