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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계약 을유세계문학전집 136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송기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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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드 발자크 - 결혼 계약

을유세계문학전집의 136번째 문학은 오노레 드 발자크의 결혼 계약이다. 발자크는 많은 작품을 쓴 것으로 유명하지만 특히 총서 <인간극>의 여러가지 풍속 소설은 그가 왜 대문호인 지를 깨닫게 한다.

결혼 계약에 실린 이야기는 총 두가지로 <결혼 계약>과 <금치산>이다. 두 이야기 모두 잘못된 결혼으로 힘들어하는 귀족 남성의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에 여성의 문제점만 지적하는 것이 아닌가 불평할 수 있지만, 그는 당시 여성들이 몰릴 수 밖에 없었던 불합리한 사회 문제까지 지적하며 신랄한 비판의식을 갖게 한다.

"이보게 폴, 결혼이란 가장 어리석은 사회적 희생이라네. 자식들만 그 혜택을 받지. 그 자식들은 자기가 부리는 말들이 우리 무덤 위에 핀 꽃을 뜯어먹을 때가 되어서야 그 희생의 가치를 깨닫게 되거든." -17p


"서로 뜻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면서 상대방의 올가미에 걸려들어 영원히 묶여 있는 두 사람 사이의 전쟁에서 일어날 온갖 종류의 귀찮고, 짜증 나고, 참을 수 없고, 괴롭고, 난처하고, 불쾌하고, 불편하고, 어처구니없고, 지겹고, 돌아 버리게 만드는 일들을 다 열거하지 않겠네." -18p


<결혼 계약> 중 결혼을 하기 위해 총각 생활을 청산하려는 폴에게 친구 마르세는 몹시 비판적으로 나온다. 흔히 기혼인자가 미혼인자에게 결혼을 말리려는 것과는 사뭇 다르지만, 반대하는 이유는 지금의 현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 만큼 날카롭다.

인간에게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의 원인을 주변에서 벌어진 일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찾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45p


담담한 이 문장에선 발자크가 왜 수많은 결혼이 사랑으로 시작해서 상처와 외도와 비난으로 끝나는 지를 깔끔하게 설명하고 있다.

중개인을 앞세운 결혼 계약을 통해 진실한 사랑은 물론 재산까지 챙기려던 폴이었으나, 그는 어리석게도 자신만 아내 나탈리에게 빠졌을 뿐 그녀의 사랑을 얻는 것에는 실패하고 만다. 게다가 욕심 많고, 자신을 싫어하는 장모의 계략에 빠져 엄청난 빚을 지고 파산한다.

폴에게는 곁에 남아 그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독려해줄 공증인 마티아스와 친구 마르세가 있지만, 폴은 그들의 조언을 알아들을 지성도 의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힘껏 폴을 도우려는 마르세의 편지를 읽고 난 폴이 취한 마지막 행동을 보며 발자크는 잘못된 결혼 생활의 끝은 재산의 파산뿐 아니라 자신의 파멸로 이끈다는 점을 명백히 밝힌다.

<금치산>에는 공명정대하고 성실하여 자신의 실속을 차리지 못하는 판사 포피노가 등장한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생활을 돕는 천사처럼 선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저 착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 판사로서 가진 날카로운 통찰력도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해 별거 중인 자신의 남편을 금치산자로 만들려는 후작부인의 음모에 조금도 가담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후작의 억울함은 풀어주지 못하게 된다. 결말은 싸늘한 현실과 난무하는 비리를 참아야만 했던 발자크의 시선이 느껴진다.

소르본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이답게 발자크는 자신의 법률적 지식을 이용하여 좀 더 현실적이고 밀도 높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여성의 지참금으로 재산을 늘리려는 남성, 남성의 귀족 작위로 명예롭고 평안한 삶을 누리려는 여성의 싸움이 당사자가 아닌 공증인 제도로 보이는 것, 남편의 재산을 취하려는 부인이 법원에 남편이 금치산자임을 호소하는 등 당시 어지러운 프랑스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풍속소설 결혼 계약.

왜 발자크가 풍속 소설의 대가인 지 알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재치있고 유머넘치는 문장, 매력적인 인물들의 조합과 거침없는 스토리까지 대만족한 이야기, 모두 즐겨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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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소녀들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18
에드나 오브라이언 지음, 정소영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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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드나 오브라이언 - 시골 소녀들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건데 최근 클레어 키건을 비롯하여 아일랜드 작가들의 작품을 자주 만나고 있다. 이 깨달음이 놀랍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일랜드란 나라가 규모면으로도 작고 인구도 적다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조지 버나드 쇼, 사무엘 베켓,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오스카 와일드 그리고 이 책에서도 언급되는 더블린 사람들의 제임스 조이스까지 아일랜드는 문학의 세계라고 지칭해도 될 만큼 훌륭하고 풍요로운 작가들의 고향이다.

