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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씀만 하소서 - 출간 20주년 특별 개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2월
평점 :
박완서 - 한 말씀만 하소서
3년 전 처음 <한 말씀만 하소서>를 읽었을 땐 그 이유가 발칙하게도 여러 글에 자주 등장하기도 한 아들을 잃은 사건에 대해 좀 자세히 알고 싶다는 순전히 불손한 독자의 욕심 때문이었다.
당시에 박완서 선생님의 문학을 접한 뒤, 장편소설과 에세이를 넘나들며 완파를 하는 중이었는데, 한 번씩 언급 되었던 그 사건에 대한 기록도 출간되어 있다는 말에 호기심이 동해 읽은 것이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개인사를 좀 더 알고 싶기도 했고 또 작게는 그 형용할 수도 없는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셨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어떤 이유든지 발칙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정판으로 출간된 <한 말씀만 하소서>를 다시 읽으며, 불과 3년 전과 지금의 감상이 또 달라진 것에 놀라웠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요량으로 쓴 글이 아니고 당시엔 감정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도저히 공들여 쓸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음에도 여전히 <박완서 문학>이라고 하기에 흠결이 없는 이 작품에 대한 놀라움도 함께였다.
5남매 중 막내 아들이자 외아들이며, 20대의 창창한 젊은이. 의대 졸업 후, 인턴 생활을 하며 멋진 장래를 꿈꾸던 아들은 갑작스럽게 요절해 버리고 박완서 작가는 식음을 전폐한 채, 부산의 큰딸 부부의 집에서 칩거하게 된다.
그러다 부산의 한 수녀원에 들어가 그 적절한 무관심에 1차적인 위로를 얻었고, 아들의 추억이 없는 미국으로 떠났다가 한글과 한국어가 그리워 다시 돌아오게 됐다는 박완서 작가님의 애통한 여정은 결국 어머니의 박완서가 다시 작가 박완서로 회복하는 과정이다.
나는 아들을 잃고도 나는 잃고 싶지 않은 나의 명료한 의식에 놀란다. -27p
아들을 잃고 박완서 작가님의 모습은 흡사 구약의 욥을 떠오르게 한다. 자신의 생명을 저주하고 자신의 미치지 않은 정신을 저주한다. 생을 연장 시키는 식음을 거부하고 잘 먹기라도 하는 날이면 영락없이 토악질을 하며 그 평안을 거부한다. 아들을 막 잃은 시기의 글은 언제 읽어도 가슴이 시리다.
내가 받은 벌은 그런 교만의 대가였을까. -35p
아들을 잃은 이유를 어떻게든 찾아보려는 박완서 작가는 자신의 교만을 핑계로 대본다. 좀 더 잘난 자식들을 둬서 좀 우쭐했다는 것이 이유가 아닐까, 하고.
왜 내 동생이 저래야 되나와 왜 내 동생이라고 저러면 안 되나는 간발의 차이 같지만 실은 사고의 대전환이 아닌가. 내가 만약 왜 하필 내 아들을 데려갔을까라는 집요한 질문과 원한을 내 아들이라고 해서 데려가지 말란 법이 어디 있나로 고쳐먹을 수만 있다면, 아아 그럴 수만 있다면. 구원의 실마리가 거기 있을 것 같았다. -127p
이것은 단순히 문학일 뿐 아니라 종교적인 색채를 띤 간증이기도 하다. 박완서 작가님은 천주교인으로서 하느님이 자신에게 주신 몫을 지혜롭고 성실하게 이겨나가는 모습을 보이며 많은 신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이 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신의 명령에 불복하면서도 결국 알아낸 진리는 자신의 마음을 바꿔 먹는 것. 그것을 부산의 수녀원에서 깨달은 것은 분명 우연은 아니리라.
다시 글을 쓰게 됐다는 것은 내가 내 아들이 없는 세상이지만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는 증거와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안다. -172p
아들이 없는 세상도 사랑해주신 덕분에 우리는 박완서 작가님이 떠난 이 시간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문학의 기쁨을 누릴 수가 있다. 이 용기와 희망을 우리에게 전해준 것으로 같은 아픔을 겪은 분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 문학은 위로이며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다.