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맹꽁이 서당 4 - 조선시대 광해군-효종편 ㅣ 맹꽁이 서당 4
윤승운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이 책을 매일 읽고 독서록을 쓰려 했으나 계속 쓴것이 날아가서 속상했다. 그래도 3,4권만 없어져서 다행이었다. 모두 없어지는 것 보다는 낳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광해군의 폭정에 반정을 일으킨 무리는 창의문을 부수고 성 안으로 들어갔는데 이때 도끼로 문을 부수고 들어간 선봉장이 이기축이런 장사이다. 그는 어려서 고아가 되어서 남의 집 머슴살이로 자란 천한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힘은 장사였지만, 늦도록 장가도 못 가고 있었는데 주인 집에는 마침 딸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그딸은 시집을 가지 안겠다고 하고 자신이 남편을 고르겠다고 했다. 그 딸은 이기축과 결혼을 한다고 했지만 부모님들이 반대를 했지만 결국엔 허락을 받고 결혼을 해서 부부가 되고 글을 배웠다. 얼마 후, 그들은 서울로 이사 와서 살았는데 여전히 글을 배우느라 바빴다. 결국 그는 큰사람이 되었다.
선조가 죽으며 특별히 당부한 이원익 대감은 태종의 왕자, 익녕군의 4세손으로 나라에 큰 공이 있어 궤장도 하사 받은 명신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23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갔는데 맡은 바 임무를 묵묵히 수행해 유성룡, 이율곡 같은 분은 그가 크게 될 인물임을 점치고 있었다 한다. 28세 때는 황해도 도사로 있었는데, 아전들도 아무리 태산같이 일이 쌓여 있어도 물 흘러가듯 일을 잘 터래했다. 당시 감사로 있던 율곡은 모든 송사를 그에게 맡겼다고 하니 얼마나 신임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청나라는 점차로 강세해지며 명나라를 넘보게 됐다. 지난날 비록 폭군이었으나, 광해군은 중립 외교로 무사히 나라를 보전했다. 그러나 인조는 대신들의 의견에 따라, 아예 무시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 결과 후금이 정묘년에 쳐들어왔으니, 이것이 바로 정묘호란이다. 압록강을 건너 국경 관문인 의주성에 이르렀지만, 의주 부윤 이완은 술 마시고 노느라고 방심하다가 적에게 죽고 말았다. 그는 이순신 장군의 조카로 임진왜란 때 장군이 전사하자 민첩하게 대신 군사를 지휘한 공로를 인정받아 의 주 부윤이 된 사람이었다.
병자호란 당시 임금이 청나라에 무릎을 꿇자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한 척화파 대신 김상헌. 그는 안동 김씨로 평생을 곧고 강직하게 산 어른이다. 어릴 때부터 행실이 바르고 법도를 지켰는데 그의 아버지는 기개가 호탕하여 사람을 잘 웃겼다. 김상헌은 이것을 싫어하였다. 그래서 부친은 친구들과 웃으며 놀다가도 밖에서 아들이 돌아오면 멈추었다. 조정에 선 지 50년간, 국난에 관해서는 목숨을 걸고 나섰으며 부정을 보면 칼날처럼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