빈곤한 생활, 보수적인 사회, 영국에 의한 핍박 등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는 아일랜드에서 에드나 오브라이언은 <시골 소녀들>을 비롯한 <외로운 소녀들><행복한 결혼을 한 소녀들>로 이루어진 시골소녀들 3부작 시리즈를 집필한다.

보수적인 아일랜드 사회에서는 종교적인 압박으로 인하여 금서로 지정되었으나, 시골 소녀들 3부작은 금방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고전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은 캐슬린과 그녀의 친구 바바다. 처음 등장했던 캐슬린과 바바의 사이를 생각하면 바바와 줄곧 함께하게 되는 캐슬린의 인생이 슬프다가도 곧 바바의 짓궂은 장난은 방어기제임을 깨닫게 된다. 두 어린 소녀는 부모님보다 선생님보다 자신들을 가르쳐주는 수녀들보다 더 서로를 의지하며 세상 밖을 뛰쳐나가려고 한다.

별이 반짝이는 하늘 한 귀퉁이가 내다 보였다. 침대에 누워 별을 바라보니 근사했다. 별빛이 흐릿해지거나 사라지거나 혹은 휘황한 폭죽처럼 환하게 타오르기를 기다리면서. 죽음과도 같은 불행한 고요 속에서 무언가 벌어지기를 기다리면서. -125p

내가 고향을 벗어나서 가고 싶었던 세상. 그런데 이제 그 세상에 들어서자, 무엇보다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바로 늪지의 그 풍경들과 시골 사람들 얼굴이었다. -236p

캐슬린과 바바는 먼저 집을 떠났고, 가부장적인 부모를 떠났으며, 나중엔 종교적 규칙으로 억압하는 수녀원을 떠났다. 늘 같은 삶을 반복하는 시골을 떠났고 도시 더블린에서 새로운 삶과 사랑을 꿈꾼다.

캐슬린이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유부남인 젠틀먼에게 끌리지만, 그녀를 탓할 수는 없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딸은 그렇게 연애를 망친다는 연구도 있으니.

그럼에도 그녀의 연애가 천박하거나 어린 아이의 장난으로 보기만 힘든 것은 그녀가 젠틀먼씨에게 바란 것은 오로지 사랑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못말리는 낭만주의의 사랑이 아니라 정말 순수한 사랑만을 바랐다는 점.

시골에서 아버지에 폭력과 어머니의 갑작스런 부재를 겪으며 자신의 인생을 씩씩하게 헤쳐나간 소녀 캐슬린과 친구 바바의 이야기, 3부작의 첫 번째 이야기는 이렇게 흥미진진한 시골소녀들의 도시 생활로 끝난다.

날카롭게 뻗어나온 이야기는 사실적으로 소녀들의 내면과 행동에 집중한다. 아일랜드가 시골 소녀들을 금서로 지정했던 것은 그만큼 이 소설의 힘이 대단했기 때문 아닐까. 진실이란건 감추려고 해서 감춰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 소설을 쓰는 사람이 상상하는대로만 이야기를 지을 수 없다는 점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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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우맨 암실문고
마틴 맥도나 지음, 서민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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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맥도나 - 필로우맨

쓰리 빌보드, 킬러들의 도시, 이니셰린의 밴시의 유명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던 마틴 맥도나의 희곡 '필로우맨'은 끔찍한 학대와 살인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참담한 인생에 반항해 보려는 순수함이 드러나는 이야기다.

왜 권위 있는 시상식마다 단골 후보로 오르는지 알 수 있을 만큼 흡인력 있는 이야기에 현실의 문제를 관통한 현대의 희곡이었다.

배경은 아동 연쇄 살인을 수사하고 있는 형사 투폴스키와 아리엘의 수사실, 전체주의 국가라는 배경으로 그들 경찰의 능력은 실로 범죄자를 그냥 잡아다 가두고 폭력은 물론 사형까지 즉결 심판을 내릴 수도 있다.

'이야기꾼의 첫 번째 의무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저는 이 말을 전적으로 믿습니다. 아닌가, '이야기꾼의 유일한 의무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였나? 네, 그게 맞겠네요. '이야기꾼의 의무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20p


글쎄요, 제 생각엔 우리 그냥 이대로 살아야 할 것 같아요. 나는 계속 괴롭힘을 당하고 동생은 그 소리를 듣고 많은 이야기를 쓰는 걸로요. 왜냐하면 난 내 동생의 이야기들을 정말 좋아하게 될 것 같거든요. 난 그 이야기들을 정말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 -202p


이야기를 쓰는 동생 카투리안과 그 이야기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형 마이클은 똑같이 아동학대의 피해자이며, 동시에 살인자이기도 하다.

형사 투폴스키와 아리엘 역시 어린 시절 불우한 가정 환경과 성범죄 등을 겪어내며 자랐다. 여기서보면 누군가는 같은 학대를 겪고도 살인자가 되고 누군가는 형사가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실은 그냥 똑같이 아픔을 겪어 어딘가 불안함을 안고 사는 성인이 되었다.

