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가 이끄는 삶
브라이언 채플 지음, 황을호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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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는 은혜를 깨닫게 해주는 책.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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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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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너무 끌렸다.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 담긴 감정을 마주하자니 가슴이 먹먹했다. 이 안에 담긴 감정을 마주할 수 있을까? 몇 번을 망설이다 끝내 책을 샀다. 

처음엔 같이 함몰되는 기분이라 버거웠다. 하지만 그처럼 살고 싶다는 간절함을 농담처럼 가볍게 털어내려면 거쳐야 할 과정이기도 했다. 그 이후로 그가 내놓는 마음들은 진솔하고 덤덤하다. 

중간 중간 영화와 인물을 거들어 하는 평론들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깊게 들여다보고 날카롭게 분석할 수 있는 통찰력이 삶에 대한 남다른 시선에 기반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공허함 울림 같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내가 본 이론이나 관념을 삶으로 해석해내는 일이라 생각한다. 삶에 적용해낼 수 있다면 진짜로 이해했다는 증거가 될테다. 

그의 글에선 그게 돋보인다. 앞으로도 그가 객관화한 수많은 삶의 모습들을 이렇게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보통 사람 최은희씨의 삶처럼 그만이 의미를 닮아 전해줄 수 있는 이야기들에 계속 귀기울이고 싶다.  

상처는 상처고 인생은 인생이다.

피해의식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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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사춘기 - 신앙의 숲에서 길 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신실 지음 / 뉴스앤조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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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이야기일테다. 나는 공감이 간다 여겼지만, 내가 이야기했을 때 공감받기 어려운 이야기라 생각했다. 흔들리며 떠도는 섬처럼, 나누지 못한 이야기가 맴돌아서 늘 사람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못하게 했다. 그럼에도 속해야 하는 의무감은 족쇄같았다. 사랑받고 싶지만 사랑받지 못할 낙인 같은 불편한 감정, 그건 드러내지 않아야 할 배덕의 증표같았다. 흐르려는 물줄기를 일부러 막아두고 있자니 늘 둑이 터질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막는데 힘이 너무 들어가 별일 아닌 일에도 쉽게 지쳤다. 그냥 터놓으면 좀 편해지지 않으려나. 그러나 안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터놓음은 나를 수몰시킬 거라는 걸. 그래서 터놓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다. 

책 소개글을 읽는 순간, 누군가 손 내미는 것 같았다. 말을 걸어 준 기분. 왠지 이야기를 들어줄 것 같은 안도감, 나는 읽었지만, 내 이야기를 터놓은 것 같은 위로를 받았다. 홀로 길을 찾았던 저자의 이야기가 내게도 숨을 틔어주는 작은 길을 내어준 것 같았다. 고마웠다. 감사하다는 말이 얼마나 나에게 절실한 감정표현일지 다 적을 수 없어서 아쉽다. 

난 정말 이 책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무엇보다 다 털어놓고 나면 내침 받을 것 같았는데, 머무를 수 있는 길을 알려주어서 안심이 됐다. "괜찮다."고 도닥임 받은 느낌. 조금은 가볍게 털고 일어나 미소 지을 힘이 생겼다. 

스캇 펙은 악에 관한 두 가지 본질을 제시한다. 인간 본성 안에 있는 악의 쌍두마차는 ‘지독한 게으름‘과 ‘나르시시즘‘이라고 한다. 여기서 게으름이란 성장을 위한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적극적 나태함이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려는 게으름, 한나 아렌트의 ‘무사유의 죄‘에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생각하는 고통, 생각 끝에 올 변화와 성장의 고통을 맞닥뜨리지 않으려는 적극적 수동성이다. - P96

게으름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스캇 펙이 말한 악의 두 번째 본질은 나르시시즘인지도 모른다. 브래넌 매닝이 <아바의 자녀>에서 말하는 것처럼 "죄의 본질은 어마어마한 자기중심성"이다. 사유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이 착한 나쁜 사람이라면, 성찰하지 않는 자기중심적 인간은 "의인이라 칭하는 죄인"이다. 과도한 자기 만족의 사람이다. 바리새인들의 치명적 잘못은 율법을 칼같이 지키는 그 자체가 아니라 ‘이만하면 됐지‘라는 종교적 우월감에서 비롯한 자기중심성이다. - P97

마음의 치유와 영적 성장에 대해 안내하며 만나는 가장 어려운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착함과 자신, 착함과 자기 신앙을 동일화한 사람들. 어떤 것을 감수하고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이다. 착하지만 정직한 성찰은 불가능하다. 아니, 착하기 때.문.에. 불가능한 성찰이라 해야겠다.
진정한 자기 인식의 시작은 한계, 약점, 어두움과의 대면이다. 빛으로 가는 길은 그림자에 있다. 제멋대로 굴고, 이기적이며, 욕심대로 살고, 불같이 화를 내고, 수습할 수 없는 말실수를 저지르기도 한 나쁜 행동을 징검다리 삼아 자기 성찰의 문을 열 수밖에 없다. - P107

