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놉티콘 : 제러미 벤담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64
제러미 벤담 지음, 신건수 옮김 / 책세상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의 공리주의를 창시하였다는 제레미 밴담은 1748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또한 파놉티콘(모두 본다라는 뜻)이라는 거대한 감옥건설을 주장하였다고 알고 있다.

 

여기서 질문 하나,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와 감옥건설이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을까?

 

책세상문고에서 나온 파놉티콘은 벤담의 파놉티곤의 원문과 더불어 해제의 상세함과

길지 않은 분량으로 읽기가 수월하다. 위 질문에 대한 답을 이제부터 찾아나가보자.

 

또한 파놉티콘과 우리의 삶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보자.

 

파놉티콘의 내용

 

먼저 본문 내용을 요약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원래의 파놉티콘은 설계도면과 함께 실행방법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양이었으나 이 계획의 실현이

영국에서는 원활치 않아 당시 혁명이후인 프랑스의회에 원글의 논문을 요약정리한것이 우리에게

읽혀지는 것이다.

 

" 이 모델을 가지고 감옥을 건설하도록 해주십시요. 그리고 저를(벤담) 간수로 임명해주십시요.

이 논문을 읽으면 이 간수가 급여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그리고 국가가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즉 파놉티콘은 일종의 사업계획서로 만들어진 프로젝트이다.

 

"만일 다수의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을 모두 파악할 수 잇는,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끌 수 있도록

그들을 에워쌀 수 있는 수단은 유용하고 효력있는, 이를테면 교육은 학생을 둘러싼 전체 환경의 결과물이고

그의 행동 전부를 관찰할 수 있다면, 그들이 어떤 사물들에 둘러싸이게 하는가,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게 할 것인가를 선택해서 우리가 원하는대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그를 놓는 것이라고 한다면

유용하고 효력있는 수단은 사람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낼 수 있을것입니다."

 

현재까지의 감옥은 쾨쾨하고 끔찍한 거주지이자 온갖 범죄의 학교이며 비참한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공간입니다.

감옥을 완전하게 개혁한다는 것은 죄수들이 바른 행동을 하도록 교화를 보장하고, 지금까지 신체적 정신적 타락으로

오염된 건강과 청결, 질서와 근면을 확고하게 하며,

비용을 감소시키면서도 공공의 안전을 견고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단한 건축아이디어로 이 모든 것을 이루려는것이

바로 이 논문의 목적입니다.

 

새로운 감시방식은 감각보다는 상상을 자극하며 그 감시 테두리 안에서 항상 어디든지 존재할 수 있는

단 한사람에게 수백명의 사람을 맡깁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감독관은 마치 유령처럼 군림합니다.

 

이 감옥의 본질적인 장점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 위해, 진행되는 모든 것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파놉티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이러한 제도가 수행해야 하는 목적은 고통의 본보기를 통해 범죄 모방 불식, 수감기간 동안 수감자의 무례함 예방,

수감자 사이의 예의 유지, 수감자의 거주지 청결과 건강 관리, 탈옥 예방, 필요한 교육, 올바른 습관 형성,

부당한 대우에서 보호, 처벌의 목적에 위배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복지 제공, 무엇보다 이러한 모든 것은

경제적인 방식으로, 성과지향적인 행정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합니다.

 

위 목적을 위한 관리방식은 고통완화의 원칙, 엄격함의 원칙, 경제성의 원칙으로 운영되어야 하는데 모든 대상중에서

경제성의 원칙이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합니다. 공공비용을 지출해서는 안되며 어떤 목적을 위해 가혹함이나 관대함을

이용해서도 안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운영은 사적관리을 해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권력에 대한 애정은 잠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없으나 금전적 관심은 잠을 자지 않습니다.

공적 정신은 새로움이 사라져 버리지만 금전적 이익에 대한 관심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치열해지기 때무입니다.

 

좋음과 나쁨은 비교를 나타내는 상대적인 용어입니다. 나중에 손에 들어온 이익을 보고 나서야 칭찬할만 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선택기준입니다. 결국 계약에 의한 사업자의 관리를 통해서만

이 계획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노동 때문에 감옥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해서는 안되며,규율의 엄격함과 굴욕적인 복장, 조잡한 음식과 자유의

박탈에서 두려움을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작업은 고통이 아니라 수감자들의 위안과 쾌락에 부합되어야 합니다.

 

노동, 그것은 부유함의 아버지이며 가장 훌륭한 재산인데도 왜 저주로 묘사하려 하는가?

