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소녀들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18
에드나 오브라이언 지음, 정소영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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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드나 오브라이언 - 시골 소녀들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건데 최근 클레어 키건을 비롯하여 아일랜드 작가들의 작품을 자주 만나고 있다. 이 깨달음이 놀랍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일랜드란 나라가 규모면으로도 작고 인구도 적다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조지 버나드 쇼, 사무엘 베켓,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오스카 와일드 그리고 이 책에서도 언급되는 더블린 사람들의 제임스 조이스까지 아일랜드는 문학의 세계라고 지칭해도 될 만큼 훌륭하고 풍요로운 작가들의 고향이다.

빈곤한 생활, 보수적인 사회, 영국에 의한 핍박 등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는 아일랜드에서 에드나 오브라이언은 <시골 소녀들>을 비롯한 <외로운 소녀들><행복한 결혼을 한 소녀들>로 이루어진 시골소녀들 3부작 시리즈를 집필한다.

보수적인 아일랜드 사회에서는 종교적인 압박으로 인하여 금서로 지정되었으나, 시골 소녀들 3부작은 금방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고전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은 캐슬린과 그녀의 친구 바바다. 처음 등장했던 캐슬린과 바바의 사이를 생각하면 바바와 줄곧 함께하게 되는 캐슬린의 인생이 슬프다가도 곧 바바의 짓궂은 장난은 방어기제임을 깨닫게 된다. 두 어린 소녀는 부모님보다 선생님보다 자신들을 가르쳐주는 수녀들보다 더 서로를 의지하며 세상 밖을 뛰쳐나가려고 한다.

별이 반짝이는 하늘 한 귀퉁이가 내다 보였다. 침대에 누워 별을 바라보니 근사했다. 별빛이 흐릿해지거나 사라지거나 혹은 휘황한 폭죽처럼 환하게 타오르기를 기다리면서. 죽음과도 같은 불행한 고요 속에서 무언가 벌어지기를 기다리면서. -125p

내가 고향을 벗어나서 가고 싶었던 세상. 그런데 이제 그 세상에 들어서자, 무엇보다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바로 늪지의 그 풍경들과 시골 사람들 얼굴이었다. -236p

캐슬린과 바바는 먼저 집을 떠났고, 가부장적인 부모를 떠났으며, 나중엔 종교적 규칙으로 억압하는 수녀원을 떠났다. 늘 같은 삶을 반복하는 시골을 떠났고 도시 더블린에서 새로운 삶과 사랑을 꿈꾼다.

캐슬린이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유부남인 젠틀먼에게 끌리지만, 그녀를 탓할 수는 없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딸은 그렇게 연애를 망친다는 연구도 있으니.

그럼에도 그녀의 연애가 천박하거나 어린 아이의 장난으로 보기만 힘든 것은 그녀가 젠틀먼씨에게 바란 것은 오로지 사랑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못말리는 낭만주의의 사랑이 아니라 정말 순수한 사랑만을 바랐다는 점.

시골에서 아버지에 폭력과 어머니의 갑작스런 부재를 겪으며 자신의 인생을 씩씩하게 헤쳐나간 소녀 캐슬린과 친구 바바의 이야기, 3부작의 첫 번째 이야기는 이렇게 흥미진진한 시골소녀들의 도시 생활로 끝난다.

날카롭게 뻗어나온 이야기는 사실적으로 소녀들의 내면과 행동에 집중한다. 아일랜드가 시골 소녀들을 금서로 지정했던 것은 그만큼 이 소설의 힘이 대단했기 때문 아닐까. 진실이란건 감추려고 해서 감춰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 소설을 쓰는 사람이 상상하는대로만 이야기를 지을 수 없다는 점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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