억압하고 누른다고 자체 소멸하지 않는 것이 마음의 에너지이다....착하지만 착하지 않은, 생기가 없어 기쁨을 주지 못하는 착함은 이렇게 ‘나쁨‘을 억압하는 데서 온다. ... 자유가 있는 곳에 생기가 있고 기쁨이 있다. 예수님처럼 착한 사람, 기꺼이 자발적으로 내어 주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내가 도달하고 싶은 곳이다. - P111

맹목적 착함을 지닌 시절을 지나고, 대책 없는 나쁨이 폭발하는 사춘기를 지나 좋은 어른이 되는 것처럼 우리 안의 ‘선함‘도 자라 갈 것이다. 나만 착하자고 타자를 착함의 수혜자로 두거나 나쁜 사람 만들지 않고, 허세 가득한 나쁜 사람, 상처 유발자가 되지도 않고,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인격을 향해 매일 조금씩이라도 자라는 착하지만 나쁘고, 나쁘지만 착하기도 한 모호함을 견디는 힘을 가진 어른으로 자라고 싶다. 영적인 성장은 흔히 ‘자기 획득‘과 자기 초월‘ 두 움직임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자기 획득이란 ‘자기 인식‘과 ‘자기 이해‘이다. - P114

밤하늘에 치솟은 100개의 빨간 십자가는 100개의 인격과도 같다. 한 사람은 이 세상 어느 누구와도 같지 않다. 교회 또한 그러하다. ‘교회‘라 부르면 다 같은 교회인줄 아는 것으로 생기는 문제가 허다하다.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 사람이 어우러져 만든 집단의 생태가 관건일 테니 당연한 결과이지 싶다. 누구에게나 좋은 교회가 있기나 한가, 내게 좋은 교회가 네게도 좋으리란 보장이 없다. - P132

목사와 교회로 인해 상처받아 아픈 이들의 치유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자각‘이다. 과도한 긍정성을 극한의 부정성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사기꾼 아니면 성인 둘 중 하나로 세상의 모든 목사를 분류하려 한다면 아직 아픈 것이다. - P139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받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사랑의 대가는 인류 최악의 극형 십자가 아니던가! 건강한 교회 속 아픈 사람들의 분노는 교회를 향한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사랑한 만큼 실망하고, 실망한 만큼 분노하니 그 분노는 사랑이다. 그 분노를 몸으로 맞으며 견디며 낮아진 자존감으로 무력해진 목회자 역시 사랑의 다른 이름을 사는 것이다. ... 모두 환자인데 나만 건강하다고 믿는 것이 치유를 불가능하게 하는 착각이다. - P146

모호함을 견디는 것이 어른의 힘이라는 것, 불안과 불확실성 속에서 영혼의 중심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 성숙한 삶이라는 것을 배웠으니 견뎌야 할 일이다. 텅 빈 손과 낮아진 마음의 공간 안에 생소한 타자가, 새로운 가르침이 조금씩 들어왔다. 사람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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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중독과 기독교 파시즘- 기독교 근본주의에 대한 정치신학적 비판
박성철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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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잠중록 1 잠중록 1
처처칭한 지음, 서미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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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읽은 소설 중 가장 재미있다. 음모와 사건, 신묘막측한 풀이와 통쾌한 한 수 등이 어우러져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흥미진진함, 애절함, 사랑과 원한, 애통, 다양한 감정들이 세밀하게 느껴져서 좋았고, 마치 드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생생한 묘사가 좋았다.  무엇보다 내가 나다울 수 있는 관계를 보여줘서 좋았다. 

주인공 황재하는 남주 이서백 옆에 서야 오로지 그답다. 모든 안온함을 다 안겨줄 수 있는 왕온을 선택하는 것도 여인의 삶으로는 나쁘지 않을 터였다. 오히려 아끼고 돌봄으로는 왕온도 이서백 못지 않다. 하지만 서로 마음이 통하지 않고, 언제든 원할 때 날아갈 수 있도록 신뢰하고 지지해주는 관계의 아름다움만 하랴. 결국 사랑은 그 사람이 그 사람다울 수 있는 자리에 있다. 

이서백에도 오직 황재하여야만 그가 진 영혼의 짐까지 함께 질 수 있을 터였다. 동반자라는 의미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왕온은 물론 뛰어나긴 하나,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자신이 갇힌 사람이었다. 정작 자아는 약했다. 그래서 황재하여야만 자신이 완벽해질 거라는 환상을 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자신을 완성하는 일은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일이다. 누군가가 메꾸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쩌면 왕온은 마지막에 자신이 선택한 전쟁터에서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서로 자유롭게 날 수 있어야 좋은 관계다. 날다가 지치면 쉴 수 있는 둥지도 되어야 한다. 그래서 결론은 납득이 됐다. 마지막까지 예측을 할 수 없는 추리소설의 과정도 흥미진진했던 것 같다. 그 과정에 참여하는 일이 즐거웠다. 

나중에 시간 나면 천천히 다시 읽어보면서 추리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기도 하다. 지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얽힘과 풀림이 마음에 남았다. 여러가지 관점에서 다시 읽을 수 있는 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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