 

파놉티콘의 원리는 감시와 경제성을 연결해야 하는 거의 모든 시설에 성공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즉 학교나 병영등 한 사람이 다수를 감독하는 일을 맡는 경우에 모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외 성별격리, 범죄등급과 무리별 격리, 노동에 관하여, 식사조절에 관하여, 의복에 관하여, 징벌에 관하여

청결함과 건강에 관하여 등등 감옥운영에 관한 벤담의 생각이 피력되어 있다.

 

한마디로 죄를 진 죄인을 효과적인 관리와 통제를 통해 경제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나아가 이렇게 하면

사람들을 개조할 수 있고 나아가 사회전체를 개조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 파놉티콘의 핵심주제이다.

 

벤담의 생애와 사상

 

1748년 런던에서 태어난 벤담은 소송 대리인인 아버지의 법관이 되길 희망한 아버지에 대하여 법 이론가로서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였다. 그의 법 이론 연구는 과학적이고 사리에 맞는, 즉 계산된 이익이 구체화되는 법체계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1789년 [사법과 도덕의 원리에 대한 서설]에서 법이 따라야 할 것으로서 과학적이고 계산된 '유용성'을 제시하였다.

 

유용성이란 어떤 행위가 행복 즉 계산 가능한 이익을 증진시키는 경향을 가질 때 옳은 행위이고 반대의 경우는

그른 행위라는 개념이다. 사회와 개개인의 모든 행위의 기준이 되는 원리로 제시하엿고 이의 구체화는

'고통과 거리 두기', '쾌락의 추구'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모든 입법의 목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고 주장하였다.

 

유용성의 원리에 입각해 모든 처벌은 고통을 수반하는 악이므로 ' 더 큰 악을 배제할 가능성이 있는 한에서만'

사용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즉 공리주의 입장에서 처벌이 합리적일 수 있는 경우는 처벌이 범죄자를 교화하거나

그에게서 사회를 보호함으로써 더 이상의 범죄를 막고 다른 사람들이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범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할 때만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벤담은 신체의 처벌에는 저항하였는데 그 이유는 " 이 처벌은 이익으로 전환할 수 있기는 커녕 분명한 손실이며

국가나 다수의 사람을 부유하게 할 수 있는 수단을 버리는 것" 이기 때문이라고 하엿다.

 

결과적으로 사형제도를 반대하였다. 사형수는 노동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유용성이 있음에도

사형은 그 유용성과 이익을 버리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벤담은 노동과 검소를 삶의 규칙으로 삼았다. 그는 접대와 여행을 싫어했고 칩거 생활과 고독을 높이 평가했으며

엄격하게 절제된 식단을 따랐다. 그는 '죽은 시간(불필요한 시간)'을 쫒아 보내려 하면서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은 계산되어 있다"고 말했다.

 

종교적 자선에 반대하고 모든 것을 경제 질서 하에 두려한 벤담은 노동가치설을 철저하게 따랐다.

1832년 84세의 나이로 죽은 벤담은 자신의 주검까지도 유용하게 쓰이기를 원했다. 친구들이 입회한 가운데

그의 시신은 해부되었고,골격을 재구성해 밀랍느로 만든 두상을 덧붙인 후 런던대학에서 공공게게 전시되어

오늘날에도 그를 볼 수 있다.

 

파놉티콘과 벤담 사상의 해설

 

그러면 이러한 내용과 벤담의 생과 사상을 훌륭한 해제의 설명을 통해 검토해보도록 하자.

 

파놉티콘은 감금시설에 대한 계획인데 벤담은 왜 감금시설을 구상한 것일까?

감금시설과 산업화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벤담들의 사상가와 건축가들은 왜 감옥 건축 계획을 수립했고, 당시

건축가들은 왜 그토록 최상의 감옥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가?

 

근대 감옥은 과거의 감옥과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변혁의 흐름에서 발명된 것이다.

감금자체가 처벌인 오늘날과 달리 근대 이전의 감옥은 재판과 형벌을 받기 위한 대기실에 지나지 않았다.

 

자본주의 질서에서는 생산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노동이나 처벌로 그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였다.

형벌의 완화는 구금형으로 인해 감옥에 사람이 넘쳐났고 감옥은 모든 악의 소굴이자 질병의 근원으로 인식되었다.