마지막 결말에 카투리안은 형 마이클을 위한 필로우맨 이야기를 새로 쓴다. 그는 형의 끔찍하고 비참한 인생, 어린 시절 부모에게 끔찍한 학대를 당하다가 중심을 잃고 동생이 쓴 이야기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결국 살인자가 되고 마는 사랑하는 형을 위해서.

나는 어쩌면 어린 시절 상처를 품은 사람들이 이렇게라도 비참한 현실을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끔찍한 일을 당하기 전, 먼저 피해버리는 삶도 있지만 그걸 다 꿋꿋하게 버텨낸 내가 완전히 망한 인생을 산 것은 아니란 걸 어떻게든 증명하고 싶어했던 것을 아닐까. 그 처절함에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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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나를 견디는 법 - 도망치는 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일일 테니
쑥 지음 / 빅피시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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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 - 흐릿한 나를 견디는 법

쑥 작가의 신작 에세이 <흐릿한 나를 견디는 법>은 여전히 흐릿하지만, 또 자주 실망하고 실수하지만 나를 사랑해주려고 노력하는 현대인들을 위로한다.

내가 너무 하찮게 느껴지고, 사회생활에서 인간관계에서 너무 힘들 때 넌 할 수 있다며 응원해주는 상냥한 에세이는 많다. 하지만 힘들면 멈추라고, 좀 힘들면 도망도 가보라고 부추기는 에세이를 만나긴 쉽지 않았다.

나만 유독 특별하게 힘든 인생 같지만, 이 책을 읽으며 다들 비슷하다는 걸 다 똑같이 힘든데 그냥 안 그런척 시치미를 뚝 떼면서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남들이 나처럼 고통 받는다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삶이라는게 원래 그런거라는 걸 깨달으면 좀 기분이 나아지긴 한다.

시작이 중요하다는 말은 도리어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라는 걸 너무 나중에 깨달았다.

불안을 이기는 방법은 몸을 움직이는 것, 일단 하는 것이라는 걸 알아요. 그래서 일단 합니다. 그래요, 뭐 어쩌겠어요. 내 선택에 책임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왕이면 멋지게.

아주 가까운 거리만을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의 일, 오늘의 식사, 이번 달의 일정, 다음 달의 여행계획, 그런 가깝고 명확한 것들이요.

완벽주의자처럼 구는 나는 나의 가장 큰 적이다. 그냥 시작하라는 작가의 말, 좀 모자라도 너무 자신을 다그치지 말라는 그 말들이 힘이 되었다.

불안이나 두려움은 언젠가는 사라지는 그런 종류의 감정이 아니다. 언제나 내 곁에 머물면서 나를 조금씩 힘들게 할테지만, 그래도 나는 이겨내고 또 좀 쉬기도 하면서 살아내고 싶다.


쑥, 흐릿한나를견디는법, 에세이, 이달의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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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강하다 래빗홀 YA
김청귤 지음 / 래빗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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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귤 - 달리는 강하다

김청귤 작가의 장편소설이자 청소년 소설인 <달리는 강하다> 표지부터 강하다로 추정되는 소녀가 씩씩하게 달리고 있다. 미소를 머금은 채로.

이 소설의 특징은 <K-좀비소설>이기도 한데, 좀비라는 판타지 특성을 넣은 채로 늘 보았던 클리셰 하나 없이 이야기를 희망으로 이끌어낸다.

하다가 살고 있는 '태전'에선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폭력성을 가진 좀비로 변해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공격한다. 태전만 아니라면 다른 지역의 65세 노인들은 별다른 증상이 없기 때문에 급하게 태전만 봉쇄한 상황.

75세인 할머니가 혼자 남을 것을 걱정한 하다는 봉쇄된 동시에 함께 하기로 한다. 그리고 위층에 사는 은우, 10층에 사는 아기엄마, 할머니의 썸남(?) 현동 할아버지까지 점진적으로 협력하며 위기 상황을 헤쳐나간다.

식량을 구하러 나가는 사람은 오로지 하다 한명 뿐. 빠른 달리기 실력을 지닌 하다는 조용히 좀비들 사이를 지나 마트에 가서 필요 물품을 채우고 돌아오며 함께 하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된다.

봉쇄가 언제 풀릴지도 모르고 정부의 식량공급은 없다. 그럼에도 자기 먹을 것을 아끼지 않고 나누며 함께 하는 것은 할머니인 끝심은 원래부터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다는 그런 끝심의 삶을 본받아가는 중이다.

좀비물이라고 하면 결말에 75세인 할머니가 끝내 좀비로 변하지 않을까, 마지막엔 정부가 지휘한 군인들이 태전시로 들어와 좀비를 소탕하는 해피엔딩이 되지 않을까. 나름대로 좀비물의 결말을 생각해 봤지만, 그 어느것 하나도 이 유쾌한 소설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남들과 나누며, 조금이라도 다정하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 그 당연하지만 어려운 마음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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