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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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빛을 보았다. 그 빛을 경계로 아버지를 잃었고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얻었다. 내 감정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고 다른 이들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이해하진 못했다. 사람들은 그 소년을 원더보이가 불렀다. 

원더보이가 살았던 시대는 암울했던 1980년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야만 했던 시대다. 사람들은 자유의 빛을 갈망했으나 보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각각의 투사들은 별처럼 반짝였지만 여전히 밤하늘은 어두웠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원더보이가 있었다. 


책은 원더보이의 이야기를 하지만 살아가는 시대 이야기가 몹시 묵직하다. 열 일곱 소년의 시각으로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묵직한 시대가 깊게 스며 있다. 처음엔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소설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아이가 새로운 능력이 생겨서 뭐,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했지만 끝내 책은 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 아이가 살아가는 시대가 어땠는지만 왜 별이 밝게 빛나도 밤 하늘이 어두운지 이야기한다. 엄마를 간절히 찾지만 결국 엄마의 이름만 찾아내고 서로 존재를 확인하는 결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소년의 이야기가, 시대가 눈에 밟힌다. 마음에 남는다. 


별이 빛나도 밤하늘이 어두운 이유는 우주가 아직 젊어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그 밝은 별빛이 아직 지구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아닐까 싶다. 그 시대를 살아야했던 이들은 모두 어떤 의미에서는 원더보이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빛을 향해 걸어가야 했던 이들, 아픈 시대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지만 그 고통을 함께 느끼면서도 어떻게 전달할까를 고민해야 했던 이들, 마음의 소리가 있어도 입밖에 자유로이 낼 수 없었던 시대. 그 시대가 어두웠던 이유는 아직 빛이 당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도,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그 시대 우리는 원더보이였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나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에 서사와 전개가 현실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지라 처음 읽어본 김연수 작가의 책이 썩 취향에 맞진 않았다. 하지만 표현력이 몹시 신선하고 훌륭했다. 내내 문장을 읽어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소설에서 편집장인 재진이 원더보이 정훈에게 책 읽는 법을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책은 일단 아는 것만 읽히기 때문에 책을 읽으려면 먼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한다고, 그리고 책 읽기의 결국은 저자가 써놓지 않는 부분까지 읽어내는 것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그동안 나의 책 읽기가 답보상태엿던 건 보이지 않는 부분도 읽으려는 노력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과는 별도로 책 읽기에 관해 중요한 통찰력을 덤으로 얻었다. 


작가의 표현력이 놀라워서 다음에는 소설이 아닌 에세이를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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