근대 감옥은 재사회화와 교화를 목적으로 하게 되엇고 이에 따라 많은 감옥이 필요하게 되었지만

국가는 이를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에 " 이 원리는 다행스럽게도 학교나 병영, 즉 한 사람이 다수를 감독하는 일을 맡는 경우에 적용할 수 있다" (70쪽)

즉 벤담에게 파놉티콘은 사회의 모든 것에 적용되어야 할 모델이고 이것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교정하고

생산이익과 완벽하게 결합하게 하는 당시의 사고가 집약된 건축물이다.

 

다시 벤담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보자.

 

"만일 다수의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끌 수 있도록

그들을 에워쌀 수 잇는 , 그들의 행동과 인적관계 , 생활환경 전체를 확인하고 그 어느 것도 우리의

감시에서 벗어나거나 의도에 어긋나지 않도록 할 수 잇는 수단이 있다면,

이것은 국가가 여러 주요 목적에 사용할 수 있는 정말 유용하고 효력있는 도구임에 틀림없다"

 

결국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인간의 정신을 다루려는 기획에서 등장한 가장 극명한

건축 장치가 바로 파놉티콘 계획이다. 오늘날에도 파놉티콘의 다양한 변종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학교와 병영이고 공장이다. 이세가지는 근대국가의 대표적인 집단으로 우리가 알고 있다.

결국 우리는 파놉티콘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셈이 아닐까?

 

파놉티콘은 감옥 건축 계획이지만 벤담이 일생동안 연구하고 생각해 온 것, 즉 법률이나 구호제도, 경찰체계,

특히 교육과 노동, 경제제도를 현실에서 구체화 할 수 있는 표준모델이고 벤담은 파놉티콘을 통해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당대 사회를 완벽한 합리성, 즉 이익 또는 이윤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세계로 재배열하여 ,

마치 만유인력으로 우주를 재구성한 뉴톤처럼 자신의 신념에 따른 새로운 우주를 꿈꾸었던 유토피아 모델중 하나였다.

 

벤담의 사상은 공리주의로 통칭하는 바 인간의 행복이 산술적으로 계산 가능하다고 본 점이고

결국 인간이 모든 가치를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점이다.

 

또한 공리주의는 유용성에 매우 큰 가치를 부여하고 결과를 중심으로 판단하기에 과정을 무시하게 된다.

 

결국 벰담이 바라는 사회의 모습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노동과 이익을 위한

유용성이 중심이 되는 '완벽한 통제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GNP로 늘상 표현되는 우리 삶의 질에 대한

19683월 18일 캔사스 대학에서 로버트 케네디의 연설문중 일부를 인용해보자

 

우리가 늘 경제성장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 GNP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데

지금부터 42년전에 대통령후보가 GNP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하고 있다.



 

"우리 국민총생산은 한 해 8000억 달러가 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기오염, 담배 광고, 시체가 즐비한 고속도로를 치우는 구급차도 포함됩니다.
우리 문을 잠그는 특수 자물쇠, 그리고 그것을 부수는 사람들을 가둘 교도소도 포함됩니다.


 

미국삼나무 숲이 파괴되고, 무섭게 뻗은 울창한 자연의 경이로움이 사라지는 것도 포함됩니다.
네이팜탄도 포함되고, 핵탄두와 도시 폭동 제압용 무장 경찰차량도 포함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팔기 위해 폭력을 미화하는 텔레비젼 프로그램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국민총생산은 우리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민총샌산에는 우리 시의 아름다움, 결혼의 장점, 공개 토론에 나타나는 지성,
공무원의 청렴성이 포함되지않습니다. 우리의 해학이나 용기도, 우리의 지혜나 배움도,
국가에 대한 우리의 헌신이나 열정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그것은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측정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왜 자랑스런운가를 제외하고
미국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있습니다."


 

 

어떠신가?

 

우리는 결국 벤담이 주장한 파놉티콘의 감옥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고 우리의 열정과 정의,올바름과 삶의 가치가 돈이 되지 않거나

유용하지 않으면 의미없다고 하는 세상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닐까?

 

벤담의 공리주의는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의 지배하고 있다. 파놉티콘의 감옥에서.

 

파놉티콘/제리미 벤담/책세상 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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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 명쾌한 동양사상 간단 명쾌한 시리즈
세계사상사연구회 엮음, 이소담 옮김, 시마다 히로미 감수 / 시그마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 붓다가 악마를 속여 베다 종교를 버리게 했고, 불교도가 된 악마는 다른 이들에게도 불교도가 되길

권하여 힌두교에서 보기에는 이단자인 아라한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가장 지위가 낮은 사람들에게도 보시를 받으며 지옥에 떨어질 법한 행위를 일삼았다."

 

위 문장은 힌두교의 비슈누신의 제9아바라타인 붓다에 대한 표현이다.

(아바라타는 아바타의 어원으로 변신, 화신의 의미이다)

 

위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하여,

책의 순서를 약간 바꾸어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불교는 바라문/힌두의 확대판

 

고대 인도를 정복한 아리아인들은 제사를 관장하는 사제계급 = 바라문(브라만),

군인계급=크샤트리아, 서민계급= 바이샤, 원래 인도에 거주하던 민족을 피정복자인 노예=수드라로 삼아

철저한 신분제도인 '카스트 제도'를 정비하였다.

 

이 사제계급은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면서 여러종류의 베다(신에 대한 찬양과 제사의식을 담은 경전)를 통해

사회를 지배하였으나 국가를 통치하는 크샤트리아 계급과 상업을 영위하는 바이샤 계급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발언권이 강화되어 새로운 사상가들을 육성(이것을 사문 沙門이라 하였다)하게 된다. 이에 바라문은 철학적 탐구의

충실함으로 대응하여 주술의 베다시대에서 철학의 우파니샤드의 시대로 변화하게 된다.

 

우파니샤드를 지나온 바라문 사상은 철학적으로는 육파철학을 낳았고, 종교적으로는 '업'에 따른 '윤회전생'을

교의로 삼은 힌두교로 변화하였다.

 

불교는 꼭 바라문이 아니어도 해탈할 수 있다는 사상으로 바라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상이었다.

불교의 창시자 싯타르타는 산스크리트어로 '눈을 뜬자', '깨달은 자'를 뜻하는 불타(붓다)로 불리게 된다.

붓다를 '석가' 또는 '세존'이라고 부르는 것은 '샤카족의 성자'라는 뜻의 '석가모니세존'에서 온 말이다.

 

크샤트리아 출신인 석가가 행한 권도는 바라문에 대한 도전이기에 초기 석가의 전도는 브라흐마가 나타나

중생에게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도록 권유하였기 때문이라는 포교의 형식을 취했다.

석가는 가르침을 구하는 자에게는 카스트에 상관없이 설법했고 여성도 신자로 인정했다. 따라서

신분제도에 얽매여 있던 인도사회를 뒤흔들었다.

 

업과 윤회의 사슬에서 해탈을 구하고자 하는 불교는 힌두사상에 토대를 두었으나 해탈의 경지는 누구나 가능하다

고하는 사상으로 저변을 확대하여 마치 유대인만 구원받는 민족이라는 것을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예수그리스도의 기독교가 유대교에서 출발한 것과 같은 모습을 취하는 점을 볼 수 있다.

 

결국 어느 종교나 출발선은 자기들만의 구원에서 저변을 확대하는 자가 나타나 그 종교를 세계적인 종교로 전환시킨다

는 점을 힌두교와 불교의 변화를 통해 알수 있게된다. 종교의 일반성과 아집에 얽매이지 말고 폭넓게 받아들여야 할

필요를 여기서 다시금 느낀다.

 

힌두사상의 개요

 

브라흐마가 창조, 비슈누가 유지, 시바가 파괴를 담당하는 것으로 역할분담을 하였고 세명의 신의 근본은

하나라고 인식한다. (기독교의 삼위일체가 아마도 여기서 착안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힌두교는 세계를 '순환하는 것'으로 보았다. 신들의 1년은 인간계의 360년이다.

이것을 순차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우주의 시간 진행은 '유가'라는 4개의 시간단위로 이루어진다.

 

크리타 유가 : 4,800년   다르마의 힘(법력)이 최고조

트레타 유가 : 3,600년   법력이 3/4 발휘

드라파라 유가 : 2,400년 법력이 1/2 발휘

칼리 유가  : 1,200년 법력이 1/4 발휘

 

이 네가지 유가가 한번 돌면 1마하유가 = 인간시간으로 432만년이고

1,000마하유가가 1칼파로 겁이라고 말한다. 이는 인간시간으로 43억 2,000만년이고 ,

1칼파가 브라흐마의 낮시간(눈을 떠서 잠들기전)이고

브라흐마의 100년이 비슈누의 낮시간 = 약 600조년이 넘는다.

 

억겁이라함은 43억 2000만년을 1억번 반복하는 시간인데 인도 철학이 생각한 시간 개념은

현대 천문학조차 초월한 시간개념을 갖고 있다.

 

기독교는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신이 시간과 세계, 인간을 만들어내면서 세계가 시작되고,

최후의 심판이 내려지는 '종말'이 찾아오면 그 세계는 완전히 끝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인도의 힌두교 사상은 우리의 이 우주는 끝없이 순환한다고 보았으며 지금의 이 세상은 칼리유가이고

칼리유가의 최종단계에 이르면 바라문조차 베다(법려의 원천)를 소흘히 하고, 사람들은 거리낌없이 범죄를

저지른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은 칼리유가에 종지부를 찍고 세계를 재생시키기 위해 비슈누가 제10 아바타라인

칼키로 변하여 인간 세상에 강림한다. 비슈누는 괴로움이 만연한 세계에 막을 내려줄 구제주이다.

 

비슈누의 10개 화신 가운데 제9아바타라인 붓다까지는 네가지 유가의 진행에 따라

이미 출현한 상태이다.  이 글 제일 처음에 표현한 내용이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

 

이 힌두사상의 핵심은 범아일여로 우주의 근본원리인 브라흐만(범 梵)과 자신의 내면에도 존재하는 아트만(아 我)이

일치하여 자기안의 브라흐만과 마주할 수 있다면 우주의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상이다.

 

불교사상의 개요

 

 

불교사상은 바라문 사상 즉 힌두사상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나 해탈이 오직 바라문만이 가능하다고 보지 않고

누구나 해탈이 가능하다고 본 시각이 세계종교로 나아갈 수 있었다. 업과 윤회의 사슬을 끊어버리는 해탈의 경지를 추구하고

이 세상을 고苦(괴로움)로 바라본 관점은 힌두사상과 다를바가 없다. 다만 그 해탈의 과정을 수행하는 방법에서

많은 교파가 생겨나왔다.

 

석가가 열반한 후 불교는 장로를 중심으로 하는 상좌부불교와 혁신파가 주축이 된 대승불교로 분파되었다.

상좌부불교는 한 개인이 출가하여 스스로 해탈하고 깨달음을 얻는 것을 중시하였고 대승불교는 자신만의 해탈이

아니라 대중에게 가르침을 설파하고 구제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 차이가 있다. 상좌부불교는 타이와 베트남 스리랑카등

남방국가로 퍼져나갔고 대승불교는 히말라야 서쪽을 돌아 한나라 시대에 중국으로 전해지고 이어 한반도로 전해지게 되었다.

 

대승(커다란 탈것)과 소승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대승이 상좌부불교를 자기들만 해탈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멸시하는

표현으로 소승으로 부르는 것이다.

 

이 불교는 인도에서 밀교의 형태로 남아있으나 티벳과 일본일부등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발생지인 인도에서는

사라진 종교라고 볼 수 있다.

 

불교의 갈래에 관하여

 

 불교가 중국에서 팔종으로 번창하였으나 크게 세 가지인 천태종과 정토종 , 선종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천태종은 석가의 가르침만 진수로 삼고 법화경을 중요시 한다. 정토종은 염불을 외어 아미타여래가 사는 정토에

환생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사회 하층 계급인 일반대중에게 인기가 높았다.

선종은 달마대사가 창시한 종교로 중국의 신선사상과 도가 사상과 연결되어 우리에게 전해진 이질적인 불교다.

 

선종의 내용중에는 윤회전생이라는 사상적 전통이 없는 중국에서 윤회에서 벗어나 고통에서 해방된다고 보는 측면보다는

'깨달음'을 얻는 것, 즉 진리에 도달하고 도道와 일체화를 이룬다고 보는 도교적 해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수행방법으로는 선문답을 통하거나 좌선과 명상을 통한 방법을 사용하기에 우리가 사는 현재의 불교가 어떤 맥락에서

이해되고 있는지 알수가 있다. 윤회의 사슬을 끊는것 보다는 깨달음에 중시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현재 우리나라의 불교이해

방식의 연원을 알 수 있다.

 

인도불교의 쇠퇴와 힌두교의 흥성

 

신자를 더욱 많이 모으려면 대중에게 실천하기 쉬운 신앙방법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바라문교에서 힌두교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으로 오직 신에게만 신애神愛를 바치면 신은 그 대상을 반드시 구제해 준다는 새로운 신앙의

길을 제시하였다.

 

불교는 이와 반대로 힌두교가 부흥할 시기에 승려들이 엘리트 집단을 이루며 철학적 교의를 추구하는데 집중해 대중과

멀어졌다. 또한 로마제국의 쇠퇴로 교역이 끊기면서 불교철학을 보호하던 크샤트리아 계급과 상인 계급이 힘을 잃은 것도

불교가 쇠락한 원인이다. 이 와중에 힌두교는 토착 신앙을 흡수하고, 2대 서사시를 정비하고, 육파철학도 발전시킨

인도 굽타왕조시대(서기 4~6세기)에 국교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인도불교의 마지막은 밀교로서 티벳불교에 영향을 끼쳤다.

 

티벳의 달라이라마 제도란 민중을 이끌고 구제하는 관음보살이 계속 특정한 인간(달라이 라마)으로 전생하는데

이 때 생전의 기억을 지닌 채로 전생하며 교단이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선택받은 인간을 찾아내 정치적최고지도다로 삼는 제로를

말한다. 한가지 더, 달라이 라마에 버금가는 지위인 판첸라마는 무량광불(아미타여래)의 화신을 말한다.

 

 

중국사상의 개요

 

전술한 바와 같이 중국인은 인간의 삶에서 지금 사는 현세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 전세와 내세를 초월하는 시간 개념이

없었고 영혼은 물론 세계 자체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여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사상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사상의 핵심은 항상 '현실적'이라는 일관성이 있다. 이는 신=우주와 자기자신의 합일을 추구하고 이 세계는

생명의 연결고리속에서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도의 사상과 대비가 된다.

 

유가의 사회정치조직을 바로 세우기 위한 예의 사상과 도가의 무위자연의 사상도 모두 방법만 다를 뿐 현실속에서 인간 삶의

행복을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다. 더불어 법가, 묵가, 한비자등의 사상도 마찬가지로 현실의 문제해결에

최우선을 두었지 내세라든가 전세라든가의 관점은 아예 없었다.  도교의 최고신은 옥황상제라고 하였지만 죽어서 심판을 받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중국의 여러 사회사상에 관하여 저자는 다양한 내용들을 말하고 있는바 한국인으로서는 어디선가 들었음직한 내용으로 되어 있기에

이처럼 간략하게 설명한다.

 

중국이 불교의 나라가 되지 않은 사상적 배경만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로 불교는 인생이 '고苦"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는데 비해 유교나 도교에는 삶을 고통이라고 보는 사고방식이 없었다.

석가가 출가하게 된 '생노병사'도 '생'은 즐거운 것, '노'와 '사'는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육체를 얻을 수 있은 방법 연구에 더 치중

하였고. '병'도 한방의학과 같은 해결책 마련에 힘을 더 쏟았던 점이다.

 

둘째로 영혼은 육체와는 떨어지지만 사후에도 그대로 존재하며 자손과 교신한다는 사상이 강하게 존재하는 상태에서

조상이 동물이나 벌레로 전생할지도 모른다는 불교의 윤회사상은 유교가 추구하는 "효"와 도저히 양립할 수 없었다.

이처럼 사후세계관의 차이는 불교가 중국에서 자리잡기 어려웠던 점이다.

 

특기할만하게 주장한 이 책의 내용가운데 한국이 기독교의 나라가 된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한국은 유교사상의 '하늘'을 기독교의 신으로 포교하였으나 일본은 기독교의 신을 일본의 고대신과 똑같은 신으로 해석한

차이가 일본과 한국의 기독교도의 차이를 불러왔다고 지적한점이 매우 참신한 해석으로 보인다. 즉 유교의 하늘 사상을

기독교의 신과 대치하여 정서적 이해를 높인점이 한국에서 기독교가 부흥하게 된 이유라는 점이다.

 

이외에 다양한 종교의 기원과 그 주된 교리에 대한 짤막짤막한 설명으로 이 책은 채워져 있다.

 

인도사상과 불교사상에 대한 설명을 통해 평상시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의 기원에 대해 알게 되었다.

힌두교와 불교의 관계를 통해 종교의 기본적 구성을 이해하게 되었고 현세에서의 고통극복과 영혼에 대한 생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게 된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결국 사람은 어떤 관점에 서느냐에 따라 맹목적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인간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어렵지도 않고 쉽게 설명한 것은 이 책의 저자가 한 개인이 아니라 일본 세계사상사 연구회가 엮은 것이기 때문에

각 분야의 전문가가 일반인들에게 동양사상의 내용을 알도록 입문서의 역할을 한 때문이다.

 

간단 명쾌한 동양사상 /일본세계사상사 연구회 엮음/ 이소담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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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인문학 서재
크리스토퍼 베하 지음, 이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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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인문학 열풍이 우리나라에 불고 있다.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잡스가 인문학을 통해서 신제품개발과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에 자극을 많이 받았고 이에 기업하는 사람들이

인문학공부에 심취한다는 말들을 많이 하고 있다.

 

정작 인문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

인문학공부를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삭제된 채

하나의 시대적 트렌드로 인문학이 운위되는 것이 바람직할까하는

의문이 든다.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문(文) , 사(史), 철(哲)로 이름하는 것을 말한다.

 

문은 말 그대로 음악, 미술, 문학, 연극, 영화등 우리의 개인감성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사는 우리네 세상을 둘러싼 세계와 우리의 삶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이야기 하여주는 것이다.

 

철은 인류의 공통의 생각, 오래된 생각들의 집합체를 말한다.

 

즉, 이것을 한마디로 이야기 하자면 '교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때 인류의 고전 , 이를테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나 오딧세이

단테의 신곡등은 문학이라고 하기보다는 문사철이 하나로 용해되어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에 들어와서 문사철이 분리되어 있지만 고전의 반열에 오늘 책들은

이것이 하나로 응집되어 있기에 오랫동안 인류의 사랑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사랑을 받을것이다.

 

또한 많은 예술가난 학자들에게 끊이없이 영감과 학문적 원천을 주고 있기에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그것이 인문학이라고 이해하여야 한다.

 

하버드대학의 총장으로 있던 엘리엇의 다음과 같은 하버드클래식의 편찬의도를 보면

이 고전의 갖는 의미를 알 수 있다.

 

"생계를 위해 하루에 여덟아홉 시간씩 일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특히 초년에 교육받을 기회가 없어서 수년 동안 훌륭한 작품을 읽는데

기꺼이 하루 몇 분씩 투자하고 교양인의 기준에 도달하려는 젊은남녀들이

하버드 클래식을 이용해주기 바란다."

 

초년에 교육받을 기회가 없는 사람들이 교양인이 되도록 하기 위한

고전선집의 내용은 참으로 방대하지만 요즘의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어렵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공부가 시험을 위한 공부이고 합격을 위한 공부이기 때문에

교양과는 담을 쌓는 생활이 바로 그렇게 만들었다고 본다.

 

인문학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적절한 책이다.

 

책의 내용을 다보지 않아도 관계없다. 목록에 어떤 책들이 있는지만 알아도

그 소득은 크다.

 

이 책의 저자는 이 목록을 일주일에 한권정도로 하여 일년에 걸쳐서 읽었다고 한다.

한달에 네다섯권정도로 읽고 훌륭한 교양인이 된다면 얼마나 값진 소득이 될것인가.

 

교양인이 왜 되는가?

 

내 삶의 주인인 내가 , 나를 둘러싼 세상과 세계를 이해하고 나아가

나의 삶을 보다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기위함이 아니던가.

 

이 책은 길을 못찾아 방황하는 이땅의 교양인이 되기원하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등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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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 보았지만 읽지는 못한 명화의 재발견
전준엽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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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은 힘든일이다.

그것도 관심조차 없다면 더더욱 힘든일일 것이다.

 

세상사가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하게 되고

그것으로 모은 인간사의 올바름과 틀림이 규정되는 사회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사회에서 예술은 언제난 찬밥취급을 받거나

아주 고소득상류층의 전유물로 전락하게 마련이다.

 

특히 그림은 음악처럼 직접적인 사람의 감성에 연결되어 있거나

손쉽게 접근이 가능하지 않기에 더욱 접근성이 떨어지기에

보는이가 찾아가기가 어려운 구조다.

 

그러나 예전부터 음악과 미술등의 예술은 당대의 시대상황을 정확히 표현하거나

다가올 미래의 시대를 예견하는 것이기에 미술을 이해하는 것은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

 

보통의 사람들이 그림을 보는 법은 우선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면서

화가의 의도를 알아내거나 아니면 그림에서 오는 느낌을 감상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방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림의 구도를 회회기법을 들어

어떤 구도로 그림이 그려졌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삼각형의 구도는 어떤 의미인지 안정감이 어떤지

왜 그런 색을 선택하였는지 등등을 찬찬히 설명해주는 예술가의 관점이 그림한장한장의

내용을 설명한 뒤에 친절하게 붙어있다.

 

게다가 그림의 역사성과 사회성을

'절대적 아름다움에는 이유가 있다'

'그림은 이야기, 뒷면이 말을 걸어온다'

'천재거나 문제거나, 그림 한 점의 혁명'등등의 챕터를 통해

우리에게 그림을 보는 안목을 깊게 만들어준다.

 

특히 에루아르드 마네의 <풀밭위의 식사>에서 누드를 한 여성을 설명하면서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가 바뀌는 내용의 설명은 읽는이에게 그림 한점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는지 깨닫게 해준다.

 

맨 뒷장에서는 한국화에 대한 설명이 친절하게 붙어있는데

그림을 그리는 화가 뿐만 아니라 화가가 사는 세상에 대한 이해를 하여야만

제대로 그림을 감상할 수 가 있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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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대화에서 비폭력 대화로 - 분노하는 자칼 대화 vs 마음을 알아주는 기린 대화
세레나 루스트 지음, 김영민 옮김 / 비전과리더십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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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만약 누군가와 사이가 안 좋다면?

당신 생각과 너무 달라서 그 사람이 미워진다면?

당신 생각에 도저히 다른 사람이 이해가 안된다면?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아마도 그건 당신 생각이 옳고 다른 사람 생각이 틀린것이기 때문이라던가

혹은 당신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의 무지나 모자람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 책은 [분노하는 쟈칼 대화 대 마음을 알아주는 기린 대화]라는 부제목이 붙어있다.

 

인간은 항상 누구하고든지 대립하는 이익 관계에 놓일 수 있어 자기 욕구만 내세우면

폭력적인 언어로 상대방을 할퀴기 쉽고 폭력적인 언어가 주는 상처는 총카로 남긴

상처보다 깊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할퀴는 자칼 언어인

'폭력 대화'에서 마음을 보듬는 기린 언어인 '비폭력 대화'로 전화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비폭력 대화'란 화가 난 상황에서도 상대방에게 폭력적인 언어 없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대화 방식을 말한다.

 

어떻게?

 

다음의 네가지 단계와 두가지 방법을 책은 이야기 한다.

 

1단계 : 평가하지 않고 관찰하기

2단계 : 해석하지 않고 느끼기

3단계 : 방법대신 욕구 표현하기

4단계 : 강요대신 부탁하기

 

위 단계를 통해 상대방의 동기와 의도를 미루어 짐작하고 해석하고

평가하며 화내고 비판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내가 관찰하는 것, 느끼는 것, 필요로 하는 것, 부탁하는 것 그리고

상대가 관찰하는 것,느끼는 것, 필요로 하는 것, 부탁하는 것을

들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것을 실천하기 위하여는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우선 듣는 것에서 쟈칼의 대화법을 벗어나야 하고

말하는 것에서도 쟈칼의 대화법을 벗어나야 한다고 한다.

 

다음의 사례는 이를 실천하는 대화법이다.

 

차 안에 남녀 두 사람이 있고, 차는 2차선 도로를 시속 100km로 달리고 있다.

남자가 과속을 하는 것 같아서 불안해 하던 여자는 결국 이렇게 말한다.

다음 두 대화를 비교하여 보자.

 

[대화 1]

 

여자  "좀 천천히 운전해!. 사고 나겠어."

남자  " 뭐야, 날 못 믿는 거야? 내가 운전 경력이 얼만데...?"

여자  "그러게 좀 일찍 출발하지.매번 꾸물대다 허둥지둥 운전하게 되잖아. 사람 불안하게."

남자  " 운전하는 사람 옆에서 잔소리는. 그럼 대신 운전하든가."

여자  "그냥 속도를 줄이면 문제가 없을걸. 끝까지 고집을 피운다니까"

 

[대화 2]

 

여자  "지금 속도로 운전하는 걸 보기가 불안해."

남자  " 사고라도 날까 봐 걱정돼서 그래?"

여자  "응, 걱정이 돼. 안전하게 편안한 마음으로 가고 싶거든. 그리고

         이 속도에서는 경치 구경도 못하고..."

남자  " 편한 마음으로 즐기면서 가고 싶은 거구나?"

여자  "그래~"

 

어떤가?

 

구체적인 사례로 살펴보니 자칼의 대화와 기린의 대화 또는 폭력적인 대화와

비폭력적이 대화가 눈에 들어오는가?

 

책은 이외에도 매우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폭력적인 대화와 비폭력적인 대화의

예시를 통해 우리가 어떤 대화법을 택해야 하고 그 결과가 어떤지 보여준다.

 

사람사이에 결국은 말로 이루어지는 일이 많은 세상에서

말 한마디에 천냥빚도 갚는다는 속담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어떻게 말해야 하고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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